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 일본 덮친 강진... 동해 쪽 시카 원전 안전 논란

  • 기자명 윤재언
  • 기사승인 2024.01.03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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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원 근처 시카 원전 둘러싼 논란 재연
일본 정부 적극적 원전 추진 정책에 제동?

새해 첫날 오후 4시쯤 일본 노토반도를 중심으로 진도7(일본 기준, 규모는 7.6, 진원은 아주 얕은 곳으로 판명, 진도는 실제 흔들림을 나타내는 지표)의 강진이 덮쳤다. 해당 지역에서 지난해 5월 한 차례 강진이 찾아온 바 있기 때문에, 최근 지각변동이 활발한 결과로 보인다.

이번 지진은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처음으로 ‘대형 쓰나미 경보(大津波警報, 3m 이상의 쓰나미가 예상될 때 발령)’가 내려져 당시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당초 쓰나미로 인한 피해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하루 뒤 심각한 피해가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아래 이시카와현 스즈시 영상).

여기에 강진으로 인한 가옥과 건물 붕괴, 화재 등으로 큰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여전히 건물 등에 깔린 사람이 적지 않아 피해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 신문 헬기가 돌아본 이시카와현 스즈시 쓰니미 피해 현장

진원 근처 시카 원전은 이상 없음?

이번 노토반도 지진과 관련해 다시금 논란이 된 일이 있다. 진원 바로 근처에 있는 호쿠리쿠전력(北陸電力) 소유의 시카(志賀) 원전의 이상 여부다(아래 사진). 시카 원전은 1호기가 1993년, 2호기가 2006년 영업 운전을 개시했다. 비교적 최근 가동이 시작된 편이나,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다른 원전과 동일하게 가동을 멈춘 상태였다(아래 구글 지도). 시카초(志賀町)는 최대 진도7을 기록한 대지진 최대 피해 지역 중 하나다. 

시카 원전 모습(출처: 호쿠리쿠전력, https://www.rikuden.co.jp/outline1/location.html))
시카 원전 모습(출처: 호쿠리쿠전력, https://www.rikuden.co.jp/outline1/location.html))
원전 입지(출처: 구글지도)
원전 입지(출처: 구글지도)

지진이 발생한 당일 저녁, 최초 기자회견에서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시카 원전에 “이상이 없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두 번째 회견에서는 원전의 변압기에서 화재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여전히 “이상은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이는 원자력규제위원회(규제위) 설명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규제위는 하야시 관방장관의 두 번째 기자회견 전, 시카 원전 1호기에 저장돼 있던 사용 후 연료풀 물이 쏟아졌고, 변압기 화재로 냉각 펌프가 일시정지했다고 발표했다. 다만 펌프 자체는 30-40분 후에 재가동됐고, 주변 방사선량에 이상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외부 전원도 문제 없이 확보됐다는 것이 규제위 설명이었다.

무엇을 ‘이상’으로 볼지에 따라 상황인식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진으로 시카 원전에 '문제'가 발생한 것은 팩트로 보인다.

이후 호쿠리쿠전력은 자체조사를 거쳐 지진 발생 1일 뒤 발표를 내놓는다.

변압기 화재 발생은 기름 누출과 변압기의 일부 파손에 의한 문제를 작업원이 화재 발생으로 오인했다고 정정한다. 다만 1호기 변압기와 2호기 변압기 각각에서 기름 누출(누출량은 3.6톤, 3.5톤)이 있었던 영향으로, 일부 외부 전원을 이용할 수 없게 됐으나 다른 계통 외부전원을 이용해 사용 후 핵연료 냉각 풀 기능 등은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상용 디젤 발전기가 7일분 연료가 확보된 점도 강조했다. 또한 지진 영향으로 냉각 풀 물이 넘치는 일도 있었지만 문제는 원자로 건물 풀이 있는 층에 머물렀기 때문에 외부 영향은 없다고 했다(아래 사진).

지진 후 시카 원전 내부 상황(출처: NHK)
지진 후 시카 원전 내부 상황(출처: NHK, https://www3.nhk.or.jp/news/html/20240102/k10014306991000.html)

원전 재가동 박차 가한 일본 정부와 경제계

문제는 이 같은 원전을 둘러싼 그 동안의 일본 정부와 경제계의 움직임이었다.

기시다 정권 이전부터 대형 전력업체(민영화 및 지역 독점 형태)는 후쿠시마 사태 이후 정지된 원전들의 재가동에 사활을 걸어왔다. 전력업체들은 원전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거둬오다 재가동으로 타격을 받았다. 이들은 강화된 규제기준에 불만을 표하면서도 거액을 들여 새 규제기준에 맞춰 시설을 개량해왔다.

기시다 정권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연료비 급등을 이유로 노후 원전 연장 재가동에 더해 신설 방침까지 내건다. 장기적인 폐로를 목표로 했던 정책을 급선회한 것이다. 원전 재가동을 적극적으로 견제하던 규제위 방침도 정부 정책에 맞춰 대폭 전향적으로 바뀌었다.

