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체육회의 '꼼수', '해병대 캠프' 비판 기사가 줄었다

  • 기자명 최민규
  • 기사승인 2023.12.21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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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해병대캠프' 언론보도 분석해보니

대한체육회는 12월 18일부터 20일까지 포항 해병대 1사단에서 ‘원 팀 코리아’ 행사를 치렀다. 내년 파리 올림픽에 참가할 국가대표 선수들이 참가했다. 협회와 경기단체 임직원을 포함해 500여 명이 참가했다.

‘해병대 캠프’는 많은 언론 매체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정치적인 이슈에서는 진보, 보수로 갈라지는 매체들이 이 문제에서는 거의 일치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보도에서 비판의 비중은 시기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왜 그랬는지를 12월 20일까지 관련 보도를 타임라인을 따라 살펴봤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등록된 이 주제 관련 기사 182건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보도 성격을 ‘(사실)전달’, ‘옹호’, ‘중립’, ‘비판’ 등 네 개 카테고리로 분류했다.

대한체육회 제공
대한체육회 제공

▶10월 8일 : 발단

발단은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10월 8일 발언이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산 기자회견에서 “내년에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입촌하기 전에 모두 해병대 극기훈련을 받게 하겠다”고 했다. 아시안게임 메달 획득 목표에 미달한 가운데 대책 가운데 하나로 언급했다.

이 회장의 기자회견을 다룬 기사는 모두 17건. 대회 전체를 결산하는 만큼 ‘해병대 캠프’ 자체가 보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았다. 16건을 ‘사실전달’로 분류할 수 있다. <한겨레신문>이 [“국가대표에 해병대 극기훈련” 회장 발언, 기성 체육 현실이다]라는 제목으로 비판 기사를 송고했을 뿐이다.

하지만 다음날인 9일 관련 7개 기사 중 5개는 뚜렷한 비판 논조였다. <경향신문>는 “새벽 훈련·산악 훈련에 이은 해병대 훈련은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까. 한 가지 분명한 건, 이 회장의 ‘나도 받겠다’는 공약은 선수 경기력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라고 썼다. CBS의 인터넷서비스인 <노컷뉴스>는 “요즘 시대에 국가대표에게 해병대 극기훈련을 시키겠다니”라는 제목을 달았다. 스포츠전문 온라인 매체 <OSEN>은 “이기흥 회장은 ‘옛날 방식으로 하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정신력만을 강조하는 전근대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한 셈”이라고 썼다.

10월 10일 관련 기사 네 건은 모두 이 회장과 대한체육회에 비판적이었다. <조선일보>는 이날 발행된 기사에서 “이쪽 분야는 북한을 따라갈 국가가 없다. 무엇이든 ‘정신력이면 못 할 게 없다’고 하는 나라다. 뜨거운 마음만으로 성적이 나온다면 북한이 모든 종목에서 우승했을 것이다”라고 썼다.

9일부터 19일까지 관련 보도 16건 중 13개가 ‘비판’ 성격이었고, 3개는 ‘사실전달’이었다. 비판 기사 비중은 81.3%에 달했다.

이후 이 이슈는 사그러들었다. 11월까지 관련 기사는 두 건뿐이었다. <한국일보>는 이달에 일본 스포츠와 한국 스포츠의 실정을 비교한 <K 스포츠의 추락, J 스포츠의 비상>이라는 대형 기획을 했다. 이 기획에 포함된 기사 두 건은 이 회장의 ‘해병대 캠프’를 다뤘다. 모두 비판 성격이었다. 한 기사에서는 “1960년대 일본 레슬링협회장이었던 하타 이치로가 선수들에게 동물원의 사자와 눈싸움하거나, 한겨울에 바다수영을 하도록 했다", "요즘에는 그런 정신력 훈련법을 적용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가사하라 겐지 일본 올림픽위원회(JOC) 강화부장의 인터뷰를 실었다.

 

▶12월 6일 : 논란의 재점화

잠잠하던 이슈는 12월 6일 재점화됐다. 이날 <일간스포츠>는 “체육회장 공언했던 '해병대 캠프', 현실 된다”는 단독 보도를 했다. 대한체육회가 산하 경기단체에 공문을 보내 해병대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전까지 언론 매체들이 했던 비판을 무시한 셈이다. <일간스포츠> 보도를 시작으로 이날에만 22건 관련 보도가 쏟아졌다. 이 가운데 21건이 대한체육회를 비판하거나, 비판 의견을 소개하거나, 추운 날씨를 문제 삼았다. 비판 없는 단순 전달 기사는 <YTN>의 보도 한 건에 불과했다. 여러 매체들의 기사 작성 소스가 되는 연합뉴스 기사도 “이 회장은 항저우 아시안게임 해단식 때 2024 파리 올림픽을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차원에서 자신을 포함해 국가대표 전원이 해병대 훈련을 받을 예정이라고 밝혀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훈련 효과를 장담할 수 없을뿐더러 '구시대적 리더십'이라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고 보도했다.

