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가중처벌? 보험처리 안 돼?”… 수학여행 ‘노란버스 대란’은 진행 중

  • 기자명 이나라 기자
  • 기사승인 2023.09.0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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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주 사이 전국 초등학생들의 수학여행이 무더기로 취소될 뻔한 사건이 발생했다. 학교에서 현장체험학습을 갈 때도 일반 전세버스가 아닌 노란색 어린이 통학 버스를 타야 한다는 법 해석에 따라 수학여행이 줄줄이 취소될 위기에 놓였다가, 경찰이 단속을 잠시 유예하기로 하며 일시 봉합됐다.

도로교통공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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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교육 현장에서는 여전히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단속을 유예하는 것일 뿐 불법이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에, 학교 측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학교 측에서 불법임을 인지하고 수학여행을 강행한 것이기 때문에 사고가 나더라도 보험 적용이 안 된다"라거나, "학교나 교사가 과중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와 같은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이른바 ‘노란버스 대란’에 대한 팩트를 뉴스톱이 정리했다.


◆“노란버스로만 수학여행” → “단속 유예”

‘노란버스 대란’의 시작은 지난해 10월, 제주교육청이 법제처에 "현장체험학습도 도로교통법상 어린이 통학버스 이용 대상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법령 해석을 요청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법제처는 이에 대해 "도로교통법 제2조 제23호 등과 관련해, 교육과정의 목적으로 이뤄지는 비상시적인 현장체험학습을 위한 어린이의 이동은 '어린이의 통학 등'에 해당한다"는 해석을 내놨다. 통학이라는 표현이 학교와 집 사이 이동만 의미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수학여행에 버스가 이용되는 것도 통학에 속한다는 것이다.

법제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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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경찰은 이를 근거로 지난 7월, 교육부와 전세버스조합연합회 등에 "만 13세 미만 어린이가 현장체험학습이나 수학여행을 할 때는 통학버스를 이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일반 전세버스가 아닌, ‘어린이 통학버스’로 신고된 노란색 스쿨버스로만 수학여행을 갈 수 있게끔 규정 준수 협조를 요청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학교 현장에서는 어린이 통학버스를 구하지 못해 수학여행을 줄취소해야 한다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교육부는 각 교육청이 차량을 구하지 못해 수학여행을 취소할 경우, 숙박시설·식당 위약금 등으로 2학기에만 총 800억 원을 손해 볼 것으로 추산했다.

교육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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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이 계속되자 결국 경찰이 당분간 관련 단속을 하지 않기로 했다. 25일 교육부는 국무조정실, 경찰청 등 관계부처와 회의를 열고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도출될 때까지 단속 대신 계도·홍보를 하겠다는 입장을 전해왔고 이를 즉시 시도교육청에 안내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당장은 기존처럼 일반 전세버스 이용이 가능해지며, 수학여행 줄취소 대란은 피하게 됐다.

 

◆‘어린이 통학버스’가 뭐길래?

얼핏 생각하면 어린이들이 보다 안전한 ‘어린이 통학버스’로 수학여행을 가는 건 합리적으로 들린다. 기존 전세버스 중 일부를 ‘어린이 통학버스’로 변경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 것도 같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도로교통공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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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통학버스'란 법에서 규정한 시설 가운데 어린이(13세 미만인 사람)를 교육 대상으로 하는 시설에서 어린이의 통학 등에 이용되는 자동차,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제4조 제3항에 따른 여객자동차운송사업의 한정면허를 받아 어린이를 여객대상으로 운행되는 운송사업용 자동차를 말한다. 해당하는 시설에는 ▲유치원 및 유아교육진흥원 ▲초등학교, 특수학교, 대안학교 및 외국인학교 ▲어린이집 ▲학원 및 교습소 ▲체육시설 ▲아동복지시설(아동보호전문기관은 제외) ▲청소년수련시설 ▲장애인복지시설(장애인 작업재활시설은 제외) ▲공공도서관 ▲시·도평생교육진흥원 및 시·군·구평생학습관 ▲사회복지시설 및 사회복지관 등이 있다.

