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여성들의 외침 “우리는 '꽃'이 아니라 ‘불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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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여성들의 외침 “우리는 '꽃'이 아니라 ‘불꽃’이다”
  • 홍상현
  • 승인 2020.02.1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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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현의 인터뷰]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시스터후드> 니시하라 다카시 감독

졸업하자마자 잉글랜드로 떠난 A와 재회한 것은 봄꽃 소식을 기다리던 지난해 3월 목요일 오후였다. 이미 학교를 떠난 필자를, “제발 이름을 불러 달라”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선생님”이라 칭하는 고지식한 그도 반가웠지만, 화사한 표정으로 건넨 붉은 페이퍼박스가 내내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모처럼 준비해온 선물이니까 사양 말고 먹어 볼까?”

염치없이 솟아오르는 식탐. 애써 태연한 척 하며 만화가 쿠엔틴 블레이크의 유명한 로고가 그려진 상자에서 묵직한 느낌의 쿠키를 꺼내 물었다. 직항로로 한나절 거리를 날아온 캐러멜 크런치의 맛.

무무는 테이크아웃을 해 올 수가 없었네요.”

앞장서 걸어가던 그의 목소리에서 장난기가 배어나왔다.

‘아니, 밀크셰이크의 아찔한 단맛보다 블랙커피의 청명한 쓴맛이 훨씬 더 어울리는데’라고 대답하려 할 즈음이었나. 업링크 시부야의 입간판 앞에서 걸음이 멈춰졌다. 흑백에 핑크로 포인트를 준 포스터에서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기억나?”

“...?”

“4년 전 7월.”

“5호관 525교실이었던가요?”

“정확하네.”

“물론이죠. 눈부신 좌절의 기억인데... 후후.”

조금 전과 살짝 다른 톤의 대답, 묻어두었던 회한을 떠올리는 이의 냉소였다.

니시하라 다카시 감독은 여성주의의 관점을 유지하며 (무명의) 누드모델, 뮤지션, 연기자 등으로 생활하며 도쿄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만나, “그들의 삶의 편린들(the pieces of their lives)”을 포착해낸다. 사진제공: 부산국제영화제
니시하라 다카시 감독은 여성주의의 관점을 유지하며 (무명의) 누드모델, 뮤지션, 연기자 등으로 생활하며 도쿄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만나, “그들의 삶의 편린들(the pieces of their lives)”을 포착해낸다. 사진제공: 부산국제영화제

자본론 세미나의 멤버이던 A와 아베 신조 정권의 안보법제, 이른바 ‘전쟁법’에 항의하는 도쿄대 집회에 대학 구성원으로서 참가한 2015년 7월 10일. 그리고 뜨거웠던 여름이 끝나갈 무렵, 참의원에서의 법안 강행체결로 우리는 패배했다.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 니시하라 다카시는 필자와 A의 대화에 등장하는 “전쟁법 저항운동”을 주도한 청년조직,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SEALDs)”의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나의 자유에 관하여 ~SEALDs 2015~>의 감독이다. 그 시절 니시하라 감독은 같은 대학 출신의 선배, 고레에다 히로카즈(<어느 가족>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와 마찬가지로 TV다큐멘터리를 연출자로 활동하다 첫 장편극영화 <블루 레이>와 차기작 <스타팅 오버>로 차곡차곡 명성을 쌓아가던 참이었다.

<나의 자유에 관하여 ~SEALDs 2015~> 이후, 정확히 3년 만에 도쿄의 미니 시어터에서 다시 접한 니시하라 감독의 작품 <시스터후드>는 영화와 TV를 넘나드는 그의 다큐멘터리 연출자로서의 재능과 열군데 이상의 국내외 영화제를 누빈 드라마 연출자로서의 재능이 융합된 작품이다. 여성주의의 관점을 유지하며 (무명의) 누드모델, 뮤지션, 연기자 등으로 생활하며 도쿄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만나, “그들의 삶의 편린들(the pieces of their lives)”을 포착해낸 니시하라 감독은 다시금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사회를 영화로 변화시키고자하는 작가적 신념을 보여주었다.

