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한국 동물원에서 아시아 호랑이 1%가 죽어나간다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3.10.12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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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과 동물복지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10일 <최근 5년간 전국 동물원에서 멸종위기종 약 2000마리 폐사>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사라져가는 동물을 보호하는 게 핵심 기능 중 하나인 동물원에서 귀한 멸종위기종 동물이 2000마리나 폐사했다니요. 뉴스톱이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출처: 윤건영 국회의원
출처: 윤건영 국회의원

◈동물원에서 멸종위기 동물 2000마리 폐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인 윤 의원은 환경부에 최근 5년 동안 전국 동물원에서 죽은 멸종위기종 동물에 관련된 자료를 요청해 제출받았습니다.

자료를 보면 2019년부터 올해 8월까지 동물원에서 죽은 멸종위기종 동물은 1983마리로 나타났습니다. 동물들도 태어나면 죽게 마련이죠. 그래서 동물원에서 살고 있던 멸종위기종 동물들도 노쇠해 죽고 병에 걸려 죽습니다. 그런데 사고나 질병으로 죽은 동물이 많다면 동물원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 됩니다.

윤건영 의원은 “보호해야 할 멸종위기종이 정작 동물원에서 자연사가 아닌 질병 등으로 폐사하고 있는 현실이 확인됐다”며 “동물원에서 사육하는 멸종위기종에 대한 적절한 환경 조건이 조성되고 있는지 등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 근거로 윤 의원은 전국 동물원에서 폐사한 천연기념물 동물의 현황을 제시했습니다. 최근 5년 동안 자연·노령사로 폐사한 천연기념물은 136마리였는데, 병사·질병 및 사고사로 폐사한 천연기념물은 71마리로 확인됐습니다. 굉장히 동물이 동물원에서 병에 걸리거나 사고로 죽는다는 뜻이죠.

환경부가 윤건영 의원실에 제출한 동물원 멸종위기 동물 폐사 관련 정보의 일부
환경부가 윤건영 의원실에 제출한 동물원 멸종위기 동물 폐사 관련 정보의 일부

◈원자료 들여다보니... 호랑이 33마리 폐사

윤건영 의원실에 요청해 보도자료를 만든 원자료를 확보해 분석했습니다. 광역지자체별로 관내의 동물원마다 폐사한 멸종위기종 동물의 종(種)과 폐사일, 폐사원인, 멸종위기종 구분 등을 집계했습니다.

최근 5년 동안 우리나라 동물원에서 죽은 호랑이는 33마리로 나타납니다. 아시아 지역에서 생존하고 있는 전체 야생호랑이 개체수가 3000마리 정도로 추산되는 것에 비하면 놀랄만큼 많은 숫자입니다. 이 가운데 19마리는 질병 또는 사고로 죽거나 안락사 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자는 최근 5년 동안 25마리가 죽었습니다. 이 가운데 20마리의 사인은 질병, 사고 또는 안락사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5년 동안 동물원에서 죽은 멸종위기종 1983마리 가운데 사인이 자연사로 분류된 개체는 679마리(34.2%)에 불과했습니다. 사인이 노령(129마리, 6.5%)으로 기재된 사례와 합쳐도 40.7%에 그칩니다. 동물원에서 죽는 멸종위기 동물 10마리 가운데 6마리는 질병 또는 사고가 원인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여기에도 철학적 논쟁이 달라붙을 수 있습니다. 야생에서 살아가는 동물은 먹이경쟁, 천적, 날씨 및 계절·기후변화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습니다. 따라서 야생에서 사는 동물들이 안정적으로 먹이를 공급받고 천적에게 습격당할 우려가 없는 동물원 동물보다 수명이 짧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물복지를 외치는 사람들은 동물원 동물들이 야생에서의 본성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는 서식환경이 절실하다고 주장합니다.

출처: 환경부
출처: 환경부

◈환경부, “법 개정되면 나아질 것”

윤건영 의원이 보도자료를 배포한 뒤 많은 언론사가 이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그러자 동물원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환경부는 즉각 해명에 나섰습니다. 환경부는 10일 설명자료를 배포하고 “오는 12월14일부터 동물원·수족관 허가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동물원수족관법(이하 동물원법) 전부개정안이 시행될 예정”이라며 “개정안은 동물 특성에 맞는 서식환경 제공, 전문 검사관을 통한 허가기관 전문성 강화, 안전·질병 관리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앞으로 동물의 생태특성을 고려한 사육시설과 적정한 전문인력이 갖춰지면서 동물복지가 전반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새로 고친 동물원법이 시행되면 동물원에 살고 있는 동물들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고 내다본 겁니다. 과연 그럴까요?

개정 동물원법은 현재 등록제인 동물원 개설 요건을 허가제로 바꾸는 게 핵심입니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이 법의 개정이유를 찾아봤습니다.

동물원ㆍ수족관의 등록과 관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현행법의 제정(2016년) 이후 동물원ㆍ수족관이 국가 관리체계로 편입되었으나, 현행 규정상 동물원 및 수족관은 등록기준 충족만으로 설립이 가능하여 사람과 동물의 질병ㆍ안전관리에 취약하며, 상업적 목적에 치중한 일부 소규모 동물원ㆍ수족관의 운영ㆍ관리상 문제도 지속 제기되고 있음.

