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왕후 설화'는 어떻게 실제 역사로 둔갑했나

  • 기자명 이광수
  • 기사승인 2018.09.10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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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의 팩트체크] 가야문화권 연구사업에도 등장한 허왕후 신화의 실체

허왕후 설화가 실린 《삼국유사》의 〈가락국기〉는 《가락국기駕洛國記》를 줄여서 채록한 것이다. 《가락국기》는 고려 문종 31년인 1076년에 편찬되었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이 《가락국기》를 200년 후에 일연一然이 줄여서 《삼국유사》에 수록한 것이 지금 전해지는 〈가락국기〉다. 《가락국기》는 삼국통일 뒤 신라 집권층에서 점차 배제 당하던 김유신 후손이 김유신과 그의 선조 김수로왕에 대해 추진한 신화 만들기였다. 원형이 만들어진 후 불교 국가 신라로서 불교와의 관련성을 만들기 위해 힌두 최고의 서사시 《라마야나》에 나타난 사리유Saryu 강안에 위치한 힌두 제1의 정치적 성도聖都 아요디야Ayodhya를 삽입한 것이다. 기원후 5세기 이전에 ‘아요디야’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는 실제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다. 

삼국유사 이후 민간 설화가 더해지면서 '허왕후 신화'로

〈가락국기〉에 아유타에서 온 허왕후 이야기가 삽입된 후 몇 백 년 동안 많은 이야기들이 덧붙여졌다. 그 중 좋은 예가 〈금관성 파사석탑〉에 나오는 이야기다. 불교 사찰에서 확장되기 시작한 허왕후 신화는 조선조 들어 성리학의 가문 정치를 만나면서 또 한 번의 전기를 맞는다. 양천 허씨가 신화 속의 허왕후를 실제 인물로 여겨 허왕후릉을 비정하고 족보와 연계시키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허왕후가 실재하는 역사 속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허왕후 신화는 18세기 들어 김해의 명월사를 비롯한 작은 사찰들이 사원 비즈니스 차원에서 신화 만들기에 적극 나서면서 또 한 번의 큰 확장을 경험한다. 이 경우 이전 시대보다 더 과감한 방법으로 사료 조작과 날조가 이루어졌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허왕후의 형제 장유화상이라는 인물의 창조다. 성리학 가부장 사회에서 모계인 허씨 성을 이어받으려니 허왕후의 아이들 중 2명이 허씨를 허락 받았다는 얘기가 만들어지고, 불교 전래자가 여자인 허왕후면 곤란하니 오빠 장유화상을 만들어냈다.

 

허왕후가 실제로 인도에서 왔다는 주장은 이종기라는 한 아동문학가의 탐사문 형식을 빌린 수필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 1977년의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한국 사회에 실재하는 역사이자 ‘국민 신화’로 등장하게 된 것은 김병모라는 한 고고학 전공 교수의 치열하지 못한 학문 때문이다. 김병모는 20세기에 들어와 만들어진 이야기가 마치 〈가락국기〉 기술 당시의 원형인 것처럼 말했고, 그것으로 수로왕 시대의 역사를 논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주로 검증이 필요하지 않은 언론에 무차별적으로 살포했다. 김병모는 조선 시대 중기 이후 혹은 20세기 들어 만들어진 장유화상과 허왕후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가지고 수로왕 시대의 역사를 말한다. 사이비 역사학의 확산은 이러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진다. 이후로 사람들 사이에서는 허왕후가 오빠와 함께 인도에서 왔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수로왕과 사이에서 열 아들을 낳고, 그들이 가야산이나 지리산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가락국기〉나 《삼국유사》에 나오는 것처럼 이해하고, 그것이 기원 초기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널리 퍼지게 된다.

 

여기에 아마추어 민족주의자들까지 가담하여 인도와 직접 접촉하고 일본에까지 건너가 나라를 세운 가락국의 역사는 삼국 중심의 기존 역사에 의해 무시당했으니 지금부터라도 그로부터 벗어나 북방 문화가 아닌 남방 문화를 더욱 탐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남방 문화 탐구의 필요성은 예의 한국어 드라비다어 기원론과 맞물리면서 더욱 자극적으로 퍼져나갔다. 이때 허왕후의 실제 인도에서의 도래는 역사에서 일어난 기정사실이 된다. 사이비 역사학의 이 같은 작업은 대륙에 붙은 반도라는 콤플렉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위대한 한민족’의 심리를 자극하기도 한다. 한 아동문학가의 창조된 해석이 고고학 전공 교수의 사이비 역사학과 만나고 언론이 이를 부추기면서 ‘허왕후 신화’는 한반도를 벗어나 세계 속으로 뻗어나가 세계의 주인이 되고 싶은 위대한 한민족 민족주의 속에서 일약 ‘국민 신화’가 되어버린 것이다.

