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한국은 아열대 나라인가?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3.11.30 13:2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생태계로 본 한반도 기후변화

최근 '한반도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영향'에 관한 소식이 자주 전해집니다. 우리 바다에 열대 어종이 나타났다거나,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독성 바다뱀이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망고, 바나나 등 열대 과일이 국내에서 재배된 지는 꽤 됐죠. 여름 철새들은 겨울이 돼도 월동지로 날아가지 않습니다. 한반도는 벌써 열대 또는 아열대 기후로 바뀐 걸까요? 뉴스톱과 함께 알아보시죠.

출처: 기상청
출처: 기상청

◈온대와 아열대 어떻게 구분하나

기상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중위도 온대성 기후대에 위치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독일의 기후학자인 쾨펜이 1918년에 발표한 기후 구분에 따르면 한반도는 냉대와 온대가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후 후대 학자들이 업데이트한 기준(쾨펜-가이거 구분)을 적용하면 냉대 기후가 주를 이룹니다. 가장 추운 달의 평균 기온이 -3℃ 이하인지, 0℃이하인지에 따른 분류가 달라지는 겁니다.

한반도가 아열대화 되고 있는지를 보는 기준으로 기상청은 트레와다 기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쾨펜 기준보다 아열대에 보다 상세하고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우리나라는 모두 4개의 기후형(Cfa, Doa, Dca, Dcb)이 나타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기후형은 온대내륙성 기후형(Dca)이며, 그 다음으로 온대해양성(Doa), 아열대습윤(Cfa) 순으로 나타납니다. 기상청이 1981년부터 2010년까지의 기후 데이터와 1991년부터 2020년까지의 데이터를 비교한 결과 울산 지역은 온대해양성 기후였다가 아열대습윤 기후형으로 바뀐 걸 알 수 있습니다. 동남해안 지역에 걸쳐 아열대습윤 기후형의 면적이 소폭 늘어난 것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미래 기후대를 예측한 이미지입니다. 미래로 갈수록 붉은 계열인 아열대 기후대가 넓어질 것으로 예측됩니다. 출처: 기상청 기후정보포털
우리나라의 미래 기후대를 예측한 이미지입니다. 미래로 갈수록 붉은 계열인 아열대 기후대가 넓어질 것으로 예측됩니다. 출처: 기상청 기후정보포털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나면서 지구 온도가 상승하기 때문입니다.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인간 활동의 영향이라는 건 이미 규명된 사실입니다.

기상청은 “현재 추세대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고 가정하는 시나리오(RCP8.5)에 따르면, 아열대 기후 지역 경계가 점차 북상해 21세기 후반에는 대부분의 경상도, 전라도, 충청남도까지 아열대 기후구에 속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힙니다.

 

◈아열대화는 21세기 후반이라더니

기상청은 아열대 기후 지역이 점차 북상해 21세기 후반에는 충청남도까지 아열대 기후에 속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런데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반도 주변 생태계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현상이 자주 관찰되기 시작한 겁니다. 울릉도 해역엔 열대 어류가 나타났습니다.

출처: 환경부
출처: 환경부

21일 국립생물자원관은 <울릉도 인근 바다, 열대·아열대성 어류가 절반 이상을 차지>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2021년부터 최근까지 울릉도 연안의 어류를 조사한 결과, 수중조사에서 관찰된 131종 중 열대 및 아열대성 어류가 절반 이상(58.5%)으로, 온대성 어류(36.9%)의 1.5배 이상을 차지했다고 밝혔습니다.

울릉도 연안 일부 조사지점에서 파랑돔이 10개체 미만에서 100개체 이상 관찰되어 10배 이상 증가했고, 가막베도라치, 가시망둑 등 온대성 어류와 용치놀래기, 놀래기 등 열대·아열대성 어류가 주로 관찰됐다고 합니다. 여름철 이후에는 '동한난류'에 실려 온 연무자리돔 등 남방계 어린 물고기가 새롭게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연구진은 “연구진은 해수 온도 상승에 따라 열대·아열대성 어류의 분포가 동해 연안으로 확산할 것으로 예상하고, 독도와 동해 중부 연안 해역까지 조사지역을 확대하여 지속적인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공단은 최근 국립공원 섬지역 수중생태계 조사를 통해 열대·아열대성 해양생물인 ‘넓은띠큰바다뱀’과 ‘밤수지맨드라미’를 각각 다도해해상국립공원 내 소간여와 거문도 인근 해역에서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기후변화에 따라 해수 온도가 상승하고 난류가 확장되면서 열대·아열대성 생물이 국내 해역으로 유입, 정착하고 해양생물의 서식처가 북상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육상 식물은 어떨까? 구상나무 멸종위기

