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맨발걷기와 어싱(earthing)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3.09.1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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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되지 않은 이론에 섣불리 지갑 열지 마오

공원을 산책하다보면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눈에 띕니다. 지자체들은 앞다퉈 관광지에 맨발걷기용 흙길 조성에 나서고 있습니다. SNS와 인터넷에는 맨발걷기 효능에 대한 콘텐츠가 넘쳐나죠. 과연 맨발걷기는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걸까요? 뉴스톱이 맨발걷기에 대해 팩트체크 했습니다.

출처: 다음 뉴스 검색
출처: 다음 뉴스 검색

①맨발걷기 만병통치?

인터넷에 ‘맨발걷기’를 검색하면 전국 지자체들이 맨발로 걷기 좋은 흙길을 조성한다는 소식을 볼 수 있습니다. 맨발걷기의 효능을 강조하는 동호회도 여럿 활동 중이고, 맨발로 걷고 난 뒤 각종 어려운 병을 고쳤다는 사례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뉴스톱은 맨발걷기를 연구한 논문을 찾아봤습니다.

<맨발걷기와 운동화 걷기가 청소년의 신체구성 및 생리적 지표에 미치는 효과성 분석> "결론적으로 맨발걷기는 통제그룹과 운동화착용 걷기보다 청소년들의 신체구성 및 생리적 지표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비만방지 및 건강 개선에 더욱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숲길 맨발 걷기의 효과 검증> - 맨발걷기와 대조군의 유의미한 차이가 없음.

<모래사장 위 맨발걷기와 운동화걷기가 허리통증이 있는 노인의 통증, 장애, 운동기능, 수면만족도, 삶의 질에 미치는 효과 비교> 31명 대상. 통증, 장애, 운동기능, 수면만족도에선 맨발걷기 실험군이 유의한 차이를 나타냈음. 삶의 질에는 차이 없음.

<맨발 걷기운동이 비만 여중학생의 신체구성과 혈중 지질성분에 미치는 영향> 운동화착용이 체중 감소가 더 많음

< 비만 남자 중학생의 맨발걷기와 일반걷기의 운동효과 분석> "맨발걷기는 운동의 형태와 강도가 동일할 때 일반걷기보다 운동 효율이 더 높아 중학생의 비만과 대사질환에 미치는 주요 건강지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맨발걷기가 건강에 효과적이라는 연구도 있고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맨발걷기하는 것이 당연히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추론은 상식적입니다. 게다가 도심지가 아닌 숲길을 걸을 때 기대효과가 더 클 수 있다는 점도 상식적입니다. 숲의 향기와 새소리, 신선한 공기 등이 어우러지면 기분이 좋아지니까요.

KCI 논문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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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어싱(earthing) 활성산소 제거?

맨발걷기 예찬론자 가운데는 신체가 지구와 연결되는 접지 또는 어싱(earthing) 효과를 언급하기도 합니다. 땅을 맨발로 밟을 때 몸 속으로 흘러드는 자유전자가 염증과 만성질환의 원인인 활성산소를 중화한다고 설명하는데요. 2012년 국제학술지 <환경과 공중보건(Journal of Environmental and Public Health>에 실린 논문에서 출발합니다. ‘접지: 인체를 지구 표면의 전자에 재연결하는 것의 인체 건강 영향’(Earthing: Health Implications of Reconnecting the Human Body to the Earth's Surface Electrons)이라는 논문입니다.

연구진은 “지구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신체에 흡수된 자유 전자의 유입은 활성산소(ROS)를 중화시켜 급성 및 만성 염증을 감소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후 이 연구진은 비슷한 주제의 논문 여러 편을 학술지에 발표했습니다. 맨발걷기 열풍과 함께 이들의 접지 이론이 언론 등을 통해 한국에 소개되고 확산했습니다.

출처: 스켑틱 홈페이지
출처: 스켑틱 홈페이지

그러나 이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회의주의 과학잡지 스켑틱은 2016년 6월 세도나에서 맨발: 발을 땅에 접지시키는 것에 대한 가짜 주장(BAREFOOT IN SEDONA: BOGUS CLAIMS ABOUT GROUNDING YOUR FEET TO EARTH PROMOTE MEDICAL PSEUDOSCIENCE) 기사를 통해 접지(어싱)를 비판했습니다.

스켑틱은 “접지를 지지하는 주장은 명백히 거짓이거나 의미가 없거나 테스트할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합니다”라고 지적합니다.

특히 연구진이 “접지 연구를 후원하는 회사인 Earth L. Inc.의 독립 계약자이며 회사의 작은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고 이해상충 선언을 한 점을 강조합니다. 연구의 목적이 순수하지 않다는 지적이죠.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맨발걷기 운동도 어싱 개념을 접목시키며 관련 제품 판매로 나아가는 조짐을 나타내고 있어 우려됩니다.

