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상승 대응책? 일본서 확산되는 외국인 가격 차별

  • 기자명 윤재언
  • 기사승인 2024.03.26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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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가 상승 압박 못 이기고 문닫는 라멘집 속출
외국인에게 이중가격 도입하자는 목소리 분출
국립대 외국인 유학생 학비 인상 움직임도 현출

최근 일본 내 물가 상승이 체감적으로나 지표 상으로나 어느 때보다 높다. 그동안 ‘디플레이션’의 상징 사례로 여겨져 온 일본이지만,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연료비와 각종 원자재에 이어 생활물가에도 파고가 밀려든 상황이다.

 

도쿄도내 라멘 한 그릇 1000엔 넘고, 폐업도 속출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게 일본에서 일상적으로 먹는 대중음식 라멘이다. 라멘집은 적당한 가격에 가볍게 들를 수 있기에 어느 동네에나 하나씩은 있는데, 최근 도쿄도내 라멘 한 그릇 값이 대체로 1000엔을 넘어섰다. 그동안 라멘 값은 ‘1000엔의 벽’이 있다고 일컬어져 왔다. 1000엔보다 비싼 라멘은 좀처럼 팔리지 않는다는 속설로, 이 때문에 가격을 올리느니 아예 가게를 접는 곳도 나타나고 있다(아래 사진).

라멘가게를 억누르는 '1000엔의 벽'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Ljf6oYMyHB4)
라멘가게를 억누르는 '1000엔의 벽'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Ljf6oYMyHB4)

도쿄신문 2023년 11월 19일 기사는 가격 상승 압력을 못 이기고 폐업을 결정한 한 라멘 가게 사연을 전하고 있다. 유기농 식자재를 사용하면서도 900엔 가격을 유지해온 곳이다. 주인은 비싸진 식자재 때문에 아예 가게를 접기로 했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가격을 더 올리면 “비싸다는 소리를 듣기 때문”이었다.

일본에서 가장 외식업 경쟁이 심한 곳이 라멘집이다. 정말 빼어나게 맛이 있는 곳이 아니라면 승부수는 가격과 양일 수 밖에 없다. 결국 비용을 최소한으로 음식에 전가하면서 많이 파는 것이 대부분 라멘 가게 생존 방식이나, 최근 물가 상승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차라리 폐업을 택하는 곳이 속출한다고 한다.

이는 실제 통계로도 나타난다. 2013년 1년 동안 ‘도산, 휴폐업’을 한 라멘가게는 74건으로 2009년 통계 집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부분 비싸진 식자재의 가격 전가를 포기하고 가게를 접은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디플레이션의 상징이었던 싼 라멘 한 그릇도 이제는 옛 말이 된 셈이다.

일본정부 공식 통계 상에서도 2020년을 100으로 놓았을 때, 2024년 2월 소비자물가수준은 106.9였다(아래 그래프). 한국서도 그렇지만, 물가 상승이 일본 경제 최대 현안이 됐다.

일본 소비물가 상승 수준. 2020년 100을 기준으로. (출처: https://www.jil.go.jp/kokunai/statistics/timeseries/html/g0601.html)
일본 소비물가 상승 수준. 2020년 100을 기준으로. (출처: https://www.jil.go.jp/kokunai/statistics/timeseries/html/g0601.html)

디플레이션에 익숙해진 일본 소비자들이기에, 기업들은 가격 경쟁을 최우선으로 해왔다. 소매업체들은 1엔이라도 싼 가격을 어필했다. 그러면서도 품질은 최대한 유지하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 사회에서는 ‘싼 게 비지떡’이 아니라 ‘싼 게 좋은 것’이라는 인식도 팽배해져 갔다.

물론 동시에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도 억제되면서 사회 전반의 저물가 현상은 고착화돼 있었다. 그 결과 한국에서조차 ‘일본 여행은 국내 여행보다 저렴한 반면 높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잡기도 했다.

 

일본 정부와 기업, '외국인 가격 차등' 적용 제시

이 같은 물가 인상 기조 속에 일본 정부와 기업들이 새로운 방책의 하나로 제시하는 게 있다. ‘외국인에 대한 가격 차등’이다.

