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의 오타(typo) 대행진은 전략이다?

  • 기자명 박기범
  • 기사승인 2018.05.31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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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 속을 알기 참 어려운 인물이다. 한반도를 비롯한 전 세계의 눈과 귀가 쏠려있던 북미정상회담을 하루 아침에 취소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바로 다음날 취소 결정을 다시 취소했다. 물론 평화를 갈망하는 우리에게는 꺼져가던 희망을 되살리는 희소식이긴 하지만, 롤러코스터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은 늘 불편하다.

사실 대통령의 엄숙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그만의 독특한 개성과 행동양식을 불편해 하는 사람들은 우리만이 아니다. 상당수의 미국인들도 자국 대통령의 'unpredictability(예측불가능성)'에 대해 걱정하고 비판한다. 그리고 트럼프의 unpredictability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그의 놀이터인 Twitter(트위터)다. 

그의 트윗에는 심각한 오타가 무수히 발견되어 적잖은 논란을 불렀다. 그러나 트럼프가 최근 북미회담을 다루는 솜씨를 보면, 그의 오타투성이 트윗들이 꼭 무식의 소치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트럼프는 최근인 지난 5월 19일 트위터에서 자기 아내의 이름을 잘못 불러 대중을 경악시켰다. 신장 수술을 갓 마치고 백악관으로 돌아온 아내 Melania(멜라니아) 여사를 Melanie(멜라니)라고 잘못 부른 것이다. 알파벳 한 개 오타를 냈을 뿐이지만, 병원에서 퇴원하는 아내를 다른 여자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웬만한 배짱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사실 트럼프의 오타 행진은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무섭게 화제가 되었다. 당선이 확정된 직후인 2016년 12월 10일, 취임 이후에도 그가 서바이벌 리얼리티 TV쇼 'Apprentice(어프렌티스: 견습생)'을 진행할 것이라는 CNN 방송의 보도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일'(ridiculous)이라고 표현하려다 이를 'rediculous'라고 트위터에 잘못 쓴 것이다.  

작년 1월 21일 대통령 취임식 직후에는 '국민들을 위해 봉사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트윗하면서 I'm honored 대신 I'm honered라는 엉뚱한 오타를 남겼다. 

honor는 명사로는 '명예', 동사로는 '명예롭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다. 국민들에 의해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영예가 주어졌으니 수동태 honored로 표현해야 맞다. o와 e는 영문자판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honered란 오타를 단순한 터치 실수로 보기도 힘들다. 뉴욕타임스의 저널리스트 Dave Itzkoff는 "Saving this for posterity(후대를 위해 저장함)"라는 멘트로 트럼프의 실수를 트위터에 박제해버렸다. 

결정적인 오타는 트럼프의 취임식 공식 포스터에서도 여전했다. 

"No dream is too big, No challenge is to great"라는 포스터 문구에서 "No challenge is to great" 부분은 명백한 오타다.  '지나치게 큰 꿈도, 지나치게 위대한 도전도 없다'라는 의미인데, 'No challenge is too great'로 써야 맞다. 

사실 원어민들도 too와 to를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꽤 있다. 그러나 미국의 대통령 취임식 포스터에서 이런 오타를 발견하는 일은 트럼프 행정부가 아니면 상상하기 힘들다. 그들의 보스(boss)처럼 포스터를 제작한 참모들도 미숙하고 경솔한 것 아니냐며 사람들은 우려하기 시작했다. 

트럼프의 오타 실수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은 2017년 5월 31일 트윗에서 비롯됐다. 지금은 삭제되어 찾아볼 수 없는 트럼프의 트윗에서 "Despite the constant negative press covfefe"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이다. 

'covfefe'라는 단어는 영어 사전에 나오지 않는 단어다. 다만 문맥이나 정황상 'coverage(보도)'의 오타로 추정될 뿐이다. Despite the constant negative press coverage(지속적인 언론의 부정적인 보도에도 불구하고)로 보면 자연스럽다. 이 트윗은 6시간 후 삭제되기 전까지 12만 7천 번 이상 리트윗되었고, 16만명 이상으로부터 '좋아요'를 받았다.

