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침해→학생인권조례 탓? 제방붕괴→4대강 반대 탓?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3.07.2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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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진영의 남탓이 점입가경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원인을 제대로 짚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엉뚱한 곳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반대 세력 제거, 또는 숙원 사업 해결로 연결짓는 모습이다. 교권침해와 제방붕괴 사고에서 드러나는 남탓과 엉뚱한 원인 진단을 살펴보자. 

출처: 대통령실 홈페이지
출처: 대통령실 홈페이지

◈교권침해 학생인권조례 때문?

윤석열 대통령은 24일 대통령실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우리 정부에서 교권 강화를 위해 국정과제로 채택해 추진한 초중등교육법 및 시행령 개정이 최근 마무리된 만큼, 일선 현장의 구체적 가이드라인인 교육부 고시를 신속히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당,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자치조례 개정도 병행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대통령이 말한 '초중등교육법'은 지난달 28일부터 시행된 개정 초중등교육법 제18조의4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②항에  "학생은 교직원 또는 다른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한다.

'시행령'은 40조의3(학생생활지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①항 "학교의 장과 교원은 법 제20조의2에 따라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분야와 관련하여 조언, 상담, 주의, 훈육ㆍ훈계 등의 방법으로 학생을 지도할 수 있다. 이 경우 도구, 신체 등을 이용하여 학생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라는 내용이 신설됐다.

대통령이 지목한 불합리한 자치조례는 <학생인권조례>를 지칭한다. 전국 17곳 교육청 가운데 2010년 경기, 2012년 서울 등 6곳이 도입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과 국민의힘은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권이 무너졌다’고 주장한다.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를 살펴보자. 이 조례는 <「대한민국헌법」, 「교육기본법」 제12조 및 제13조, 「초·중등교육법」 제18조의4 및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 근거하여 학생의 인권을 보장함으로써 모든 학생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며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이루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돼 있다. 굉장히 상식적이고 온건하다.

보수 진영이 이 조례에 대해 치를 떠는 부분은 크게 보면 두 가지다. 하나는 체벌금지, 다른 하나는 소수자 인권 보호다. 소수자 특히 성소수자의 인권보호는 보수 기독교 등에서 ‘아이를 게이로 만든다’면서 극렬히 반대한다. 여기서는 일단 체벌에 관해 집중한다.

조선일보 보도를 살펴보자.

이처럼 교권이 바닥까지 추락한 핵심 계기로 교육계는 2010년 도입된 ‘학생 인권 조례’를 꼽는다. 진보·좌파 성향 교육감들이 추진한 정책이다. 교사에 대한 신고·조사 요구권, 복장·두발 자유, 휴대전화 강제 수거 금지 등을 담고 있다. 학생이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느끼면 교육청에 신고하고 교육청은 인권 옹호관을 파견해 해당 교사를 조사한다. 전국 17곳 교육청 가운데 2010년 경기, 2012년 서울 등 6곳이 도입했다.

학생 인권은 존중돼야 한다. 그런데 인권 조례 도입 후 학교 현장 분위기가 급변했다. 2011년 경기도 한 고교 교사는 수업 중에 휴대전화로 영상 통화하는 학생을 훈계했다. 학생 태도가 불량해 4~5초간 엎드려뻗쳐를 시켰다. 그런데 경기교육청은 이 교사가 학생 인권을 침해했다며 징계했다. 이후 교사가 학생 잘못을 지적하는 것까지 “인권침해”로 몰고 가는 학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체벌 대신 교사가 사용하던 ‘상·벌점제’도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면서 대부분 지역에서 폐지됐다.

이날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의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교권이 땅에 떨어지고 교실 현장이 붕괴됐다”며 “시도 교육감들과 함께 학생 인권 조례를 재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조례가 처음 도입된 경기교육청의 임태희 교육감도 “학생 인권 조례 전면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체벌을 금지하는 학생인권조례, 학생 인권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권이 무너진 것일까? 학생인권조례로 다시 돌아가보자. 4조(책무)를 보면 ⑤ 학생은 인권을 학습하고 자신의 인권을 스스로 보호하며, 교사 및 다른 학생 등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⑥ 학생은 학교의 교육에 협력하고 학생의 참여 하에 정해진 학교 규범을 존중하여야 한다. 라는 조항이 눈에 띈다. 일방적으로 학생의 인권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전북·경기·인천·울산·충북·경남에는 교권보호조례가 있다. 서울은 지난해 시의회가 조례안을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으면서 서울교육청이 조례 제정을 보류한 바 있다.

2021년 1월26일 민법 915조가 삭제됐다. 1958년 제정된 이 조항은 “친권자는 그 자(아이)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당시 정부는 개정 이유로 “친권자의 징계권 규정은 아동학대 가해자인 친권자의 항변사유로 이용되는 등 아동학대를 정당화하는 데 악용될 소지가 있는 바, 징계권 규정을 삭제함으로써 이를 방지하고 아동의 권리와 인권을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법이 시행되면서 ‘사랑의 매’는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진 셈이다. 부모도, 교사도, 그 누구도 누군가를 때려선 안 된다. 사람을 때리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허용될 수 없는 폭력이자 범죄인 것이다. 고통을 줘서 말을 잘 듣게 하겠다는 방식의 체벌도 폭력이다.

