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 가장 원시적인, 가장 오래 우리 곁을 지켜줄 미디어에 대하여

  • 기자명 홍상현
  • 기사승인 2020.03.2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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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현의 인터뷰]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책-종이-가위> 히로세 나나코 감독 인터뷰

Ale rzecz główna, aby każdy był sobą, a nie udawał kogoś, kim nie jest, nie grał całe życie często wstrętnej mu, narzuconej przez wychowanie i tradycję, nie pasującej doń roli.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그 자신이 되어야하며 다른 사람인 척 하지 말아야한다는 거다. 평생토록 스스로를 혐오하게 하는 교육과 전통에 휘둘리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히로세 나나코 감독은 ‘어느 가족’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조감독으로 ‘바닷마을 다이어리’등의 제작에 참여했다. 사실 데뷔작인 ‘여명’보다 ‘책-종이-가위’의 촬영을 먼저 시작했다고 한다. 사진제공: 부산국제영화제
히로세 나나코 감독은 ‘어느 가족’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조감독으로 ‘바닷마을 다이어리’등의 제작에 참여했다. 실은 데뷔작인 ‘여명’보다 ‘책-종이-가위’의 촬영을 먼저 시작했다고 한다. 사진제공: 부산국제영화제

남부의 겨울휴양지 자코파네로 향하는 여정 내내 폴란드인 친구로부터 어느 불우한 천재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스타니스와프 비트케비치. 바르샤바에서 태어나 근위사관으로 러시아혁명을 경험한 이력의 그는 소설가이자 극작가로 베케트이오네스코보다 먼저 부조리극을 완성하고 20여 편에 이르는 작품에 집대성했다. 화가로서 표현주의, 미래파, 입체파, 심지어 초현실주의까지 포괄하는 미술이론 논문도 썼지만 소련의 침공 소식을 듣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돌아온 것은 무지로 인한 비난과 광인이라는 조롱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500킬로 이상을 달린 자동차가 비트케비치의 이름을 따 만들어진 극장에 도착할 무렵 친구가 소개한 그의 금언에는 특별한 울림이 있었다. 굳이 읽고 쓸 줄 모르는 폴란드어로 그 말을 적어 달라 부탁했다.

몇 년 뒤, 파리경제대학 팀과 『21세기 자본』공동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시절 비트케비치의 이름을 다시 접했다. ‘종이책’이라는, 이 시대 가장 아날로그적인 매체를 통해서다. 폴란드홍보문화센터의 지원으로 비트케비치의 대표 희곡 가운데 네 편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주저 없이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집어 들었다. 하드커버의 묵직한 질감만큼이나 인상적인 장정(binding).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자코파네의 풍경, 혹은 벌꿀 술이 놓여있던 테이블을 연상시키는 컬러 톤에 서체는 물론 자간, 글자의 배치에서까지 장인의 손길이 배어나오는. 그 자체 ‘디지털’과 무척 거리가 있는 느낌. 이것이 ‘기분 탓’은 아니었음을 알게 된 건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다.

오늘 “홍상현의 인터뷰”를 통해 만날 히로세 나나코 감독이 와이드앵글 부문 초청작 <책-종이-가위>에서 주인공으로 다룬 77세의 기쿠치 노부요시는 위에서 언급한 폴란드문학 고전 총서를 디자인했다. 대학 1학년 시절 모리스 블랑쇼의 『문학의 공간』을 읽고 북 디자이너가 된 이래, 1만 수 천 권을 헤아리는 ‘책’을 지어온 그의 디자인 툴은 ‘종이’와 ‘가위’뿐. 히로세 감독은 제목의 문자를 흐릿하게 하거나 살짝 흔들어 포인트를 주는 터치, 저자명의 알파벳 표기 등과 같이 오늘날 일반적인 포맷처럼 자리 잡고 있는 디자인의 선구자이기도 한 ‘명장’의 호흡을 3년 넘는 기간 동안 카메라에 담았다.

77세의 기쿠치 노부요시는 대학 1학년 시절 모리스 블랑쇼의 『문학의 공간』을 읽고 북 디자이너가 된 이래, 1만 수 천 권을 헤아리는 ‘책’을 지어왔다. 그의 디자인 툴은 ‘종이’와 ‘가위’뿐이다. 사진제공: 부산국제영화제
77세의 기쿠치 노부요시는 대학 1학년 시절 모리스 블랑쇼의 『문학의 공간』을 읽고 북 디자이너가 된 이래, 1만 수 천 권을 헤아리는 ‘책’을 지어왔다. 그의 디자인 툴은 ‘종이’와 ‘가위’뿐이다. 사진제공: 부산국제영화제

홍상현

장편영화 데뷔작 <여명>에 이어, 다큐멘터리 <책-종이-가위>로 2년 연속 부산국제영화제에 오셨다.

