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논란 자민당…기시다의 위태로운 ‘정치적 곡예’

  • 기자명 윤재언
  • 기사승인 2023.12.1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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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 파벌 비자금 조성 관행이 정치권 태풍으로
기시다, 아베파 배제 속 정치적 생존 걸고 좌충우돌 중

자민당 파벌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져오던 비자금 조성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기시다 정권이 최대 위기에 처했다.

기시다 총리는 자신의 정치적 미래가 불투명한 가운데, 정치적 곡예를 벌이는 중이다. 이로써 정권이 붕괴할 가능성은 더 커졌다. 특히 기시다를 중심으로 자민당 파벌 간에 벌어지는 권력 투쟁이 점입가경이다. 이 글에서는 자민당 비자금 사태와 이후 발표된 후속 인사의 의미를 따져보고자 한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NHK 방송화면 갈무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NHK 방송화면 갈무리

자민당 주요 파벌의 비자금 조성 의혹

비자금 사태 발단은 지난해 11월 일본공산당 기관지 ‘신문 아카하타(赤旗)’의 단독보도다(아래 사진). 자민당 의원들이 정치자금을 모으는 파티를 열었으나, 여기에서 거둔 수익 일부(2500만엔)를 고의적으로 누락한 것이 아닌가 의혹을 제기한 내용이다. 

아카하타 특종 보도(출처: https://twitter.com/nitiyoutwitt/status/1587717255798063104/photo/1)
아카하타 특종 보도(출처: https://twitter.com/nitiyoutwitt/status/1587717255798063104/photo/1)

일본 정치자금규정법에 의하면, 정당이나 정치단체(명목은 정치가 후원단체 등)는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으나, 국회의원 개인이 기업과 노동조합 등 단체로부터는 기부를 받을 수 없게 돼 있다. 그 동안 여러 차례 부정부패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개인이 기부하는 경우에도 5만엔을 넘으면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이 같은 엄격한 규정을 피하기 위해 자민당 의원들은 ‘정치자금 파티’를 활용해 왔다(아래 사진).

파벌 파티를 연 아소 타로(출처: コロナ禍で強行 麻生派「飲食なし」2万円パーティーの中身|日刊ゲンダイDIGITAL (nikkan-gendai.com))
파벌 파티를 연 아소 타로(출처: コロナ禍で強行 麻生派「飲食なし」2万円パーティーの中身|日刊ゲンダイDIGITAL (nikkan-gendai.com))

정치자금 파티는 법률에도 규정된 용어로 파벌 응원, 의원 강연회 등 개최 명목이 자유로운 데다가, 파티 티켓(장당 2만엔)을 기업이나 단체에도 판매가 가능해 정치자금 통로로 이용돼 왔다. 다만 한 곳의 티켓 구매액이 20만엔을 넘기면 공개 대상이다. 자민당의 유착 정치를 비판해 온 주요 야당은 아예 정치자금 파티를 개최하지 않는다(일본공산당은 국고보조금도 받지 않음).

신문 아카하타는 자민당 5개 주요 파벌이 구입액 20만엔을 넘긴 경우에도 탈법적 방법으로 기재를 회피했다고 회계보고서 등을 분석해 보도했다.

당시 아카하타의 취재 의뢰를 받은 가미와키 히로시 고베학원대 교수(‘정치자금옴부즈맨’ 대표)는 사안이 간단치 않음을 파악해 조사를 이어간다. 이후 1년여간 분석을 거쳐 자민당 해당 파벌을 지난달 도쿄지검 특수부에 형사고발한다. 이로써 일본 언론에 구체적인 고발 내용이 흘러들어가, 대대적 보도가 시작됐다.

당초 의도적 누락으로만 보였던 회계보고서 문제는 의원 개개인의 파티 티켓 할당량 초과분 환급 사건으로 비화한다.

먼저 최대파벌 아베파(세이와정책연구회)가 의혹 핵심이 됐다. 각 파벌은 소속 의원들의 티켓 판매를 주 수입원으로 삼아왔다. 파티 수익을 파벌에 상납하는 구조가 만들어져 있었고, 각 의원들에게는 당선 횟수나 장관(대신) 역임 등을 중심으로 팔아야 하는 티켓의 할당량이 차등적으로 주어졌다. 일종의 영업사원 역할을 담당한 셈이다. 

문제가 터진 것은 할당량 초과분을 해당 의원 주머닛돈으로 인정해온 관행이었다.

