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EU보다 완화된 기준, 원전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

'고준위방폐장과 사고저항성핵연료 문제가 원전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 주장 검증

  • 기사입력 2022.09.23 18:15
  • 기자명 김정은 기자

정부가 20일 원자력발전(원전)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한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환경부는 원전 경제활동 부분에 대한 초안을 공개하며, 지난 7월 유럽연합(EU)이 ‘EU 녹색분류체계’ 보완 기후위임법률을 최종 통과한 것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습니다.

환경부는 원전의 안전성을 향상하기 위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안전과 처분을 위한 문서화된 세부 계획 및 법률 마련, ▲2031년부터 사고저항성핵연료 적용(계속운전) 등의 조건도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우리 정부의 녹색분류체계가 유럽연합의 체계보다 ‘완화된’ 기준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아래 이미지 참고).

표1. EU녹색분류체계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비교 (그래픽: 김정은 기자)
EU녹색분류체계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비교 (그래픽: 김정은 기자)

조현수 환경부 녹색전환정책과장은 우리 정부와 EU의 체계가 다른 이유에 대해, “녹색분류체계는 각 국가에 맞게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답했습니다.

EU 체계에 비해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면 원전 수출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은 원전 수출국이 아닌 EU 회원국이 충족해야 할 조건”이라고 말했습니다. 수출국인 우리나라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을 갖출 의무가 없기 때문에, EU 회원국에 원전을 수출하는 데 지장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또 “사고저항성핵연료는 EU 국가에 원전을 수출하더라도 실제 원전 가동 시기는 2030년대 중반 이후로 예상되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우리나라가 규정한 사고저항성핵연료 탑재 시기가 EU가 규정한 것보다 6년 늦지만, EU 국가에 수출한 원전이 가동되기 전에 사고저항성핵연료를 개발하면 별 문제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K 택소노미 원전 포함은 원전 경쟁력 강화로 이어져 원전 수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환경부의 주장을 아래와 같이 정리했습니다.

①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은 EU회원국이 충족해야 할 조건이다

②우리나라와 EU의 사고저항성핵연료 탑재 시기 차이가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이들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과 사고저항성핵연료 등의 문제가 원전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뉴스톱>은 “고준위방폐장과 사고저항성핵연료 문제가 원전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주장을 확인했습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전 세계 어디에서도 가동 안 되고 있다

먼저 녹색분류체계는 유럽연합(EU)이 2020년 처음 발표한 것으로, 지속가능한 경제 활동의 범위를 규정한 것입니다. 녹색분류체계에 사업이 포함되면, 정책입안자와 기업 등 투자자가 이를 참고하여 더 많은 자금을 해당 사업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투자 자금의 향방이 결정되는 ‘지침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에너지 산업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2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원자력 발전’과 ‘천연가스 발전’을 분류체계에 포함하는 보완 기후위임법률을 공개했습니다. 위임법률은 지난 7월 최종 통과되었지만, 오스트리아와 룩셈부르크가 이에 반대하며 법적 조치를 강구하고 있습니다.

<뉴스톱>은 보완 기후위임법률을 살펴보았습니다. 여러 조항 가운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과 관련된 부분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결과, EU는 ‘수출국’과 ‘EU회원국’을 구분하여 규정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법률은 의무 대상을 명확히 ‘회원국(Member States)’으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표2. 출처: 유럽연합 보완 기후위임법률
출처: 유럽연합 보완 기후위임법률

아래 밑줄 친 문장을 번역하면, EU 회원국은 중∙저∙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에 관한 계획을 국가 정책에 포함해야 합니다. 또 회원국은 국가 프로그램의 이행 상황을 위원회에 정기적으로 보고해, 2050년까지 처리 시설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표3. 출처: 유럽연합 보완 기후위임법률
출처: 유럽연합 보완 기후위임법률

환경부의 주장대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은 수출국이 아닌, EU 회원국에 부과된 사항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처분시설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라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가 해외수출에 도움되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옵니다.

에너지전환포럼은 보도자료를 통해 “(고준위) 방폐장의 경우 핀란드와 스웨덴만 부지를 확보해 건설 중이며, 이마저도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된다”고 반박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원전을 수입하는 EU 국가는 고준위방폐장을 갖춰야 자금을 받을 수 있지만, 여전히 방폐장 추진이 지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핀란드만이 고준위 핵페기물을 묻는 영구 처분시설을 만들었습니다. 바로 작은 동굴을 뜻하는 ‘온칼로(Onkalo)’입니다. 핀란드는 1983년부터 부지 조사를 시작해, 시설을 지을 지역을 선정하는 데에만 17년이 걸렸습니다.

 

환경부는 녹색분류체계 초안을 발표하면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2021)’이 존재하여 초안에 구체적인 처분시설 확보 연도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세부계획 이행을 위한 법률제정을 추가 조건으로 포함시켰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2차 기본계획에는 “부지선정 절차 착수 이후 37년내에 영구처분시설을 확보하겠다”고만 명시되어 있습니다. 에너지전환포럼은 환경부가 고준위 방폐장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담지 않아, “행정절차 및 공학적 전망일 뿐”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표4.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2021), 출처: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2021), 출처: 산업통상자원부

방폐장을 둘러싼 지적에 환경부는 21일 보도자료를 통해 "국회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안이 발의됐다"며 "지난 7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R&D 기술로드맵'을 통해 핵심 관리기술의 구체적인 확보 일정과 1.4조원의 투자계획을 발표했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나 고준위 방사성폐물과 관련된 기술이 선진국에 비해 열악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나예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21일 보고서를 통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마련을 위한 특별법'은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으며 (발의)안에 따라 부지확보 및 운영 시기, 처리 대상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에 차이가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또 "방사성폐기물의 4대 핵심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주요 선진국 대비 짧으면 3.4년에서 길게는 8.7년까지 기술 격차를 보이며 열위에 있다"며 "4대 핵심분야를 구성하는 104개 요소기술 중 이미 확보된 기술은 22개에 불과한 상황"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정부의 언급과 다르게 특별법이 발의됐으나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 않으며, 미확보된 방사성폐기물 기술이 많다는 것입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은 EU회원국이 충족해야 할 조건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수출국)뿐만 아니라 유럽연합 국가(수입국)에서조차 처분시설을 완벽하게 갖추어 운영하지 못하고 있을 뿐더러, 우리나라의 처분 기술이 스웨덴과 핀란드 등 선진국에 비해 열악한 상황입니다. 