문제는 ‘어린이 통학버스’는 일반 전세버스와 달리 까다로운 조건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차량의 색상이다.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 제19조 제8항에 따라 어린이 통학버스는 황색이어야 한다. 눈에 잘 띄어야 하기 때문이다. 차량은 반드시 9인승 이상이어야 하며, 좌석 규격과 좌석 간 거리도 엄격히 지켜야 한다. 이 밖에도 표시등과 보호표지가 필수적으로 부착돼야 하고, 최고 속도 제한장치와  어린이 체형에 맞춘 안전띠 등도 설치해야 한다.

찾기 쉬운 생활법률정보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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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조건을 모두 갖춘 ‘어린이 통학버스’용 전세버스는 많지 않다. 전국전세버스연합회에 따르면, 현재 등록된 어린이 통학버스는 총 6955대다. 이 중 조건에 맞는 ‘대형버스’는 2431대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학교 통학을 위해 연 단위 계약이 되어 있어 당장 수학여행에 투입하기 어렵다. 반면, 나라장터 기준 2023년 1~6월 초등학교 체험학습 운행차량은 4만9860대다. 수요에 비해 규정에 맞는 차량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전국전세버스연합회에 따르면, 대형버스를 개조할 때 1대당 최소 450만 원이 들어가고, 전체 4만 9860대로 따지면 총 4487억이 들어간다. 또한, '대기관리권역법’에 따라 친환경 차량으로 교체가 의무화되어 있어, 이미 개조·신고된 차량이라 하더라도 친환경 차량으로 다시 교체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개조비가 (1대당) 450만 원을 훨씬 상회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현장 혼란 여전… ‘무책임 행정’ 비판도

단속 유예 방침으로 기존 방식대로 수학여행이 가능해졌지만, 교육 현장의 혼란은 여전하다. 일반 전세버스를 이용한 수학여행이 불법이라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위법임을 인지하고도 수학여행 강행한다면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과실이 더 크다고 판단돼 가중처벌 될 수 있고, 보험금도 나오지 않는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그러나 교육부는 이 같은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교육부가 전국시도교육청 및 각 학교에 보낸 '현장체험학습 어린이 통학버스 관련 질의응답 자료'에서 교육부는 "경찰청에서 단속 대신 계도 및 홍보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어린이 통학버스' 신고와 관련한 별도 단속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교통사고 발생 시에도 기존과 동일하게 교통사고에 대한 사안 처리만 진행되며, 가중 처벌 등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험 문제 역시 "학교안전공제회는 별도 보험 가입이 필요한 교통수단이나 시설 등에 대한 보상은 기존에도 담당하지 않는다"며 "때문에 교통사고에 대해서는 운송사업자와의 계약에 따라 버스가 가입된 보험사에서 사안에 따른 보상 절차가 진행된다"고 밝혔다. 이 경우 "'어린이 통학버스'와 일반 전세버스 모두 동일하게 보험 약관에 따른 보상이 진행된다"고도 덧붙였다.

강득구 의원 보도자료
강득구 의원 보도자료

그러나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졸속으로 추진된 ‘무책임한 행정’이라는 비판은 여전하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인 강득구 의원은 지난 25일 ‘학교 현장체험학습 전세버스 대란’ 기자회견을 열고 “벌써 1400건 넘게 계약이 취소되었다”며 “이미 계약한 운행차량에 대한 계약 해지로 위약금이 발생하고, 여기에는 단순히 차량비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항공료, 숙박료, 시설 체험료 등이 들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업계의 심각한 타격은 경영 위기와 연쇄도산이 불 보듯 뻔하다”고 덧붙였다. 학사 일정 변경으로 인한 학교와 학부모 민원 증가, 지방경찰청의 신고필증 행정업무 및 민원 증가 등에 대한 우려도 함께 제기했다.

전세버스 업계의 반발도 크다. 전국전세버스노동조합은 "지침 유예가 아닌 재검토를 요구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9월 초 대규모 집회와 함께 올가을 현장체험학습과 수학여행 운행을 거부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교육부는 이런 현장의 불만에 대해, “현장체험학습 등 학사 운영의 안정적 추진 및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경찰청과 지속해서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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