다만 법률적으로 초과분을 나눠주는 데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의혹이 불거진 자민당 의원 대부분은 초과 수입을 회계보고서에 기재하지 않았고, 어디에 지출했는지도 불명확하다. 이번 사건이 ‘비자금(裏金) 조성’이라 불리는 이유다. 기시다 정권에서 중용된 아베파 인사들은 1000만엔 이상 초과분을 장부 기재 없이 받아갔다.

정권 대변인이자 주요 이슈를 챙기는 관방장관(대변인+비서실장+정책실장) 마츠노 히로카즈에 대한 의혹이 가장 먼저 불거졌는데, 기자회견에서 의혹에 대해 판에 박은 듯한 말로 답변을 회피하면서 국민적 비판이 커졌다(아래 영상).

이후 자민당 정책조정회장 하기우다 고이치, 경제산업상 니시무라 야스토시, 참의원 간사장 세코 히로시게, 다카기 츠요시 아베파 사무총장 등이 마츠노와 함께 ‘아베파 5인조(5人衆)’로 불리며 각기 퇴진에 내몰렸다. 이 와중에 아베파 미야자와 히로유키 방위부대신은 “파벌에서 기재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폭로하며 파문은 더 커지고 있다. 

 

괴멸 위기 내몰린 자민당 파벌 정치

아베 사후 리더 부재로 파벌 회장을 선출하지 못하며 집단지도체제를 꾸려 온 아베파는 최대 위기에 빠졌다. 여기에 아베파 이외에도 기시다파(고치카이)와 니카이파(시스이카이), 아소파(시코카이)에서도 유사한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도쿄지검 입장에서도 기시다 정권 지지율이 낮고, 국민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사안인 점을 감안해서인지 일단은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비자금 의혹이 터지자 기시다는 오로지 “여기서 물러날 수 없다”는 일념으로 좌충우돌하며 대책을 내놓는 중이다. 크게 두 갈래 대책이 나왔다. 하나는 자신의 파벌 회장 사임과 임기 중 탈퇴고, 다른 하나는 정권 내 아베파 대부분을 교체하며 측근 하야시 요시마사를 관방장관에 앉힌 인사 조치다. 

비자금 사태가 의혹 단계에 머물렀을 때에는, 정권 막후 실력자 아소 다로가 일부 아베파(자신과 사이가 먼 하기우다)를 견제하고 기시다를 끌어내려, 자신과 가까운 수상(모테기 도시미츠 자민당 간사장)을 세우기 위한 정치 공작이라는 설도 있었다. 하지만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현상황에 아소의 영향력은 제한적으로 보인다. 오히려 지금은 기시다가 어떻게든 정권을 연장시키기 위해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벌이는 게 더 눈에 띄는 상황이다.

자민당 내에서는 기시다가 내년 봄까지는 어떻게든 버틸 것이라는 설이 지배적이었다. 내년 2월까지 버티면 자신이 스즈키 젠코 전 총리를 제치고 역대 고치카이 총리 중 재임 기간 2위를 기록할 수 있다는 점에서였다. 만약 비자금 의혹이 불거지지 않았다면 무리하지 않고 봄까지는 정권을 유지했을 것이다. 그만큼 자신의 파벌에 대한 애정과 기록에 대해 집착이 있었다고 읽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문제가 커지자 기시다는 임기 중 탈퇴와 회장 자리 사임을 발표하고 만다.

 

하야시 관방장관 임명과 기시다의 자기정치

이와 관련 12월 13일 발표된 아베파 축출 후임 인사에서 흥미로운 지점이 최근까지 외무상을 지낸 하야시 요시마사의 관방장관 임명이다.

하야시는 기시다파 중진 의원으로, 선대 때부터 야마구치현을 지역기반으로 삼아왔다. 이 때문에 중선거구 시절(1996년 이전) 동일 지역에서 활동해온 아베 신조 일가(조부 기시 노부스케와 부친 아베 신타로)와 선대부터 치열하게 경쟁을 벌여왔다. 

그러나 하야시 본인은 야마구치 지역구에서 좀처럼 중의원(하원)으로 옮겨가지 못하고 1995년부터 2019년까지 참의원(상원)에만 머물러왔다. 일본 정치에서 총리는 중의원에서 나온다. 2019년에야 하야시는 해당 지역 중진 의원 은퇴로 중의원 출마를 이뤄냈다.