체벌을 금지하는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권이 무너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교사에 의한 폭력이 난무하던 ‘말죽거리 잔혹사’ 시절로 돌아가자는 것과 다름없다. G8 진입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오늘날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일까?

윤석열 대통령이 지목한 개정 초중등교육법과 시행령에도 "학생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금지하고 있다.

출처: 조선일보 홈페이지
출처: 조선일보 홈페이지

 

◈제방붕괴 4대강 반대 때문?

조선일보는 24일자 <두 동강 난 논산 제방… 범람 막을 수 있던 3년을 흘려보냈다> 기사를 통해 이번 집중호우 시기 제방 붕괴는 4대강 본류가 아닌 지류∙지천에서 발생했다면서 “문재인 정부와 환경 단체 등은 4대강 사업을 ‘강 파괴’로 몰아붙이며 지류와 지천에는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그동안 방치한 지류와 지천에서 피해가 빈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환경단체들은 코웃음을 친다. 환경운동연합은 조선일보 보도보다 앞선 18일 논평을 통해 “원인 조사와 진단을 시작하기도 전에 해결책으로 토목사업부터 주장하는 것은 재난자본주의의 전형”이라며 “4대강사업을 몸으로 막아서며 4대강의 본류보다 지류·지천 정비가 우선이라고 주장한 것은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사회였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정치세력의 주장은 간단하다. ‘물이 넘치지 않게 물그릇을 키우는 공사를 하면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게 골자다. 물그릇이란 하천에서 물이 흘러가는 길인 통수단면을 말한다. 이 물그릇을 키우는 방법으로 윤석열정부와 국민의힘은 준설을 주장한다. 강 바닥을 파내서 물이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크게 만들어주면 홍수를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홍수가 닥쳐 하천으로 쏟아지는 물의 양이 급격히 늘어나도 한번에 빠져나갈 수 있는 물의 양이 많아지므로 홍수가 날 일은 없다.

출처: 대통령실 홈페이지
출처: 대통령실 홈페이지

문제는 준설이 환경파괴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강바닥을 퍼내면 퇴적물이 떠오르면서 수질이 일시적으로 크게 악화된다. 대규모 준설공사는 하루 아침에 끝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한 번 준설이 시작되면 수계의 수질오염은 상당기간 지속된다. 어류와 곤충 등 수서생물의 서식지가 파괴되고 먹이사슬이 교란된다.

게다가 하천에서는 물의 흐름에 따라 침식(세굴)과 퇴적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강바닥을 파냈다고 해서 깊어진 강바닥이 계속 유지되는 게 아니라 상류에서 밀려온 퇴적물이 또 쌓이게 된다. 하도 유지를 위해 준설을 되풀이할 경우 하천의 생태적 기능은 크게 교란되고 만다.

먹고 살기 급급하던 산업화 시절에는 전국 모든 하천은 홍수 배제에 모든 걸 걸었다. 구불구불한 자연하천은 직선으로 정비됐고, 하천 유역은 콘크리트로 만든 둑을 쌓았다. 단시간 내에 물을 빼내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던 셈이다. 이후 경제가 성장하고 시민의식이 높아지면서 환경에 대한 고려가 커졌다. 이런 맥락에서 이명박정부의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 시민사회의 반대에 부딪혀 좌초됐다. 그러나 이명박정부는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이름을 바꿔 하천 정비를 강행했다.

이번 집중호우에 인명피해가 컸던 충북 청주시 궁평2지하차도 사고에서도 주변 미호강의 제방 붕괴가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 됐는지 진상 규명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미호강 제방 붕괴도 4대강 반대에서 원인을 찾는 것보다 원래 있던 제방을 허물고 임시제방을 쌓았던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의 공사관리가 적절했는지를 따지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인류의 문제는 인간의 존재?

인류는 항상 문제를 안고 살아왔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인간의 존재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인간이 사라지게 함으로써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제방 관리를 잘못해 제방이 무너진 것을 두고 4대강에 반대하는 자들 때문에 제방이 무너졌다고 할 수 있을까? 학생인권조례를 없애고 체벌을 부활하면 함께 사는 방법을 모르는 금쪽이들과, 선생님 귀한 줄 모르고 학교와 교사에게 무리한 요구를 일삼는 몰지각한 학부모의 문제를 일소할 수 있을까?

병을 고치려면 무슨 병에 걸렸는지 진단을 잘 해야하는 것이 첫번째다. 정확한 진단과 그에 따른 적절한 치료법이 제시돼야 병을 고칠 수 있다. 엉뚱한 진단으로 시간과 국력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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