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럼피스킨병은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다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3.10.2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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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주 정도 확진 사례 증가할 듯

소의 온몸에 혹이 생기는 럼피스킨병이 국내 최초로 발병했습니다. 지난 19일 충남 서산에서 첫 신고 사례가 양성으로 확진된 이후 충남, 경기, 충북에서도 확진 사례가 발생했습니다. 의심 신고는 전남, 강원에서도 잇따르고 있어 자칫 전국으로 확산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집니다. 뉴스톱이 럼피스킨병에 대해 분석해봤습니다.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갑자기가 아니다. 시간문제였을 뿐

인터넷 신문은 이번 럼피스킨병 발병을 두고 <갑자기 닥친 방역위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럼피스킨병 발병은 사실 예고된 지 오랩니다. 지난해 8월 농림축산식품부와 유관기관들은 <소 럼피스킨병 이해>라는 브로셔를 제작해 배포했습니다.

소 럼피스킨 병은 주로 아프리카 지역에서 발생하던 질병입니다. 1989년 이스라엘로 전파됐고, 2013년 튀르키예에서 발생 및 확산된 이후 2015년 그리스 등 남동유럽과 러시아로 전파된 뒤, 2019년부터는 아시아지역에서 발생 국가가 지속적으로 늘어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1929년 잠비아에서 처음 발생한 이 질병이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동쪽 끝인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94년이 걸린 셈입니다. 가축방역 당국은 2020년부터 주의를 촉구했습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나진주 수의연구관은 2020년 8월 전문지 기고를 통해, 중국과 대만의 럼피스킨병 발병 사례를 전파하며 “우리나라 제주도와 가까운 중국 남동부와 대만에서 발생한 럼피스킨병은 대한민국이 더 이상 럼피스킨병에서 안전 지대가 아니다”라고 짚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럼피스킨병의 국내 유입에 대비하기 위해 2019년에 바이러스 진단체계를 구축했고, 2021년부터 해외 전염병 국내 검색사업에 소 럼피스킨병을 추가해 전국적인 예찰을 실시하던 중이었습니다. 2022년 8월엔 럼피스킨병 백신 54만 마리 분을 사전 비축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확산 가능성과 유입 경로

불행 중 다행히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던 병이 발생해 모두가 허둥지둥하는 상황은 아니라는 겁니다. 지난 7월 농식품부는 럼피스킨병 긴급행동지침(SOP)를 발표했습니다. 국내에서 환축(질병에 감염된 가축)이 발생하면 가축과 축산업 종사자에게 일시이동중지 명령을 발동하고, 발생 농장 등 감염 가능성이 있는 가축을 살처분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통제초소 및 소독장소를 설치하고, 가축시장을 폐쇄하는 한편, 긴급백신접종을 시행하는 내용도 들어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미리 마련된 이 SOP에 따라 현재 럼피스킨병 방역 대책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 최초 발병이 확인된 19일 이후 발병 사례가 늘고 지역도 확대되는 중입니다. 충남 서산시에서 첫 발병이 확인된 이후 경기, 충북, 강원, 인천으로 발병이 확대됐습니다.

출처:농림축산식품부
출처:농림축산식품부

정부는 10월 말까지 추가 발생 농장 10km 안에 있는 소 농장에 대해 긴급 백신 접종을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백신 170만 마리 분을 추가로 도입해 경기, 충남, 강원도 접경지역의 모든 소 120만여 마리에 대해서도 백신을 접종할 계획입니다. 항체 형성까지 3주 정도가 걸리는 만큼, 럼피스킨병의 주요 전파 요인인 모기 등 흡혈 곤충에 대한 집중 방제도 진행합니다.

이 럼피스킨병은 도대체 어떻게 들어왔을까요? 이 병은 주로 침파리, 모기, 진드기 등 흡혈곤충이 옮기는 질병입니다. 병에 걸린 소는 피부·점막에 크기 5cm 이내의 수많은 혹이 생깁니다. 눈, 코의 분비물이 증가하고 침을 많이 흘리게 됩니다. 병 걸린 소의 분비물에 다른 소가 접촉하면 감염 가능성이 커집니다. 오염된 주사기를 재사용하거나, 급수통, 먹이 등이 오염됐을 경우 감염 전파가 가능합니다.

현재로서는 이 질병이 국내에 언제 어떻게 들어왔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역학조사 결과가 나와봐야 정확한 경로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한상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YTN라디오에 출연해 “현재 발생 상황이나 발생 지역을 봤을 때 적어도 한 달 이전에 한 가지 이상의 경로를 통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왔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인천시 관계자는 24일 경향신문에 “럼피스킨병을 일으키는 매개체인 모기가 지난달 인천항을 통해 해외에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병든 소 유통? 소고기 값 상승??

럼피스킨병은 소한테만 발병하는 가축전염병입니다. 병에 걸린 소의 고기나 우유 등을 먹거나 병든 소와 접촉해도 사람이 이 병에 걸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병든 소는 우유생산량이 급감하고, 가죽 및 고기 손상, 유산, 수소 불임 등 심각한 피해를 겪게 됩니다. 긴급행동지침(SOP)에 따라 럼피스킨병이 확진된 개체 및 해당 농장의 소는 모두 살처분되고, 반경 500m 이내 관리지역에 해당되는 주변 농장의 소들은 가축방역심의회의 결정에 따라 살처분됩니다. 따라서 럼피스킨병에 걸린 소의 고기 또는 우유 등이 시장으로 유통될 가능성은 0에 가깝습니다.

다만 가축전염병이 발생하면 소비자들이 소비를 꺼리게 되고 일시적으로 수요가 줄어들면서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면, 2010~2011년 구제역 사태에서 보듯이 살처분이 대량으로 이뤄지면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을 수 없게 되면서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소고기 도·소매 시장에서 급격한 가격변동은 관측되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는 앞으로 2~3주 동안은 지속적으로 감염 확진 사례가 나올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특정 시점에 감염원이 국내로 들어왔고 잠복기를 거친 확진 사례들이 지금 나오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죠. 긴급 백신 접종을 시행하고 있지만 면역이 형성될 때까지 2~3주 정도 시일이 걸리는 만큼 이미 감염돼 잠복기를 거치고 있는 소들이 발병하는 사례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근본적인 해결책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유행 사례에서 찾은 교훈은 개별 농장이 방역을 철저히 하면 가축전염병을 피해갈 수 있다는 겁니다. 물 샐 틈 없이 방역망을 구축하면 외부에서 유입되는 감염원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이번 럼피스킨병 사례를 참조하면 축사에 모기 등 흡혈곤충이 드나들 수 없도록 방충망 등 추가적인 장치를 설치하거나, 주기적으로 곤충을 방제하는 노력이 추가돼야 하겠죠. 물론 축산업의 입장에선 생산 단가가 높아지고 소비자 입장에선 육류 구매비용이 증가하겠죠. 그렇지만 언제까지 이런 후진적인 가축전염병 사태를 되풀이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정부는 해외 유입 차단과 유입 시 신속 대처를 위한 사전 조치에 만전을 기울이고 개별 농장과 조합은 차단 방역에 집중하자는 주장입니다.

일각에선 동물복지 축산과 백신 접종을 주장합니다. 가축이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도록 넓은 공간에 풀어주고 본성을 발산할 수 있는 환경에서 기르는 것이 면역력을 증진시켜 감염에도 강하게 만들어 준다는 논리죠. 가축전염병에 대응하는 백신을 선제적으로 개발∙접종해 대규모 살처분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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