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는 왜 '박정희 긴급조치 위법' 판결에 민감했나

  • 기자명 최윤수
  • 기사승인 2018.07.24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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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행정처 최모 윤리감사기획심의관(이 글에서는 문건 작성 당시 직함 사용) 은 2015년 9월 19일 '법관의 잘못된 재판에 대한 직무감독'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작성하여 보고했다. 대법원이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국민에 대한 민사상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음에도 2015년 9월 1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김기영 부장판사는 대법원 판결과 정반대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발령 자체가 불법행위라는 판결을 선고했기 때문이다. 최 심의관은 문건에서 대법원 판결에 배치되는 판결을 한 판사들에 대한 직무감독권 행사 방안을 검토했다.

 

양승태, 상고법원 위해 박근혜 정부 '코드'에 맞는 사례 취합

이 뿐 아니라 김모 심의관은 2015년 9월 22일 '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위반한 하급심 판결에 대한 대책'을 작성해서 보고했다. 문건에서 김기영 부장판사에 대해 “매우 부적절한 행동으로서 직무윤리 위반의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평가했고, 징계는 부정적이지만 대법원 판결을 따를 수 없는 경우 회피 및 재배당을 할 수 있게 하거나, 대법원 판결에 배치되는 1심 판결의 항소심을 적시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선정하는 대응방안을 제시했다. 법관 연수를 강화해서 법관들에게 판례의 구속력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키거나 한국형 선례구속의 원칙 확립을 위한 사법정책연구원 연구를 하는 것도 대응방안으로 언급됐다.

 

모두 임종헌 기조실장의 지시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는 왜 이런 지시를 했을까. 당시 정황을 통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까. 임 실장이 2015년 7월 28일 보고받은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BH 설득방안'에는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구체적 협력 사례로 대통령긴급조치 사건(대법원 2014. 10. 27. 선고 2013다217962 판결, 대법원 2015. 3. 26. 선고 2012다48824 판결)이 등장했다. 즉, 임 실장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요청하면서 사법부가 정부 운영에 협조했다는 증거로 대통령긴급조치 사건을 언급하도록 할 계획이었다. 양 대법원장은 말씀자료는 봤지만, 내용 언급은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박정희 "유신헌법 비판금지" 긴급조치 남발

대통령 긴급조치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과 뗄 수 없는 관계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3선 개헌 후 1971년 4월 제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마지막임을 호소하며 당선되었으나, 거액의 선거자금을 쓴 것에 비하면 득표율이 부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어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인 민주공화당은 과반 의석은 확보했으나 개헌선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국민들은 마지막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당선시켰지만, 종신 집권은 막은 셈이었다.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 및 정치 활동 중지, 헌법 조항 일부를 정지시킨 후 비상국무회의가 헌법개정안을 공고하는 긴급조치를 단행했다. 다음날에는 집회, 시위를 금지하고, 언론의 사전 검열, 대학 휴교, 유언비어 날조 및 유포를 금지하는 내용의 계엄을 포고한다. 비상국무회의가 공고한 헌법개정안은 1972년 11월 21일 국민투표를 통과했다. 이것이 이른바 ‘유신헌법’이다. 유신헌법 제53조는 대통령이 국정 전반에 걸쳐 필요한 긴급조치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헌법 상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할 수 있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대해서도 긴급조치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심지어 대통령의 긴급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헌법에 명시했다. 그야 말로 대통령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부여하는 조항이었다. 

대통령 긴급조치 1, 2호를 다룬 1974년 1월 9일자 동아일보 1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4년 1월 8일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로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제안, 또는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 위 각 행위들을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기타 방법으로 이를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언동을 모두 금지하였다. 또한 긴급조치 위반자와 긴급조치를 비방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쉽게 말해 대통령을 욕하거나 유신헌법 폐지를 주장하면 영장 없이 체포, 구속해서 반대자들을 말살시키려 했다.

 

2010년 대법원 "박정희 긴급조치는 기본권 침해 위헌" 판결

대법원은 수차례 유신헌법 제53조에 근거를 둔 긴급조치는 합헌이라고 판단하였지만, 긴급조치 위반 재심사건에서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 2010. 12. 16. 선고 2010도5986 전원합의체 판결)로 견해를 변경했다.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는 그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유신헌법에 위배되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나아가 긴급조치 제1호에 의하여 침해된 각 기본권의 보장 규정을 두고 있는 현행 헌법에 비추어 보더라도 위헌이므로, 위헌·무효인 긴급조치를 적용해서 기소된 사건은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 ‘피고 사건이 범죄로 되지 아니한 때’에 해당하여 무죄라고 인정했다. 무죄가 인정됨에 따라 피해자들은 형사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용훈 대법원장 때의 일이다.

긴급조치 사건 피해자들은 무효인 긴급조치에 의해 수사하고 기소한 수사기관의 직무행위나 유죄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에 불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긴급조치에 근거했다고 수사, 재판이 바로 불법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수사기관이 위법행위로 수집한 증거에 기초하여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으나 재심절차에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여 무죄판결이 확정되거나,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한 무죄판결이 확정된 경우라도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할 고도의 개연성이 있는 경우에만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14. 10. 27. 선고 2013다217962 판결). 사실상 유신시대에 부역한 판사들에게 면죄부를 주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대법원 "긴급조치 손해배상청구권 소멸" 판결...정부 협조 사례

아예 대통령이 위헌 무효인 긴급조치를 발령한 것 자체가 불법행위라는 주장도 있었으나, 대법원은 판결(대법원 2015. 3. 26. 선고 2012다48824 판결)에서 이를 부정했다.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서 대통령은 국가긴급권의 행사에 관하여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하여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한 중앙정보부 소속 공무원이 피해자를 대통령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체포·구금한 것은 공무원의 불법행위라고 인정하면서도 피해자가 재판을 받지 않고 풀려났기 때문에 재심절차를 통하여서만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고, 체포·구금상태가 종료된 후 30년이 지나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에 손해배상청구권은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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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법원, 직무감독권으로 정부에 불리한 판결 법관 제재 검토 

법관과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준 이 두 판결이 양승태 대법원에서 정부 운영에 협조했다고 예로 든 그 판결들이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에 수긍하지 못한 일선 판사들은 다른 판결들을 내놓았다. 그리고 법원행정처는 이들을 제재할 방안을 검토했다. 아주 구체적으로 판사가 대법원 판례에 양심상 따르지 못할 경우 판결을 하지 말고 사건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라고까지 하면서.

대한민국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도 퇴임사에서 헌법이 선언하는 이 법관독립의 원칙을 언급했다. 그런데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한 것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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