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5만 원 지폐, 자세히 보니 홍보 전단”… 문제없나?

  • 기자명 이나라 기자
  • 기사승인 2023.11.17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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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구 달서구 서남시장에서 5만 원권 위조지폐를 사용한 피의자 A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대구성서경찰서에 따르면, A씨는 단골인 휴대전화 매장에서 홍보용으로 제작한 5만 원권 통화유사물로 재래시장 노점에서 야채를 구매한 뒤 거스름돈까지 받아 간 것으로 확인됐다.

위조된 5만 원권은 신사임당 그림이 앞뒷면 모두에 그려져 있는 데다, 복사된 정도도 정밀하지 못했다. 재질 또한 실제 지폐와는 달랐다. 경찰은 사기 혐의로 A씨를 불구속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구성서경찰서
대구성서경찰서

이처럼 최근 휴대전화 매장이나 유흥업소 등에서 지폐를 본뜬 전단을 이용한 홍보가 늘어나고 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함이라지만, 자칫 시민들의 혼란을 부추기거나 위조지폐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로 해당 내용을 다룬 기사 댓글에는 “지폐 모양 홍보용 전단을 법적으로 금지해라” 등의 반응이 주를 이뤘다.

현금 모양을 그대로 본떠 만든 홍보물이 현행법상 문제가 없을까? 뉴스톱이 확인해 봤다.


◆위조지폐 제조시 최대 무기징역

형법은 위조지폐를 만들거나 사용하는 걸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국가법령정보센터
국가법령정보센터

먼저, 돈으로 쓰기 위해 화폐를 위조·변조할 경우에는 형법 제207조에 따라 무기 또는 2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돈으로 쓰기 위해 위조·변조된 화폐를 취득한 경우에는 형법 제208조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위조·변조된 화폐인 줄 알면서도 사용했다면 형법 제210조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으며, 판매할 목적으로 국내외 화폐와 유사한 물건을 제조·수입·수출하면 형법 제211조에 의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 영리 목적 이용 금지… 교육용, 인쇄 삽화는 가능

그렇다면 돈으로 사용하기 위함이 아닌, 그 외의 목적으로 화폐 도안을 이용하는 것은 어떨까. 화폐 도안의 무분별한 이용을 허용할 경우 화폐의 품위와 신뢰성을 저하하고 화폐 위·변조 심리를 조장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전 세계 대부분의 중앙은행은 화폐 도안 이용 기준을 정해놓고 있다. 한국은행은 국민들의 화폐 도안의 건전한 이용을 위해 ‘한국은행권 및 주화의 도안 이용 기준’을 제정해 1999년 이후 시행해오고 있다.

해당 기준에 따르면, 화폐 도안은 한국은행이 별도로 허용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영리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화폐 도안을 원래의 모습과 다르게 표현하거나, 도안 위에 광고 문구를 표기하는 것도 금지된다.

일정 요건 아래에서는 한국은행의 별도 승인 절차 없이 화폐 도안을 이용할 수 있긴 하다. 다만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

우선, 교육, 연구, 보도, 재판 목적으로는 화폐 모조품을 제조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모조품의 가로와 세로의 규격은 가로 및 세로의 배율을 유지하면서 은행권 규격의 200% 이상이거나 또는 50% 이하로 만들어야 하며, 주화와 동일한 중량으로 제조해서는 안 된다. 소재 역시 은행권의 소재와 명확히 다르면서 쉽게 구별될 수 있는 소재만을 사용해야 하며, 금속을 제외한 지류, 직물류, 기타 재료로만 제조할 수 있다.

은행권 모조품의 가로와 세로 규격(출처=한국은행)
은행권 모조품의 가로와 세로 규격(출처=한국은행)

다음으로 서적, 신문, 잡지 등의 인쇄물에 삽입하기 위해 화폐 도안을 활용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인쇄 삽화 경우 반드시 단면이어야 하며, 가로와 세로의 규격이 가로 및 세로의 배율을 유지하면서 화폐 규격의 150% 이상이거나 또는 75% 이하여야 한다. 또한, ‘SPECIMEN(견본)’ 또는 ‘보기’라는 문자를 화폐 도안의 초상 부분을 제외한 여타 부분에 표시해야 하는데, 이때 은행권 앞면 중앙 상단의 ‘한국은행’보다 크고 화폐의 기조색과 확연하게 대비되는 불투명한 색상을 사용해야 한다.

