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감소 해결한 '일본의 이재명' 이즈미...일본 야당 재편 핵으로 떠올라

  • 기자명 윤재언
  • 기사승인 2023.12.0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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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미 후사호 아카시 전 시장의 명암과 향후 전망①
‘아동복지 무상정책’으로 인구와 세수 증가 이뤄내 전국적 주목
야당 지지층 넘어 중도층까지 지지 확대 중

일본 서쪽 간사이 지역에 위치한 아카시(明石)시. 고베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지역 내 베드타운이다(아래 지도). 일본 전국의 인구 감소가 멈추지 않는 가운데, 아카시시는 지난 10년간 인구가 꾸준히 증가해온 몇 안되는 지자체다. 한국에서는 이태원 참사 관련, 2001년 유사한 압사 사고를 겪었다는 사실이 잠시 주목을 받기도 했으나,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도시는 아니다. 

아카시시 위치(출처: 아카시시 홈페이지, https://www.city.akashi.lg.jp/seisaku/kouhou_ka/shise/gaiyo/aramashi/index.html)
아카시시 위치(출처: 아카시시 홈페이지, https://www.city.akashi.lg.jp/seisaku/kouhou_ka/shise/gaiyo/aramashi/index.html)

아카시시가 최근 일본 정치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야당 출신 시장의 정책과 활약이 전국적으로 관심을 모으면서다. 주인공은 이즈미 후사호(泉房穂, 60) 아카시시 전 시장(아래 사진).

이즈미 전 시장 사진(출처: 본인 홈페이지, https://izumi-fusaho.com/)
이즈미 전 시장 사진(출처: 본인 홈페이지, https://izumi-fusaho.com/)

도쿄대 교육학부 졸업 뒤, NHK PD와 변호사를 거쳐, 한 차례 민주당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이다. 그가 2011년 선거에서 아카시 시장에 취임한 이후 아카시 인구는 계속해 증가해왔다. 이즈미 전 시장은 3선까지 지내고 지난해 후계 후보 지원을 표하며 불출마를 선언했는데, 첫번째 시장 선거를 제외하고는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2019년 선거에서 70% 득표율을 기록했고, 그의 정책과 인생을 다룬 책은 올해 정치 시사 부문 베스트셀러다(아래 사진). 본인 역시 지상파와 인터넷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방송에 출연 중이다. 

지난 9월 출판된 이즈미의 베스트셀러 책. '일본이 멸망하기 전에 아카시 모델이 여는 국가의 미래'
지난 9월 출판된 이즈미의 베스트셀러 책. '일본이 멸망하기 전에 아카시 모델이 여는 국가의 미래'

무엇이 이즈미 전 시장의 인기를 지탱하고 있는 것일까? 시장이 된 이후 행적을 되짚어 보면, 한국에서 성남시장을 지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현 대표의 명암과 겹쳐 보이는 부분이 적지 않다.

우선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서민 변호사 출신’이라는 뒷배경과 현금 지원 중심의 무상복지 정책으로 주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부하 공무원과 시의회에 대한 거침없는 발언, 때로는 ‘막말’로까지 들리는 언행으로 시장 중도 사퇴(실제로 신임 묻는 선거를 실시함)에 내몰릴 정도로 큰 물의를 빚어왔다는 것도 이재명 대표와 겹쳐 보이는 지점이다. 특히 강렬한 간사이 사투리를 구사하는 점도 그의 아웃사이더적 특성을 더 눈에 띄게 한다.

아카시시에 대해 얘기하는 이즈미 전 시장

현재 시장에서 물러난 뒤 중앙 정치 행보를 의식하며 다른 지역 후보를 지원하고 있는 것은 다소 다른 점이라 하겠으나, 야당의 차세대 주자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점은 또 다른 공통점이라 하겠다.

이번 글에서는 우선 이즈미 시정의 긍정적 부분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다음 글에서 막말과 독선적인 정책 추진 등 문제점과 더불어 향후 야당 재편의 가능성에 대해 짚어보려고 한다. 

