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견제" 日 ‘글로벌 사우스’ 전략 본격화...한국도 참여?

  • 기자명 윤재언
  • 기사승인 2023.06.14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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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중·러와 등거리 국가들 '글로벌 사우스'로 포괄하는 日의 전략
기시다 정권, 대대적 지원과 투자 약속하며 포섭 나서
美 부정적 기류와 당사국 거부감 극복 쉽지 않아 보여

일본 정부의 최근 외교 의제 중 하나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에 대한 접근이다. 글로벌 사우스는 냉전 시대 동서진영 어느 쪽에 쏠리지 않으려는 이른바 ‘제3세계’ 혹은 ‘비동맹운동’이라 불리던 지역과도 유사한데, 인도를 포함해 아시아,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들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 외무성이 지난해 9월 발행한 잡지 ‘외교’(75호) 표지(아래 사진)는 ‘글로벌 사우스로부터 본 세계’였다.

해당 특집에서는 동남아와 아프리카, 중동 등이 거론됐고 주로 중국과의 관계에서 논의가 진행됐다. 즉 이들 지역에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목적은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중국’이 염두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이들 국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는 데 대해 설득하는 역할도 자임하고 있다. 

 

잡지 '외교' 표지
잡지 '외교'  75호 표지

 

잡지 '외교' 목차
잡지 '외교' 75호 목차

지난 4월 한일정상회담 뒤 기시다 총리가 연휴를 맞아 찾은 곳은 아프리카였다(아래 사진). 이집트, 가나, 케냐, 모잠비크 4개국을 방문했고, 가는 곳마다 ‘민주주의와 법의 원칙’을 강조하며 아베 정권 때부터 이어진‘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에 대해 언급했다. 또한, 일본 기업의 투자 유치도 빼놓지 않았다. 

 

가나 대통령과 만난 기시다 총리(출처: https://www.kantei.go.jp/jp/101_kishida/actions/202305/01ghana.html)
가나 대통령과 만난 기시다 총리(출처: https://www.kantei.go.jp/jp/101_kishida/actions/202305/01ghana.html)

흥미로운 부분도 있었다.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있는 모잠비크에서 현지 대통령에게 ‘납치문제와 북핵 문제 해결’을 부탁한 것이다. 기시다 입장에서는 한국과의 관계가 어느 정도 정리되는 수순에 들어서자, 다음 역내 외교 과제로 북한을 생각하고 있음을 알게 하는 부분이다. 다만 대북 외교는 조만간 있을 것으로 보이는 총선거를 의식한 제스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같은 움직임은 최근 미국이 국내외적으로 명확한 외교 방침을 정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 일본이 조금이나마 그 역할을 대신하려는 모양새라 할 수 있겠다.

5월에 열린 G7 정상회담에 인도, 브라질, 아세안 의장국 인도네시아, 아프리카연합(AU) 의장국 코모로, 태평양제도포럼(PIF) 의장국 쿡제도, 베트남 등이 초대된 것도 그러한 상징적 의미가 컸다. 이들 지역 혹은 국가를 중국 내지는 러시아 쪽으로 쏠리지 않고, 적어도 일본을 포함한 서구 세계와 끈을 유지하도록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구체적으로 해당 지역의 ‘식량안보’와 관련해 낸 히로시마공동성명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세계에서 식량 수급 문제가 발생한 점을 지적하며, G7 등이 향후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식량 인프라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지난 3월 일본은 이미 해당 문제의 해결을 위해 500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바 있다. 한국 역시 이에 호응해 쌀 원조를 지금까지의 2배로 늘린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글로벌 사우스를 향한 일본의 적극적인 움직임에 해당 국가들의 반응은 어떨까.

아사히신문은 브라질 룰라 대통령의 부정적인 반응을 전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때문에 G7에 온 것이 아니”라며 룰라는 결국 G7을 찾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만나지 않았다. 해당 기사는 브라질 한 당국자가 “젤렌스키 대통령의 등장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을 강제적으로 ‘G7진영’에 끼워넣은 덫”이라 했다는 비판도 전하고 있다. 또한 인도네시아와 인도네시아의 국내 언론을 각각 인용하며, G7에서 지나치게 미국 중심의 문제(중국 및 러시아와의 대립 등)가 논의됐다는 점을 문제시했다. 

