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진상인가, 정당한 요구인가… 응급실 진료 순서는?

  • 기자명 이나라 기자
  • 기사승인 2023.10.1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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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병원 응급실에서 환자 보호자가 의료진에게 폭언을 쏟아내 업무가 마비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채널A 기사 갈리
채널A 기사 갈리

8일 채널A 보도에 따르면, 강원도의 한 병원 응급실에 사우나에서 쓰러진 환자가 이송됐다. 그런데 해당 환자의 초진이 끝난 뒤, 심정지 상태의 다른 응급환자가 응급실에 들어왔다. 의료진들이 환자를 살리려 애쓰는 사이, 앞선 환자의 보호자가 항의하기 시작했다. 112 신고로 경찰이 온 뒤에도 보호자의 항의는 1시간 넘게 이어졌다. 그 사이 응급실 업무가 중단돼 다른 환자들은 꼼짝없이 대기해야만 했고, 결국 의사는 해당 보호자를 고소했다.

응급실에서 대기 시간이 길다는 이유로 환자 및 보호자와 의료진 간 갈등이 발생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와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의 '2022년 대국민 응급의료서비스 인지도 및 만족도 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응급실 이용 시 만족도가 가장 낮은 항목은 '진료 의사를 만날 때까지의 대기 시간'인 것으로 조사됐다.

2022년 대국민 응급의료서비스 인지도 및 만족도 조사
2022년 대국민 응급의료서비스 인지도 및 만족도 조사

누구나 자기 가족이나 자신의 상황이 가장 긴급하다고 생각하기 쉽고, 이 때문에 대기가 길어지면 불만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응급환자가 몰리는 응급실에는 정해진 진료 순서가 있다. 뉴스톱이 확인했다.


◆응급실 진료 순서는 ‘선착순’ 아닌 ‘응급순’

현재 응급실 진료 기준은 보건복지부가 2016년부터 도입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내 ‘한국 응급환자 중증도 분류기준’을 따르고 있다. 이는 캐나다 응급환자 분류도구인 CTAS를 우리나라 의료상황에 맞게 변형한 것으로, ‘KTAS(Korean Triage and Acuity Scale)’라고 불린다.

KTAS는 총 5가지 단계로 구분되며, 1, 2등급은 ‘중증응급환자’로, 3등급은 ‘중증응급의심환자’로, 4,5등급은 ‘경증응급환자 및 비응급환자’로 분류한다.

충북대학교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홈페이지
충북대학교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홈페이지

진료 최우선 순위인 1등급은 생명이나 사지를 위협하는 상태로, 즉각적인 처치가 필요한 경우다. 심장마비와 무호흡 등의 증상이 대표적이다. 2등급은 생명 혹은 사지, 신체기능에 잠재적 위협이 있어 빠른 치료가 필요한 경우로, 심근경색과 뇌출혈, 뇌경색이 포함된다.

3등급은 호흡곤란이나 경한 호흡부전이나 출혈을 동반한 설사 등의 증상으로 치료가 필요한 상태이며, 4등급은 38도 이상의 발열이나 요로감염 등의 증상으로 1~2시간 안에 처치가 필요한 상태다. 마지막으로 가장 후순위인 5등급은 감기, 장염, 설사, 열상 등 긴급하지만 응급은 아닌 경우가 해당한다.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응급환자 중증도 분류는 환자의 내원과 동시에 응급실 진입 전 환자분류소에서 1차로 시행하고, 환자의 상태가 변경되는 등 필요한 경우에 추가로 시행하는 게 원칙이다. 또한,  응급환자 중증도 분류 결과 응급환자가 아닌 자로 판단될 때는 환자를 응급실이 아닌 의료 시설을 이용하게 하거나 다른 의료기관에 이송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2021년부터 해당 기준을 중앙응급의료센터, 권역응급의료센터, 지역응급의료센터에서 모든 응급의료기관으로 확대 적용했으며, 올해 하반기 안으로 119 구급대의 응급환자 분류 기준도 KTAS로 통일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응급실은 중증환자에게 양보해 주세요”

응급실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이유는 한정된 의료인력에 비해 찾는 환자들의 숫자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응급실 이용이 불필요한 경증환자들의 이용 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것도 문제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대형병원 응급실 일평균 방문 경증환자 수는 2459명으로, 중증환자 수(648명)의 4배에 달했다.

문제는 이 경우 생사의 갈림길에 선 중증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만 중증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해 사망한 사례가 연이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3월에는 대구광역시 한 건물에서 추락한 17세 여학생이 응급실을 찾아다니다가 구급차에서 사망했고, 지난 5월에는 5세 어린이가 서울에서 9곳 이상의 병원에서 진료 및 입원 거절을 당한 뒤 결국 사망했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방지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지난 5월 31일 당정협의회를 통해 ▲응급실 과밀화 해소 ▲종합상황판 정보 적시성 개선 ▲전문인력 활용 강화 ▲지역응급의료상황실 설치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응급의료 긴급대책을 발표했다. 또한, 보건복지부, 소방청 등 정부 기관과 중앙응급의료센터, 대한응급의학회 등으로 구성된 중앙응급의료정책추진단을 발족해 격주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 홈페이지
국립중앙의료원 홈페이지

그러나 무엇보다 응급실을 이용하는 환자들 사이에 올바른 응급실 이용 문화가 정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지난 4월 ‘응급실 이용문화 알리기’ 캠페인을 진행하며 ‘응급실 이용문화 5가지 수칙’을 발표했다. 해당 수칙은 ▲응급실 진료순서는 위급한 순서대로 ▲응급실은 중증환자에게 양보해 주세요 ▲보호자 출입은 진료 보조가 필요한 경우에만 ▲의료진을 향한 폭언 폭행 절대 금지 ▲병원 선정은 구급대원에게 맡겨주세요 등이다.


정리하자면, 응급실 진료는 먼저 온 순서대로가 아닌, ‘한국 응급환자 중증도 분류기준(KTAS)’에 따라 응급한 순서대로 진행되는 게 원칙이다. KTAS는 환자의 중증도를 총 5가지 등급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중증응급환자’인 1등급 환자는 최우선으로 진료를 받게 된다.

한편, 앞서 언급한 강원도 병원 응급실에서 발생한 사건과 관련, 대한의사협회는 입장문을 통해 이러한 의료기관에서의 진료방해 행위에 대해 엄벌을 촉구했다. 의협은 “의료기관 내 의료인에 대한 폭언 등은 폭행과 마찬가지로 진료 공백을 발생시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침해하는 중대 범죄”라며, "해당 사건에 대한 적극적인 수사와 엄중한 처벌을 내려줄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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