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중대재해 예방 팩트체크] ⑨ 중대재해 80%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3.10.2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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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개정 움직임에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시기를 미루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여당의 이런 움직임에 공동대응하고 나섰습니다. 105개 단체들은 <생명안전 후퇴 및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저지 공동행동>이라는 연대체를 결성해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 반대 서명운동 등 활동에 나섰습니다.

단체들은 “중대재해의 80%가 발생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지난 10년간 사망한 노동자는 1만2045명에 달한다”고 주장합니다. 뉴스톱이 안전보건공단과 함께 진행하는 2023 중대재해 예방 팩트체크 ⑨편을 통해 팩트체크 했습니다.

출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홈페이지
출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홈페이지

◈중대재해 80%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공동행동은 지난 16일 10만인 서명운동에 돌입했습니다. 2021년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당시 10만인 서명이 큰 힘이 됐던 것을 재연하려는 의도입니다. 

공동행동은 기자회견문에서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법 적용유예 연장을 반대했습니다. 공동행동은 “중대재해의 80%가 발생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지난 10년간 사망한 노동자는 1만2045명에 달한다”고 밝혔습니다. 첫번째 팩트체크 대상입니다. 과연 중대재해의 80%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을까요?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 현황>자료를 살펴봅니다. 최근 10년(2013~2022) 동안 발생한 산재 사망자수는 1만9850명입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망자수는 1만2045명입니다. 전체 산재 사망자수 가운데 50인 미만 사업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60.7%입니다.

출처: 통계청. 
출처: 통계청. 

왜 공동행동은 전체 중대재해의 80%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고 했을까요? 고용노동부가 2021년 2월 발표한 <사망재해 발생 등 예방조치의무 위반사업장 명단 공표> 자료에 나온 내용입니다. 2020년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 공표대상은 모두 671곳이었는데요. 이 가운데 50인 미만 사업장이 539곳으로 80.3%를 차지했습니다. 이 자료를 인용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중대재해의 80%가 발생한다고 언급한 겁니다. 그러나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 공표대상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제2조제1항에 따라 중대재해(▲사망자 1명 이상 ▲3개월 이상 부상자 동시 2명 이상 ▲부상자 또는 직업성 질병자 동시 10명 이상)가 발생한 사업장 가운데 연간 재해율이 규모별 같은 업종의 평균 재해율 이상인 사업장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러니 중대재해 전반을 반영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60%든, 80%든 소규모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노동계는 소규모 사업장의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을 예정대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은 내년 1월 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될 예정입니다. 2021년 법 제정 당시 소규모 사업장이 준비할 시간을 주기 위해 3년의 유예기간을 부여한 것이죠.

◈중소기업 59.2% 중대재해법 준비돼 있다?

공동행동은 “경영계의 왜곡된 실태조사, 보수 경제지의 여론 호도를 등에 업고 여당은 개악 법안을 발의하고, 노동부 장관은 연기 검토를 운운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올해 6월 중기 중앙회의 조사에서는 대상 사업장의 59.2%가 법 준수 준비가 되어있고, 전혀 그렇지 않다는 3.2%에 불과했다. 작년 10월 갤럽 조사에서도 중소기업의 80%가 중대재해처벌법에 찬성했다”고 밝혔습니다. 이건 사실일까요?

출처: 중소기업중앙회
출처: 중소기업중앙회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5월 펴낸 <중소기업 중대재해처벌법 평가 및 안전관리 실태조사 결과보고서>를 살펴봅니다.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 재직 응답자 250명을 대상으로 ‘2024년 1월 27일까지 중대재해처벌법 준수 가능 여부’를 물었습니다. 준수가 가능하다는 응답이 59.2%(매우 그렇다 6.8%, 어느 정도 그렇다 52.4%)로 나타났습니다. 준수가 불가능하다는 응답은 40.8%(전혀 그렇지 않다 3.2%, 별로 그렇지 않다 37.6%)로 적었습니다.

그런데 중기중앙회는 이 보고서를 토대로 6월8일 보도자료를 발표합니다. 제목은 <50인 미만 중소기업 40.8%, 중대재해처벌법 준수 ‘불가능’> 이었습니다. 가능하다는 응답이 59.2%였고, ‘전혀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3.2%에 그쳤음에도 소규모 사업장이 중대재해처벌법 준수가 불가능한 것처럼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출처: 국회의안정보시스템
출처: 국회의안정보시스템

◈국민의힘, 유예 2년 연장 법안 발의

국민의힘 임의자 의원은 지난달 7일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습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3년으로 정한 법 적용 유예기간을 5년으로 늘리는 내용입니다. 임 의원은 “중소기업은 복잡하고 상이한 법 내용에 따른 준비 부족, 만성적인 인력난 속에 안전 및 보건관리 전문인력 확보 및 비용 문제, 기업의 대표가 대부분의 업무를 책임지고 있어 상황에 따라 폐업 가능성 등 중대재해처벌법을 준수하는 데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습니다.

임 의원은 “상황이 이렇다보니 50인 미만 사업장 중 85.9%가 법 적용 유예가 필요하다는 현장 여론이 알려진 바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8월 실시한 조사를 인용한 겁니다.

이 조사에선 앞선 조사와는 다른 결과가 나왔습니다. 50인 미만 사업장 892곳을 조사한 결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준비하지 못했다’는 응답이 80.0%(아무 준비도 못했다 29.7%, 상당 부분 준비하지 못했다 50.3%)에 이르렀습니다.

정부도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연장에 힘을 싣는 모양새입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노동부 국정감사에서 “국회 법 개정 논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겠지만 노사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본 결과 신중히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 고민하고 있다"며 "83만 사업장 가운데 예산과 인력 준비가 부족한 40만 사업장에 지원을 많이 했지만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출처: 산업재해현황(1991~2022), 고용노동부
출처: 산업재해현황(1991~2022), 고용노동부

◈3년 유예기간 동안 뭐했나?

중대재해처벌법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산재 사망사고에 대한 극약처방 성격이 짙습니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형사 책임을 물음으로써 사업주의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게 목적입니다. 2022년 산재 사망자수는 2223명이었습니다. 1991년 2299명이었던 이 숫자는 2003년 2923명까지 치솟은 이후 소폭 하락했지만 줄곧 2000명을 웃돌고 있습니다.

산재 사고 사망자 유가족과 노동계를 중심으로 산재 발생 기업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이는 2021년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법 제정 당시 소규모 사업장은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3년의 유예기간을 부여했습니다. 당시 부여했던 유예기간은 내년 1월 26일이면 끝이 납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형사책임을 묻게 되는 겁니다.

3년 동안 기업은, 재계는, 정부는 무엇을 했을까요? 2015년 이후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산재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2021년 1359명이었던 50인 미만 사업장 사망자 수는 지난해엔 1372명으로 늘었습니다. 준비할 시간이 도대체 얼마나 필요한 걸까요?

국민의힘이 발의한 개정안과 달리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대상을 5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도 국회에 제출돼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강민정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입니다. 민주당 윤준병 의원도 모든 사업장으로 적용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을 대표발의 했습니다.

내년 1월27일이 다가올수록 중대재해처벌법 유예기간을 연장하라는 재계의 압박은 거세질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과 한몸이라고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재계의 요구를 수용해 중대재해처벌법 유예기간 연장 여론몰이에 나설 가능성이 큽니다.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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