크리스마스트리로 더 잘알려진 구상나무가 있는데요. 한반도 자생종입니다. 미국 식물학자가 일제 강점기 한라산에 올라 이 나무를 발견하고 당시까지 학계에 보고되지 않았던 터라 신종으로 발표했죠. 이후 다양한 경로로 서양으로 건너갔고 개량돼 크리스마스트리로 널리 쓰이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는 야생에서 한반도 남부인 덕유산, 지리산, 한라산 등 고산지대에서만 서식합니다. 그런데 이 나무가 급격히 말라죽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가지 원인을 추정하고 있는데요. 기후변화에 따라 겨울철 기온이 상승하고 적설량이 줄어들면서 나무가 수분 부족을 겪게 되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히고 있습니다.

구상나무 뿐만 아니라 가문비나무, 주목, 눈잣나무 등 고산 침염수들도 멸종위기에 처했습니다. 산림청은 2021년 7개 고산 침엽수종을 멸종위기 침엽수종으로 지정해 보전 대책을 추진 중입니다.

 

◈육상 동물은? 월동지로 떠나지 않는 여름 철새

제가 살고 있는 과천에는 관악산에서 내려온 물줄기가 양재천 상류를 이룹니다. 여기엔 사철 왜가리가 살고 있죠. 왜가리는 대표적인 여름철새입니다. 여름에 우리나라에서 살면 여름철새, 겨울에 우리나라에서 살면 겨울철새죠. 여름철새는 남쪽에서 살다가 봄에 우리나라로 와서 번식을 하고 가을에는 다시 남쪽 나라로 날아가죠. 그런데 여름철새인 이 왜가리는 겨울이 돼도 남쪽나라로 가지 않고 양재천에 자리를 잡은 겁니다.

후투티, 물총새, 백로 등의 여름철새들도 한겨울에 먹이활동을 하는 모습이 포착된지 꽤 됐습니다. 물총새는 물가 나무 위에 앉아있다가 총알처럼 물 속으로 들어가 사냥을 하는데요. 날이 추워서 강물이 얼어붙으면 사냥을 할 수 없죠. 겨울이 따뜻해 강이 얼지 않으니 사철 사냥을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겨울이 추워서 못 버틸 정도가 아니게 된 것이죠.

철새의 이동은 번식지와 월동지의 기후와 먹이 변화에 적응해 진화한 것이라고 하는데요.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해 봄철 번식지로 떠나는 철새들의 이동시기가 빨라지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고, 열대지방에 사는 종들은 북쪽으로 서식지가 확대되는 걸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노랑배진박새, 검은머리직박구리, 붉은부리찌르레기처럼 동남아나 중국 남부에서 서식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보이는 종들이 과거보다 자주 관찰되는 게 확인된다고 합니다.

출처: 농촌진흥청
출처: 농촌진흥청

◈농업 생태계 변화... 대구 능금은 옛말

기후변화에 따라 농업 생태계도 변하고 있습니다.

기상청 기후정보포털을 살펴봅니다. 온난화에 따른 과수의 주산지를 1970~2015년까지의 농림어업총조사 자료로 평가한 결과 과일의 재배지가 북쪽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과는 영천에서 정선, 영월, 양구로, 복숭아는 청도에서 충주, 음성, 춘천, 원주로, 포도는 김천에서 영동, 영월로, 단감은 창원, 김해, 밀양에서 포항, 영덕, 칠곡으로, 감귤은 제주에서 고흥, 거제로 이동했습니다.

과수의 경우 기온상승으로 작물의 개화시기가 빨라지게 되면, 기후변동으로 인한 일시적인 이상저온은 작물에 저온 피해를 유발합니다. 수확기에는 호우와 폭염에 의한 착색 불량 등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현재 추세대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경우 사과, 배, 포도, 복숭아, 단감 등의 재배 적합지는 점차 북상하다가 대체로 21세기 후반부터 급감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특히 사과의 경우, 1980년대부터 2010년까지는 남한 대부분 지역에서 재배가 가능했지만, 21세기 말에는 강원도 산간에 극히 일부만 남아 생산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됩니다. 지금도 강원도 최북단 고성에서 사과가 재배돼 판매되고 있습니다.

