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일정상회담과 '납치문제해결'이라는 난제

  • 기자명 윤재언
  • 기사승인 2024.02.21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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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일 간 납치문제에 대한 현격한 인식 차
'해결'에 대한 합의 도달 못하면 진전 쉽지 않아

북한에서 일본에 대한 전향적 발언이 나오면서 향후 외교적 전망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지난 15일 조선노동당 부부장 김여정이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국회 발언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게 계기다. 김여정은 담화를 내 “과거의 속박에서 대담하게 벗어나 조일관계를 전진시키려는 진의로부터 출발한 것이라면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했다. 특히 담화 내에는 “수상이 평양을 방문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북일정상회담을 암시하는 대목이 들어갔다. 다만 반복적으로 납치문제가 이미 “해결”됐다며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논조였다.

이는 기시다가 2월 9일 중의원 예산의원회에서 납치문제와 관련해 “여러가지로 대응을 하고 있다”고 발언한 데 따른 반응이었다. 당시 국회에서 기시다는 구체적 움직임에 대해서는 함구하면서 “작금의 일북관계 상황을 감안해 대담하게 현상황을 바꿔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나 자신이 주체적으로 움직여 정상 사이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발언도 나왔다. 일본 언론에서는 기시다가 일부러 북핵·미사일을 비난하는 표현을 피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여기에 김여정이 나름대로 화답한 것이다.

김여정 담화에 대한 일본 정부 공식 반응은 다음과 같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담화를 “유의하고 있다”며 “평가를 포함해 그 이상 상세한 내용은 교섭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밝힐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납치문제가 해결됐다는 주장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비판했고 “일북평양선언에 기초해 납치, 핵, 미사일이라는 모든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하는 방침에 변화는 없다”고 강조했다.

양국 사이 물밑 교섭이 이뤄지는 것은 맞으나, 현안에 대한 구체적 접근은 여전히 이론이 적지 않은 것으로 읽힌다. 연초 김정은은 기시다에게 ‘각하’라는 존칭을 쓰며 이례적으로 노토반도 지진 위로전문을 보낸 바 있다. 양국이 현상황에서 서로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김여정 담화에 대한 일본 언론 반응은 다소 놀라면서도 “일단 지켜보자”가 대세다. “이미 납치문제는 해결”됐다는 주장과 일본 정부의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응을 동시에 배치한 기사가 대다수였다. 그러면서 가족회의 목소리도 계속해 보도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18일 납치피해자 상징 요코타 메구미의 모친 사키에의 동정을 전하기도 했다. 메구미가 북한에서 낳은 딸 김은경과 10년 전 만난 일을 회상하며 일본 정부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그 전날 메구미 남동생 다쿠야(현 가족회 대표)가 강연회를 열어 지속적 관심을 요청하기도 했다

MBC 방송화면 갈무리
MBC 방송화면 갈무리

'납치문제해결'이라는 난제

일본 사회에서 ‘납치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가장 큰 요인이 미성년자 나이로 납치된 요코타 메구미의 생존 문제다.

북한은 2002년 9월 17일 북일정상회담에서 납치피해자 5명만 생존해 있고, 8명이 사망했다고 밝힌다. 당초 북한의 입장은 ‘납치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였으나, 김정일이 돌연 인정하고 사죄까지 했다. 그러나 납치문제의 상징이었던 요코타 메구미의 사망(자살) 소식은 일본 사회에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김정일의 인정과 사죄는 아무런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5명은 일본으로 돌아왔지만, 8명의 실제 상황은 오리무중이다.

일본의 거듭된 요구에 북한은 메구미의 유골을 보낸다. 하지만 요코타 메구미의 유골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감정 결과가 나오자, 일본 사회의 분노는 한층 더 커진다. 이에 대해서는 유골 감정이 정확했는가, 즉 본인 유골이 아니라는 결과가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다. 2005년에는 일본의 감정 정확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지적도 있었다.

일본 사회에서는 “요코타 메구미는 살아있을 것”이라는 인식이 정착돼 갔고, 가족회를 이끄는 메구미 부모의 적극적 활동으로 아무도 이론을 제기하지 못하게 된다. 이 유골문제는 북한 외무성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고 태영호 의원이 자서전과 최근 기자회견 등에서 수차례 밝힌 바 있어, 북한의 낙후된 행정 관리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은 정부와 지자체 등이 주도해 요코타 메구미를 다룬 각종 콘텐츠를 제작해 보급해왔다.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메구미’는 일본어나 영어 외에 한국어, 중국어, 러시아어 버전도 있고, 전부 무료로 볼 수 있다(아래 영상). 일본의 ‘피해자성’을 강조하는 좋은 재료이기도 하기에, 적극적인 어필이 이뤄지고 있다.

일본 관청에는 “반드시 되찾겠다!(必ず取り戻す!)”는 강렬한 문구와 함께 메구미가 기모노를 입고 찍은 포스터를 볼 수 있다(아래 사진). 민영방송에서도 메구미와 가족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를 제작한 바 있다. 결국 일본 사회에서 ‘납치문제의 해결’은 살아 있을(혹은 살아있어야 할) 요코타 메구미의 귀환이 최소 요건인 상황이다.

요코타 메구미 포스터
요코타 메구미 포스터

지난 1월 10일 TV아사히는 흥미로운 인터뷰를 방영했다(아래 영상). 납치 피해당사자 하스이케 카오루가 “요코타 메구미는 살아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이는 하스이케가 관련 내용으로 처음 입을 연 것으로 타이틀은 “납치피해자 8명 사망의 거짓말”이다. 하스이케는 2002년 10월 15일 북일 간 합의로 일시 귀국한 뒤, 영구 거주로 마음을 굳힌다. 이 과정에 아베 신조 당시 관방부장관이 적극 관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아베가 급부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당시 가족회 관계자는 아베의 역할을 부인). 

하스이케는 인터뷰에서 메구미 부부(남한 납북자와 결혼)가 “자신과 가까운 곳에 살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사망확인서에 적힌 1993년 3월이라는 시점에 관해 하스이케는 1994년 3월까지 같이 지냈고, 장소도 맞지 않는다며 당초 문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당초 논란이 돼 북한 측에서 수정함). 또한 “북한이 애초에 다시 돌아올 만한 사람들을 골라서 일시 귀국시켰다”며 “순종적이지 않은 메구미를 포함한 8명을 일부러 숨겼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며 “살아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이처럼 일본 여론은 생존설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런 판국에 북일이 납치문제에 관해 만족할 만한 접점을 찾는 것이 가능할까? 적어도 요코타 메구미의 모친(부친은 2020년 사망)이 생존해 있는 한은 어렵다고 본다. 만약 여론이 납득할 만한 결과, 즉 요코타 메구미가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면 정권 붕괴만이 아니라, 평생 역사적 과오를 지고 살아야 할 가능성마저 있다. 기시다 정권의 지지율은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는 수준이다.

최근 한국처럼 한일관계가 국내 정치적 쟁점이 돼서, 그나마 정권 지지율 수준의 30%대 긍정적 반응이 나오는 상황도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도 2002년과 2004년 두 차례 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이 크게 체면을 구겼던 일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한일관계의 과거사 문제 구도가 북일관계 납치문제에서 재현되는 셈인데, 당사자나 가족(최소한 부모 세대)이 문제 제기를 이어가는 한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가 만족할 만한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북일국교정상화는 난망하다는 게 개인적 전망이다.

MBC 방송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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