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의 희생이 떠받치는 일본 학교체육의 현실

  • 기자명 윤재언
  • 기사승인 2023.03.15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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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활동' 취급받으며 보상없이 일하는 부활동 고문 교사들
업무부담 커지면서 젊은층의 교사지원경쟁률 사상최저치 기록

일본이 각종 스포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때마다 생활체육, 학교체육에 대한 한일 비교가 곧잘 거론된다. WBC에서 한국과 일본의 실력 차가 그대로 드러나자, 일본과 한국의 고교야구 기반 차를 지적하는 상투적인 반응도 나온다. 

일본 내 학교 체육, 각종 과외 활동이 활발한 것은 사실이다. 이를 가리키는 말이 부활동(보통 부카츠部活라고 함)이다. 스포츠 외에도 취주악부 등 문화 관련 활동을 포괄한다.

2018년 도쿄대와 교육기업 베넷세가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대상 고교생 39.0%가 운동부에 가입해 있었고, 남학생은 48.3%가 가입했다. 여학생은 30.2%였다. 고교 1학년 남학생은 63.7%가 가입해 있었다. 다만 고3이 되면 가입률이 훨씬 떨어지는데, 이는 한국과 같이 대입의 영향으로 판단된다. 조사 대상 중학생의 운동부 가입율은 66.2%에 달했다. 이를 보면 일본에서 운동부 참가는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같은 학교 가운데는 한국 운동부처럼 장래 프로나 올림픽 선수 양성을 목표로 본격적으로 선수를 키우는 곳도 있는 반면, 아마추어 느낌으로 하는 곳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전국 고교야구대회 고시엔대회에는 단골로 올라오는 학교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과거 오사카 야구 명문고 PL학원이 유명한데, 이 학교는 거듭된 학교폭력과 체벌이 문제가 돼 현시점에는 활동을 중지한 상황으로 사실상의 폐부라는 얘기도 나온다. 

일본 고시엔 대회 풍경(출처: https://koshien-rekishikan.hanshin.co.jp/event/senbatsu2023/)
일본 고시엔 대회 풍경(출처: https://koshien-rekishikan.hanshin.co.jp/event/senbatsu2023/)

 

여담이지만 필자가 직접 체벌을 목격한 적도 있다.

2009년 기타큐슈를 여행할 때 일로, 주택가 인근 야구장에서 소년 야구 시합이 벌어지고 있었다.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선수들과 50-60대로 보이는 남자 감독이 있는 팀이었는데, 선수 하나가 제대로 플레이하지 못했다고 판단됐는지, 덕아웃으로 돌아온 그 아이의 뺨을 감독이 사정없이 때렸다. 관중 자리에는 부모로 보이는 이들도 있었으나 딱히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규슈가 일본에서도 특히 가부장적 문화가 남아 있는 지역으로 불리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대놓고 폭력을 휘두르는 일은 한국에서도 잘 없었기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다시 원래 얘기로 돌아가자. 이처럼 일본 문화의 하나가 된 학교 부활동은 어떤 식으로 지탱되고 있을까.

2년 전 도쿄 내 고등학교에서 단기 수업을 담당할 일이 있었다. 당시 해당 학교에서 관리 역할을 맡은 남자 선생님은 늘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그래서 담당이 체육이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 학생이 “저 선생님 담당 과목은 수학”이라고 알려줬다. 의외라 생각해 왜 운동복을 입고 있는지 물으니 “축구부 고문 선생님이라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원래부터 부활동 고문을 운동과 별 관련 없는 교사들이 맡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현장에서 다시금 느낀 순간이었다.

이 에피소드는 일본 부활동의 저력과 구조적 문제를 동시에 보여준다. 일선 교사들이 학생들의 부활동을 지원하는 ‘미풍양속’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일까?