출처:
어싱 연구진이 관련 업체의 지분을 갖고 있다는 이해상충 선언. 출처: 환경과 공중보건 저널

③맨발걷기 주의점

맨발로 걷는 것은 걷지 않는 것보다 명백히 좋습니다. 그러나 발을 다칠 우려가 있는 장소이거나 맨발걷기가 위험한 사람들은 꼭 신발을 신고 걷는 것을 추전합니다.

정형준 원진녹색병원 재활의학과장은 “맨발걷기는 족저인대를 자극하는 효과가 있다”면서도 “발에 상처가 나면 감염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익보다 손해가 더 클 수도 있다”며 주의를 요구했다.

미국의 건강 매체인 헬스라인은 2019년 3월 <맨발걷기는 건강에 이익을 주나? Does Walking Barefoot Have Health Benefits?> 라는 기사를 통해 맨발걷기의 잠재적 위험과 이익을 분석했습니다.

출처: 헬스라인 홈페이지
출처: 헬스라인 홈페이지

기사에선 호그 정형외과 연구소의 조나단 카플란 박사를 인용해 “이론적으로 맨발걷기는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보행 패턴을 복구합니다”라고 언급했습니다. 운동화의 과도한 쿠션과 지지력은 신체를 강화시킬 수 있는 특정 그룹의 근육을 사용하지 않도록 한다는 겁니다.

맨발걷기의 잠재적 이익에 대해선 다음과 같이 소개했습니다.

-발이 땅에 닿을 때 발의 위치를 더 잘 조절할 수 있고

-균형감각과 신체인지 및 고유수용감각(자신의 신체 위치, 자세, 평형 및 움직임 등에 대한 감각)을 개선해 통증을 줄여주고

-발의 구조를 개선해 코어(허리-골반-엉덩이 복합체), 무릎, 엉덩이 구조를 개선할 수 있고

-발과 발목 관절의 적절한 움직임 범위와 근육과 인대 내의 적절한 힘과 안정성을 유지하고

-부적절한 신발 착용에서 비롯된 무지외반증, 추상족지증, 기타 발 기형을 완화하고

- 등 아래 부분을 지탱하는 다리 근육을 강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반면, 맨발걷기의 잠재적인 위험요소는

-발에 힘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 잘못된 보행 동작으로 인한 부상 위험이 도사리고

-거친 표면, 뾰족한 물체 등으로부터 부상을 당할 수 있고

-상처가 나면 세균 등에 감염될 우려가 있습니다.

라고 하네요. 발에 적당한 힘이 있어 넘어질 우려가 없는 사람이 발 다칠 염려 없는 곳에서 맨발로 걷는 것은 추천할만한 일이라는 결론입니다.  

④맨발걷기 이렇게 시작하자

헬스라인은 맨발걷기를 시작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방법을 고려하라고 추천합니다.

천천히 시작하기 :

발이 적응하도록 처음에는 15~20분 정도로 시작한 뒤 점차 늘려갑니다.

불편하거나 아프면 풀어주기:

발에 힘이 없는 분들은 불편감이나 통증을 느끼면 그때그때 쉬면서 풀어줍니다.

실내에서 시험하기:

실내 공간에서 맨발걷기를 시험해봅니다.

안전한 곳에서 연습하기:

실내 맨발걷기에 적응이 됐다면 잔디밭, 고무트랙, 모래밭 등 덜 위험한 곳에서 연습합니다.

미니멀리스트 신발 고려하기:

완벽하게 맨발에 적응하기 전까지 미니멀리스트 신발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균형잡기 운동과 함께하기:

한발 서기, 발가락으로 서기, 천천히 앉았다 일어나기 등 균형잡기 운동과 함께 시작하면 좋습니다.

맨발운동 도전하기:

요가, 필라테스, 무술 등 맨발로 하는 운동을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운동 후 상처 살피기:

맨발걷기가 끝나면 발에 상처가 생겼는지 세심하게 살펴야 합니다.


맨발걷기는 다칠 염려만 없다면 해볼만한 운동이라는 게 결론입니다. 걷고 난 뒤엔 발에 상처가 나지 않았는지 꼼꼼히 살펴야 하구요. 당뇨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면 의사와 상의한 뒤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접지(어싱)은 주류 과학자들이 인정하지 않는 이론입니다. 효용을 주장하는 연구진들은 관련 업체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효과를 봤다는 체험담이 이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과학적 검증이 필요합니다. 섣불리 관련 제품에 지갑을 여는 것은 현명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맨발걷기가 인기를 끌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비용 들이지 않고 건강을 지킬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검증되지 않은 이론이 상술과 연결되는 지점에서 선의의 피해자들이 생겨나게 마련이죠. 뉴스톱 독자님들이 내 머리로 생각하는 현명한 소비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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