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원전 20㎞ '히로노 마을', 거기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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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원전 20㎞ '히로노 마을', 거기 '사람'이 있었다
  • 홍상현
  • 승인 2020.01.07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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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현의 인터뷰]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초청작 <히로노 마을 사람들> 시마다 류이치 감독

If I should be where I no more can hear

Thy voice, nor catch from thy wild eyes these gleams

Of past existence wilt thou then forget

That on the banks of this delightful stream

We stood together;

 

내가 다시는 네 목소리를 들을 수 없거나

네 열광적인 눈으로부터 지난날의 이 희미한 빛을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 있게 되더라도 너는 그때

이 쾌적한 강의 둑에 우리가 함께 서 있었음을;

 

겨울재킷의 지퍼를 턱밑까지 올리고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 입가를 맴돈 것은, 촌부의 평범한 삶을 사랑하던 어느 잉글랜드 시인노래였다. 해질 무렵 면경처럼 빛나는 웨일스의 강줄기는 아닐지라도, 이른 시각부터 쉼 없이 달려온 여로를 고첨하기에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후타바 군 히로노 마을. 4천명 조금 안 되는 인구의 시골 동네. 후쿠시마 제1원전 2킬로미터 권역에 진입하던 당시 시간당 2.2 마이크로시버트, 킬로그램당 3.3 베크렐 까지 뛰었던 방사능 수치는 어느새 0.130.2로 내려와 있었다.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의 대략 절반 정도 수준

홍형, 여기서 촬영했다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초청작 제목이 뭐라고 그랬죠?”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현장영상 촬영을 준비하던 취재팀장의 목소리가 다시 활기를 띠었다. 하긴, 매순간 동료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일지라도 평생 접해보지 못한 방사능 수치를 평균기온처럼 느끼기란 힘들었으리라

히로노 마을은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해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전 주민 대피가 이루어졌다. 대피령이 해제된 것은 같은 해 9월 30일의 일이다. 사진은 정월초하루, 바다를 바라보며 한 해의 무운을 비는 히로노 마을 주민들. 사진제공: Jyajya Films
히로노 마을은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해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전 주민 대피가 이루어졌다. 대피령이 해제된 것은 같은 해 9월 30일의 일이다. 사진은 정월초하루, 바다를 바라보며 한 해의 무운을 비는 히로노 마을 주민들. 사진제공: Jyajya Films

정월초하루, 바다를 바라보며 한 해의 무운을 비는 주민들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히로노 마을 사람들> 후쿠시마 제1원전 20킬로미터 권역 마을의 이야기지만, 그 어떤 작위적인 메시지도 내세우지 않는다. 관객들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 돌아다니는 흉흉한 이미지나 선량을 나타내는 낯선 단위 표기 뒤에 가려져있던 사람의 얼굴과 그들의 삶.

이를 특유의 긴 호흡으로 관조하는 뚝심은 시마다 류이치 감독의 작가적 자산이다. 여기에는 드라마틱한 출발점이 있다. 2001년 스무 살의 영화학도 시마다 류이치는 워크숍 작품 제작을 위해 친구들과 거리로 나갔다가 버스킹을 하던 한 소녀에게 매료된다. 그 길로 반년에 걸친 촬영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녀에게 갑작스레 발병한 조현병은 모두를 좌절시킨다. 시마다 감독이 동세대를 리드하는 다큐멘터리의 한 사람으로 거듭난 것은 그로부터 9년 뒤다. 그는 함께하던 친구들 중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그녀가 낙향해있는 사가 현으로 향했다. 감독협회 신인상 수상과 극장개봉이라는 성과를 거둔 데뷔작, <어디에도 갈 수 없어>가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시마다 류이치 감독은 말한다.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 주민들은 언론에 수도 없이 자신들이 입은 피해에 관한 증언을 반복해야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저까지 그런 흐름에 편승하고 싶지 않았거니와, 주민들이 어떻게 ‘보통의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사진제공: Jyajya Films
시마다 류이치 감독은 말한다.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 주민들은 언론에 수도 없이 자신들이 입은 피해에 관한 증언을 반복해야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저까지 그런 흐름에 편승하고 싶지 않았거니와, 주민들이 어떻게 ‘보통의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사진제공: Jyajya Films

 

홍상현

두 번째 연출작인 <히로노 마을 사람들>로 아시아의 대표적 다큐멘터리영화제영화제인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와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를 섭렵했다. 일단 제 지면의 주인공에게 매번 드리는 질문부터, 평소 한국영화를 즐겨보는가.