단순하다. 부활동 고문 역할이 대부분 업무 시간 외에 이뤄지고 있음에도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고, 오히려 자비를 들이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활동의 큰 부담은 일본 젊은층이 교사 지원을 꺼리는 사회적 문제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OECD가 2019년 발표한 교사 노동시간 통계는 일본 교사들의 부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1주일간 노동시간이 56시간으로 회원국 중에서 가장 길었는데, 그 가운데서 눈에 띄는 것이 과외활동 지도시간이다. 7.5시간을 기록해 다른 나라의 평균 1.9시간의 3배를 넘었다. 교육자라는 명목으로 과도한 부담을 지고 있는 게 현실인 셈이다.

교사들의 높은 업무부담을 전하는 일본 방송(NNN)의 뉴스 영상. 100만이 넘는 조회수로 일본인들의 높은 관심을 알 수 있다.(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O8qBxloIOMU)
교사들의 높은 업무부담을 전하는 일본 방송(NNN)의 뉴스 영상. 100만이 넘는 조회수로 일본인들의 높은 관심을 알 수 있다.(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O8qBxloIOMU)

 

관련된 최근 기사를 보면 자비로 부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모습도 확인된다. 예를 들어, 연습 시합 참가를 위해 기름값, 합숙비, 대회 참가비를 부담해야 한다든지, 운동부실에 있는 트레이닝 머신을 사는 데도 교사가 돈을 낸 사례가 있었다. 모든 학교가 이런 상황은 아니겠으나, 부활동에 정부나 학교 측 지원이 이뤄지는 일이 일반적이지는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앞서의 도쿄대, 베넷세 자료를 다시 보면 교사들이 느끼는 구체적인 부담이 드러난다. ‘교재준비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없다’, ‘작성해야 하는 사무서류가 많다’는 데 대해 70% 이상의 교사들이 긍정했고, 조사 대상 중학교 교사의 63.6%, 고교 교사의 49.7%가 ‘부활동 지도가 부담’이라고 대답했다. 그렇기에 ‘외부지도원 임용’에 대해서는 전체의 80% 이상이 찬성하고 있고, ‘부활동 지도는, 지역사회나 민간기업에 맡겨야 한다’는 데 대해서도 반수 이상이 긍정적으로 답했다. 

특히 최근의 문제는 부담이 점차 젊은 교사에게 가중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있었던 젊은 교사들의 좌담회에서는 한 교사가 “학교에서 어떤 부활동을 맡게 될지는 순전히 ‘뽑기’”라면서 “거절을 못하는 건 아니지만 상당히 어렵다”고 밝혔고, 축구선수 경험이 있는 다른 교사는 “일단 맡아서 하다보니 지역 축구협회 지부장까지 떠맡아 부담이 커졌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교사들의 희생이 반쯤 강제되는 구조가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2016년에는 “부활동 고문을 맡을지 선택권을 교사에게 달라”는 인터넷 청원운동에 3개월 안되는 시기 2만명 이상의 서명이 모이는 일도 있었다.

이 때문에 공립학교 교원채용시험 경쟁률은 매년 내려가며 지난해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교사들의 부담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저출산 고령화 기조에도 일본 정부가 채용 인원을 늘려온 데 반해, 젊은층의 기피가 영향을 끼친 이중적 요인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와 학계에서도 각종 부담경감책을 제시하고 있으나, 뾰족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교내 부활동이 당연하다는 일본 사회 인식과, 그동안 교사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성립돼온 구조가 맞물려 단기간 큰 개선책이 나오기는 어려울 듯하다.

일본 정부는 2018년 부활동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학기 중에는 최소 2일의 휴식을 권고했다. 구체적으로 평일 중 하루, 주말 중 하루를 쉬도록 하고, 주말에 대회가 있을 경우 평일을 대체 휴일로 하라는 내용까지 담았다. 시간에 대해서도 길어도 하루 2시간 정도, 학교 휴업일에는 3시간 정도로 하되, 가능한 한 단시간에 합리적이고 효율적, 효과적으로 활동을 하도록 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지켜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한국에서는 일본 학교체육의 ‘저력’을 상투적으로 논하는 일이 많으나 이 같은 교사들의 희생은 고려되지 않는 듯하다. 일본 교사들 사이에서도 “더 이상 지금과 같은 희생만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한국 학교가 일본 모델을 그대로 따라가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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