뒤처리, 뒷감당, 뒤끝, 뒷일... 헷갈리는 사이시옷

  • 기자명 정재환
  • 기사승인 2018.03.3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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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열풍에 회식 문화가 달라졌다고 한다. 남녀가 동석하거나 나란히 앉는 것을 기피하기도 하고, 아예 회식 자체를 삼간다고도 한다. 회식은커녕 업무 시간에도 남녀 동료들 간 내외현상마저 일고 있단다. 뒤틀린 성 인식에서 비롯된 잘못은 바로 잡아야 하지만 서먹한 일터 분위기는 부자연스럽고 불편하다. ‘펜스 룰’이란 생소한 용어마저 등장했는데, 처음에는 남녀 사이에 울타리를 치자는 건가 추측하면서 울타리나 담을 뜻하는 ‘펜스(fence)’로 오해했다.

한글운동가로서 낯선 외국어의 등장은 반갑지 않다. 미투(Me Too)는 ‘나도 당했다’ 정도로 바꿀 수 있지만, 미국 부통령 마이크 펜스(Mike Pence)가 2002년에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 절대 단둘이 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한 발언에서 유래했다는 ‘펜스 룰(Pence Rule)’이란 말은 사람의 이름을 멋대로 바꿀 수 없으니, 기껏해야 ‘펜스 규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헤파이토스가 만든 아름다운 여인 판도라와 에피메테우스가 결혼하자, 제우스는 ‘절대 열어서는 안 된다’면서 상자를 하나 주었다.

‘절대 열지 말라니?’ 궁금증을 억누르지 못한 판도라가 상자를 열자, 고통, 질병, 노화, 증오, 질투, 잔인함, 분노, 굶주림 등등 온갖 재앙이 튀어 나왔다. 놀란 판도라가 급히 상자를 닫았는데, 미처 나오지 못한 것은 희망이었다. 그래서 인간은 어떤 고난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함께(With You)’ 뒤처리를 잘 해나가면 우리 사회는 이전보다 건강해질 것이다. ‘뒤처리’라는 단어가 부적절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뒤처리’ 자체에는 부정적 의미가 없다. ‘일이 벌어진 뒤나 끝난 뒤끝을 처리하는 일’이다. ‘뒤처리를 잘하다’는 ‘뒷감당을 잘하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뒷감당은 ‘일의 뒤끝을 맡아 처리하는 것’이다. 뒤끝이 없기를 바라면서 뒷일을 걱정하지 말자.

뒤처리, 뒷감당, 뒤끝, 뒷일 등은 낱말 ‘뒤’와 다른 낱말이 결합한 것이다. 「뒤+처리, 뒤+감당, 뒤+끝, 뒤+일」. 뒤의 합성어, 즉 어떤 것은 사이시옷이 들어가고 어떤 것은 들어가지 않는데, 이에 대한 의문을 한방에 날려 보내기 어려우니 여기서는 한글맞춤법 제4장 제4절 제30항 1의 3에 해당하는 ‘뒷일’에 대해서 살펴보자.

제30항 사이시옷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받치어 적는다.

1. 순우리말로 된 합성어로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난 경우

(3) 뒷말의 첫소리 모음 앞에서 ‘ㄴㄴ’ 소리가 덧나는 것

보다시피 제30항 1의 2는 순우리말 + 순우리말의 상황에서 두 낱말이 결합할 때 뒷말의 첫소리 모음 앞에서 ㄴㄴ소리가 덧날 경우 사이시옷을 적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뒤 + 일 = 순우리말 뒤 + 순우리말 일 → 뒤와 일 사이에서 ㄴㄴ소리가 덧나므로 ⇒ 뒷일[뒨ː닐]

뒷일과 같이 사이시옷이 들어가는 낱말들은 다음과 같다.

 

베개 + 잇 = 순우리말 베개 + 순우리말 잇 → 베개와 잇 사이에서 ㄴㄴ소리가 덧나므로 ⇒ 베갯잇[베갠닏]
나무 + 잎 = 순우리말 나무 + 순우리말 잎 → 나무와 잎 사이에서 ㄴㄴ소리가 덧나므로 ⇒ 나뭇잎[나문닙]

예시된 낱말 중 ‘뒷입맛’은 좀 생소하지만, 흔히 쓰는 ‘뒷맛’과 같은 뜻이다. 아름다운 대나무 숲으로 유명한 담양의 ‘대통밥’은 쪼개지 않고 자른 대나무에 찹쌀과 잡곡, 고구마, 은행 등을 넣어 지은 밥이다. 대와 통이 만나 ‘대통’이 될 때는 사이에 ㄴㄴ소리가 덧나지 않으므로 그냥 ‘대통’이 되지만, 대와 잎이 만날 때에는 ㄴㄴ소리가 덧나므로 ‘댓잎[댄닙]’이 된다.

음, 사이시옷은 역시 복잡하다. 뭔가 뒷말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뒷말’은 지난번에 이미 소개한 것처럼 ‘뒷말의 첫소리 ㄴ, ㅁ 앞에서 ㄴ소리가 덧나는 경우’에 사시시옷이 들어간 것이다. 아마 기억이 가물가물할 것이다. 이러한 증상은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니 낙담할 이유는 없다.

뒷말에는 ‘뒤에 오는 말’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위 단락의 뒷말은 ‘일이 끝난 뒤에 뒷공론으로 하는 말’이다. ‘아, 뒷공론이 또 나왔다!’ 이놈의 사이시옷의 비밀을 풀다가 10년은 빨리 늙을 것 같다. 뒷공론[뒤ː꽁논/뒫ː꽁논]은 뒷감당과 마찬가지로 다음에 다룰 제30항 2의 1에 해당한다. 사이시옷으로 인해 얽히고설킨 머릿속을 푸는 의미에서 조동진의 「나뭇잎 사이로」나 듣자. 「나무잎 사이로」가 아니다!

나뭇잎 사이로 파란 가로등 그 불빛 아래로 너의 야윈 얼굴

지붕들 사이로 좁다란 하늘 그 하늘 아래로 사람들 물결

여름은 벌써 가버렸나 거리엔 어느새 서늘한 바람

계절은 이렇게 쉽게 오가는데 우린 또 얼마나 어렵게 사랑해야 하는지

나뭇잎 사이로 여린 별 하나 그 불빛 아래로 너의 작은 꿈이

어둠은 벌써 밀려왔나 거리엔 어느새 정다운 불빛

그 빛은 언제나 눈앞에 있는데 우린 또 얼마나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지

나뭇잎 사이로 파란 가로등 그 불빛 아래로 너의 야윈 얼굴

음음음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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