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 삶 통해 국경 뛰어넘는 보편성 보여주고 싶었다"

  • 기자명 홍상현
  • 기사승인 2018.10.25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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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현의 인터뷰]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 치카우라 케이 감독

얼핏 ‘세상 참 불공평하구나’ 싶을 수도 있다.

예술가의 아우라가 넘치는 외모야 그렇다 치자. 베를린에서 성장한 ‘국제파’에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 세칭 ‘명문대’ 출신이다. 단편의 국제영화제 수상 및 초청이력도 화려하다. 장편 데뷔작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치카우라 케이 감독의 이야기다.

이게 끝이 아니다. 작품에 참여한 캐스트와 스태프의 면면을 살펴보면 어느새 입가에서 ‘이 사람 뭐지? 브루스 웨인?’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수도 있다. 엄연히 신인(그것도 독립영화)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영화의 주연배우가 <감각의 제국>(이 영화를 연출한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다른 대표작은 이번에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을 수상한 사카모토 류이치가 주연에 음악감독까지 겸한 <전장의 크리스마스>다)의 후지 타츠야다. 촬영은 칸 국제영화제 수상 감독들과 수도 없이 작업한 일흔 여덟의 거장이란다.

아직 ‘결정타’가 남아있다. 영화의 제작사 크리에이텝스는 도쿄 에비스에 본사, 홋카이도 삿포로에 지사까지 둔 토털 멀티미디어 컴퍼니로 얼마 전 창업 12주년을 맞았는데 대표이사가 감독 본인이다. 하지만 부디, 이 즈음에서 기사 창을 닫지 말아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니까.

확실히 치카우라 감독은 베를린에서 유소년기의 짧은 기간을 보낸 경험이 있지만 지방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는 부친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던들 동시상영을 하는 재개봉관에서 <가위손>을 본 다음날부터 고전영화의 세계로 빠져들어간 영화소년도 없었다.

창업의 계기도 ‘영화’였다. 스무 살 무렵 감독이 되기로 결심했지만 소설, 혹은 만화로 이미 상품성이 검증된 콘텐츠를 영화화하는 게 일반적이던 당시 일본 영화계는, 작가주의를 추구하는 신인을 감당할 수 없었다. 대가의 조감독 출신이 아무 망설임 없이 그 명성에 편승하는 분위기도 그와 어울리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독립영화 지원제도도 없고, 부모에게 기댈 수 있는 형편도 아닌데다, 무엇보다 생계를 해결해야 했다.

큰 자본금 없이 꾸려나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웹 제작 회사를 창업했지만 아무도 일을 주지 않았다. 고심 끝에 내놓은 아이디어는 유명인의 인터뷰를 메인 콘텐츠로 하는 웹사이트 런칭. 후지 타츠야와 조우한 것도 이 당시다.

사업이 본궤도에 올라 약간의 여유가 생기자 단편을 만들기 시작했고, 4년 뒤 장편 제작에 착수했다. 좋은 배우를 만나기 위해 망설임 없이 항공권을 끊었다. 시나리오의 느낌이 살아있는 장소를 찾아 베이징에서 차로 1000킬로미터 거리를 달렸다. 촬영감독의 섭외도 ‘늘 하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필사의 각오로 쓴 시나리오를 건네며 머리를 조아린 것이다.

그는, 불굴의 마라토너였다.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 치카우라 케이 감독. ⓒCreatps Inc

홍상현: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현지에서 만난 영어권 게스트들은 오히려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이라는 타이틀이 영문제목인 <컴플리시티(Complicity)>보다 시적(poetic)이라고 했다.

치카우라 케이:

그렇구나.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 아시다시피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이라는 타이틀은 ‘풍수지탄(風樹之嘆)’, 효를 다하지 못한 채 어버이를 여읜 자식의 슬픔을 이르는 사자성어에서 따왔다. 물론 효라는 ‘도덕적 규범’보다 회한이라는 정서에 초점을 맞췄지만.

 

홍상현:

중요한 포인트다. 부모에 대한 애틋한 정서란 인류적 보편성을 띠니까. 그 자신 불법체류자의 처지임에도 고향 허난(河南)에서 어렵게 지내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주인공(첸량ㆍ여율래 분)의 모습은 특히 아시아 관객들에게 낯설지 않다.