먼저 아카시가 주목을 받게 된 가장 큰 이유인 무상복지정책부터 살펴본다. 

이즈미는 다양한 복지 가운데 무엇보다 아동 복지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5개의 무료화’ 정책으로 프레이밍해, ‘18세까지의 의료비’, ‘두번째 아이의 보육비’, ‘중학교 급식비’, ‘공공놀이시설’, ‘기저귀 정기지원’에 시예산을 집중시켜 소득에 관계없이 지원했다.

5개의 무료화 정책(출처: 이즈미 홈페이지, https://izumi-fusaho.com/vision.shtml)
5개의 무료화 정책(출처: 이즈미 홈페이지, https://izumi-fusaho.com/vision.shtml)

2010년 125억엔이었던 아동복지예산은 2021년 297억엔으로 배 이상 늘어난다. 정책 시행을 추진하던 와중에 고령자 복지 축소를 우려한 당사자들과 시의원의 반발이 적지 않았으나 이즈미는 본인 철학을 밀어붙였다. 고령자 복지는 되도록 유지 혹은 확대하면서 각종 토목예산을 삭감해나가는 식으로 논란을 피했다. 주민 세부담을 늘리지 않겠다는 원칙도 지키려 했다. 

이즈미는 장애를 가진 자신의 남동생과 저학력이었던 부모(부친은 초졸, 모친은 중졸)에 대해 자주 거론한다. 그러면서 가정 환경과 장애 같은 요인 때문에 어린이들의 가능성이 제약 받아서는 안된다는 지론을 펼친다. 

시내 중심가 아카시역 앞에 있는 복합시설 ‘파피오스 아카시’(아래 사진)의 재개발 과정도 동일한 철학이 담겼다.

당초 대형슈퍼 다이에가 입점해 있었으나, 2005년 폐점한 뒤 좀처럼 건물 재개발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방치돼 있었다. 이즈미는 이 시설을 새롭게 바꾸는 데 시가 직접 참여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주도했다. 입점 예정 상업 점포 외에 적지 않은 면적을 ‘아카시 육아 광장’과 시립도서관, 시민광장, 행정편의시설 등으로 리모델링했다. 바로 옆에는 고층 아파트도 들어섰다. 이즈미 본인은 저서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 도서관 등에서 책을 읽고 명문대 진학에 성공한 경험을 얘기한다.

아카시 파피오스 전경(출처: 아카시시 관광협회 홈페이지, https://www.yokoso-akashi.jp/facility/2760)
아카시 파피오스 전경(출처: 아카시시 관광협회 홈페이지, https://www.yokoso-akashi.jp/facility/2760)

이처럼 이즈미가 아동 중심 정책으로 시의 재생을 내걸자, 간사이 다른 지역에서 한창 일하는 육아 세대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2012년 1월 시 전체인구는 29만 3689명으로, 이것이 2022년 1월에는 30만 4849명으로 1만명 이상 늘었다. 2020년 5년마다 이뤄지는 전국조사에서 아카시시는 중핵도시(인구 20만명 이상 도시)에서 인구증가율 3.55%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단순히 인구 증가에만 그치지 않았다. 

아카시시 인구 추이(출처: 고베신문, https://www.kobe-np.co.jp/news/sougou/202210/p1_0015752796.shtml)
아카시시 인구 추이(출처: 고베신문, https://www.kobe-np.co.jp/news/sougou/202210/p1_0015752796.shtml)

인구 증가로 세수도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크게 영향을 끼친 것이 인구 30만명 이상 지자체에서 사업체 법인 등으로부터 거둘 수 있는 사업소세(事業所税)다. 그동안 좀처럼 인구 30만명을 넘어설 수 없었던 아카시에 사람들이 이주해오면서 2020년 목표를 달성했다. 이로 인해 새롭게 17억엔 수입이 생겼다.

여기에 시청 직원 숫자와 급여를 슬림화하는 대신 일이 집중된 부서에는 인원을 늘리는 재배치 정책(변호사 등의 적극 채용) 등과 앞서 언급한 토목 지출을 줄이는 재정 건전화로 시의 저금에 해당하는 기금을 늘려갔다. 70억엔까지 줄어들었던 기금을 2021년 121억엔으로 확충했다.

