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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번역, 왈도체와 단순 현지화를 넘어서[이경혁의 게임 팩트체크] 게임 한글화와 번역 질 문제

영화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가 흥행 돌풍을 일으키는 가운데, 번역에 관련한 논란 또한 함께 커져가고 있다. 영화를 보지 못해서, 또 스포가 될 수 있는 부분이라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고 또 알아도 말하기 어렵지만, 꽤 중요한 부분에서 오역이 있다는 정도의 이야기가 온라인상에 퍼지고 있다.

해외 영화의 오역 문제가 하루 이틀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영화에 비해 게임의 번역은 더 열악하다고 말해도 무방할 수준이다. 그래도 극장에 걸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번역 과정을 거치는 영화와 달리 게임은 한글판의 출시 여부가 관심사일 정도로 무번역 상태로 국내 출시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게임문화가 많이 대중화되면서 최근에는 몇몇 제작/유통사들의 노력이 덧붙으며 적지 않은 대작들이 한글판을 동시 출시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물론 게임에서의 번역 문제는 영화와는 조금 또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스트리트 파이터 2’는 번역이 없어도 모두가 신나게 플레이했던 게임이었다. 언어 외적인 부분의 비중이 더 큰 게임들의 경우는 번역이 크게 접근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스토리텔링과 세계관 설정, 규칙의 안내 등이 복잡한 경우라면 한글판이 없을 경우 보편적인 대중들에겐 적지 않은 허들로 다가오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게임에서도 늘 번역의 이슈가 자주 등장한다. 때로는 긍정적인 이야기로, 때로는 부정적인 이야기로.

좋은 번역: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번역을 넘어선 현지화

게임 번역의 결과물 중에 전반적으로 높은 호평을 받는 작품으로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가 있다. 정식 버전이 아닌 베타 버전 때부터 이 게임은 가급적 많은 부분들을 한글화하려는 목표로 번역을 수행한 바 있었다. 판타지 세계관 안에서 마법사의 주력 공격기술 중 하나로 이름 높았던 ‘파이어볼’ 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에서 ‘화염구’ 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는데, 한때 한글 이름이 영문에 비해 촌스러워 보인다는 선입견은 이 게임의 대중적 인기와 함께 사라져간 바 있었다. 이제는 마법사가 불덩이를 모으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화염구로 읽어도 무방해질 만큼 많은 것이 바뀌게 된 배경에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번역 성과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워크래프트 세계관에서 ‘파이어볼’은 ‘화염구’로 번역되어 쓰인다. 사진은 ‘하스스톤’ 의 영어판 ‘fireball’과 한국판 ‘화염구’ 카드.

이 시리즈의 번역은 단지 기술명의 번역에 머무르지 않고 현지화의 수준에 도달하고자 애쓴다. 게임 세계관의 주요 악역 중 하나인 리치 왕의 한기서린 마법검 이름은 원어로 ‘frostmourne’인데, ‘워크래프트 3’에서 ‘프로스트모운’으로 불리던 이 무기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는 ‘서리한’이라는 한글이름으로 훌륭하게 번역되었다.

한때 마법주문의 결계를 완성하라는 의미의 ‘Set the Circle’이라는 문장을 ‘원을 맞춰라’ 수준으로 번역하던 워크래프트 프랜차이즈는 적지 않은 비용과 노력을 들여 위에서 언급한 ‘서리한’ 같은 현지화를 이끌어 낸 좋은 번역의 사례로 자주 꼽히곤 한다.

나쁜 번역: ‘왈도체’의 전설

‘워크래프트’ 시리즈가 훌륭한 게임 번역의 사례로 꼽힌다면, 그 반대의 사례도 있다. 인터넷 밈으로까지 떠오른 ‘마이트 앤 매직 6’의 한글번역이 그것이다.

‘마이트 앤 매직 6’의 번역 이슈가 인터넷 밈이 되어 크게 떠오른 바로 그 장면. 이른바 ‘왈도체’의 시작이다.

실제 게임 화면을 캡처한 위 그림에 나오는 대사의 원문은 “Hello! Mighty fine morning, If you ask me, I am Waldo.” 이다. “활기찬 아침이군요! 저는 왈도라고 합니다” 정도가 적절해 보일 저 문장 뿐 아니라 해당 게임의 한글판이 전체적으로 위와 같은 수준에 머무름으로써 ‘마이트 앤 매직 6’는 해외 게임의 한글번역사에 있어 흑역사의 아이콘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심지어 인터넷 유행어가 되어 ‘왈도체’ 같은 신조어 문체를 유행시키고, 아예 인터넷을 통해 자생한 자체 한글번역팀이 스스로의 이름을 ‘팀 왈도’로 만드는 효과까지도 않은 사례였다.