시마다 류이치

봉준호 감독을 무척 좋아한다. <살인의 추억>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밖에 <플란다스의 개>, <마더>, <설국열차> 등이 일본에서 공개되었고, 얼마 전 <기생충>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지 않았나. 그의 신작은 늘 기대된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도 챙겨보고 있고, 조금 결이 다른 작품이긴 하지만 저와 연이 있는 시글로가 배급한 다큐멘터리영화 <달팽이의 별>을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좋았다.

 

홍상현

필자도 영화를 전공했지만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다큐멘터리스트(documentarist)가 되겠다는 동료가 많지 않았다. 다큐멘터리영화로 데뷔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시마다 류이치

일본영화학교(현재는 일본영화대학) 시절 다큐멘터리영화와 만났다. 1학년 때 픽션을 공부했는데 시나리오를 쓰려니 힘들더라. 2학년이 되면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큐멘터리를 택했다.

 

홍상현

사회적으로 소외된 주인공을 다룬 데뷔작(<어디에도 갈 수 없어>)으로 신인감독상을 거머쥐고, 극장에서 개봉까지 했다. 그 중심에 사람을 두는 영화적 관점은 당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데.

시마다 류이치

제가 다니던 일본영화학교는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우나기>의 감독. 일본 군국주의를 일관되게 비판해왔으며 최근 한국의 다큐멘터리영화 <딜쿠샤>에 특별출연하기도 했다)이 설립한 학교다. 그는 인간에 대한 묘사를 중시했다. 저 또한 인간에 대한 관심이 영화적 출발점이다.

 

'히로노 마을 사람들'은 후쿠시마 제1원전 20킬로미터 권역 마을의 이야기지만, 그 어떤 작위적인 메시지도 내세우지 않는다. 관객들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 돌아다니는 흉흉한 이미지나 선량을 나타내는 낯선 단위 표기 뒤에 가려져있던 사람의 얼굴과 그들의 삶이다. 사진제공: Jyajya Films
'히로노 마을 사람들'은 후쿠시마 제1원전 20킬로미터 권역 마을의 이야기지만, 그 어떤 작위적인 메시지도 내세우지 않는다. 관객들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 돌아다니는 흉흉한 이미지나 선량을 나타내는 낯선 단위 표기 뒤에 가려져있던 사람의 얼굴과 그들의 삶이다. 사진제공: Jyajya Films

 

홍상현

201610월 예비 취재를 위해 처음 히로노 마을로 향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시마다 류이치

5년 전인 2014, 히로노중학교에서 영상워크숍을 지도했다. 학생들이 다큐멘터리영화를 촬영하는 프로그램으로 그해 9월 사흘에 걸쳐 작업이 이루어졌는데, 그게 첫 번째 방문 계기다. 원래 2011년부터 강사를 하고 있던 모교의 다른 교수에게 의뢰가 왔는데, 그의 보좌역으로 가게 된 거다.

 

홍상현

엇갈릴 수도 있었는데, 역시 뭔가 인연의 끈이 작용한 건가. (웃음)

시마다 류이치

(웃음) 당시에는 딱히 영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지만. 프로그램을 마치고 주민 센터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기록 작업이 사진을 찍는 정도 밖에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들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전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지 궁금해 했고,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영화 이야기가 나왔지.

 

홍상현

중요한 이야기다. 동일본대지진의 특성을 생각하면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의 기록이 지니는 의미도 남다를 테니까.

시마다 류이치

처음엔 촬영이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많은 다큐멘터리스트가 현지를 찾았지만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재해지에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일이 결코 쉽지 않게 느껴졌으니까. 촬영지(히로노 마을)가 제가 살고 있는 도쿄와 거리상으로 상당히 멀 뿐더러, 결정적으로 사비를 털어 제작할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히로노 마을 주민들은 1년이 걸리든 2년이 걸리든 자신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만들어주었으면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제작비까지 마련해주었다. 그렇게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촬영이 시작되었다.