치카우라 케이:

제가 관심을 갖는 대상은 사회의 주변부에 존재하는 아웃사이더들이다. 자신과 겹치는 많은 부분이 있을뿐더러, 제게 영감을 준 수많은 영화작가들도 하나같이 그들에 대해 따듯한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을 구상할 무렵, 무엇보다 오늘의 현실을 반영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예컨대 일본 사회에도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이들의 삶을 주제로 한 영화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길을 걷다가도 숱한 외국인들과 마주치건만, 주인공은 고사하고 영화의 중심인물로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2010년대 후반, 바로 지금의 시점에서 개연성을 지니는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고자 했다.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Complicity) 영문 포스터 ⓒCreatps Inc

홍상현:

한국영화나 배우들에 대한 관심이 엄청난 걸로 안다.

치카우라 케이:

영화감독의 길을 고민하던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 수많은 한국영화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신 분이 <오아시스>의 이창동 감독님이다. 이 감독님은, 감히 말씀드리건대, 내게 있어 예술적 스승이자 일종의 ‘정신적 멘토(mentor)’ 같은 분이다.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으로 토론토국제영화제에 갔을 당시 행사장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는데, 그 기쁨이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지. 오늘도 모습을 뵙자마자 달려가 인사를 드렸다.

2002년 보았던 <오아시스>의 기억은 강렬했다. ‘이렇게 파워풀한 영화가 일본 영화계에서 나올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한 개연성을 지니는 한편 대단히 극적이며, 여기에 인간의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날것’의 느낌. 픽션(fiction)으로서의 볼거리도 풍성하고. 저는 이창동 감독님의 작품을 통해 정말 많은 용기를 얻었고, 이후 많은 한국 영화작가들의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홍상현:

경영자로서 성공의 정점에 올랐을 때 단편을 만들기 시작, 많은 해외영화제에서 실력을 검증받고 장편을 제작했다.

치카우라 케이:

사업가로서의 삶은, 아주 심플한 이야기다. 생계를 꾸리면서 영화도 만들고 싶은데, 이를 위한 환경을 스스로 조성해야만 했거든. 결국 창업은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은 물론 이후 어떻게 지속적으로 작품을 제작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었다. 특출 난 재능을 갖지 못한 저로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홍상현:

한국의 영화제와도 인연이 많다. 2016년 발표한 두 번째 단편 <겨울감나무>가 서울환경영화제에 초청되었고,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 직전에 제작한 <시그니처>는 지난해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치카우라 케이:

두 작품 중 <시그니처>는 특별한 제작 동기가 있다.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의 주연배우 캐스팅을 위해 진행한 베이징 오디션에서 여율래를 만났는데, 마주치는 순간 ‘이 친구’라는 확신이 들더라. 현장에서 바로, ‘장편 촬영은 1년 뒤에나 시작될 텐데, 우선 서로를 알아 가기 위해 단편부터 찍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해 2주간 시나리오를 쓰고, 배우를 도쿄로 불러 촬영했다. 오디션 후 한 달이 되어가던 시점이었다. 흔히 볼 수 있듯 단편을 장편으로 개발한 게 아니라,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을 제작하기 위한 연장선상에서 <시그니처>를 만든 거다.

 

홍상현:

그리고 보면 <시그니처>에서의 의상을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의 주인공이 똑같이 입고 등장한다. 중국 현지에서 구입하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치카우라 케이:

그렇다. 등장인물도 완전히 같고, 장편과 단지 타임라인이 다를 뿐이다. 그가 일본에 도착해서 보낸 첫날의 이야기니까.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 한 장면 ⓒCreatps Inc.

홍상현: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에서는 주인공이 흐느끼는 장면을 멀리에서 보여주는 롱 테이크가 인상적이었다.

치카우라 케이:

저는 감정이 고조되는 순간 카메라가 오히려 뒤로 물러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첸량의 감정이 고조되어 울음을 터뜨리는 신(scene)도 같은 맥락이다. 그가 속해있는 세계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울고 있는 모습뿐만 아니라 그 순간의 공기 등 상황 전체를. 하지만 슬픔 자체를 강조하는 것으로 끝나기보다 평온한 음색의 바람소리와 하늘거리는 나뭇가지가 그를 어루만져주는 분위기를 연출하려 했다. 그리고 주인공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신의 촬영은 배우가 울기 시작한 시점부터 시작되었다. 이 대목에서 특히 잊을 수 없는 일은 바로 그 때, 바람이 불어왔다는 거다.

 

홍상현:

대배우 후지 타츠야는 이번에도 여전한 명연기를 보여주신다.