또한,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휴원 이후 보유동물 방치 문제, 돌고래 등 동물원ㆍ수족관 보유동물 폐사와 같은 일련의 사례로 인하여 동물원ㆍ수족관 보유동물의 복지 및 관리 강화에 대한 국민적 요구는 더욱 높아지고 있지만, 현행법은 이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실정임.

이에, 동물원ㆍ수족관 등록제를 허가제로 전환하면서 동물원ㆍ수족관의 허가기준을 강화하고, 동물 이동전시 금지 등을 통한 동물복지 제고 및 질병ㆍ안전 관리 강화 등 전반적인 동물원ㆍ수족관 관리체계를 강화하려는 것임.

(국가법령정보센터 동물원법 개정문)

일단 말은 그럴싸합니다.

출처: 서울동물원 홈페이지
출처: 서울동물원 홈페이지

◈동물원에 가보셨나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번듯한 동물원은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 안에 있는 서울동물원입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미국 동물원 수족관 협회(AZA) 인증을 획득했습니다. AZA인증은 동물복지, 보전연구, 생태교육, 사육, 안전관리 등 동물원 운영 전반의 우수성을 평가하는 국제인증제도입니다. 그러나 이 번듯한 서울동물원도 종에 따라 동물의 자연스런 습성을 발현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비좁습니다. 동물원 측은 행동풍부화 프로그램 등 대책을 마련하고는 있습니다. 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은 동물원 동물이 자연스러운 행동(종 고유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동물에게 선택권과 통제권을 제공함으로써 행동적 욕구 및 신체적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하는 과정입니다.

좁은 곳에 갇혀 사는 동물들은 스트레스를 받아 여러가지 이상행동을 나타냅니다. 철창에 갇힌 하이에나가 끊임없이 철장 주변을 맴돌고, 새들은 스스로 깃털을 뽑는 것 등이 해당됩니다.

동물원 경영이 어려워지면 동물들은 무방비 상태에 노출됩니다. 얼마전 공분을 샀던 ‘갈비사자’가 그 사례입니다. 어린이들에게 먹이주기 체험장으로 인기가 많은 동물카페 형태의 소규모 동물원도 동물복지의 사각지대입니다. 끊임없이 사람에게 노출돼 있고 좁은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입니다. 동물원에서 새끼 동물들을 여기저기로 옮겨가며 전시하거나, 사람들이 올라타도 방치하는 등의 행위도 동물에게는 큰 스트레스를 준다고 합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2019년 보고서를 통해 동물 체험 카페의 실태를 파헤쳐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출처: 2019 전국야생동물카페 실태조사보고서, 동물복지정책연구소 어웨어/휴메인벳
출처: 2019 전국야생동물카페 실태조사보고서, 동물복지정책연구소 어웨어/휴메인벳

◈바뀐 법 시행되면 어떻게?

12월 시행될 개정 동물원법이 이전에 비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동물원에 살고있는 동물의 복지 증진을 국가·지자체 및 동물원 운영자의 책무로 반영했다는 점입니다. 이전까지는 적정한 서식환경을 제공할 의무만 규정하고 있었는데요. 새법은 “(동물원)보유 동물의 복지 증진 및 생물다양성 보전을 통해 생명존중 가치를 구현하고, 야생생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현재 등록제인 동물원 운영이 허가제로 바뀝니다. 보유동물 종별 서식환경 기준 및 동물원 또는 수족관의 규모별 전문인력 기준 등을 충족해야 동물원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동물원 바깥으로 동물을 이동시켜 전시하거나 동물에게 공포와 스트레스를 주는 올라타기, 만지기, 먹이주기 등의 행위를 하거나 관람객에게 시킬 수 없습니다. 종전 규정에 따라 동물원 등록을 한 경우 새법에 따른 허가를 받은 것으로 간주하지만, 2028년 연말까지 새법에 따른 허가 요건을 갖춰 허가를 받도록 정했습니다. 먹이주기 체험을 하던 동물원들은 이제 2028년 이후에는 찾아볼 수 없게 되는 셈이죠.

 

◈남은 과제와 반발

동물원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드넓은 야생에서 살던 동물을 좁은 동물원에 가둬놓고 인간의 구경거리로 만드는 것에는 그 어떤 동물복지도 깃들 수 없다고 하는 주장이죠. 그러나 동물원의 순기능을 주장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동물원은 보전, 연구, 교육, 위락의 4대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야생에서 멸종위기에 빠진 동물들이 명맥을 이을 수 있도록 돕고(보전), 동물의 생태와 습성을 이해하고(연구), 일반인들이 동물을 접할 기회를 부여하고 동물에 관한 지식을 전파하며(교육), 동물원에서 휴식과 즐거움을 느끼는(위락) 기회를 갖게하는 것이죠.

논란의 출발점은 ‘과연 동물원에서 사는 야생동물이 야생의 본성을 발현시킬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는가?’일 겁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좁은 철창에 동물을 가둬놓고 먹이를 던져주는 방식으로는 바뀌어가는 세상에서 도태될 게 분명합니다. 자연스럽게 적은 비용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방식의 민영 시설은 점점 더 존폐 위기로 몰릴 겁니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영 시설도 동물복지를 구현하면서 수지를 맞춰나가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받아들게 된 겁니다.

새법은 공영동물원이 기부금품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놨습니다. 동물원이 남아있기를 바라는 분들은 동물원에 기부하는 걸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동물복지 구현에는 비용이 수반되지만 동물원이 없어지기 바라는 사람들은 자신의 세금이 동물원에 쓰이는 것을 원치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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