특유의 긴 호흡으로 관조하는 뚝심이야말로 시마다 류이치 감독의 작가적 자산이다. 사진제공: Jyajya Films
특유의 긴 호흡으로 관조하는 뚝심이야말로 시마다 류이치 감독의 작가적 자산이다. 사진제공: Jyajya Films

 

홍상현

그리고 보니 도쿄도 태생으로 개인적으로는 후쿠시마와 아무 인연이 없다. 더욱이, 주민 여러분께는 대단히 실례되는 말씀이지만, 아무래도 사고의 이미지가 강렬하다 보니 후쿠시마 제1원전 인근 지역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게 부담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나.

시마다 류이치

히로노 마을의 방사능 수치는 사고가 있던 이듬해 이미 도쿄 수준으로 내려가 있었다. 제염작업의 결과이고, 마을 차원에서도 피난지역으로부터 원래 거주지로 돌아간다는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에 별로 불안하지 않았다. 물론 방사능의 문제, 특히 수치에 따른 안전성에 대해 아직 해명되지 않은 부분도 있을 테고, 제 전문 분야가 아니니 인체에 끼치는 영향과 관련해서 과학적으로 완전한 해명이 이루어졌다고 장담할 수 없겠지만. 제 나름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다.

 

홍상현

사전 취재를 포함해 현지에서의 촬영에 무려 1년 반이라는 가간이 소요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사내가 현지의 사람들의 삶 속으로 파고드는 과정 자체가 쉽지 않았을 텐데.

시마다 류이치

물론 대단히 어려웠다예컨대 영화 첫머리에서 카메라가 (이재민을 위한) 가설주택에 들어가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나. 그 가설주택이 20173월에 폐쇄되기로 결정되었는데, 거기서 지내던 분들도 히로노 마을로 돌아갈지, 자비를 들여 주변 어딘가의 다른 지역에서 지낼지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단계에서 취재가 이루어졌는데 막상 히로노 마을로 돌아가자 딱 한 분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촬영에 난색을 표하시더라. 자녀분들이 먼저 돌아간 뒤 그 집에서 함께 지내게 될 처지라 허락을 받기 어려웠던 거다. 촬영을 허락한 다른 분들도 부담을 느끼지 않았던 건 아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초상권 같은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혹여 일상을 노출시키는 게 가족친지들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걱정되었을 테니까.

 

홍상현

<히로노 마을 이야기>는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 수도 없이 등장했던, 지진재해와 원전 사고를 다룬 작품들과 달리, 그곳의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준다는 게 특별하다.

시마다 류이치

촬영에 들어가기 전 몇 가지 생각한 게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이 작품을 지진재해 영화로 만들지 않겠다는 거다. 그래서 <히로노 마을 사람들>에는 지진재해에 관한 질문이 나오지 않는다. 주민들의 삶, 그리고 그 안에서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이야기했다.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 주민들은 언론에 수도 없이 자신들이 입은 피해에 관한 증언을 반복해야했다. 그런데 그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저까지 그런 흐름에 편승하고 싶지 않았거니와, 주민들이 어떻게보통의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관객 여러분께서도 좀 더 임팩트가 강한 이야기는 이미 TV 등을 통해 접해보셨을 거다. 저까지 <하로노 마을 사람들>을 통해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실 수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마음속으로는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고 생각하셨을 수 있지 않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그런 식으로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

시마다 류이치 감독(사진 속 모자 쓴 이)은 처음 주민들의 제안을 받았을 당시
시마다 류이치 감독(사진 속 모자 쓴 이)은 처음 주민들의 제안을 받았을 당시 "촬영이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히로노 마을 주민들은 1년이 걸리든 2년이 걸리든 자신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만들어주었으면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제작비까지 마련해주었다. 사진제공: Jyajya Films

 

 

홍상현

<히로노 마을 사람들>에서는 세 개의 시간이 교차한다. 연극 공연을 준비하는 고교생들의 생활, 마을 축제를 준비하는 주민들의 일상, 그리고 히로노라는 지역의 역사사고의 깊이가 느껴지는 구도다.

시마다 류이치

<히로노 마을 사람들>을 준비하면서 몇 편의 지진재해 영화를 보았는데, 하나같이 그 지역에 대해 충분히 알아보지 않은 채 그저 재해지의 현황을 기록하는데 급급한 작품들 같았다.

