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선풍기 사망설 근원을 추적하다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3.08.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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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정보계의 클래식

매우 덥습니다. 어렸을 때 굉장히 많이 듣던 말이 생각납니다. <선풍기 틀고 자면 죽는다>입니다. 요즘에는 좀 사라진 것 같긴 합니다. 그래도 도시괴담 하나 없애는 심정으로 팩트체크 해봅니다.

저는 태국에서 3년 반 정도 살았는데요. 더위가 모든 걸 압도했습니다. 그래서 24시간 동안 선풍기 틀고 지냈죠. 아직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태국 선풍기는 우리나라 선풍기와는 달리 타이머가 없습니다.(아래 사진 참조) 우리나라 선풍기는 몇 시간 뒤에 자동으로 꺼지게 하는 타이머가 달려있죠. 이게 무슨 차이냐 하면요. <선풍기 틀고 자면 죽는다>는 괴담이 있느냐 없느냐 차이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선풍기 틀고 자면 죽는다>는 말은 거짓입니다.

출처: kitchenwaremarket.com 홈페이지
출처: kitchenwaremarket.com 홈페이지

◈선풍기 사망 괴담의 시작

국립중앙도서관의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로 옛날 신문을 검색해봤습니다.

1918년 3월 매일신보의 <위생상으로 본 선풍기, 주의만 하면 유익>이라는 기사를 살펴보면요. 위생가는 왈 “썩은 공기와 먼지를 일으키는고로 위생에 좋지 못하다는 말도 있으나 내 생각으로는 선풍기를 놓는 집이면 물론 상류나 중류 가정인즉 방안에 먼지가 그리 많을 이유도 없고...(중략) 주의할 일은 상중 가정에서 아이들 자는데다가 선풍기를 틀어놓고 아이들이 서늘하여 잘 자려니 생각하는 일이 있으나 그것은 위험한 일이오. 사람이란 것은 잠자는 동안에는 몸이 쉬는 것인데 그 쉬고 있는 사람에게다 바람을 드리내면 몸이 너무 식어서 감기를 드는 일이 많으며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이라도 그런일이 많은 즉 밤에 잘 때에는 항상 주의하여 선풍기를 정지시켜야 합니다라고 말하더라” 이렇게 보도 합니다.

출처: klab 유튜브 캡처
출처: klab 유튜브 캡처

이미 1910년대부터 선풍기를 틀고 자면 위험하다는 말이 퍼져있었다는 것이죠. 본격적으로 선풍기 사망설이 제기된 첫 보도는 1927년 중외일보의 <선풍기병... 신기하다던 전기부채의 해>라는 기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보도는 “두통과 안면신경마비가 생기고 잠든 아기가 쏘이면 더욱이 위태, 잘못 되면 생명이 위험”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이후 매년 여름마다 선풍기의 위험성을 알리는 기사들이 보도됐습니다. 1935년 7월29일 매일신보는 <시원한 선풍기 바람도 함부로 쓰면 사람까지 죽여>라는 보도를 통해 “틀어놓은 채로 잠이 들었다가 이튿날 아침에 깨어보니까 어린애가 죽었드라는 그런 일도 있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선풍기 사망설에 관한 보도는 2000년대 중반까지 이어집니다. 2006년 7월 소비자보호원(현 소비자원)은 매년 여름마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5대 사고 유형 중 하나로 <선풍기·에어컨 질식사고>를 꼽았습니다. 소비자보호원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최근 3년간 선풍기·에어컨을 틀어놓고 잠을 자다가 질식사해 CISS에 접수된 사례는 20건”이라며 “에어컨·선풍기 질식사고를 예방하려면 선풍기나 에어컨을 켜고 잠을 잘 때는 반드시 타이머 조절을 하고, 바람을 회전시키며, 방문을 열어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기죠. 공공기관이 선풍기 사망설 괴담을 앞장서서 강조한 거니까요.