 

◈우리나라와 EU의 사고저항성핵연료 탑재 시기 차이, "국내 원전 산업의 해외 자금 조달 어려워질 것"

유럽연합은 녹색분류체계에 2025년까지 기존 원전과 신규 원전에 사고저항성핵연료를 적용해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습니다.

사고저항성핵연료는 기존의 핵연료보다 사고발생 가능성을 줄이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기술입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의 보고서는 “사고저항성핵연료는 냉각기능 상실에 의한 핵연료 온도 상승 속도와 산화에 의한 수소 발생을 적극적으로 지연시켜 심각한 노심 손상을 억제하고, 수소 폭발에 의한 방사성 물질 누출 사고로의 진행을 방지시킬 수 있는 핵연료”라고 설명했습니다.

환경부는 원전을 신규 건설하는 경우, 최신기술기준과 사고저항성핵연료를 적용해야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원전을 계속 운전하는 경우, 유럽연합과 다르게 2031년부터 사고저항성핵연료를 적용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사고저항성핵연료 적용 시기가 유럽연합에 비해 6년 뒤처진다는 지적에, 환경부는 “국내 연구개발 일정상 상용화가 가장 빠른 시기인 2031년으로 설정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EU국가에 원전을 수출하더라도 실제 원전 가동 시기는 2030년대 중반 이후로 예상되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일축했습니다.

그러나 환경부의 계획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에너지전환포럼은 보도자료에서 “기존 원전을 먼저 유럽국가로부터 건설허가를 받은 뒤 건설 준공 시점인 2030년대 중반부터 적용한다는 발상은 비현실적”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이들은 유럽연합의 녹색분류체계가 제시한 조건은 ‘건설허가 시점’을 기준으로 적용하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도 <뉴스톱>과의 통화에서, “사고저항성 핵연료는 상용화되고 있지 않다”며 “우리나라가 2031년부터 사고저항성핵연료를 장착하겠다고 했는데, 2031년 이후에나 원전을 본격적으로 건설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로 “원자로 내부는 고압∙고온이기 때문에, 새롭게 원전을 설계하려면 검증이 오래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도 보고서에서 “일반적으로 핵연료 개발은 재료 선정 또는 개발에서부터, 노외시험, 연구로 연소시험과 상용로 연소시험의 검증절차, 제조관련 품질검사, 성능 코드개발을 거쳐 규제기관의 인허가를 획득해야 하는 등 개발기간이 길고 제품 품질에 있어서는 가장 엄격하게 다루는 분야”라고 언급했습니다.

전문가들의 입장을 종합해보면 사고저항성핵연료는 아직 전세계적으로 상용화되지 않았고, 개발 이후에 안전성을 검증받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2030년까지 EU국가에 원전을 수출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유럽원자력산업협회(FORATOM)도 지난 1월 “사고저항성 핵연료와 관련된 (유럽연합의) 요구 사항은 해당 핵연료가 시장에 출시된 이후에 발효되어야 한다”고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원전업계에서조차 2025년까지 사고저항성핵연료를 원전에 적용하는 것이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표5. 출처: 유럽원자력산업협회
표5. 출처: 유럽원자력산업협회

사실 사고저항성 핵연료와 관련된 우려는 꾸준히 제기됐습니다. 정부는 지난 7월 KTV국민방송 보도를 통해 “사고저항성 핵연료의 경우 상용화되지 않은 건 사실”이라면서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프랑스 일본 등에서 활발히 연구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우리 원전을 유럽에 수출해도 녹색투자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금융업계에서는 유럽연합보다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면, 원전 수출에 제약이 생길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최효정 KB증권 연구원은 이슈 보고서에서 “해외 투자자들이 원전 투자 시 유럽 기준을 적용하게 되면 국내 원전 산업의 해외 자금 조달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KBS 또한 지난 20일 세계 3대 연기금인 네덜란드 연금자산운용에게 “유럽 기준을 충족한 원전만 친환경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한국 원전 관련 투자는 어렵다”는 답변을 듣기도 했습니다.

정리하면 현재 사고저항성 핵연료는 시중에서 사용되고 있지 않습니다. 사고저항성 핵연료를 개발한 이후 오랜 검증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정부가 주장한 2031년을 넘어선 이후에나 탑재할 수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금융업 전문가들은 유럽의 녹색분류체계를 충족하지 않은 우리 원전에 투자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정부의 기대와 다르게 원전 수출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현재 핀란드와 스웨덴만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을 건설 중이며, 이를 완벽하게 운영하고 있는 곳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고저항성핵연료도 상용화되지 않았을뿐더러,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늦게 사고저항성핵연료를 장착합니다. 유럽연합 국가에 원전을 수출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환경부의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과 사고저항성핵연료 등의 문제가 원전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주장은 '대체로 거짓'으로 판정했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주요뉴스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