어떤 사람들에 대해 이해하려면 그들이 발 딛고 선 땅의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었고, 그렇게 조사를 진행한 결과 원래 히로노 마을에 조반탄광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탄광으로 지역이 번성하던 시절 타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밀려들었고, 80년대 화력발전소가 세워지면서 도쿄전력 관계자들의 유입도 이루어졌다. 원래부터이민(移民)의 땅이라는 특성을 갖는 마을이었던 셈이다.

그런 맥락에서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피난을 갈 수밖에 없었거나, 일관되게 자신의 땅에서 살고 있는, 또는 사고 수습을 위해 들어와 생활하는 분들의 다양한 삶이 공존한다는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고자 했다. 관객 여러분께서도재난 지역이야기 이상의 뭔가를 느끼실 수 있을 거라 판단했고.

 

홍상현

그렇다. 어찌 부면 후쿠시마 주민들의 불행에 대해 이야기하기란 간단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살던 고향이자 삶의 터전을 쉽게 버릴 수 없는 이들의 시선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필자가 놀라움을 느낀 점은, <히로노 마을 사람들>이 바로 이런 관점에 서있기 때문이었다.

시마다 류이치

조감독 시절, 천년 역사를 가진 니가타 현의 한 마을 주민들이 2004년 일어난 지진재해로 피난을 떠났다가 3년 반이 지난 뒤 고향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다룬 작품에 참여했다. 5년 정도의 기간이 소요된 작업이었는데 당시 마을 분들이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떠나고 싶어 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손으로 그곳을 지켜왔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았다. 대개 계단전(terraced field)을 일구고, 비단잉어를 키우는 일이 주업이지만 더러는 논농사도 지었는데, 실제로 산과 상수원을 보호하며 산 아래 마을 주민들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고 있었다. 산이 황폐해지면 모두가 해를 입을 수 있으니까.

후쿠시마 주민들이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말에 그다지 위화감이 들지 않았던 것도 이분들의 삶을 접해본 경험 때문이다. 정든 땅에서 대대로 살아온 분들은 물론, 그곳에서밖에 생업을 할 수 없는 분들, 거기에 다른 곳에서 일을 구할 수 없는 분들이 있을 테니까.

 

홍상현

남들이 뭐라 말하든 그곳이 삶의 터전인 분들도 당연히 있겠고.

시마다 류이치

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 제1원전 인근 지역에서도 앞으로 폐로작업을 담당할 분들이 수십 년간 생활하게 된다. 개중에는 주변 지역에서 혼자 건너와 있는 분들도 있지만 히로노 마을 주변에서 생활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다. 그분들 없이는 사고도 마무리 될 수 없다. 어쨌든 누군가 살고 있는 지역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거다.

물론 입장차는 존재하겠지. 예컨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노동자 한 분은 원래 야마가타의 토목 관련 회사에 다녔는데, 회사에서 후쿠시마 제1원전 폐로 공사장으로 발령을 내자 처음엔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을 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던 지라 지금은 폐로작업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입장이기도 하니까. 물론 자의에 따라 그저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현장에 온 젊은이들도 있다.

2011 동일본대지진 직후 마을을 떠난 주민들 중 2019년 현재 약 80퍼센트가 귀환했다. 사진제공: Jyajya Films
2011 동일본대지진 직후 마을을 떠난 주민들 중 2019년 현재 약 80퍼센트가 귀환했다. 사진제공: Jyajya Films

홍상현

천성과 재능의 조화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작가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신중하게기억과 마주하는 당신의 태도야말로 가장 뛰어난 재능 아닐까.

시마다 류이치

감사하다. 최근 다큐멘터리영화의 세계적인 흐름을 보면 객관적으로 촬영하는 것이 조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나와 너라는 2인칭의 관계 또한 다큐멘터리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픽션(fiction)에서는 3인칭 시점도 등장하지만 다큐멘터리에서는 그게 어렵지 않은가. 그런데 일본 다큐멘터리 중에는 2인칭 시점의 작품이 많다. 저 또한 그 흐름 속에 자리 잡고 있지 않나 싶고. <히로노 마을 사람들>의 경우, 의식적으로 저라는 존재를 전면에 내세우려했다. 물론 다른 연출기법도 사용했다. 예컨대 마을의 노인 분들과 취재를 할 경우에는 아무래도 카메라에 더 많이 신경을 써서 제게 말을 걸어오는 느낌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연극을 하는 고교생들을 보여줄 때는 제 존재를 딱히 의식하지 않고, 연극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가운데 장소에 따라 표현기법을 바꿔 나갔다.