치카우라 케이:

후지 선생님은 내게 있어 ‘레전드(legend)’라 할 만한 존재다. 당신께서는 현재까지 명작으로 회자되는 수많은 작품의 주연을 맡으셨는데, 특히 <감각의 제국>이 제작될 당시는 단지 그 작품에 출연하는 것만으로 연기활동을 더 이상 못하게 될 가능성마저 있는 환경이었다고 한다. 작품을 위해 때로는 배우 인생 전체를 거는 리스크까지 감싸 안으면서도, 연기자의 한길을 걸어오신 선생님을 깊이 존경하고, 언젠가 영화를 만들게 되면 반드시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창업을 했을 당시, 클라이언트를 확보하지 못해 힘들던 상황에서 회사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유명인사 인터뷰를 콘텐츠로 하는 웹사이트를 런칭했다. 그리고 평소에 만나고 싶던 분들을 대상으로 취재를 진행했는데, 마침 후지 선생님의 <가마타 행진곡>이라는 작품이 공개된 참이라 소속사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뒤로 간신히 첫 단편, <빈 집>을 찍게 되었을 즈음, 우선 출연부터 부탁드리고 당신을 위해 시나리오를 썼다.

 

홍상현:

흉내조차 내기 쉽지 않은 용기, 혹은 무모함이다.

치카우라 케이:

시나리오를 써서 보여드리니 다음날 ‘잘 부탁한다’고 연락을 주셨다. 그리고 다시 5년의 시간이 흐른 뒤,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 출연을 부탁드리게 된 거다.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 한 장면 ⓒCreatps Inc.

홍상현: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이 이뤄낸 또 하나의 성취는 여율래라는 중화권 차세대 스타의 캐스팅이다.

치카우라 케이:

잊을 수 없는 일화가 하나 있다. <시그니처>의 촬영을 위해 그가 도쿄를 방문했을 당시 제가 무척 좋아하는 장이머우 감독의 단편 하나를 보여주었다. 칸 영화제 60주년 기념으로 세계의 감독들이 참여한 3분짜리 작품 모음집에 수록된 것이었는데, 대뜸 ‘저도 나온다’는 거다. 바로 그 순간 작품 속 연기자와 여율래가 겹쳐졌다. 물론 장 감독의 작품에도 그는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되었다.

 

홍상현:

언급할 사람이 하나 더 있다. 전위 예술가이자 상하이에서 모델로 활약하던 패션계의 블루칩, 아카사카 사요가 상대역으로 출연한다.

치카우라 케이: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의 하즈키(葉月ㆍ음력 8월을 의미하는 명사이기도 하다)는 요정과 같은 캐릭터다. 주인공인 첸량에게 마법을 걸었다가, 마법을 풀어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신비한 존재. 이런 이미지에 설득력을 부여해줄 수 있는 배우가 드물어 캐스팅에 신중을 기해야했는데, 사진을 보자마자 그녀가 일하고 있는 상하이로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만나보니 시나리오에서 빠져나온 것 같은 사람이 눈앞에 서 있더라. 그녀는 영화출연 자체가 처음이었지만 예상대로 대단히 만족스런 연기를 보여주었다.

 

홍상현: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의 공간은 주인공의 의식을 따라가는 편집을 통해 계속 허난과 야마가타를 오간다. 굳이 허난이어야 했을 이유가 있나? 게다가 이 모든 것을 보여주는 촬영에 소요된 기간은 고작 한 달 반이었다.

치카우라 케이:

일본에 와 있는 중국국적 이주노동자의 출신지 중 적지 않은 비율을 차지하는 곳이기도 한 데다, 로케이션 헌팅을 갔을 당시 베이징에서부터 차를 몰고 1000㎞를 달리다 도착한 최적의 로케지였다.

이번 작품에서 저는 감독과 프로듀서를 겸했는데 이 두 역할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더라. 프로듀서는 정해진 예산과 스케줄 안에서 제작을 진행해야 하는데, 감독은 늘 이것도, 저것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으니까. 혼란 속에서 작품이 공중분해 되지 않도록 매순간 고민했다. 저는 심지어 제작비를 댄 출자자이기도 하니까.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할 때 촬영기간을 타이트하게 잡는 편이 낭비를 최소화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다행히도 그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

 

홍상현:

현지 프로듀서야 있었겠지만 사안 하나하나 직접 챙기지 않으면 안심하지 못하는 완벽주의자로서 쉽지 않았을 거다.

