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파업이 드러낸 민낯① 전공의 ‘갈아 넣는’ 대형병원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24.03.11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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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병원 전공의 비율 30~40%, 주당 평균 77.7시간 근무

의대정원 증원을 반대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장기화하면서 그동안 가려졌던 의료계 문제가 하나둘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의사 수’와 ‘필수 의료’, ‘지역 의료’, ‘응급 의료’ 등 꾸준히 제기됐던 문제 외에, ‘대형 병원의 과도한 전공의 의존’과 ‘PA간호사’ 문제가 이번 사태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뉴스톱이 2회에 걸쳐 짚어봤습니다. 첫 번째는 ‘상급 종합병원의 과도한 전공의 비중’입니다.

JTBC 방송화면 갈무리
JTBC 방송화면 갈무리

대통령령인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전문의수련규정)에 따르면, ‘전공의’란 수련병원이나 수련기관에서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하여 수련을 받는 인턴 및 레지던트를 말하며, 전공의의 수련기간은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가정의학과의 경우 인턴과정 없이 레지던트 3년)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수련병원 221곳에서 근무하는 전공의는 인턴 3137명, 레지던트 9637명으로 1만2774명입니다. 전체 의사의 11.4%입니다. 수련병원에는 흔히 ‘빅5’로 부르는 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성모병원 등 전국 주요 상급 종합병원들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공의는 근로자이면서 피교육생(수련의)입니다. 선진국에서는 피교육생 신분이 더 강하지만, 한국에서는 근로자의 비중이 높습니다. 전공의들은 주로 24시간 관리가 필요한 입원과 수술 환자 관리 등의 업무를 맡습니다. 회진을 함께 하며 환자의 상태를 관리하고 병동 내 응급상황에 대응하거나 야간 당직 등입니다. 입퇴원과 치료기록을 챙기고, 수술 동의서를 받거나 수술 전 준비과정과 수술도 보조합니다. 응급환자의 1차 진료를 맡는 것도 전공의입니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대형병원들이 전공의에게 의존하는 이유는 전공의가 상대적으로 ‘값싼’ 인력이기 때문입니다. 병원 입장에서는 전문의보다 전공의를 현장에 배치하는 것이 비용이 덜 듭니다. 전임의나 전문의 채용 비용의 20~30%대 정도면 가능합니다.

지난해 말 기준, 서울대병원의 전공의 비율은 전체 소속 의사의 46.2%,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40.2%, 삼성서울병원 38%, 서울아산병원 34.5%, 서울성모병원은 33.8%에 이릅니다. 다른 대형병원들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업무량으로 보면 70% 정도를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의 ‘2022 전공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공의 1명당 배정되는 입원 환자 수는 대략 15~30여 명 수준입니다. 전공의의 45.9%가 11~30명의 입원환자를 담당했고, 30명대와 40명대의 입원환자를 담당한 전공의 비율도 각각 4.4%와 3.9%였습니다. 특히 당직일 때는 36.7%가 하루 평균 50명 이상의 입원환자를 맡았습니다. 3.3%의 전공의가 하루 201명 이상의 환자를 돌본 경우도 있다고 답했습니다.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77.7시간이었는데, 법정준수시간인 80시간을 초과해 근무한다는 전공의 비율(4주 평균)은 52.0%에 달했고, 최대 160시간 이상을 근무한 전공의도 2명 있었습니다.

의료계에서 흔히 언급되는 “한국의 큰 병원들은 전공의와 간호사들을 갈아 넣어서 운영한다.”는 속설이 허투루 들리지 않습니다. 대형병원들은 의료보험 저수가 탓을 하지만 엄청난 재정이 소요되는 분원 건립 추진 현황을 보면 동의가 쉽지 않습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2022 전공의 실태조사’ 자료 갈무리
대한전공의협의회 ‘2022 전공의 실태조사’ 자료 갈무리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은 지난 2월 19일 시작됐습니다. 3월 8일 11시 기준 보건복지부가 서면 점검을 통해 100개 수련병원 전공의(1만2912명) 근무 현황을 점검한 결과, 계약 포기 및 근무지 이탈은 총 11만994명(92.9%)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발생한 의료 공백은 주요 수련병원인 국내 대형병원들의 운영에 큰 타격을 주고 있습니다. 병원들은 환자 진료를 축소하며 인력 공백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빅5’병원의 하루 수술 건수는 평소의 절반 정도로 떨어졌고, 외래진료도 20% 이상 축소됐습니다. 병원별로 기존에 예정됐던 진료와 수술 일정을 조정하느라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수술을 무기한 연기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정부도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습니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2월 26일 브리핑에서 “우리나라 대형병원들은 전공의와 전임의의 의존 비율이 상당히 높다”며 “상당히 정상적이지 않은 의료체계이다. 일본은 전공의 의존 비율이 약 10% 수준인데 우리나라는 30~40%, 어떤 병원은 거의 5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 나가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우선 상급종합병원의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중·경증 환자는 지역 병원과 동네 병의원으로 분산하도록 의료전달체계를 개편할 계획으로 알려졌습니다. 환자 수가 줄어들어 수익이 줄어든 상급종합병원에는 정부가 예산을 직접 지원하고, 전공의를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을 추가로 채용할 수 있게 재정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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