증가세로 전환한 아카시시 기금(출처: 고베신문, https://www.kobe-np.co.jp/news/akashi/202109/p1_0014649621.shtml)
증가세로 전환한 아카시시 기금(출처: 고베신문, https://www.kobe-np.co.jp/news/akashi/202109/p1_0014649621.shtml)

이 같은 재정 여유를 바탕으로 복지 정책을 더욱 공격적으로 펼쳤다.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지기 시작하던 2020년 5월에는 아카시에서 통학하는 대학생 이상의 학생을 대상으로 100만엔 긴급 무이자 대출을 실시했고, 이듬해에는 시민 전원에게 시내 상점가에서 쓸 수 있는 5000엔 상품권을 배부하기도 했다. 

이 같은 아동 복지와 재정 건전화라는 성공담이 일본 전역으로 퍼지면서 이즈미의 정책을 ‘아카시 모델’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한동안 야당 쪽에 눈에 보이는 실적으로 주목받는 정치가가 없었다는 점에서 특히 야당 지지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일종의 포퓰리즘 세력으로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 중심을 펴온 인근의 오사카 유신회 세력 확장을 저지한다는 점에서도 주목받았다.

실제로 이즈미는 하시모토 도오루 전 오사카 시장 등 유신회 주요 정치인과의 논쟁도 마다하지 않으며 자신을 ‘싸우는 정치가’로 포지셔닝 해왔다. 

그러나 이즈미는 2022년 10월 이듬해 4월 있을 임기 만료 선거를 마지막으로 ‘정계 은퇴’를 표명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의 정책을 계승할 차기 시장과 시의원을 지원하기 위해 ‘아카시 시민의 모임’을 출범시킨다.

선거 결과는 이즈미가 지원한 후보의 전원 당선이었다. 아카시시장 후보였던 시의원 출신 마루타니 사토코는 자민당과 공명당이 민 상대 후보에 대해 64.7%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승리했다(아래 사진). 동일한 노선을 택한 시의원 다섯 명도 선거(대선거구제)에서 전원 높은 지지를 받으며 당선됐다. 4위까지가 이즈미가 지원한 후보들이었다. 이러한 선거 결과에 대해 아사히신문은 ‘이즈미 선풍’이 불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즈미 전 시장이 지원한 후보가 2023년 시장 선거서 압승(출처: NHK)
이즈미 전 시장이 지원한 후보가 2023년 시장 선거서 압승(출처: NHK)

결과적으로 이즈미의 활약이 그동안 ‘감세와 민영화’라는 다른 지자체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무상복지 확대와 인구 증가라는 실적으로 어필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주민 지지, 선거에서도 결과가 어느 정도 증명됐다.

일본의 진보 진영 지지자뿐만 아니라, ‘개혁’을 열망하며 오사카유신이나 자민당 개혁파를 지지해온 정치적 무당층(무관심층 아닌)도 관심을 표하고 있다. 이즈미 본인도 아카시에 머물지 않고 일본 전국을 다니며 강연과 후보 지지유세, 미디어 출연을 거듭하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이즈미가 지원한 후보들이 대부분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거두며 그의 득표력은 더욱 주목받는 중이다.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시장 출마 후보를 응원하는 이즈미 전 시장.

다만 이즈미가 정책추진과정에서 보여온 시의회와 반대자, 공무원과의 충돌은 향후 다시금 정치에 뛰어들 때 약점으로 거론되는 부분이다. 다음 글에서는 시장 시절 보여온 아웃사이더적 기질과 좌충우돌, 막말 등을 중심으로 한 부정적 측면과, 일본 야당 재편의 전망 등에 대해 짚어보겠다.

※이 글의 상당 부분의 저서('社会の変え方 日本の政治をあきらめていたすべての人へ(사회를 바꾸는 법: 일본 정치를 포기한 모든 사람들에게)') 및 아래 인터뷰 영상 등을 참고로 기사와 자료 등으로 내용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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