시카 원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호쿠리쿠전력의 재가동 신청으로 현재 규제위가 2호기에 대한 재가동 심사를 진행 중이다. 이에 호응하듯 지난해 11월 게이단렌 회장 도쿠라 마사카즈(스미토모 화학 출신)는 시카 원전을 직접 방문해 재가동 촉구 메시지를 냈다. “조기 재가동을 기대한다”며 동행한 기자들에게 “재가동 심사 도중이긴 하나 원전에 대한 안전 의식과 노력을 직접 볼 수 있었다”고 현장의 조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시카 원전 재가동 심사에서 중요한 지표가 된 것이 원전 부지 내 단층 문제다(아래 그림).

시카 원전 밑의 단층(출처: 도쿄신문, https://www.tokyo-np.co.jp/article_photo/list?article_id=234494&pid=930453)
시카 원전 밑의 단층(출처: 도쿄신문, https://www.tokyo-np.co.jp/article_photo/list?article_id=234494&pid=930453)

해당 단층이 실제 움직일 가능성이 있는 활성단층인지 아닌지가 핵심 쟁점이었는데, 지난해 3월 규제위는 “부지 내에 활성단층은 없다”는 입장을 발표한다.

이는 2016년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꾸려진 팀이 1호기 부지를 조사한 뒤 “활동성을 부인할 수 없다”는 잠정 결론을 낸 데 대한 사실상의 번복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때 규제위는 조사결과를 수용한 바 있다.

지난해 심사 뒤 이시와타리 아키라 규제위원(지질학자)은 호쿠리쿠전력이 제출한 방대한 자료를 언급하며 “이에 기반해 다시 평가하니 활성단층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증거를 얻을 수 있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대해 지역 주민들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특히 시카 원전이 내진 설계상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던 사람들은 큰 우려를 표명하던 상황이었다(아래 사진). 

시카 원전의 폐로를 요구하는 시민 소송단(출처: 시카원전 폐로 소송 원고단, https://shika-hairo.com/wp-content/uploads/2023/12/592f1378a7144ec8af83c7d3b24a475c.jpg)
시카 원전의 폐로를 요구하는 시민 소송단(출처: 시카원전 폐로 소송 원고단, https://shika-hairo.com/wp-content/uploads/2023/12/592f1378a7144ec8af83c7d3b24a475c.jpg)

8년간 임계사고 은폐했던 호쿠리쿠전력

호쿠리쿠전력 측은 정부의 새 방침에 맞춰 재가동 여론을 모으기 위해 필사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지난해 6월 18일 발표한 ‘새로운 기념일 제정’이 그 이벤트의 하나였다. 이 날을 ‘안전과 공정, 성실을 맹세하는 날’로 정한 것으로, 24년 전 같은 날 일어난 사고와 관련이 있었다.

1999년 6월 18일, 정기 점검을 위해 멈춰 있던 시카 원전 1호기에서 원자로 내 출력 조정을 하는 제어봉 3개가 무너져내리는 사고가 났다. 이로 인해 핵분열이 멈추지 않는 임계 상태(대량의 방사능 방출 상태)에 달했으나, 호쿠리쿠전력은 그 뒤 8년 동안 정부와 지자체에 해당 사고에 대해 아무런 보고를 하지 않고 은폐했다.

작업 절차에 문제가 있어 발생한 호쿠리쿠전력 측의 명백한 과실로 주위 지역에 큰 피해를 끼칠 뻔했으나, 당시 원전 소장이 참가하는 회의에서 재발방지는커녕 정보가 새 나가지 않도록 은폐를 결정한다. 결국 2007년 사내 재조사에서 해당 문제가 공표되자, 일본 정부는 시카 원전 1호기에 대한 운전 정지와 재발방지책을 명령한다. 이런 일까지 벌인 호쿠리쿠전력이 갑작스레 시카 원전사고와 은폐 조치를 잊지 않겠다며 기념일 제정 발표를 한 것이다.

10주년, 20주년과 같이 의미 있는 해가 아님에도 2023년을 시작점으로 한 데 대해서는 재가동을 앞둔 ‘여론 대책’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이번 지진이 원전 입지 지역에서 벌어졌고, 대형 쓰나미 경보까지 발령됐기에 당분간 재가동 추진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민들의 우려가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원전에 발생한 ‘이상’에 관해서도 명확하게 설명이 안 되고 있기에 여론을 중심으로 의혹은 더 퍼지고 있다.

시카 원전은 동해 바다 맞은편에 한국이 위치해 있다. 후쿠시마 사고 이상으로 이 지역 원전 문제 동향에 한국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구글 지도 갈무리
구글 지도 갈무리

실제 한국 언론에도 보도되듯 호쿠리쿠 지역, 즉 니가타부터 후쿠이까지 일본북부 해안 지역에는 시카 원전 외에도 다수의 원전이 밀집해 있다. 후쿠이현에 위치한 노후 원전 중 몇 기는 이미 규제위 재가동 허가가 내려져 운전 중에 있다. 원전 재가동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소송 제기도 역부족인 상황이다. 이번 지진은 일본 원전에 안전한 입지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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