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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할 수 없는 것은 과학이 아니다[박재용의 과학 이야기] 과학에서 반증가능성의 의미

옛날 옛적 어느 마을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부부가 있었다. 소작농이었지만 열심히 농사를 지었고, 가난하지만 어머니와 아들 내외는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하나 걱정이 있었으니 어머니 신경통이 점점 심해지는 것. 나이가 들수록 몸이 힘들어지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아들 내외의 바람은 조금 더 건강하게 사셨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 마을 한 노인이 신기한 약수를 마시고 신경통이 나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노인에게 물어 그 약수가 있는 곳을 알아내곤 길을 떠난 아들. 마을에서 삼박사일은 걸리는 길을 불원천리 가서는 약수터에 도착했다.

약수터 주인, 2리터짜리 생수통에 물을 담아주고는 100만원을 내라 한다. 가난한 아들에겐 큰 부담이었지만 어머니만 나을 수 있다면야 하는 마음으로 100만원에 약수를 산다. 약수터 주인 생수와 함께 이렇게 말을 건넨다. “이 약수는 꼭 낫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마셔야 합니다. 믿지 못하면 낫지도 않습니다.”

다시 집에 돌아간 아들 약수를 매일 아침저녁으로 한 컵씩 어머니께 드린다. 어머니도 이웃 마을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는 철석같이 믿고 마신다. 그러나 2리터짜리 생수를 다 마시도록 어머니의 신경통은 차도가 전혀 없었다. 아들은 화가 났다. 적은 돈도 아니고 100만원이나 하는 물이었으니까.

아들 삼박사일 걸려 다시 약수터로 가 주인에게 항의한다. 당신 물을 마셨는데 전혀 차도가 없으니 이 물 엉터리 아니냐. 주인 아주 당당한 표정으로 말한다. 당신 어머니가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요. 내 말했잖소. 믿지 못하면 낫지 않는다고. 아들이 다시 말한다. 어머니가 얼마나 철석같이 믿었는데 그러시오. 어머니 이 물 한 잔 마시면 당장 나을 거라 생각하며 마시었소. 주인이 다시 말한다. 당신이 어떻게 확신하시오. 당신 어머니 마음속에 아주 조금이나마 불신의 그림자가 있었다면 절대로 나을 수가 없는 것이요.

이 주인의 말에 대해 아들은 반박을 하지 못한다. 자신은 어머니가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믿지만 어머니의 마음 한 구석에 불신이 도사리고 있었는지, 아니면 없었는지 그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

바로 이것이 과학이냐 아니냐가 갈리는 지점의 하나이다. 반증 가능성Falsifiability. 과학자가 어떤 현상에 대해 가설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 가설이 검증이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될까? ‘틀리다’는 것도 증명할 수 없지만 ‘맞다’는 사실도 증명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가설이 ‘과학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흔히 하는 농담으로 ‘틀리지도 못하는’ 것이다.

먼저 이런 명제는 어떨까? ‘모든 삼각형은 변이 세 개다.’ 이 명제는 반증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삼각형이란 변이 세 개인 평면 도형이라는 것이 정의definition이기 때문이다. 우리끼리의 약속이다. 즉 ‘변이 세 개인 도형의 변은 세 개다.’라는 명제이니 이는 동어반복인 셈. 이런 주장은 뭔가 새로운 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고 지식을 넓혀주는 것도 아니다. 어떤 현상이나 사물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니 틀렸다고 할 수 없지만 과학적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또 이런 명제는 어떨까? ‘달은 행성이거나 행성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달은 행성이 아니라 위성이지만 이 명제는 그래도 틀리지 않았다. ‘A는 B이거나 B가 아니다’라는 식의 명제는 언제나 맞지만 우리에게 새로운 어떤 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가설은 항상 틀리지 않지만 과학의 세계에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한다. 이런 식의 가설이 있느냐고? 과학의 세계에는 알고 보면 이런 식으로 주장하는 경우가 가끔씩 나타난다. 가령 ‘A는 B이거나 C이지 D는 아니다‘라는 가설이 있다. 언뜻 보면 이 가설이 맞다 하면 A는 D라는 선택지 하나가 사라진 것이니 사실에 조금 더 접근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A가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은 애초에 B와 C 둘 뿐이고, D는 not A라면 어떻게 될까? 저 명제는 이제 이렇게 바뀐다. ’A는 B이거나 C이지 not A는 아니다.‘ ’not A가 아니다‘는 'A이다’와 동일한 의미가 되니 실제 명제의 뜻은 ‘A는 A이면서 B이거나 C이다’와 동일하다. 어디 그런 게 있냐고? ‘실수인 A는 유리수이거나 무리수이지 허수는 아니다’라는 명제를 살펴보자. 허수는 애초에 실수가 아닌 수를 정의한 것이니-실제로는 조금 더 복잡하지만- 저 명제는 ‘실수인 A는 실수이면서 유리수이거나 무리수이다’가 된다. 원래 실수의 정의가 유리수와 무리수를 합한 개념이니 저 말은 전의 명제와 동일하게 동어반복이 된다.

