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한경협으로 바꾸면 정경유착 끊어질까?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3.08.24 13: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경련 이름 바꾸고 새출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이 55년 만에 간판을 바꿔 달았다. 새로운 이름은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이다. 끊임없이 정경유착 논란의 중심에 서다가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 사건을 거치며 와해 직전까지 몰렸던 전경련이 부활을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본격적인 참여를 망설이는 4대 그룹을 포섭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정경유착의 주범이라는 싸늘한 국민여론을 되돌리는 어려운 과제를 풀어야 한다.

출처: 전국경제인연합회
출처: 전국경제인연합회

◈새 이름 한경협, 새 수장은 류진 풍산 회장

전경련은 22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임시총회를 열어 한경협으로의 명칭 변경, 산하 연구기관이었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의 한경협 흡수 통합 등을 포함한 정관 변경안을 의결했다.

한경협 명칭은 주무 관청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정관 개정을 승인한 이후부터 공식적으로 사용된다. 산업부 승인은 9월 중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류진 풍산그룹 회장은 이날 총회에서 전경련 신임 회장으로 공식 선임됐다. 류 회장은 취임사에서 "주요 7개국(G7) 대열에 당당히 올라선 대한민국을 목표로 삼겠다"면서 "글로벌 무대의 '퍼스트 무버'가 되는 것이 기업보국의 소명을 다하는 길이며, 이 길을 개척해 나가는 데 앞으로 출범할 한경헙이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관심을 모았던 4대 그룹의 본격적 참여는 이날까지 딱 부러지게 정해지지 않았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 회원사로 남아있던 4대 그룹 계열사가 한경협에 참여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지만 공식적인 선언은 없었다. 대기업들이 정경유착의 고리로 지목됐던 전경련에 다시 뛰어드는 것에 대한 부담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정경유착 그늘 벗어날까?

전경련은 이날 정관을 개정해 기관명을 변경하고, 목적사업에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사업, △ESG 등 지속가능성장 사업을 추가했다. 동반성장, ESG 등을 정관에 명시적으로 규정함으로써 새롭게 출범할 한국경제인협회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경련은 또 정경유착 등을 철저히 차단하기 위한 내부통제시스템인 윤리위원회 설치를 정관에 명시적으로 규정했다. 위원 선정 등 윤리위원회 구성과 운영사항 등 시행세칙 마련은 추후에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또 사무국과 회원사가 지켜야할 ‘윤리헌장’(아래 박스 참조)도 이 날 총회에서 채택했다. 류진 회장은 취임사에서 “어두운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고 잘못된 고리는 끊어내겠다”며, “윤리경영을 실천하고 투명한 기업문화가 경제계 전반에 뿌리내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류 회장은 “그 첫 걸음으로 윤리위원회를 신설하겠다”며, “단순한 준법감시의 차원을 넘어 높아진 국격과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엄격한 윤리의 기준을 세우고 실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전경련이 발표한 윤리헌장은 다음과 같다.

- 외부의 압력이나 부당한 영향을 단호히 배격하고 엄정하게 대처한다.

- 윤리적이고 투명한 방식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경영을 할 것을 약속한다.

-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확산과 강화에 진력을 다한다.

-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대·중소기업 협력을 선도한다.

- 기업·경제의 지속적인 혁신을 이끌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앞장선다.

-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국민이 더 나은 삶을 향유하도록 노력한다.

-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제도를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한다.

- 세계시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을 다짐한다.

- 우리는 본 선언의 무거움을 엄중히 인식하고 실천을 다짐한다.

◈기업 단체의 존재 이유

2016년 12월6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정조사’에 대기업 총수 9명이 출석했다. 이날의 화두는 전경련 해체였다. 하태경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전경련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전경련에 내는) 기부금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하 의원은 “제가 속한 새누리당도 이번 사태에 대해 공범이라고 보고 있다. 새누리당 해체론도 나온다”며 “먼저 88년 5공 청문회 때 나온 분들의 자녀들이 여섯 명이나 있다. 정경유착의 고리가 여태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번에 끊어야 한다. 매개물이었던 전경련을 해체하겠다는 말이 오늘 나와야 한다”며 “전경련이 대한민국 발전에 많은 일 했다. 너무 성공해서 이제는 문을 닫아야 한다. 과거의 성공의 습관, 아직도 안주해서 이제는 최순실의 부역자가 돼 버렸다”고 성토했다.

이후 대통령이 탄핵되고 국정농단 사건 연루자들에 대한 사법처리가 진행됐다. 대기업들은 전경련에서 탈퇴했고, 전경련은 해체 직전까지 몰렸다. 

재벌 기업들의 이익단체인 전경련은 박정희 시절부터 박근혜 시절까지 친재벌 정책을 펼친 데 대한 대가로 정권에 금전 또는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창구 역할을 해왔다. 국세청 용어사전을 빌면 정경유착은 <정치권과 기업이 서로 비정상적이고 불건전한 방식으로 상부상조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기업은 정치인들에게 불법적인 정치헌금을 하고, 정치권은 그에 상응하여 기업들에게 사업상 특혜적 조치를 취해 주는 것을 말한다.>

전경련이 지금껏 해온 일을 살펴보면 재벌 이익 옹호가 대부분이다. 전경련의 주장을 요약하면 <각종 규제를 없애야 하고, 최저임금은 올리면 안 되고, 기업을 위한 세제 등 각종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게 전부다. 재벌 기업을 옹호하기 위해 태어난 조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벌의 이익을 추구했다. 정치권에 돈을 대고 그 대가로 특혜를 챙긴다. 수십년 동안 봐온 스토리다. 전경련이 한경협으로 이름을 바꾸고 윤리위원회를 신설한다고 해도 근본은 바뀌지 않는다. 재벌은 이미 너무나도 강력한 권력을 지니고 있다. 재벌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이익단체가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공공의 이익을 해치려 들 때 이를 견제할 세력은 너무도 미미하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하게 마련이다. 전경련, 아니 한경협이 새로운 재벌 기업의 이익단체로 자리매김하려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내·외부의 견제 장치를 튼실하게 만들어 놓는 게 우선돼야 한다. 재벌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아직도 싸늘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