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최악의 산불' 아니다...'사상 최고 진화 작전'이 맞다

역대 주요 화재와 2019년 고성 화재 진화 비교

  • 기사입력 2019.04.07 23:59
  • 최종수정 2019.04.08 00:46
  • 기자명 곽민수

이번 강원도 산불에 대한 언론 보도에서 '역사상 최악의 산불'이라는 워딩이 종종 사용되는 것 같다. 지난 밤 술집에서 틀어놓은 TV뉴스 자막에서도 그 문구를 보았고, 집에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들리던 라디오 뉴스에서도 그 표현을 그대로 썼다. 그런데 정말로 이번 산불이 역사상 최악이었을까? 의구심이 들어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하게 사실관계만 몇 가지 살펴보았다. '역사학적 연구'에서도 이렇게 한다.

고성 화재 YTN 화면 캡처.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번 산불의 피해 면적은 고성-속초에서 250ha, 강릉-동해에서 250ha, 인제에서 30ha로, 총 530ha다. 물론 이 면적은 여러 언론에서 '굳이 애써서 강조하듯이' 여의도 면적의 2배에 가깝고, 축구장 742배의 넓이에 달하는 엄청한 규모이기는 하다.

그러나 아주 간단한 조사만 해보아도 이번 산불의 피해 면적은 '역사상 최악'까지는 아니다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피해면적이 이번 산불보다 큰 역대 산불은 총 5건이나 되는데, 그 간략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의 재난성 산불 (출처: 산림청)

1. 동해안 산불(삼척 등 5지역)

  - 기간 : 2000.04.07-04.15

  - 피해면적 : 23,794ha (피해액 360억원, 299세대 850명의 이재민)

  - 최대풍속 : 23.7m/sec

 2. 고성 산불

  - 기간 : 1996.04.23-04.25

  - 피해면적 : 3,762ha (피해액 230억원, 49세대 140명의 이재민)

  - 최대풍속 : 27m/sec

 3. 청양-예산 산불

  - 기간 : 2002.04.14-04.15

  - 피해면적 : 3,095ha (피해액 60억원, 32세대 78명의 이재민)

  - 최대풍속 : 15.1m/sec

 4. 강릉-삼척 산불

  - 기간 : 2017.05.06.-05.09

  - 피해면적 : 강릉 252ha+삼척 765ha=1017ha (피해액 608억원, 39세대 85명의 이재민)

  - 최대풍속 : 23m/sec

 5. 양양 산불

  - 기간 : 2005.04.04-04.06

  - 피해면적 : 피해면적 973ha (피해액 276억원, 191세대 412명의 이재민)

  - 최대풍속 : 32m/sec

이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산불은 아무래도 2005년의 양양 산불이다. 이 때에는 관동팔경의 하나로 유명한 낙산사가 산불로 인하여 전소했는데, 이 때문에 문화재 관련업에 종사하는 내게는 특히나 더 충격적이었다. 사실 이때 전소된 낙산사는 '1000년 고찰'이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당시 타버린 구조물들은 한국전쟁 직후에 상대적으로 조잡하게 복원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사찰이 산불로 전소된 이후 철저한 발굴조사와 문헌 및 미술품 연구 등을 통해서 훨씬 더 정교한 방식으로 복원되기도 했다. 그러나 보물 479호로 지정되어 있던, 조선 초기에 제작된 '낙산사 동종'은 완전히 녹아버려 결국 보물에서 지정 해제되었다. 자연재해로 인한 안타까운 문화재 손실이었다.

이번 산불의 경우에는 문화재 관련 피해가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해당 지역에 보물 11건, 명승 8건, 천연기념물 4건, 국가민속문화재 2건, 사적 2건 등의 국가지정문화재가 있음을 감안한다면 이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결과다. 이 다행스러운 결과에는 문화재청의 적절한 대응이 기여한 바도 크다. 문화재청은 2005년 낙산사 전소와 2008년 숭례문 방화사건 등에 대해 철저하게 성찰했기 때문인지, 이번 화재에 아주 기민하게 대처하여 화재 가능 구역에 있는 주요 문화재들을 신속하게 대피시키고 계속해서 안전상황실을 가동하며 화재 현황을 체크했다.