이제 세 번째로 넘어가볼까? 누군가 ‘유니콘은 800만 년 전에 나타나 600만 년 전까지 몇 백 마리 정도가 살았다가 멸종했다’고 이야기하면 어떨까? 아주 적은 숫자만 살았기 때문에 생태계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고, 죽고 나서 화석도 남기지 못했다고 한다면 이를 반증할 수 있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그 때로 돌아가서 확인하기 전에는 누구도 반증을 할 수 없다. 생태계에 영향을 주었고, 다른 종으로 변이해서 그 후손이나 화석이 남았다는 주장이라면 반증가능성이 있겠지만 지구 생태계에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물적 증거도 남기지 못했다는 주장이니 ‘없었다’라고 이야기해봤자 소용이 없다. 비슷한 예로 이런 주장을 할 수도 있다. ‘인간은 영혼을 가지고 있는데 이 영혼은 물질이나 에너지가 아니라서 어떠한 측정 장비로도 측정할 수 없다.’ 물론 인간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에 대해선 나도 불만이 없지만 이런 주장이 과학 논문으로 나온다면 나를 비롯해서 어떤 과학자도 이 논문의 게재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측정 불가능이니 확인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영혼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철학이나 종교는 이런 명제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의 일상에도 이런 믿음이나 신념 또는 논리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과학적 진실’은 아니다.

과학적 주장은 그 가설에 대해 만약 틀렸다면 어떤 현상이 관측 가능할 때 비로소 ‘과학적’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 이론은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빨리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질량이 다른 두 물체를 동시에 떨어뜨려보면 틀린 지 맞는 지를 확인할 수 있다. 뉴턴은 중력은 질량을 가진 물체 사이에서 ‘즉시’ 작용한다고 했다. 이는 중력파의 검출을 통해 틀렸음이 확인된다.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면서 자신의 이론이 틀렸다면 천문 관측을 통해 확인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측 결과 틀리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모든 백조는 하얗다'는 주장의 반례로 제시된 검은 백조.

반증 가능성에는 또 다른 의미도 있다. 반증 가능성과 관련하여 자주 등장하는 예가 있다. ‘모든 까마귀는 까맣다.’ 자 이 명제는 어떤가? 반증 가능하다. 세상의 모든 까마귀를 다 찾아봐서 그 색깔을 확인하면 된다. 하나라도 까만색이 아니 까마귀가 발견되면 저 명제는 틀린 것이 된다. 하지만 틀렸다는 것으로 끝나진 않는다. 이제 명제는 수정된다. ‘대부분의 까마귀는 검지만 그렇지 않은 까마귀가 0.1% 존재한다.’가 된다. 이제 이 명제는 앞서의 ‘모든 까마귀는 까맣다’를 극복하면서 좀 더 진실에 가까운 서술을 한다. 그리고 새로운 질문을 던져준다. 왜 대부분의 까마귀는 검지만 0.1%의 까마귀는 검은 색이 아닐까? 이 질문에 답을 하면서 우리는 실체적 진실에 더욱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앞서의 역학을 가지고 말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신 사람들이 경험하고 느끼던 일반적 사실을 토대로 역학이론을 구성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현상이 그의 이론에 따라 설명 가능하다. 하지만 일부 그의 이론에 따르지 않는 현상이 발견된다. ‘반증’된 것이다. 이 반증이 주는 의미를 연구하면서 ‘뉴턴 역학’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기존 아리스토텔레스 역학이 일상적으로 잘 들어맞았던 이유와 우리의 감각이 속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설명하고, 또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따르지 않는 현상에 대해서도 일관된 논리로 설명한다. 운동 이론의 깊이가 깊어지고 외연도 확장된다. 그런데 또 뉴턴의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즉 뉴턴의 이론에 따르지 않는 현상이 밝혀진다. 뉴턴의 이론도 ‘반증’된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연구는 다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도출한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왜 우리가 경험하는 속도에서 뉴턴의 이론이 잘 맞았는지, 그리고 속도가 아주 빠르면 왜 뉴턴의 이론과 다른 현상이 나타나는지를 하나의 이론으로 모두 설명해낸다. 이렇듯 반증 가능성은 그 가능성이 현실화될 때 세계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게 만들었으며 앞으로도 만들 것이다.

박재용    chlcns@hanmail.net  최근글보기
과학저술가. <경계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짝짓기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경계 배제된 생명의 작은 승리>, <모든 진화가 공진화다>, <나의 첫 번째 과학공부>, <4차 산업혁명이 막막한 당신에게>, <과학이라는 헛소리> 등 과학과 사회와 관련된 다수의 책을 썼다. 현재 서울시립과학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박재용  chlcn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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