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고스톱, 룰의 다변화와 대화의 단절

  • 기자명 이경혁
  • 기사승인 2018.09.27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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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텔레비전과 같은 공식화된 레거시 미디어에서는 잘 비취주지 않는 장면이지만, 과거 명절의 풍경 한 켠에는 삼삼오오 모여 고스톱을 치는 장면도 분명히 존재했었다. 판돈이 걸려 가끔씩은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키는 주범이기도 했던 명절의 고스톱은 특히 추석에 주로 출몰하곤 했는데, 아무래도 설날에는 윷놀이라는 좀더 대중적이고 덜 도박스러운 보드게임이 설날 공식 게임으로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3인이 참가해 승패를 겨룬다는 조금은 독특한 기본 규칙, 4인 이상도 이른바 ‘광팔이’로 참가가 가능하다는 방식은 여러 사람이 모여 플레이하는 데 있어 별 지장이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곤 했다. 5명이 모여 있더라도 둘이 광을 팔고 나서 구경이 가능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셋만 모이면 고스톱이라는 80년대의 열풍은 지금으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열기였다. 정극 드라마에는 여전히 도박 문제로 등장이 어려웠지만 여러 코미디프로에서는 심심찮게 고스톱 치는 명절 장면을 다루고 있었으니 당시의 고스톱은 가히 서브컬처라 불러도 틀린 말이 아니던 시대였다.

영화 <과속스캠들> 한 장면.

 

고스톱 열풍이 전국으로 번져 나간 뒤, 명절을 맞아 고향에 다시 모인 사람들이 벌이는 판에서는 꽤나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되곤 했는데 바로 룰의 미세조정 단계였다. 전국구 오락거리가 된 고스톱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룰이 존재했기 때문에 각 지역에서 모인 사람들이 판을 벌이려면 일련의 룰 미팅이 사전에 성사되어야 했다. 빈 바닥에 패를 던져 다음 나온 카드와 맞을 경우 집어먹는 ‘따닥’ (일부 지역의 경우 ‘쪽’) 의 경우 추가 피를 받느냐 안 받느냐가 지역마다 달랐고, ‘총통’(같은 패 네 장이 모두 한 사람에게 있는 경우)도 결과 처리가 지역마다 달랐다. 이를 맞추지 않으면 인 게임 상황에서 싸움 나기 십상이었던 관계로 가급적 룰을 사전에 맞추려 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나중에 끼어드는 이들에게도 정해진 룰에 대한 설명이 뒤따르곤 했다.

디지털이 아닌, 온라인은 더더욱 아닌 고스톱이라는 놀이는 그러면서도 전국적 지명도를 가지고 있었기에 다양한 룰이 도처에서 각자도생하고 있었고 명절이나 상갓집 등 여러 지역 룰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미세 조정의 단계가 존재했었다. 요즘은 명절의 고스톱이 과거만큼 대세는 아니고 오히려 고스톱이라고 한다면 PC를 이용해 온라인에서 얼굴 모르는 이들과 벌이는 게임으로 더 익숙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오면서 고스톱에서는 큰 변화가 하나 나타나는데, 바로 위에서 언급한 미세 규칙의 조정이 불필요해졌다는 점이다.

영화 <고스톱 살인>의 한 장면.

디지털 시대의 고스톱: 고정된 규칙주체, 굳어진 커뮤니케이션

사람이 규칙을 조정하는 것이 아닌 프로그램에 의해 규정된 규칙으로 돌아가는 온라인 고스톱 게임의 시대에는 플레이어간의 규칙 조정이 불필요하다. 규칙에 사람마다 불만은 있을 지언정 우리동네에선 ‘따닥’ 에 피 한장씩 안 준다고 아무리 난리를 쳐도 시스템이 그 불만을 접수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협상의 여지가 벽창호마냥 차단된 디지털 게임의 시대에는 자연스럽게 고스톱 같은 방대한 규칙들도 하나로 통일될 것 같이 보였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온라인 고스톱 시대에 규칙은 오히려 통일되기보다는 다채로워지는 모습도 나타난다. 예를 들자면, 각 서비스 회사별로 타사 게임과의 차별점을 만들기 위해 외려 새로운 룰을 만들어내는 장면들이다. 기존 고스톱의 룰에 점수를 변경하거나, 아예 별도 아이템 사용 룰을 만들어서 게임의 대세에 변화를 꾀하기도 한다. 이러한 특수 룰은 각 고스톱 서비스 게임사마다 다른 형태로 나타나면서 오히려 게임 룰을 단일화시키기보다는 다채롭게 만들어내는 결과를 낳았다.

오프라인 시대의 느슨하던 규칙은 온라인에 들어오면서 좀더 변화가 어려운 고정된 형상으로 나타났고, 이는 각 게임사마다 차별화를 위해 독자적인 규칙을 고정시키는 형태로 발전해 왔다. 이 두 지점은 모두 다 흥미롭다.

온라인 고스톱에는 제작사 특유의 룰이 적용되고 있다. 사진은 2004년 출시된 개그게임 맞고의 한 장면.

첫 번째 포인트는 온라인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익명의 대전 환경이라는 점으로, 온라인 고스톱 시대에는 굳이 아는 사람도 아니고 게임 외의 상호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한 상황인지라 룰의 타협이라는 것이 오히려 불편한 무언가가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말 그대로 게임의 규칙 그 자체에 의한 승패만이 중요해진다. 온라인 고스톱에서 굳이 추석이라고 서로 근황을 물어볼 이유도 없을 뿐더러 게임 시스템은 그러한 잡담의 환경을 제공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포인트는 어떤 경우에서건 이제 규칙을 만들고 수정하는 주체는 플레이어가 아닌 서비스 제공사로 완전히 넘어가버렸다는 점이다. 과거의 서비스 제공사가 그저 카드를 만들어 유통시키는 수준에 머무른 반면, 오늘날의 고스톱 서비스는 많은 비용과 자원을 사용해 구축한 서비스 플랫폼을 통해 제공되며, 익명의 플레이어들에게 보편적인 게임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개별 플레이어간의 타협점 대신 이른바 글로벌 룰이라는 형식으로 오직 규칙의 제정 주체로 서비스 제공사 자신만을 가리키는 방식을 택하게 되었다. 오프라인에서 모포를 깔아 놓고 치던 고스톱과 온라인에서의 고스톱은 단지 모이는 환경과 온/오프의 차이만이 아니라 규칙의 주체와 게임 바깥의 커뮤니케이션환경까지도 다른 점을 만들어낸다.

 

그냥 없어지는 게임은 없다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확실히 과거보다 명절에 모여 고스톱을 치는 분위기는 좀 사그라들어가는 듯 싶다. 요즘은 고스톱 카드 자체를 보는 것도 오히려 고등학교 수학여행이 더 쉬울 듯한 분위기다. 80년대 음지의 열풍을 이끌었던 카드 게임의 선구자는 온라인 시대를 맞아 규칙의 주체와 참가자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두 측면에서 큰 변화를 일으키면서 새롭게 온라인이라는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웹보드게임 결제한도 같은 몇 가지 행정적 논란에도 가끔 휩싸이곤 하지만, 변화된 환경 안에 적응하면서 자리잡은 이들 게임이 여전히 적지 않은 PC게임 순위에서 나름의 위치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은 적어도 8-90년대의 고스톱 플레이어들이 디지털 시대라고 다 쓸려나간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단서일 것이다. 세상에 완전히 없어지는 게임은 없다. 시대와 환경에 맞춰 조금씩 변화하고 적응하면서 달라져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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