 

G7 정상회담(출처: https://www.kantei.go.jp/jp/101_kishida/actions/202305/21g7summit_SESSION.html)
G7 정상회담(출처: https://www.kantei.go.jp/jp/101_kishida/actions/202305/21g7summit_SESSION.html)

이에 더해 경제, 군사 면에서 압도적 힘을 키운 중국에 일본이 어디까지 대응 가능할지도 여전히 불명확하다.

1990년대 일본은 미국에 이은 경제력을 기반으로 공적개발원조(ODA)로 세계적 영향력을 키우려 했으나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달초 일본 정부는 ‘개발협력대강’을 개정하며 다분히 중국을 의식한 대응책을 제시했다.

중국이 채무를 기반으로 한 개발협력을 한다면, 일본은 사회 인프라 외에 질 높은 성장을 위해 소프트웨어적인 측면까지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다.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에 자금이 넘치던 시절에도 쉽지 않았던 ODA 구상이, 지금 과연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글로벌 사우스라는 용어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보도도 나온다. 해당 용어가 오히려 경제 정치적 분단을 상징하고, 해당 국가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자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미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 적지 않은 반미 감정이 있는 남미 국가들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 때문에 G7 공식 문서에는 글로벌 사우스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다.

다소 보수적 입장에서 일본 외교를 비평해온 시노다 히데아키 도쿄외대 교수가 지난 4월 온라인 미디어에 올린 지적은 흥미롭다.

시노다는 글로벌 사우스가 오래 전부터 사용된 용어로, 새로운 개념이 아님을 전제한다. 최근에는 주로 좌파 진영에서 ‘신자유주의자의 피해자’로 저개발국을 지칭할 때 쓰는 경향이 있는데, 인도가 적극적으로 과거부터 ‘비동맹운동’을 주도한 연장선상에서 글로벌 사우스를 제창하고 있다는 점도 제시한다. 인도가 쿼드(QUAD)에 참가하면서도 브릭스(BRICS), 상하이협력기구(SCO) 멤버로 중간자적 입장을 취하는 글로벌 사우스 대표주자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나, 결코 이를 전체로 확대해석해서는 안된다고 주의를 요청한다.

결론은 지금까지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충분하고, 가치에 기반해 개별 국가와 외교를 한다면 된다는 얘기다. 오히려 개념화로 인한 분열을 우려하는 입장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 같은 우려의 목소리는 일부고, 일본 외교와 언론에서는 중러 견제를 위한 글로벌 사우스 전략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출처: https://www.mofa.go.jp/mofaj/files/100056238.pdf)
일본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출처: https://www.mofa.go.jp/mofaj/files/100056238.pdf)

개인적으로 관심을 두고 보는 부분 가운데 하나는 글로벌 사우스 포섭 논의가 한국 정부에서도 재현될지 여부다. G7이 끝난 5월 23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식량과 보건 분야의 취약국이 집중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를 살피고 지원하는 것은 앞으로 대한민국 기여외교의 주된 프로그램이 돼야 한다”, “우리가 공약한 식량 보건 기여 방안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인도적 기여를 통한 책임외교를 다하고 국제사회의 자유와 번영을 촉진하는데 앞장설 것이다

G7 정상회담에서 인도 모디 총리와 정상회담하는 윤석열 대통령(출처: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915366)
G7 정상회담에서 인도 모디 총리와 정상회담하는 윤석열 대통령(출처: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915366)

물론 아직까지는 특별한 문제 의식을 갖고 '글로벌 사우스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앞서 언급했듯 글로벌 사우스라는 용어는 다분히 ‘중러 견제’의 뉘앙스를 띠고 있는 말이다.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도 구체상이 아직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 일본의 글로벌 사우스 전략에 올라타는 데 대한 이익 역시 뚜렷하지 않다.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움직임은 향후 한일 협력(혹은 외교적 추종)과 관련한 또 하나의 지표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주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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