 

김해 분산성 해은사의 대왕전에 있는 ‘허왕후 영정’. 허왕후 영정이라는 주장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전문가들은 원래 무녀도인 것으로 본다. 이광수 교수 제공

'세계 속 한국' 욕망때문에 신화가 실제 역사로 둔갑

그 후 김해 지역의 공공 기관은 허왕후 신화를 김해의 정체성과 결부시키면서 김해 지역의 관광 상품으로 발전시키는 일에 매진하게 된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는 허왕후의 도래 이야기가 개막식에서 화려한 행사로 올려지기까지 했다. 설화를 문화 행사의 일환으로 활용하는 것에 반대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설화 또한 고유의 가치가 있는 문화자산이고, 문화 행사가 반드시 역사적 사실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홍길동이나 논개를 지역 사업화 하듯, 김해는 김수로왕과 허왕후를 지역 사업화 할 수 있다. 다만 그게 역사적 사실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설화는 문학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서 문화 자산이라는 가치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그 설화를 역사적 실체로서 인정할 경우 문제는 심각해진다.

 

문제는 정치인들이 개입하면서 실제로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김해김씨 김종필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또 다른 김해김씨 정치인 김대중과 만나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이 민족주의를 이용하는 차원에서 인도로까지 확대시켰다. 허왕후가 인도에까지 전해져 인도의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이용되었다. 그 후 김해김씨가락중앙종친회에 의해 인도 아요디야 市 사리유 강가에 검은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만들어진 허왕후 탄생 기념비가 세워진다. 허왕후 탄생비를 아요디야의 사리유 강가에 건립한 것에는 인도의 집권 여당인 인도국민당의 적극적 후원 하에 이루어졌다. 그런데 인도국민당은 힌두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한 극우 파쇼적 정치를 표방하고 있는 정당인데 그 정치 이데올로기의 중심을 아요디야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인도국민당과 그 방계 세력들은 1992년 12월 아요디야에서 신화 라마야나의 라마 사원을 복원한다면서 기존의 이슬람 사원을 파괴하고 232명의 인명 살상을 초래하였고, 그 후로도 폭력은 계속되어 500명 이상이 살해되고 수십만 명이 가정을 잃게 되었으며 천문학적인 재산 손실을 가져 왔다. 그리고 그 양상은 지금도 -특히 총선과 관련된 시기에 집중적으로- 끊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인도의 극우 패권주의 세력들에게 한국에서의 ‘아요디야에서 온 공주 허왕후’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정권 정당성의 근거가 될 가능성마저 있다.

인도 아요디야에 조성된 ‘허왕후 탄신지’. 현재 이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성역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광수 교수 제공

허왕후 유적 발굴조사 착수...세금 낭비 누가 책임지나

이후 주인도 한국대사관이 혈세 7~8억 (4~5년 전 이야기)을 들여 성역화 한다고 한다. 한국인 스스로가 위대한 힌두 제국의 식민지가 되고자 애쓰는 형국이다. 그렇게 되면 그 성역화 된 공원은 또 다른 역사적 실체가 되어 더 험한 역사 왜곡이 일어날 것이 분명해진다. 더군다나 2018년 여름 문재인 대통령의 인도 방문 때도 역시 이 건이 확인 되었고, 인도 방문 후 정부에서 이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피 같은 국민 세금을 써서 남의 나라 식민지로 편입되고 싶어 안달인 나는 그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대통령 방문 이후 일이 커지자 김해시 또한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언론 기사에 의하면 9월 7일부터 가야 문화권 조사 연구 사업 일환으로 ‘추정 망산도 가야 유적’ 발굴 조사 착수하겠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가 시작한 직후 가야사 복원을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겠다고 하면서 정작 해야 할 역사 복원과 유적지 발굴에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오로지 만들어진 이야기를 발굴해서 뭔가를 찾아내보겠다고 열을 올리는 것이다. 북한에서 한 단군릉 발굴과 조성과 하등에 다를 바 없는 참담한 짓이다. 그런 식이라면 《삼국유사》에 일본국을 세웠다는 연오랑과 세오녀 탄신지와 생가도 발굴해야 할 일이다.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사업을 하는 것은 지자체 고유의 업무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국민의 혈세를 들여 하는 사업이라면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자리는 마련할 것이고, 그 자리에서 사업의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면 거두어 들여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 절차를 생략한다거나, 전문가의 의견을 묵살하고 사업을 강행한다면, 그 뒤로 발생하는 모든 법적, 정치적, 도덕적 책임은 다 져야 할 것이다. 난, 학자로서 양심을 걸고 김해시의 허왕후 신화 발굴 작업을 주도하는 담당자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고자 한다.

 

이광수 팩트체커는 부산외국어대 교수(인도사 전공)다. 델리대학교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가락국 허왕후 渡來 說話의 재검토-부산-경남 지역 佛敎 寺刹 說話를 중심으로- 〉 등 논문 다수와 《인도에서 온 허왕후, 그 만들어진 신화》 등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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