그 빈 자리를 열대 과일이 채울 가능성이 큽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선 지금도 망고, 패션푸르트, 바나나 등 열대과일이 재배되고 있습니다. 망고, 파파야, 용과, 올리브의 면적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망고는 제주도와 전남 영광, 파파야는 경남 진주, 충남 부여에서 주로 재배되고 있습니다. 바나나는 제주지역에서 경남, 경북 등 내륙지역으로 재배면적이 확대되는 추세라고 합니다.

 

◈쌀 재배량 줄어들고...고랭지 배추는 사라질지도

기후변화의 여파로 한민족의 주식은 더 이상 밥과 김치가 아닌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2019년 농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여름은 지난 100년간 19일이 길어졌으며, 벼 재배 기간의 온도는 과거 10년 대비 최근 10년간 0.4∼0.5℃ 높아지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기온이 상승하면서 벼 이삭이 나오는 시기가 2000년대 초반에 비해 현재는 약 3일 정도 앞당겨졌다고 하는데요. 벼가 익는 시기에 적합한 온도를 벗어날 확률도 37.5%에서 50%로 증가했습니다. 벼가 익는 기간(벼 이삭이 나온 후 40일간)의 평균온도는 22℃가 가장 좋으며, 이보다 온도가 높아질수록 벼가 제대로 익지 못해 쌀의 품질이 나빠진다고 합니다. 온도가 1℃ 오르면 밥쌀용 쌀의 외관품질은 2∼3%, 밥맛은 6% 나빠집니다. 특히 흑미의 경우 온도가 1℃씩 증가할 때마다 현미 내 안토시아닌 함량이 약 10%씩 감소합니다.

현 추세대로 지구 기온 상승이 계속된다면 쌀 생산성이 2040년대 13.6%, 2060년대 22.2%, 2090년대에는 40.1%로 감소한다는 예측 결과도 나와있습니다.

여름철에 신선한 김치를 만들기 위해 필수적인 고랭지 배추는 재배에 적합한 곳(재배적지)가 2050년에는 현재의 7%에 불과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배추는 선선한 날씨에서 자라는 작물인데 고온에 따른 생육 저하 및 병해충 피해가 급증하면서 배추를 키우기 적당한 곳이 사라진다는 것이죠. 21세기 후반에는 고랭지배추 재배가 아예 불가능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여름철에는 우리나라에서 배추를 키울 수 없다는 전망입니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은 “앞으로 아열대기후권이 확장돼 여름철에 서늘한 기후인 고랭지에도 고온이 되면 고랭지여름배추 작형은 지속되기가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국립생태원
출처: 국립생태원

◈아열대 한국... 어떤 일이?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현재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아열대 기후로 바뀐다고 해도 사람이 살지 못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그러나 폭염, 집중호우, 가뭄, 한파 등 극한 기후가 찾아오는 빈도가 커집니다. 태풍의 위력이 커지고 빈도도 잦아집니다. 살 수는 있지만 예전처럼 살지는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죠.

식물과 동물은 인간보다 기후변화에 더 취약합니다. 기후가 바뀌면 이전까지 기후에 적응해 살던 식물과 동물은 종에 따라 더 이상 생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국립생태원이 2020년 10월 발간한 <기후변화, 우리 생태계에 얼마나 위험할까?> 보고서를 살펴봅니다. 기후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생물종들은 멸종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데요. 온실가스를 줄이지 못하고 현 상태의 배출수준을 유지한다고 가정할 때 높은 산 위에 사는 식물과 동물의 피해가 클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아고산기후대가 면적이 좁고 고립돼 있기 때문에 기후가 변화면 식생이 바뀌고 그 식생에 기대 살던 동물들이 피할 곳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와 더불어 뉴트리아, 배스, 블루길 등 외래종에 의한 피해도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반면 좀 더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기회를 얻는 종들도 생겨납니다. 곤충과 양서·파충류가 식물보다 피해를 덜 입을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