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판 외국어 표기가 어색한 이유

  • 기자명 정재환
  • 기사승인 2018.09.10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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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고 비로소 평범한 한국인들이 외국 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아주 오랫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일본이나 중국은 비행기로 불과 한두 시간이면 닿을 수 있었고, 하와이나 미국, 유럽이 목적지인 경우에는 비좁은 비행기 안에서 10시간 이상을 보내야 했지만 피곤할 줄 몰랐다.

문제는 언어였다. 낯선 중국어와 일본어도 그렇지만 보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리는 영어 알파벳은 여행자들의 속을 뒤집어 놓기 일쑤였다. 비행기 안에서 입국신고서를 작성할 때부터 어지럼증은 시작되었고, 입국 수속을 하고 세관을 통과하면서 부딪쳐야 했던 높은 언어 장벽은 여행의 즐거움을 대폭 반감시켰다.

그래서였는지 해외여행 자유화 초기에는 가이드와 동행하는 패키지여행이 대부분이었다. 낯선 외국 땅에 대한 정보도 언어장벽도 가이드를 통해 해결했다. 말도 들리지 않고 보이는 것은 낯선 외국 문자거나 영어 알파벳이어서 당혹스러웠지만, 그래도 미디어를 통해 접하던 외국의 풍경과 문물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해외여행이 주는 즐거움이었다.

한국인들이 외국에 나가는 횟수와 규모가 늘어서인지 언젠가부터 일본이나 중국에서 한국어를 만날 수 있었다. 2006년 오사카 간사이공항에 내렸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일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선명히 적힌 한글이었다. 일본을 찾는 한국인들이 부쩍 는 때문인지 그 아래 영어 ‘Welcome to Japan’이라고 적힌 것도 인상적이었다.

같은 해 중국 선양공항에서도 한글을 만날 수 있었다. 한글 ‘국내선출발’ 위에 적힌 것은 일본어다. ‘왜 일본어가 한국어 위지?’하는 질문이 절로 나왔지만, 여하간 한국어가 중국어, 일본어, 영어와 함께 적혀 있는 것은 반가웠다.

 

 

최근에는 일본이나 중국 관광지에서 한글을 더욱 쉽게 만날 수 있다. 유적 안내 표지는 물론 온갖 설명문 안에도 그 나라의 언어와 영어 그리고 한국어가 들어가 있다.

 

대마도 덕혜옹주결혼봉축비의 위치를 알려 주는 표지판. 2016년 촬영.

 

안중근 의사와 이회영 선생 등이 순국한 중국 여순감옥의 설명문. 2018년 8월 촬영.

 

 

 

다음은 지난 8월 필리핀 세부공항 국내선청사에서 찍은 사진이다. 영어 ‘Drinking Water’ 아래 한국어로 ‘물을마신다’가 적혀 있는데, 반갑긴 하지만 표현이 좀 어색했다. 나뿐만 아니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느낄 것이다.

 

 

이런 어색한 한국어를 중국 청도에서도 보았다. ‘공원으로 금지되는 애완 동물과 차량’ 무슨 말인지 알지만 몹시 어색하다. 이런 경우 우리는 보통 ‘차량 및 애완동물 출입금지’라고 쓴다.

 

 

 

 

 

단동 압록강 변에 있는 호텔 안에 있는 안내문에 ‘아침 식새’라고 쓴 것은 오타겠지만, 신중하지 못함에 의구심을 갖는다. 이처럼 어색한 한국어 표현을 볼 때, 우리는 ‘한국어 공부하는 사람들 많을 텐데, 이렇게 간단한 표현도 정확하게 혹은 자연스럽게 못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거다. 수원행궁 옆에 한데우물이 있다. 한데 있는 우물이어서 이름을 ‘한데우물’이라고 한 듯하다. 맑은 물이 졸졸 흘러내리는 우물 앞에 걸린 안내문에는 ‘마실 수 없는 물’과 영어, 중국어, 일본어가 차례로 적혀 있다. 한글문화연대 한국어학교의 중국 학생 류홍 씨에게 물어보니 ‘不能喝的水’라는 중국어는 정확하단다.

 

 

그런데 No Drinking Water나 ‘食べることが出来ない水’라는 일본어는 좀 어색하다. 일본에서는 ‘마실 수 없는 물’은 “ごの水は飲めません” 또는 “飲む水ではありません”이라고 표기한단다. No Drinking Water는 무슨 말인지 쉽게 알 수 있는 표현이지만, 이 또한 Non-Potable Water. Do Not Drink라고 표기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한다.

 

 

 

어색하거나 자연스럽지 않다고 해서 아주 틀렸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외국에서 그런 한국어를 볼 때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외국인들은 우리가 쓴 어색한 자신들의 언어를 볼 때마다 어리둥절해 할지도 모른다. 현재 한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어학교 학생 마츠카와 미키 씨는 ‘食べることが出来ない水’와 같은 어색한 일본어를 볼 때마다 “공공장소나 이런 번역 볼 때마다 직장에 단 한 명도 일본어 몰라??라고 웃어요.(크크)”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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