코로나 영향이 2023년을 기점으로 거의 사라지면서 일본 방문 외국인은 급격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약 2500만명이 일본을 방문해 2019년의 80%대까지 회복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과 대만에서 온 관광객이 가장 많았다. 이들 외국인을 대상으로 물가 인상분을 어느 정도 전가하자는 논의가 나오는 것이다. 특히 엔저가 계속되면서 절대 물가수준 외에 상대적으로 일본의 상품과 서비스가 외국인에게 싸게 느껴진다는 나름 합리적 근거도 제시된다.

일본 최대 철도회사 JR(지역별로 별도 회사가 존재)은 지난해 10월 열차를 기간 내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패스 가격을 대폭 올렸다. 단기 체류 외국인 등만 살 수 있는 JR패스로, 이전에는 보통좌석 7일권 가격이 최저 29650엔이었는데, 5만엔으로 크게 올렸다. 상위 등급인 그린석 7일권 역시 최저 39600엔에서 7만엔이 됐다. 기타 지역별로 존재하는 외국인 대상 패스도 가격이 일제히 몇 십퍼센트씩 급등했다. 예전에는 쉽게 ‘본전’을 뽑을 수 있던 패스의 효율이 매우 나빠진 것이다. 신칸센과 특급열차는 탈 수 없는, 주로 국내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한 '청춘18 티켓' 올 봄 가격이 그대로인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최근 일본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된 게 내국인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이중가격’에 대한 찬반양론이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동일한 상품에 더 비싼 가격을 받는 게 합당한지에 관한 논의다(아래 영상).

한 포인트 서비스 회사가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약 60%가 이중가격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또한 이중가격 설정으로 일본인들의 국내 여행에 대한 의욕이 높아질 것이라는 응답도 상당히 있었다.

이번달에는 ‘입장료에 대한 역차별’ 문제가 불거져 정책을 급거 바꾼 미술관도 있었다. 나라현립미술관은 외국인 관광객에 한해 2008년부터 상설전을, 2014년부터는 특별전을 무료로 개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인은 성인 기준 400엔의 입장료를 내야 했다. 그러다 최근 SNS에서 ‘일본인을 역차별한다’는 의견이 확산되면서, 나라현 측은 “합리성 없는 정책이었다”고 인정하며 4월부터 유료화로 정책을 바꾸기로 했다. 그만큼 일본인들이 외국인에 대한 할인 정책에 예민해진 분위기를 반영하는 해프닝이라 하겠다.

 

"어쩔 수 없다" 반응 많지만, 일부 우려 목소리도

최근에 교육계에서 새롭게 도입되는 가격 차등 정책도 있다.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국립대 학비 차등화 구상이다. 그동안 국립대학에 입학한 일본인 학생과 외국인 학생은 동일한 학비를 냈다. 대우 면에서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당장 올해 학기 시작(4월)부터 외국인 유학생에 대해서는 일본인과 다른 학비를 부과할 수 있게 됐다. 이달 5일 문부과학성은 현재 학비 표준액 연간 53만 5800엔에 대해 20%를 상한으로 자유화한다고 밝혔다. 근거는 대학들이 유학생에 대한 어학 강의나 논문 집필 상담 등 비용을 더 쓰고 있다는 점과, 다른 나라에서도 동일하게 학비 차등화를 두고 있다는 점이 제시됐다. 결국 일본인 학생에게 부담을 전가하기 어려운 상황에 다시 한번 외국인이 타겟이 된 셈이다.

이처럼 일본 사회에서는 외국인에 대한 가격차별을 두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반응이 많다. 다만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023년 12월 27일 사설에서 “음식점에서 일본어와 외국어 메뉴판 가격을 다르게 하는 것처럼 거친 방식으로 추진해서는 오히려 악평이 확산될 것”이라며 되도록 납득 가능한 방식으로 도입을 고민할 것을 주문했다. 예를 들어, 외국어 해설이 있는 수상버스만 가격을 높이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또한 태국 등에서 보이는 거주민과 관광객을 구분해 입장료를 받는 방식도 소개됐다.

일본에서 진행되는 이 같은 논의는 단순히 ‘외국인 관광객의 관점’에서 분개만 할 일은 아니라 생각된다. 한국에서는 자국민에 대해서도 늘 ‘관광객 바가지’와 성수기, 비수기의 극심한 가격차가 문제가 돼 왔다. 한 지역에서는 유명 아이돌 그룹 콘서트 때의 ‘한 몫 잡자’는 바가지가 국제적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논의를 보며 관광 정책으로 접근해 논의를 참고해 보는 게 개인적으로 한국에도 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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