'히로노 마을 사람들'에서는 세 개의 시간이 교차한다. 연극 공연을 준비하는 고교생들의 생활, 마을 축제를 준비하는 주민들의 일상, 그리고 지역의 역사. 특히 연극을 하는 고교생들이 등장하는 시퀀스에서 시마다 류이치 감독은 연극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가운데 장소에 따라 표현기법을 바꿔 나갔다. 사진제공: Jyajya Films
'히로노 마을 사람들'에서는 세 개의 시간이 교차한다. 연극 공연을 준비하는 고교생들의 생활, 마을 축제를 준비하는 주민들의 일상, 그리고 지역의 역사. 특히 연극을 하는 고교생들이 등장하는 시퀀스에서 시마다 류이치 감독은 연극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가운데 장소에 따라 표현기법을 바꿔 나갔다. 사진제공: Jyajya Films

 

영화제 상영이 끝나고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 다양한 질문이 나오는 걸 보고, 한국에도 후쿠시마의 오늘에 대해 관심을 갖는 분들이 많이 계시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아니, 도리어 일본보다 후쿠시마에 대해 궁금하시는 분들이 더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항상 인간이라는 주제에 항상 주목하고 있고, 앞으로도 인간을 탐구하는 작품을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물론 후쿠시마 문제에 대한 리서치와 취재도 계속할 생각이고요. 이 모든 일들이 또 다른 작품으로 결심을 맺어 여러분과 재회하는 기회로 이어지면 좋겠네요.”

히로노초등학교 앞에서의 취재를 마치고 마을로 내려오면서 후쿠시마 사람들, 아니, 히로노 마을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갖는 이들에게 특별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던 시마다 감독의 메시지를 떠올렸다. 역시나 그의 긴 호흡은 감독의 작가적 정체성으로 이끌어 낸 주관적 현실이자, 현실 가치에 대한 존경과 비판의 창조적 표현이라는 다큐멘터리의 본령(the proper function)과 맞물려 있었던가.

후쿠시마 제1원전 2킬로미터 권역에 진입하던 당시 시간당 2.2 마이크로시버트 , 킬로그램당 3.3베크렐 까지 뛰었던 방사능 수치는 어느새 0.13에 0.2로 내려와 있었다. 히로노 마을의 방사능 수치는 사고가 있던 이듬해 이미 도쿄 수준으로 내려가 있었다. 사진제공: Jyajya Films
후쿠시마 제1원전 2킬로미터 권역에 진입하던 당시 시간당 2.2 마이크로시버트 , 킬로그램당 3.3베크렐 까지 뛰었던 방사능 수치는 어느새 0.13에 0.2로 내려와 있었다. 히로노 마을의 방사능 수치는 사고가 있던 이듬해 이미 도쿄 수준으로 내려가 있었다. 사진제공: Jyajya Films

여기서의 현장영상은 스마트폰으로 기록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아이들이 놀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이곳이 삶이 터전인 분들한테 실례가 될 것 같아서요.”

마을 슈퍼마켓 매장에서 도시락을 집어 들던 동료가 조심스레 운을 뗀다. 별다른 대답 없이 채 고개를 끄덕였다. 사제를 지망하며 신학교를 다녔다는 친구. 가족들의 바람대로 신부가 되었다면 행간 행간에서 휴머니티가 배어나오는 저런 어조의 강론으로 교인들의 존경을 받았겠지. 축구연습을 마치고 간식을 먹으러 작은 푸드 코트에 들른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 사람이 있었다.

홍상현 팩트체커  contact@newstof.com  최근글보기
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을 갖추고 한ㆍ일 두 나라 매체에 분석 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교수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시미즈 연구실 출신. 같은 대학 이미지인류학연구실(IAL)의 네트워크 멤버였다.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의 논쟁적인 저작을 소개한 번역가이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거쳐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램 어드바이저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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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규 2020-01-14 09:08:38
자신이 나고 살아온 터전이 갖는 의미에 사실 어떤사건의 유무는 중요한게 아닐지 몰라요. 타자의 눈에 그려진 공포와 걱정이 그들에겐 기우일수도 있구요. 감독은 누구나가 누려야할 선택과 자유가 당연하다는 것에서 출발한 다큐를 만들고 싶었나봐요. 히로노 마을의 평범한 일상이 나의 선입견을 부끄럽게 만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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