그날로부터 7개월 뒤, <시스터후드>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면서 한국을 찾은 니시하라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니시하라 다카시 감독은 TV다큐멘터리 연출자로 활동하다 국내외 영화제에서 평가받은 두 편의 장편극영화로 명성을 쌓았다. 그는 “(한국)영화뿐만 아니라. 음악이나 문학 등 다른 문화 장르와 한국음식도 엄청나게 좋아한다”며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감회를 표했다. 사진제공: 부산국제영화제
니시하라 다카시 감독은 TV다큐멘터리 연출자로 활동하다 국내외 영화제에서 평가받은 두 편의 장편극영화로 명성을 쌓았다. 그는 “(한국)영화뿐만 아니라. 음악이나 문학 등 다른 문화 장르와 한국음식도 엄청나게 좋아한다”며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감회를 표했다. 사진제공: 부산국제영화제

홍상현

지금껏 발표한 작품이 10군데를 넘는 영화제에 초청되었지만 한국은 처음이다.

니시하라 다카시

워낙 한국영화를 좋아했기에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이 너무 기쁘다. 영화뿐만 아니라, 음악이나 문학 등 다른 문화 장르와 한국음식도 엄청나게 좋아한다.

학창시절 보았던 이창동 감독의 <밀양><박하사탕>에서 큰 영향을 받았고,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이나 홍상수 감독의 작품도 꼬박꼬박 챙겨 본다. 그밖에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를 너무 좋아하는데 스타일리스트를 하는 공통의 지인이 있어 그를 통해 양 감독이 일 때문에 도쿄에 오실 때 몇 번 뵐 기회도 있었다.

 

홍상현

데뷔작과 다음 작품이 극영화로써 좋은 결과를 내면, 세 번째도 보통 규모를 좀 더 키우되 같은 장르의 작품을 기획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당신의 경우, 다른 장르(다큐멘터리)와의 융합을 시도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에 도전했다.

니시하라 다카시

평소 TV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또, 장편극영화 데뷔작과 차기작이 몇 군데의 영화제에 초청되었는데, 세 번째 작품에서 다시 시나리오를 쓴 뒤 펀딩을 받아보려 하니 쉽지가 않더라.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혼자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가기만 하면 촬영이 가능하기에 <시스터후드>도 우선 우사마루 마나미와 BOMI의 영상을 기록하는 작업을 해놓고 2018년 픽션 부분을 추가로 촬영한 것이다. 큰 금액의 제작비를 마련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가능한 일들을 해 나가다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된 거다.

'시스터후드' 제작에 걸린 오랜 시간은 결국 작품 전체의 컬러를 흑백으로 조정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도쿄에서 진행한 인터뷰 장면의 경우, 애초에 시간 개념을 모두 삭제하고 찍힌 그대로 봐 달라는 의도에서 흑백으로 연출하기도 했다.
'시스터후드' 제작에 걸린 오랜 시간은 결국 작품 전체의 컬러를 흑백으로 조정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도쿄에서 진행한 인터뷰 장면의 경우, 애초에 시간 개념을 모두 삭제하고 찍힌 그대로 봐 달라는 의도에서 흑백으로 연출하기도 했다.

홍상현

현실적 제약이 새로운 스타일을 낳는 계기가 되었다는 건데, 결과가 성공적이다. 장르나 스타일 면에서 다시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뛰어넘어 재미와 생생함이 넘치는 전혀 새로운 작품이 탄생했으니까. 이러한 아이디어를 낸 계기가 있나?

니시하라 다카시

딱히 어떤 구상이 있었던 건 아니다. 우사마루나 BOMI의 영상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촬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따로 픽션을 구성해 추가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그 당시 국제적으로 이슈화되던 미투 캠페인, 여성행진(Women's March) 등과 같은 이슈에 대해서도 공감하는 바가 많았기에 일단 여성에 대한 스토리를 쓰고, 당시까지 촬영해놓은 다큐멘터리 영상과 연결시키다 보면 뭔가 새로운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홍상현

영화 전체가 흑백이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

니시하라 다카시

원래 컬러로 찍었는데 제작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점도 흑백으로 전체적인 톤을 조정하는 원인이 되었다. 도쿄에서 진행된 인터뷰 장면의 경우, 시간 개념을 모두 삭제하고 찍힌 그대로 봐 달라는 의도에서 흑백으로 연출하기도 했고. 이와 관련해 도쿄에서의 상영회에서 “‘남성이니 파랑, 여성이니 빨강’하는 식으로 스테레오타이프의 컬러를 연출하고 싶지 않아 흑백으로 통일한 게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역으로 정확한 지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홍상현

그리고 보니 제작에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 같다.