이 정도만 살펴보아도 이번 산불을 결코 '최악의 산불'이라고 부를 수는 없게 된다. 그런만큼 '최악의 산불'이라는 워딩을 언론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것에 대해서는 나태와 무책임 혹은 특정한 정치적 의도가 만들어낸 산물이라 판단해도 될 듯하다. 물론 최악이 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던 것 같기는 하다. 기상청은 4월 4일 밤 고성과 속초지역에서 관측된 최대순간풍속이 초속 26.1m라고 밝혔다. 이는 앞서서 소개한 ‘역대 산불들’ 가운데 3위에 해당되는 기록이다. 그러나 자연이 만들어낸 이 악조건에 '세련된 문명과 정교한 기술로 당당하고 현명하게 맞서' 최악의 상황만큼은 모면할 수 있었다.

이번 강원도 산불 진화 작업에는 소방차 872대와 헬기 51대, 소방공무원 3251명, 그 이외 산림청 진화대원과 의용 소방대원, 군인, 시-군 공무원, 경찰 등 총 1만 명이 훨씬 넘는 인원이 투입되었다. 이는 전국 소방차량의 15%, 가용 소방인원의 10% 규모로 사상 최대 규모다.

이와 같이 대규모 장비와 인력을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최근 새롭게 개정된 소방청의 출동지침 덕분이다. 2017년, 소방청의 개청과 더불어 대형재난에 대해서 관할 지역과 무관하게 전국의 소방 장비와 인력을 동원할 수 있게끔 출동지침이 전환되었고, 이에 따라 이번 산불의 국면에서 제도적으로 아무런 무리 없이 국가적 수준의 소방 역량을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외에도 소방출동 장애요인에 대한 강제처분 집행력도 강화되어 불법 주-정차 차량 등 소방 활동을 물리적으로 방해하는 요인에 대해서 현장에서 대응하는 것이 훨씬 용이해졌고, 소방청 본청과 시-도 소방본부 간 '차세대 119통합정보시스템' 구축과 ICT를 기반으로 하는 '긴급차량 우선신호시스템'의 전국적 확대도 예정되어 있다.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 했다고 해서 곧바로 시스템이 최대의 성능을 낼 수는 없다. 시스템 성능의 향상을 위해서는 하드웨어의 업그레이드도 동반되어야 한다. 이번 화재에 대응하는데 있어서 가장 훌륭하게 역할을 수행한 '업그레이드 된 하드웨어'는 2017년 완공된 서울-양양 간 고속도로다. 서울 동부에서 동해안까지 2시간에 주파할 수 있게 해주는 이 고속도로를 통해서 수도권에 밀집되어 있는 다수의 소방 장비가 신속하게 영동지방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수도권에서는 경기에서 가장 많은 181대의 소방차가 출동했고, 서울과 인천에서는 각각 95대와 51대의 소방차가 파견되었다. 이밖에 충남에서 147대, 경북에서 121대, 충북에서 66대, 강원에서 52대의 소방차가 출동했다.) 고속도로의 폐쇄회로 TV를 통해서 볼 수 있었던 소방차 수십대가 줄지어서 동쪽으로 향하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인 장관이었다.

4일 밤 강원도 산불을 진화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들고 있는 소방차 행렬. 보배드림에 게시된 국토교통부 라이브 영상 캡처.

요컨대, 이번 강원도 산불은 '역사상 최악의 산불'이라고 할 수 없다. 대신 이번 산불에 대한 대응을 <역사상 최대이자 최고의 진화 작전>이라고 평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최악의 조건 속에서 공공 시스템은 효율적으로 작동하였고 그 결과 최대한의 인력과 장비를 신속하게 투입, 적절하게 활용하여 최악의 결과를 막아냈다.

나는 고고학자이기도 하니깐 '조금 오버해서' 이번 산불과 이후 이어진 일련의 과정을 '문명사적 차원에서' 평가해보자면, 이 사건은 '우리의 문명과 기술이 자연의 위협에 당당하게 맞선 굉장한 성취'이기도 했다. 우리의 국가적 안보(human security)는 분명히 눈에 띄게 나아지고 있다.

곽민수 팩트체커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보다 더 소중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현대문명을 살아가고 있는, 고대문명에 관심이 많은 이집트 고고학자다.

 

곽민수   egypt@hitel.net    최근글보기
이집트 고고학자다. 한양대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대, 옥스퍼드대, 더럼대에서 공부했다. 이집트학의 한국 내 대중적 저변을 넓히기 위하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고고학 자료를 통해서 본 투트모스 3세의 과거인식과 개인정체성> 등 다수의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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