아베가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맞이했고, 야마구치현 선거구가 인구 감소로 통합될 예정이라 다음 총선에서는 아베 후계 후보(무명의 시의원 출신)를 몰아내고 본인이 아베 지역구까지 장악하게 됐다.

이러한 하야시의 정적은 아베만이 아니었다. 특히 같은 파벌에서 오랫동안 함께 해온 기시다 역시 하야시를 측근이면서도 장래의 라이벌로 대한다는 게 정설이다.

기시다는 일본 최고 명문 도쿄 가이세이고교를 졸업했으나 대학입시에는 실패했다. 도쿄대에 세 번 도전했으나 실패하고 3수로 와세다에 입학한다. 기시다의 부친은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관료를 지낸 전형적인 고치카이 소속 의원이었다. 이 때문에 기시다의 학력 컴플렉스는 상상 이상이라는 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온 바 있다.

하야시 역시 화려한 가족 배경은 비슷했으나, 본인이 도쿄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석사학위를 받는 등 학력면에서 더 뛰어났고, 파벌 내에서도 기시다보다 촉망받는 인재였다고 한다. 그러나 아베의 견제와 야마구치 다른 현역 의원 은퇴가 늦어지는 등의 이유로 좀처럼 중의원 선거에 나갈 기회를 잡지 못했다. 총리가 될 기회는 기시다에게 먼저 돌아갔다. 기시다가 하야시보다 아베와 가까웠던 것도 영향이 있었다고 한다.

2021년 총리의 꿈을 이룬 기시다는 하야시를 요직인 외무상으로 임명한다. 하야시를 파벌에 남기기보다 내각에 앉히는 게 본인의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시다의 판단이 있었다는 지적이 당시 나왔다. 특히 기시다는 때때로 “외교는 총리가 하는 것”이라며 하야시의 독자 외교를 견제해 왔다. 지난 9월 하야시가 교체될 때도 다소 급작스럽다는 평가가 나온 바 있는데, 이 때는 일본 언론에서도 ‘라이벌 견제’라는 평가가 적지 않게 제기됐다.

그러다 비자금 사건이 터지자 기시다는 아베파 마츠노 관방장관을 경질하고 그 자리에 하야시를 앉힌다는 설을 미디어에 흘렸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소식을 접한 하야시의 반응이었다. 하야시는 “‘청천벽력’이라는 말이 합당하나 가진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성심성의껏 노력해가겠다”고 심경을 밝혔다(아래 사진). 적어도 기시다가 하야시와 상의 없이 관방장관 인사를 정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NHK 인터뷰에 응하는 하야시 요시마사.
NHK 인터뷰에 응하는 하야시 요시마사.

이 인사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나는 기시다가 무파벌로 전 방위상 하마다 야스카즈에게 관방장관 인사를 타진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상황 역시 언론에 그대로 보도되면서 정권의 난맥상을 그대로 노출했다. 아무리 요직이어도 기시다와 같이 죽을 ‘순장조’에는 들어가기 싫다는 자민당 내 분위기가 지배적이라는 얘기다. 결국 돌고 돌아 기시다가 내정 방침을 정한 게 같은 파벌 하야시였다.

그러나 하야시 내정은 순수하게 도움을 달라는 측면만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최소한 혼자 죽을 수는 없다”는 기시다의 파벌 내 라이벌 견제가 여전히 작동했을 가능성이다. 즉 하야시가 기시다의 회장 사임과 탈퇴라는 공백 기간 중에 파벌을 장악할 것을 우려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기시다가 위기라는 점에서, 하야시가 이를 잘 활용할 경우 정치적 기회가 찾아올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아베파 대부분을 정권과 당 요직에서 내보낸다는 기시다의 방침은 일관성 없이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아베파와 일종의 권력 분점으로 안정화를 꾀해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당 내에 정적이 늘어나 분란이 생길 가능성도 커졌다. 총리 퇴진설에 대해서도 차기로 거명되는 이시바 시게루 같은 인사들이 센 발언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

기시다가 낮은 지지율 속에 비자금 의혹과 관련 국면전환을 하지 못 할 경우 이대로 퇴진할 수밖엔 없으리라 생각된다. 다만 시점은 비자금 관련해 기시다가 어느 정도 책임을 진 뒤가 되지 않을까 싶다. 경우에 따라서는 기시다의 숙원인 봄까지 버틸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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