니시하라 다카시

2015년 5월부터 시작해서 완성까지 4년 걸렸다. 포스트프로덕션은 반년 정도.

‘시스터후드’는 우선 주인공들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해 두었다가 나중에 픽션 부분을 추가로 촬영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큰 금액의 제작비를 마련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가능한 일들을 해 나가기 위한 묘안이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사진제공: 부산국제영화제
‘시스터후드’는 우선 주인공들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해 두었다가 나중에 픽션 부분을 추가로 촬영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큰 금액의 제작비를 마련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가능한 일들을 해 나가기 위한 묘안이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사진제공: 부산국제영화제

홍상현

한국 관객들에게는 장건재 감독의 <한여름의 판타지아>로 알려진 이와세 료가 등장하는 도입부의 시퀀스에서 크게 웃었다. 감독의 페르소나인 것 같은데, 영화의 사회적 문제의식을 다룬 시나리오가 재미없다고 모두에게 맹공격을 당하더라. (웃음)

니시하라 다카시

(웃음) 도쿄에 살면서 느끼는 위화감이나 ‘왜 이런 세상이 되어버렸을까’하는 생각을 작품에 담아내고 싶었다. 평소 느끼는 바라든가 실제의 저와 가까운 캐릭터를 솔직하게 보여주고 싶다는 의도도 있었고. 다행히 이와세 료가 그런 캐릭터를 연기해주었다. ‘다큐멘터리 취재를 하면서 그럴싸한 이야기들을 했지만, 정말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보통은 생각지도 않고 있던 것을 말했던 건 아닐까’하는 개인적인 반성과 더불어, 오늘날의 사회 현실 속에서의 남성의 위치를 표현해보고자 했다.

 

홍상현

그리고 보면 단순히 ‘풍자적’이라고 뭉뚱그리기보다 조금 더 날카로운 시선이 엿보인다.

니시하라 다카시

현재 일본의 상황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다고 보니까. 일단은 정치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과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 와중에 모두들 서로 다르지 않은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는 위기감이 든다. 영화를 통해서라도 다양한 사고나 가치관을 제시해 보고 싶었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장건재 감독의 '한여름의 판타지아'로 알려진 이와세 료(왼쪽)는 니시하라 다카시 감독의 페르소나로 등장하는데, 초반부터 영화의 사회적 문제의식을 다룬 시나리오가 재미없다고 모두에게 맹공격을 당하며 웃음을 자아낸다.  사진제공: 부산국제영화제
한국 관객들에게는 장건재 감독의 '한여름의 판타지아'로 알려진 이와세 료(왼쪽)는 니시하라 다카시 감독의 페르소나로 등장하는데, 초반부터 영화의 사회적 문제의식을 다룬 시나리오가 재미없다고 모두에게 맹공격을 당하며 웃음을 자아낸다. 사진제공: 부산국제영화제

홍상현

히로인인 우사마루 마나미는 일상의 모습 그대로 관객을 집중시킬만한 서사를 가진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그녀와의 만남과 캐스팅을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겠나.

니시하라 다카시

2015년에 도쿄에 사는 젊은 여성의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어 이런저런 취재를 하던 중에 인스타그램에서 우사마루를 발견했다. 꽃다발을 든 본인의 누드사진이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발견하기 힘든 케이스라 일단 연락을 한 뒤 구상중인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카페에서 첫 만남을 가졌는데, ‘이 사람을 담담하게 팔로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 느낌은 <시스터후드>의 첫 장면에도 반영되었다. 그녀를 캐스팅한 것 자체가 제가 원하는 대로 영화를 찍고 싶다는 의지의 반영이었다.

 

홍상현

배우로서의 경력이 길이 않은 까닭에 주연을 맡기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감독으로서도 모험이었겠고.

니시하라 다카시

일단 그녀의 역량이 결정적인 역할을 발휘했다. 제가 워낙 픽션을 연출할 때 세세한 요구를 하지 않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또한 <시스터후드>는 애초에 다큐멘터리로 시작하지 않았나. 일단 등장인물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까닭에 최대한 작품에 그대로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픽션 부분에서도 도리어 우사마루에게 표정이나 대사를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해달라고 요구했다. 다른 누군가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이름까지 실명을 쓰면서 그대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홍상현

최근 독립영화를 중심으로 활약 중인 엔도 니이나의 존재감도 돋보인다.