<TV조선>은 “12월 중순인 기간을 감안하면 추운 날씨로 인한 부상 위험도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고, <MBC>는 “선수들이 다칠까 봐 불안하면서도, 참석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올까 봐 안 할 수도 없다”는 한 종목 지도자의 인터뷰를 소개했다.

다음날부터 11일까지 네이버에 등록된 관련 기사 9건 가운데 7건이 비판 성격이었다. 12월 7일엔 <중앙일보>가 “지금이 군사정권 때인가? 시대 거스르는 국가대표 ‘해병대 훈련’”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12월 8일에는 <노컷뉴스>는 관계자를 통해 “올림픽은 전쟁”이라고 해병대 캠프 취지를 밝힌 대한체육회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다음날엔 <MBC>가 다소 이례적으로 전날 <노컷뉴스> 보도를 인용해 역시 대한체육회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6일부터 시작하면 전체 기사 31건 가운데 90.3%인 28건이 ‘비판’ 성격이었다.

 

▶12월 14일 : 성공하지 못한 간담회

여론이 악화되자 대한체육회는 12월 14일 출입기자 간담회를 열고 ‘해병대 캠프’에 대한 설명을 했다.

간담회 뒤 보도는 내용을 전달하는 게 우선이다. 통상 이런 보도에 충실한 <연합뉴스>는 “대한체육회는 구시대적인 훈련이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부상을 고려해 육체 단련을 통한 정신력 강화 프로그램은 지양한다’고 말했다”는 내용을 기사에 싣는 등 비판적인 견해에 대한 소개를 했다. 여러 매체가 비슷한 태도였다.

조금 더 비판 톤을 높인 보도도 있었다. <경향신문>은 “반대 여론에도 체육회가 이같은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고 보도했고 <연합뉴스TV>는 “대한체육회가 해병대 캠프로 또 한 번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어 보입니다”고 했다.

14~16일 기간 관련 보도 13건 가운데 ‘비판’ 성격은 69.2%인 9건이었다. 대한체육회 입장에서 만족하기 어려운 간담회였다.

 

▶12월 18~20일 : 줄어든 비판, 그리고 꼼수

여론의 비난 속에 ‘해병대 캠프’는 18일부터 20일까지 진행됐다. 그런데 정작 캠프가 시작되자 비판 보도 비중이 크게 줄었다.

12월 18일 해병대 캠프를 다룬 기사는 모두 43건이나 됐다. 그런데 비판 기사 비율은 32.6%에 불과했다. 다음날엔 44건으로 전날보다 한 건 늘었다. 비판 기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20.5%로 더 떨어졌다.

언론사들의 비판 정신이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으로 보기는 어렵다. 우선 통신사를 위주로 캠프를 다룬 사진 기사가 많았다. 사진 기사에도 텍스트가 붙지만 대개 사진 내용을 설명하는 건조한 문구다. 사진 기사 개수는 18일 11건, 19일에는 21건이었다. 사진 기사를 제외하면 비판 기사 비중은 18일 43.8%, 19일 39.1%가 된다. 그래도 이전 시기보다는 낮다.

또다른 이유가 있다. 대한체육회는 ‘해병대 캠프’에 언론사 취재를 불허했다. “대규모 인원이 입소해 통제와 관리가 어려워 취재가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한 통신사 기자는 “과거 비슷한 행사에서 취재가 불허된 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현장 접근이 원천 차단돼 있으니 비판 기사도 작성하기 어렵다.

대한체육회 보도자료 갈무리
대한체육회 보도자료 갈무리

대신 대한체육회는 보도자료와 사진자료를 각 매체에 보냈다. 캠프 시작 뒤 기사량이 급증한 이유와 무관치 않다. 현장 취재보다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군소 언론사들은 대한체육회 보도자료를 무비판적으로 전달했다. 이런 매체들은 매출에서 포털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일정 개수 이상 기사를 포털에 보내야 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비판 보도 비중이 줄어든 것이다. 한 방송사는 18일 비판 기사를 냈다. 이 방송사 기자는 “대한체육회에서 보낸 영상이 너무 웃겨서 리포트를 작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유쾌한 웃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언론의 비판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언론의 취재 기회 자체를 막는 것이다. 이 점에서 대한체육회의 ‘꼼수’는 그럭저럭 효과를 냈다. 하지만 오래 가지는 않았다. 캠프 최종일 작성된 관련 기사 25건 가운데 ‘비판’으로 분류할 수 있는 기사는 72.0%인 18건이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이날 보도된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해병대 캠프’에 대해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언급했다. 여기에는 이기흥 회장이 박근혜,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문체부와 어느정도 껄끄러운 관계였다는 맥락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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