알쏭달쏭한 정체불명의 단어 covfefe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다양한 추측들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엉터리 트윗이 화제가 되자 "Who can figure out the true meaning of 'covfefe'??? Enjoy!"(누가 covfefe의 진짜 의미를 알아낼 수 있을까? 그냥 즐기세요!)라는 장난스런 트윗을 추가했다. 

 

 

백악관 대변인 숀 스파이서(Sean Spicer)는 당시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오타를 인정하기는커녕 마치 트럼프대통령과 참모진들이 covfefe의 의도를 알고 있다는 듯 둘러대다 기자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렇게 미국 대통령이 실수(?) 혹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신조어 covfefe가 최근에는 다양한 상표로 등록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조만간 covfefe라는 상표를 달고 출시되는 다양한 의류, 머그컵, 범퍼 스티커, 커피 등의 상품을 보게될지도 모른다. 

대통령의 말장난이 이렇게 큰 이목을 끌게 되자, 민주당 소속 하원의원 마이크 퀴글리(Mike Quigley)는 대통령의 소셜미디어(SNS) 활동을 삭제되거나 수정된 것까지 전부 대통령 기록물로 저장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인 COVEFEFE Act (Communication Over Various Feeds Electronically For Engagement Act)를 발의하기도 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17년 5월 8일 트윗에는 그의 지적 능력까지 의심할만한 심각한 오타가 등장한다.  백악관 법률고문 정도로 번역될 White House Counsel을 언급하면서, 협의회나 지방자치의회를 가리키는 Council을 사용한 것이다. 이런 오류 혹은 오타에 Merriam-Webster 사전은 트윗을 통해 council이 아닌 counsel이 맞다고 교정을 해주었고, 2시간 후에 트럼프는 이 부분을 잽싸게 수정했다.  

그러나 우습게도 트럼프는 열흘 후 또다시 counsel 대신 council을 쓰는 실수를 반복했다. 웹스터 사전도 친절하게 또다시 counsel로 교정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 밖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민망한 오타 투성이 트윗들은 차고 넘쳐난다. 자신의 전임자인 Barack Obama 대통령의 이름에 r을 하나 더 추가해서 Barrack으로 표기해 빈축을 산 적도 있다. barrack은 '병영'이나 '군인 막사'의 뜻을 가진 단어다.  

'전례가 없는'의 뜻을 가진 unprecedented를 사전에도 없는 단어인 unpresidented로 잘못 쓴 트윗도 꽤나 유명하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J.K. 롤링은 'Unpresidentedly Effective(전례 없이 효과적이다)'라며 트럼프의 실수를 조롱했다. 

 

 

다수 트위터리안들도 엉터리 단어 unpresidented에 대해, '부정'을 나타내는 접두사 [un-], '대통령'을 뜻하는 [president], 그리고 수동태형 어미 [-ed]가 합쳐져서 '대통령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말이라며 거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FBI와 한참 각을 세우고 있던 2017년 3월에는 도청(tap)에 관한 오타가 화제였다. 트럼프는 트위터에 '(FBI가) 나의 전화들을 도청했다'라는 의미로 "tapp my phones"라고 썼는데 이는 'tapped my phones'의 오타다. 

하지만 '도청했다'는 부분을 의도적으로 잘못 써서 결과적으로는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 유포 등 법률적 책임을 피하려는 트럼프의 계산 때문이 아니냐는 의심도 가능하다. 

트럼프의 참모진들 역시 공식 정부 문서에 적지 않은 오점을 남겼다. '평화'를 의미하는 'peace'를 peach(복숭아)로 잘못 쓰는가 하면, 트럼프가 임명한 주러시아 대사 이름을 Jon에서 John으로 제멋대로 바꿔 불렀다. 

백악관이 발표한 테러공격사례 78건의 리스트에서도, attacker(공격자)의 오타인 attaker가 20번 이상 꾸준하게 등장하고, 캘리포니아의 도시 San Bernardino는 San Bernadino로 둔갑했다. 