애매한 번역: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의 제목 문제

20세기말에 등장해 여러모로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큰 호평을 받았던 롤플레잉 게임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는 국내 발매시 상당한 공을 들인 번역으로 지금까지도 훌륭한 번역의 사례로 자주 손꼽히는 게임이다. 원작 자체가 어지간한 장편소설 분량의 텍스트를 품고 있는데, 그 내용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면서도 매끄럽게 읽히는 방대한 분량의 번역을 해낸 ‘토먼트’의 한글판 품질은 지금의 게임과 비교해도 결코 빠지지 않는 수준이다.

다만 게임의 제목 번역에 대해서는 애매한 부분이 존재한다.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 라는 제목의 앞부분은 이 게임이 기대고 있는 롤플레잉 세계관 중 하나의 세팅을 가리키는 이름인데, 이를 마땅히 번역할 만한 단어가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제목 뒷부분의 ‘토먼트’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고통, 특히 정신적인 고통에 가까운 무언가가 되는데, 게임 플레이를 통해 밝혀지는 내용을 최종장에서 다시 되새겨보면 torment는 오히려 ‘번뇌’에 가까운 의미로 쓰였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이 제목을 만약 한글로 번역한다면, ‘고통’으로 번역했을 경우에는 게임의 의미를 살릴 수 없고, ‘번뇌’로 번역한다면 일종의 스포일러가 될 확률이 존재한다. 앞선 제목의 세계관 이름이 쉽게 한글로 번역되기 어렵다는 점과 맞물리면서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는 본문의 훌륭한 번역 성과에도 불구하고 영문 제목으로밖에 남기 어려운 한계 또한 가졌다. 대부분의 게임들은 제목의 번역은 따로 손대지 않곤 하는데, 워낙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이 게임이었다면 조금 더 적극적인 해석의 차원에서 제목도 번역이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사례다.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바인딩 오브 아이작

2011년 출시된 독특한 로그라이크 기반의 게임 ‘Binding of Isaac’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속을 눈물을 흘리며 헤치고 다니는 아기가 주인공인 게임이다. 엄마와 함께 살던 아이는 엄마가 어느날 이상한 종교에 빠져 자신을 가둠으로써 공포에 휩싸이고, 탈출을 위해 갇힌 방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를 발견하고 들어가면서 알 수 없는 모험과 탈출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바인딩 오브 아이작’ 의 게임 화면. 아동학대에 휘말린 아이의 심리가 액션게임의 형태로 풀려나간다.

이 게임의 제목인 ‘Binding of Isaac’은 별도의 번역 없이 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출시 초반에는 전체적으로 ‘아이작의 구속’ 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실제 게임 속 플레이를 이끄는 주인공 아이의 이름이 아이작이고, 엄마의 학대로 갇혀버린 아이의 플레이 일대기이니 일견 그럴듯한 번역이지만, 문제는 이 이름의 본래 의미는 조금 다르다는 데 있다.

‘Bind of Isaac’은 성경의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일화를 가리키는 말이다. 창조주는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를 수행하기 위해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 아들을 묶고 제물로 바치기 위해 칼로 내리치려 하지만, 적절한 순간에 천사가 내려와 그럴 필요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장면이다.

이사악의 희생’, 렘브란트. 1635. 창세기에 다루어진 아브라함과 이사악의 번제 장면을 그린다.

게임의 제목은 그래서 중의적인데, 실제 게임 속 인물인 아이작(이삭)의 이야기는 성경 속의 일화와 중복되면서 제목의 의미를 구성한다. 그래서 인터넷에 퍼져 있는 이 게임의 공략이나 리뷰들은 제목을 ‘아이작의 구속’ 외에도 ‘아이작의 번제’ 로도 쓰고 있다. 어느 쪽이 더 적절한 것일까? 오히려 같은 일화를 다루는 종교분야의 번역은 ‘이삭의 번제’ 와 같은 이름을 쓰고 있다.

신앙과 윤리의 문제가 첨예하게 맞부딪히는 창세기의 한 장면을 현대적 의미로 각색해 낸 게임 ‘바인딩 오브 아이작’이 번역을 통해 유통되는 제목의 유형은 게임 제목의 번역 하나도 여러 가지 의미의 연계들 속에서 고민을 요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아직까지는 한글판의 출시 자체가 뉴스가 되는 해외 게임의 수입 상황을 고려한다면, 그리고 적지 않은 명작 게임들의 번역이 아마추어 그룹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영화의 번역 이상으로 게임의 번역 또한 갈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경혁   grolmarsh@gmail.com    최근글보기
게임칼럼니스트 겸 문화 비평가. 여러 매체에 게임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게임과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게임이 사회를 매개하는 매체로서 지니는 의미를 발굴하고 알리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이경혁  grolmar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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