인쇄 삽화의 가로와 세로 규격(출처=한국은행)
인쇄 삽화의 가로와 세로 규격(출처=한국은행)

마지막으로 온라인 자료, 전자책 등 전자매체에 삽입하기 위해 활용하는 화폐 도안도 허용된다. 다만 해상도가 72dpi 이하여야 하며, 여기에도 ‘SPECIMEN’ 또는 ‘보기’ 문자를 앞서 언급한 조건에 맞게 표시해야 한다.

전자적 삽화의 ‘SPECIMEN’ 또는 ‘보기’ 문자 표시 예시(출처=한국은행)
전자적 삽화의 ‘SPECIMEN’ 또는 ‘보기’ 문자 표시 예시(출처=한국은행)

◆ 이용 후 전부 폐기해야… 무단 이용 시 민·형사상 책임

이러한 세 가지 경우 외에 영화 소품 등의 목적으로 화폐 도안을 이용하고자 한다면, 한국은행에 서면으로 사전 이용 승인을 신청해야 한다. 신청서에는 ▲화폐 도안 이용자의 성명(또는 업체명), 생년월일(또는 사업자등록번호), 주소 ▲화폐 도안의 구체적인 사용처 및 이용 기간 ▲이용하고자 하는 도안의 그래픽 디자인과 규격 ▲화폐 모조품인 경우 업체명, 작품명, 담당자 성명, 연락처 등이 기재된 시안 및 제작 수량 ▲기타 한국은행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요청하는 내용이 모두 담겨야 한다.

한국은행의 화폐 도안 이용 승인은 승인 내용이 발송된 날로부터 6개월 동안 유효하며, 유효기간을 연장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유효기간 만료 7일(영업일 기준) 전까지 한국은행에 화폐 도안 이용 기간 연장을 서면으로 신청해야 한다. 다만, 이용 기간의 연장은 원칙적으로 1회에 한하며, 그 기간은 3개월 이내로 한다. 또한 화폐 모조품의 이용이 끝난 후에는 실물 전량을 한국은행 또는 한국은행이 지정한 장소에서 복구 불가능하게 폐기해야 한다.

(출처=한국은행 홍보교육 자료)
(출처=한국은행 홍보교육 자료)

만약 이러한 기준에 해당하지 않고 무단으로 화폐 도안을 이용할 경우, 한국은행은 경고 및 시정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시정 불이행 시 ‘저작권법’에 따라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 관행이 된 길거리 불법 전단

따라서 우리가 흔히 길거리에서 보는 화폐 모양 홍보 전단은 대부분 불법이라고 봐야 한다. ▲교육, 연구, 보도, 재판 ▲서적, 신문, 잡지 등의 인쇄물 삽입 ▲온라인 자료, 전자책 등 전자매체 삽입 등 한국은행의 승인 없이 화폐 도안을 이용할 수 있는 상황에 해당하지 않을뿐더러, 영리 목적으로 제작한 것이기 때문에 한국은행의 이용 승인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설사 승인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길거리에 무단으로 뿌리는 전단은 불법인 경우가 대다수다.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제3조는 벽보나 전단 등 옥외광고물을 도시지역이나 교통수단 등의 장소에 표시하거나 설치하려는 자는 특별자치시장·특별자치도지사·시장·군수 또는 자치구의 구청장에게 허가를 받거나 신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를 하나하나 감시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업소에서 홍보물을 자체적으로 제작 및 생산해 쓰는 게 관행이다.

한국은행 보도자료
한국은행 보도자료

문제는 이렇게 무단으로 화폐와 유사한 모양의 전단을 만들어 사용할 경우, 앞선 사례처럼 이를 악용하는 이들이 많아질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올 상반기에 발견한 위조지폐는 총 116장이었는데, 이는 전년 동기(99장) 대비 17% 이상 증가한 수치다.

한국은행은 코로나 이후 "대면 상거래가 정상화하며 위조지폐 발견 건수가 증가했다"며, "향후에도 위조지폐 발생 추이를 면밀히 모니터링 하고 위폐 방지 홍보활동을 강화하는 등 위조지폐 유통 방지를 위해 만전을 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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