국가이름 Denmark를 Denmakr로 써서 외교적 결례를 범한 건 차라리 앙증맞다. 2018년 1월에는 영국 수상 Theresa May의 이름을 Teresa May로 3번이나 잘못 기재한 일정표를 공개해 망신을 사기도 했다. Teresa May는 유명한 영국의 포르노 스타다. 

2017년 2월 교육부(The Department of Education)의 트윗에도 오타가 발견됐는데, 저명한 학자이자 인권운동가인 W.E.B. Du Bois의 글을 인용하면서 작가 이름을 DeBois라고 잘못 썼다. 트위터리안들이 이것을 발견하고 비판하자 교육부가 트윗을 통해 사과했지만, 여기에 또다른 오타가 발견되어 더 큰 수모를 겪었다. 

"our deepest apologizes for the earlier typo"라는 표현에서 apologizes는 apologies의 오타다. apologize는 '사과하다'라는 동사이고, apology는 '사과'라는 명사다. 동사 apologize를 3인칭 단수형으로 어미변화한 것이 apologizes이고, 사과를 할 때는 apology를 복수형으로 써서 apologies라고 한다.  

가장 최근 트럼프와 그 행정부가 치른 곤욕 사건은 더욱 가관이다. 미국 애틀랜타의 은퇴한 영어교사 Yvonne Mason(61세)은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받은 편지 속의 오타를 직접 첨삭 교정해서 페이스북에 올려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편지 왼쪽 맨 위에는 "Have y'all tried grammar & style check?"라는 그녀의 도발적인 첨삭 내용이 자리잡았다. y'all은 you all의 축약형이다. grammar는 우리말로 '문법'이나 '어법'에 가깝고, style은 '어휘와 표현, 글의 논리적 흐름'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녀는 정부의 공식 문서에 어울리지 않는 I(나)라는 표현이 쓰인 부분마다 노랑색 형광팬으로 표시했다. 그리고 President, Federal, State, Nation 등 대문자로 표시된 부분은 모두 소문자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편지 마지막 어구 our great Nation 부분에는 "OMG this is WRONG! 이라고 쓰면서 실망감을 표출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 주변인들이 얼마나 무성의하고, 가볍고, 무식한지를 증명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인 5월 27일 뉴욕타임스가 이 첨삭 사건에 관해 트럼프를 옹호하고 나서는 반전을 보여줬다. 뉴욕타임스는 똑같은 사건에 대해 보도하면서 Yvonne Mason의 첨삭이 너무 가혹하다고 지적했다. 

Style Manual for the Federal Government(연방 정부를 위한 문서작성 매뉴얼)에 따르면, Nation과 Federal이란 단어가 'The United States(미국)'과 같은 의미로 사용될 때, 그리고 State가 'government(정부)'나 'legislature(입법부)'를 지칭할 때는 모두 대문자로 써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오바마와 부시 대통령 등이 보낸 편지에서도 President(대통령)는 대문자로 사용되었다는 것이 뉴욕타임스의 주장이다. 게다가 Yvonne Mason 교사는 트럼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대립적인 견해를 가진 민주당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4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취소하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편지가 화제였다. "마음이 변할 경우 주저하지 말고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쓰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편지에 대해서도 표현이나 문법이 엉망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 편지를 첨삭하는 것이 일종의 놀이처럼 인터넷에서 유행하고 있다는 기사도 나오고 있다. 

라이언 셰필드라는 네티즌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트럼프 대통령의 편지를 빨간펜으로 첨삭 지도한 뒤 F학점을 준 것이 화제가 됐다.

 

한 국가의 최고권력자가 공공연하게 오타를 남발하는 모습은 체신머리 없는 행동으로 비판받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상당부분 긍정적으로 바뀌면서, 그것이 혹시 전략적으로 계산된 행동은 아닐까하는 의구심도 생긴다. 실제로 조롱과 비판에 개의치 않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저 '관종병'으로 치부하기에는 꺼림직하다.   

결과적으로는 그의 천방지축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관심을 유도하는 데 꽤나 효과적일지도 모르겠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에 평화의 시대를 구축하기 위해 북미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는 당사자다.  예측불가능한 트럼프의 특성이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개척할 새로운 정치력으로 발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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