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은 왜 위대한가

  • 기자명 정재환
  • 기사승인 2018.07.1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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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누구나 훈민정음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창제한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을 가진 우리 고유의 문자다. 그러나 이렇게만 이야기한다면 이것은 문자인 훈민정음의 설명에 그치고 만다. 그러면 그 이상 또 무엇이 있을까?

조선 4대 임금 세종이 1443년 창제하고 1446년 반포한 한국 고유의 문자 체계, 또는 그를 설명한 책. -다음백과

 

백과사전의 설명처럼 훈민정음은 세종이 창제한 문자의 이름이면서 또한 문자 훈민정음을 해설한 책의 이름이다. 책은 『훈민정음』이라고도 하고, 『훈민정음 해례』나 『훈민정음 해례본』이라고도 하는데, 1946년 조선어학회에서 영인본으로 출판하였고, 1962년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었고, 1997년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2002년 100대 한글문화유산 1호로 지정되었다.

훈민정음 세계기록문화유산 지정 기사.

유네스코가 『조선왕조실록』과 함께 『훈민정음』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선정한 이유는 문화적ㆍ사회적ㆍ미적 가치와 희귀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간혹 '한글은 유네스코문화유산이야.'라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한글에 대한 자부심이 듬뿍 묻어나는 말이기 하지만, 정확히는 '한글'이 아니고, 책 『훈민정음』이다.

『훈민정음』은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1443년으로부터 3년 후인 1446년에 완성되었다.

이달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이루어졌다.
- 세종실록 113권, 세종 28년 9월 29일 4번째기사

 

세종 25년 12월 30일 기사에서 ‘언문(諺文) 28자(字)’라 하고 이것을 ‘훈민정음’이라 한다고 했던 새 문자의 해설서 『훈민정음』이 3년 만에 완성된 것이다. 조선인들은 오랫동안 훈민정음을 언문이라고 불렀는데, ‘언문’이라는 명칭에 대해 ‘진서인 한문과 구분해 낮춰 부르는 비칭’이라는 통설도 있지만, 이것 또한 잘못된 이해가 아닐까?

왜냐하면 만인지상의 군주 임금이 만든 새 문자를 실록에 기록하면서 감히 낮추거나 얕잡아 칭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훗날 한자를 숭상하던 일부 유자들이 그런 폄하의 감정을 담아 불렀을 가능성은 있지만, 애당초 세종실록에 보이는 언문이란 표현은 비칭이 아닌 ‘우리 글자’ 또는 ‘조선 글자’를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글쓴이와 비슷한 세대는 훈민정음이란 글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따지는 여러 설 가운데 ㄱ이나 ㄴ, ㄷ 등과 같은 글자를 문창살에서 힌트를 얻어 고안했다는 ‘문창살설(창호설)’을 기억할 것이다.

실제로 문창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ㄱ, ㄴ, ㄷ, ㄹ뿐만 아니라, ㅁ, ㅂ, ㅍ 등 대부분의 한글 자모가 보인다. 그리고 사진 가운데 있는 문손잡이가 곧 ㅇ!

지금 생각하면 학창시절 국어선생님이 들려주시던 이런 얘기가 그럴 듯하게 들렸다는 것이 놀라울 지경이다.

사실 이밖에도 옛날 문자인 전자(篆字)를 모방했다든가, 인도 문자인 범자에서 기원했다든가 하는 설도 있었지만, 1940년 안동에서 『훈민정음』이 발견됨으로써 모두 엉뚱한 추측이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훈민정음』 제자해에 그동안 연구자들로 하여금 온갖 추측을 가능케 했던 제자원리에 대한 명쾌한 설명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정음 28자(正音二十八字)는 각상기형이제지(各象其形而制之)
정음의 28자는 각각 그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

 

제자해의 앞부분에 나오는 이 설명에 대해 일본인 한글학자 노마 히데키는 ‘경악할 기술’이라며 감탄했다. 소리를 내는 발성기관의 모양에서 글자를 만들었다는 설명도 놀랍지만, 각각의 소리를 내는 발성기관의 형태에서 글자를 고안하겠다고 생각했다는 사실, 즉 보이지 않는 소리를 보이도록 형상화하고자 했던 그 발상이 더더욱 놀랍다.

 

어금닛소리 글자 ㄱ은 혀뿌리가 목을 막는 모양을 본떴다(象舌根閉喉之形).

혓소리 글자 ㄴ은 혀가 윗잇몸에 닿은 모양을 본떴다(象舌附上齶之形).

입술소리 글자 ㅁ은 입 모양을 본떴다(象口形).

잇소리 글자 ㅅ은 이 모양을 본떴다(象齒形).

목구멍소리 글자 ㅇ은 목구멍의 모양을 본떴다(象喉形).

 

ㆍ 모양이 둥근 것은 하늘을 본떴다.

ㅡ 모양이 평평한 것은 땅을 본떴다.

ㅣ 모양이 서 있음은 사람을 본떴다.

 

1940년 책 『훈민정음』이 발견됨으로써 제자원리에 대한 모든 의문이 풀렸다. 한자는 상형문자이고, 일본의 가나문자는 한자를 간단히 약자화한 것이다. 로마자는 어떻게 해서 지금의 형태가 됐는지 알 수 없다. 글자를 만든 배경, 이유, 목적뿐만 아니라 글자의 과학적인 제자원리마저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책은 전 세계에서 『훈민정음』이 유일하다. 문자 ‘훈민정음’과 그 해설서인 『훈민정음』은 참으로 경이롭고 신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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