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중대재해 예방 팩트체크]⑩ 중대재해 사고백서 (최종회)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3.11.08 21: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업주와 노동자, 시민 모두가 읽어야 할 중대재해의 모든 것

출근했다가 집에 돌아가지 못한 수많은 산재 피해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그 가족에게는 위로를 드립니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국제팩트체크연맹(IFCN) 회원사인 뉴스톱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과 함께 <2023 중대재해 예방 팩트체크 시리즈> 연속 보도를 진행합니다. 출근한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하고 무사히 집에 돌아갈 수 있도록 위험에 둔감했던 문화와 관행,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최종회에는 최근 정부가 펴낸 중대재해 사고백서 <2023 아직 위험은 끝나지 않았다>를 통해 교훈을 찾아봅니다.

출처: 고용노동부
출처: 고용노동부

◈반면교사 10개 핵심 사례 담아

중대재해 사고백서에는 실제 발생한 주요 중대재해 중 동종·유사 기업에서 반면교사 삼을만한 10개의 핵심 사례가 담겼습니다. 그동안 중대재해 자료들이 재해에 대한 기술적인 내용 및 현장의 안전보건조치 등에 집중돼 있었다면, 이 백서는 재해 원인뿐 아니라 기업의 작업 환경, 조직 문화, 안전보건관리체계 등 사고가 발생한 전반적 상황에 대해 상세히 분석했습니다. 무엇보다 전문 작가가 알기 쉬운 말투로 집필해 눈에 쏙쏙 들어옵니다.

사례별로 사고 예방을 위한 전문가 제언, 국내외 유사사례 등을 수록해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에 관심과 의지를 가져야 하는 경영책임자에게 도움이 되도록 했습니다. 백서의 마지막 부분에는 2022년 중대재해 사망사고 611건의 사고 개요, 각 사고별 예방 대책을 일람표 형태로 건건이 공개했습니다. 한 해 동안 돌아가신 중대재해 사망자들의 기록은 간략하게 개요만 적혀있을 뿐인데도 55쪽에 이를 만큼 많습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번 백서는 사고 예방을 위해 현장에 실제 도움이 되는 자료가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라고 하면서, “앞으로도 재해예방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들을 적극적으로 공개해나가도록 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출처: 중대재해 사고백서, 고용노동부
출처: 중대재해 사고백서, 고용노동부

◈내가 사는 아파트, 내가 먹는 빵이 노동자의 목숨 값

백서에는 HDC 현대산업개발의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가 첫머리에 실렸습니다. 6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이 사고는 재난은 한 가지 이유로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스위스 치즈 모델이 고스란히 적용된 사례입니다. 붕괴사고가 일어나기 직전 복수의 현장 관계자들이 붕괴 조짐을 사전에 파악했음에도 상부는 이에 대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설계가 변경됐지만 적절한 감리는 이뤄지지 않았고, 변경된 설계에 따라 하중을 받칠 구조물(동바리)이 설치돼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책임 있는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건물이 무너지면서 6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HDC 현대산업개발의 명성도 주가와 함께 폭락했습니다.

출처: 중대재해 사고백서, 고용노동부
출처: 중대재해 사고백서, 고용노동부

두번째 사례는 제빵업계 대표주자인 SPC 계열사 SPL에서 발생한 노동자 끼임 사망사고(윗 그림 참조)입니다.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소스를 섞는 혼합기에 노동자가 끼어 숨진 사고였습니다. 기계가 작동되는 도중에는 항상 뚜껑이 덮여있어야 하지만 밀려드는 일감을 처리하기 위해 속도를 강조하다보니 뚜껑은 항상 열려있었습니다. 혼합기 회전날에 소스가 붙어 혼합이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 피해 노동자가 기계가 돌아가는 상태로 손을 넣어 뭉친 걸 풀어보려고 하다가 팔이 끼면서 상반신이 기계 속으로 끌려들어간 겁니다. 이런 기계에는 뚜껑이 열리면 자동으로 기계가 멈추게 하는 안전장치(인터로크)가 있어야 하지만 설치돼 있지 않았습니다.

이 기업에선 2020년부터 2022년 7월까지 12건의 끼임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안전관리 전문기관으로부터 여러차례 혼합기 덮개 개방에 대해 시정 권고와 지적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후 불매운동이 일어났고 SPC그룹 오너는 대국민 사과를 해야했습니다. 과중한 노동량을 조정하기 위해 2조2교대제를 2026년까지 3조3교대제로 개편하는 걸 검토하겠다고도 약속했습니다.

 

◈작은 회사라서 어쩔 수 없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1호 판결 사례도 실렸습니다. 지난해 5월 경기도 고양시 요양병원 증축공사 현장에서 철골자재를 5층으로 옮기던 작업을 하던 중 발생한 사고였습니다. 피해 노동자가 외줄걸이로 끌어올린 철골을 5층에서 받으려고 하는 순간 슬링벨트에 매여있던 철골 자재가 빠지면서 떨어졌습니다. 피해 노동자도 균형을 잃고 아래로 떨어져 숨졌습니다.

안전난간, 추락방호망은 없었습니다. 현장에서 위험한 작업을 통제하는 관리감독자도 없었습니다. 현장 안전관리자는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경영책임자인 A대표이사는 법정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 고지된 조치를 실행하려고 했으나 소규모 건설사들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주변 비슷한 규모의 기업들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조사결과 해당 기업은 이전부터 안전보건관리에 대해 관심과 대책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시종일관 “몰랐습니다. 잘못 했습니다”로 일관했던 A대표이사는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가장 먼저 기소된 사례인 에어컨 부품 공장 집단 중독 사례도 소개합니다. 2021년 10월 경남의 한 에어컨부품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황달 증세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검사 결과 당일 입원을 권유받을 정도로 간 수치가 높게 나타났습니다. 작업장에서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동료들이 여럿 있었다고 합니다. 만성피로, 황달, 복통 등 증상을 보였지만 공통점은 간 수치가 높다는 점이었습니다. 다들 비슷한 시기에 코로나 백신을 접종했기 때문에 백신 후유증인줄로만 알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의구심을 품고 사안에 접근했습니다. 결국 작업장에서 사용한 세척제에 문제가 있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세척제에 트리할로메탄이라는 유해 성분이 포함돼 있는데 사측에선 국소배기장치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방독면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들은 무방비 상태로 독성물질에 노출됐고 결국 간에 탈이 난 겁니다. 당시 노동자를 진료한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는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때까지 사망자가 없었던 건 정말 천운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어요”라고 증언했습니다.

출처: 중대재해 사고백서, 고용노동부
출처: 중대재해 사고백서, 고용노동부

◈사업주, 노동자 모두가 읽어야 하는...

내년 1월 27일부터는 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됩니다. 소규모 사업장 사업주들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반드시 대비를 해야한다는 뜻이죠. 이 중대재해 사고백서는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사업장 안전에 무감각했던 사업주들이 어떻게 처벌받았는지를 보여줍니다. 비슷한 사고가 났지만 안전보건 대책을 준비했던 사업주들은 어떻게 처벌을 비켜갔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도 꼭 읽어봐야 할 책입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작업장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은 무엇인지 알 수 있고, 관행이라는 이유로 위험을 무릅썼을 때 벌어진 참혹한 결과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동료 노동자들이 출근길에 나섰다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게 됩니다. 중대재해가 멀리 떨어진 타인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깨닫게 해줍니다. 부디 여러분들의 일터가 안전하고 행복했으면 합니다. 그 시작점은 안전을 챙기는 게 되겠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