니시하라 다카시

니이나는 제 전작인 <스타팅 오버>에서도 아키즈키 미카와 공동주연을 맡았었다. 카페에서 등장인물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장면을 구상하는데 그녀 생각이 나더라. 그래서 연락을 했더니 친구인 스미레까지 데려왔다. 니이나의 경우도 우사마루와 마찬가지로 평소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니시하라 다카시 감독이 히로인인 우사마루 마나미를 발견한 것은 2015년 인스타그램에서다. 현역 누드모델이자 사진가이기도 한 그녀는 부족한 연기경험에도 불구하고 '시스터후드'의 히로인으로서 조금의 어색함도 느껴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제공: 부산국제영화제
니시하라 다카시 감독이 히로인인 우사마루 마나미를 발견한 것은 2015년 인스타그램에서다. 현역 누드모델이자 사진가이기도 한 그녀는 부족한 연기경험에도 불구하고 '시스터후드'의 히로인으로서 조금의 어색함도 느껴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제공: 부산국제영화제

홍상현

스토리가 전개되는 내내 뮤지션인 BOMI의 공연이 이어진다. 보통, 영화에서 무리하게 음악 시퀀스를 삽입하면 몰입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시스터후드>의 경우 아주 자연스러웠다.

니시하라 다카시

영화에서 음악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BOMI의 촬영 분량은 거의 다큐멘터리였는데 영화전체를 통틀어 어디에 라이브 장면을 편집으로 끼워 넣을지를 많이 고민했다. 관객에게 울림을 주고 싶어서. 다만, 그가 만든 뮤직비디오가 아니라 창작자로서 활동하는 평소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시스터후드'에서는 스토리가 전개되는 내내 뮤지션인 BOMI의 공연이 이어진다. 니시하라 다카시 감독은 관객에게 울림을 주기 위해 편집과정에서 많은 고민을 했지만, 무엇보다‘뮤직비디오풍의 영상’이 아니라‘창작자로서 활동하는 평소의 모습’을 담아내려 노력했다. 사진제공: 부산국제영화제
'시스터후드'에서는 스토리가 전개되는 내내 뮤지션인 BOMI의 공연이 이어진다. 니시하라 다카시 감독은 관객에게 울림을 주기 위해 편집과정에서 많은 고민을 했지만, 무엇보다‘뮤직비디오풍의 영상’이 아니라‘창작자로서 활동하는 평소의 모습’을 담아내려 노력했다. 사진제공: 부산국제영화제

“<시스터후드>는 저 자신 행복하다는 느낌 속에서 만든 영화입니다. 아무쪼록 오늘의 현실에 조금이라도 위화감을 느끼거나 보다 자유로운 꿈꾸는 모든 분들이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니시하라 감독의 부산국제영화제 초청 사실을 듣고, 취재요청과 인터뷰를 진행하던 과정에서 깨달은 게 있다. 처음 그를 알게 된 순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화두인 “치열한 현실인식”과 별개로, 일상에서의 그가 무척 온화하며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라는 점. 물론 이는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니시하라 감독의 그런 품성이야말로 가슴에 열정을 품되 쉬이 절망하지 않으며, 매 순간 세상을 바꾸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게 하는 에너지가 되어주었을 테니까.

새삼 실감한다. “스스로가 흥미를 느끼는 이야기를 찍고, 열심히 시나리오를 써서 40ㆍ50대가 되어서도 제가 발 딛고 있는 사회와 세계를 말하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그의 결심이 무척이나 단단한 것임을.

문득 <시스터후드>의 한 장면에서 비쳐지던, 어쩌면, 모든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설명해준다고 할 수 있을 메모 한 줄이 떠올랐다.

"우리는 '꽃'이 아니야... 불꽃이란다."

 
홍상현 팩트체커  contact@newstof.com  최근글보기
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을 갖추고 한ㆍ일 두 나라 매체에 분석 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교수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시미즈 연구실 출신. 같은 대학 이미지인류학연구실(IAL)의 네트워크 멤버였다.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의 논쟁적인 저작을 소개한 번역가이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거쳐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램 어드바이저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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