출처: 소비자원 홈페이지
출처: 소비자원 홈페이지

◈선풍기 사망설의 근거

1930년대 기사에서는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면 방안에 산소가 희박해져서 질식해 죽는다.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선풍기 바람을 얼굴에 쐬면 호흡이 곤란해져서 사망하게 된다는 얘기도 있었구요. 무엇보다 선풍기를 켜놓고 자면 체온이 떨어지면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하게 된다.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굉장히 그럴 듯하게 들릴 수 있지만 전혀 타당하지 않습니다. 선풍기는 날개 회전으로 공기를 이동시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소가 희박해질 일은 전혀 없습니다. 선풍기 바람을 얼굴에 쐰다고 숨을 쉬지 못하게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운전을 해도 사망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죠. 저체온증도 선풍기를 켜놓는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려면 신체 심부온도가 28도 이하로 지속돼야 하는데 선풍기로는 이 정도 심부 체온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대법원 판단도 나와있습니다. 대법원은 2010년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에서 <건강한 사람의 경우 단지 선풍기나 에어컨 작동에 따른 표면냉각만으로는 인체의 심부체온을 사망에 이를 정도로 낮출 수는 없으며(선풍기의 경우 사람이 시원하게 느끼게 되는 것은 선풍기의 작동에 의해 사람의 체온이 저하되기 때문이 아니라 신체 주변부의 공기 대류가 원활해지거나 일부 잠재적인 땀이 기화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일 뿐이다), 또 선풍기나 에어컨은 산소를 소모하지도 않고 선풍기나 에어컨 바람이 사람의 코와 입에 직접 맞닿더라도 호흡은 가능하기 때문에 폐쇄된 공간에서 선풍기나 에어컨을 켜 놓았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산소 부족이나 호흡곤란 등으로 질식사할 가능성도 없다. 이런 의학적 연구와 실험 결과를 담은 사실조회 결과는 전문가가 전문지식에 기초하여 의학적·과학적 소견을 밝힌 것으로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쉽게 배척할 수 있는 성질의 증거는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 대법원 판결 이후 선풍기 사망설이 사그라들었죠.

◈선풍기 사망설이 지속된 이유

일제 시대 이후로 지금까지 변사사건을 처리하는 경찰의 최대 관심사는 ‘타살 흔적이 있는가’ 입니다. 선풍기 사망설에 등장하는 사례들을 보면 밀폐돼 있고 안에서 잠긴 방 안에 사람이 쓰러져 죽어있더라. 외부 침입의 흔적도 없고 외상도 없다. 자살을 의심할만한 정황도 없더라. 그런데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이 변사사건 보고에 ‘선풍기를 켜고 자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 이렇게 적어넣는 겁니다. 요즘에도 부검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만 예전에는 더했겠죠. 그래서 웬만하면 부검을 하지 않았죠. 선풍기 사망설이 힘을 얻는 겁니다. 언론은 그냥 받아 쓰기만 하는 것이고, 스스로 검증할 능력이 없으니까요. 요즘 같으면 부검을 해서 사인을 밝히거나 부검을 하지 않는다면 돌연사라고 하겠죠.

◈우리나라에만 있는 선풍기 사망설

인터넷 백과사전이죠. 위키피디아에 Fan Death ,우리말로는 선풍기 사망이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뭐라고 설명하냐면요. 밀폐된 방에서 선풍기를 틀어 사람이 죽었다는 도시괴담이다. 선풍기가 작동하는 방식을 고려할 때 선풍기 사망의 메커니즘은 불가능하지만, 이에 대한 믿음은 2000년대 중반까지 한국과 좀 더 적기는 하지만 일본에서 지속됐다고 정리해 놓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말인데요. 한국에서만 유독 선풍기 사망설이 부각됐단 말이죠. 선풍기가 언제 한반도에 들어왔는지 아십니까? 제가 열심히 찾아봤는데요. 조선에 처음 전기가 들어온 게 1887년 3월입니다. 에디슨 전등회사에 발전 설비를 주문해 건청궁에 전등불을 밝혔습니다. 고문서 검색을 통해 우리나라 신문에 처음 선풍기가 언급된 것은 1905년 11월 황성신문 <산양선해륙안내>라는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선 일본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잇는 연락선에 대해 언급하는데 “난방기, 선풍기, 전기등 등의 설비도 완전하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별다른 설명이 없는 것을 보면 1905년 당시에도 선풍기는 완전히 새로운 물건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느 순간에 선풍기 틀어놓고 자다가 어느집 아이가 죽었더라는 소문이 유포됐구요. 별다른 검증없이 언론이 가져다 쓰기 시작했고. 경찰에서도 별다른 근거 없이 선풍기를 사망원인으로 지목하고 이런 일들이 계속 되풀이된 거죠. 그러면서 정설로 굳어진거구요.

◈팩트체크의 필요성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또는 남들이 다 믿는 그럴듯한 이야기라고 해서 모두 사실은 아닙니다. 혹자는 산업화 시절 전력부족에 시달리던 정부가 선풍기 사망설을 유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다시피 선풍기 사망설은 일제 강점기 시대에도 존재했습니다. 누군가 그럴듯한 이야기를 거짓으로 꾸며내고, 누군가는 살을 붙이고, 누군가는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냅니다. ‘그럴싸함’이 판단 기준이 된다면 우리는 결코 사실을 가려낼 수 없습니다. 내머리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정보의 사실여부를 판단하려는 시도를 통해 우리는 허위정보를 가려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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