치카우라 케이:

중국의 성(省) 같은 경우, 도심부에서 차로 40분 정도만 달리면 광활한 시골풍경이 펼쳐진다. 물론 촬영은 힘들었지. 일단 카메라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몰려들고. 의사소통도 쉽지 않았다. 도저히 손 놓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게 온갖 상황에 대처해 나가다 보니 저 자신의 한계 또한 명확해지더라. 차기작을 만들 때 어떻게 할지 알겠다. 스스로에 대해 보다 냉정하게 가늠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홍상현:

후이멘(烩面)의 본고장 허난에서 온 첸량은 ‘하필이면’ 소바(蕎麦) 장인의 집에, 가업을 탐탁지 않아 하는 친아들 대신 들어간다. ‘칼로 잘라 만드는 국수(noodle)’를 먹는다는 문화적 공통분모 외에 다른 은유가 있을 것 같다.

치카우라 케이:

일단, 소바 장인과 첸량을 이야기의 중심에 둔 것은 우리가 ‘전통적’이며, ‘우리 고유한 것’이라 믿는 무언가와 이방인(stranger)의 만남이 하나의 영화적 상황이 될 수 있으리라는 판단에서였다. 여기서 또한 주목한 것은, 첸량이 야마가타와 허난이라는 ‘이질적인 두 세계’에 발을 딛고 있다는 설정이었다.

아울러, 국수는 서민의 삶에서 누구나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먹거리일뿐더러, 저 개인적으로는 ‘혼자’가 아니라 ‘같이’ 먹는 음식으로써의 이미지가 강하다. (※ 그래서일까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에서는 국수가 나오는 장면에 늘 두 사람 이상의 인물이 등장한다)

 

홍상현:

애초에 필자가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이라는 작품에 주목하게 되었던 이유는 ‘이주노동자 문제’라는 사회적 이슈를, 관련 기사를 읽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뒤, 직접 시나리오를 써 영화로 만들어내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 진정성을 담아 풀어낸 감독의 태도 때문이다.

치카우라 케이:

이를테면 언론매체를 통해 베트남에서 온 산업연수생 관련 뉴스를 접했다고 가정하자. 뉴스란 그 특성상 ‘정보(information)’로 받아들여 질 수 있을망정, ‘감정 혹은 정서(emotion)’로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했던 고민은, 이런 실제적 사건들을 바탕으로 구성한 픽션(fiction)을 가지고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한 개인의, 최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라는 형태를 선택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배경에는 시대적 흐름에 따른 거대담론도 존재하겠지, 하지만 이를 강조하기보다 인종과 국경을 뛰어넘는 보편성에 주목하고 싶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 유대, 성장, 그리고 정체성의 문제 같은. 그렇게 ‘클래시컬(classical)한 아시아 청년의 성장사(成長史)’를 보여주려 했다.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 한 장면. ⓒCreatps Inc.

잘라 말하면, 그의 시도는 대성공이었다.

도저히 신인감독의 작품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완성도나, 중반 이후 속도감을 더해가던 이야기가 마무리되자마자 단호하게 매듭짓는 스타일은 그야말로 글로벌했다. 엔딩크레디트를 통해서라도 뒷이야기를 보여줘야 직성이 풀리는 일본영화의 클리셰는,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부산에서 돌아온 뒤, 잠시 자리를 비운 새 쌓인 살인적인 업무를 처리하던 그와의 통화에서 차기작 시나리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 같이 업계사람들로부터 ‘이런 걸 누가 보겠냐’, ‘(아웃사이더의 입장 따위에) 누가 공감해주겠느냐'는 핀잔을 이제는 좀 덜 들으려나하는 기대는, 어쩌면 내 욕심일 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크로스 보더(cross border), 즉, 국경과 인종을 넘어서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리얼리티를 느낀다는 영화 작가의 의지는 꺾이지 않을 테다.

문득 10월 6일 저녁, <바람나무는 거문고처럼>의 두 번째 상영과 GV가 있던 날 밤, 인파에 밀려 계단을 내려올 때, 누군가가 아마도 이 영화를 보자고 권한 것으로 보이는 상대를 향해 건낸 한 마디가 떠오른다.

“와... 제목 길어가 어려워 보인다꼬 안 봤으모 우짤 뻔 했노? 영화 직이네...”

코끝이 시큰해지는 느낌 속에서 필자가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맞지요? 내 친구가 쫌 한다 아임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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