히로세 나나코

<여명>은 아시아프로젝트마켓 응모작이기도 하니 완성되기 2년 전부터 부산국제영회제와 관련이 있었다. 따라서 영화제에서 월드프리미어도 진행할 수 있었고. 이번에 <책-종이-가위>로 다시 오니 정말 깊은 감회가 든다. 앞으로의 영화인생에서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계속 참여하고 싶은 영화제이기에 더욱 기쁘다.

 

홍상현

“홍상현의 인터뷰”를 통해 뵙게 되는 분들에게 종종 던지는 질문이다. 평소 좋아하시는 한국영화 작품이나 감독, 배우가 있으신지.

히로세 나나코

물론이다. (웃음) 이창동 감독을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무척 존경하는 감독 중 한 분이다. 특히 <오아시스>를 좋아하고, 8년 만에 연출을 맡으신 <버닝>도 봤는데 엄청난 감명을 받았다. 이 정도 커리어를 가지고 계심에도 늘 새로운 작업에 도전하다니 정말 훌륭하시다.

히로세 나나코 감독은 제목의 문자를 흐릿하게 하거나 살짝 흔들어 포인트를 주는 터치, 저자명의 알파벳 표기 등과 같이 오늘날 일반적인 포맷처럼 자리 잡고 있는 디자인의 선구자이기도 한 ‘명장’의 호흡을 3년 넘는 기간 동안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제공: 부산국제영화제
히로세 나나코 감독은 제목의 문자를 흐릿하게 하거나 살짝 흔들어 포인트를 주는 터치, 저자명의 알파벳 표기 등과 같이 오늘날 일반적인 포맷처럼 자리 잡고 있는 디자인의 선구자이기도 한 ‘명장’의 호흡을 3년 넘는 기간 동안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제공: 부산국제영화제

홍상현

평소 확실한 주관을 가진 연출자라는 이미지가 있다. 특히 아이치트리엔날레 “표현의 부자유 전(展)”와 관련해서 했던 표현의 자유 관련 발언이 인상적이었는데.

히로세 나나코

저 자신 창작을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평화의 소녀상을 둘러싼 대립이 일어나고, 결국 정부 보조금과 관련한 문제까지 발생했다는 발표를 접하고 분노를 느꼈다.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 표현의 자유는 마땅히 지켜져야 한다. 또한 이런 전제하에서 논의를 진행하는 장을 대중과 공유할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홍상현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인상 수상자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당연히 ‘스승’으로서의 의미가 가장 크겠지만, 본인도 감독으로 데뷔한 된 후에 바라보는 고레에다 감독은 느낌이 좀 다를 것 같은데.

히로세 나나코

예전에는 코레에다 감독의 뒤를 좇으며 어떻게든 빨리 데뷔해야겠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면도 많았겠지. 다만, 앞으로는 독립적인 한사람의 작가로 생활해나가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는 수많은 감독들이 계신다. 그들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는 가운데 고레에다 감독과도 전과 조금 다른 입장에서 소통하고 싶다.

북 디자이너였던 히로세 나나코 감독의 아버지는 컴퓨터 사용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고 당연히 일러스트레이터도 거의 다루지 못해 일에 대한 의욕을 잃어갔다. 이는 히로세 감독이 지극히 ‘아날로그의 명장’기쿠치 노부요시의 모습에 애착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제공: 부산국제영화제
북 디자이너였던 히로세 나나코 감독의 아버지는 컴퓨터 사용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고 당연히 일러스트레이터도 거의 다루지 못해 일에 대한 의욕을 잃어갔다. 이는 히로세 감독이 지극히 ‘아날로그의 명장’기쿠치 노부요시의 모습에 애착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제공: 부산국제영화제

홍상현

<책-종이-가위>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남성이 주인공인데, 당신의 작품에서 매번 묘사되는 남성상은 이른바 ‘사회적인 스테레오타이프’와는 차이가 있는 느낌이다.

히로세 나나코

원래 <책-종이-가위>의 촬영이 <여명>보다 먼저 시작되었고 제 데뷔작도 이 작품으로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당시는 대학을 졸업하고 막 사회에 나왔던 시기라 스스로에 대한 자리매김 등 여러 면에서 불안정했던 까닭에 망설일 수밖에 없었지. 제가 연출한 두 편의 작품에서 공통되게 말씀하신 정서가 느껴지는 건, 아마 사회적인 의미에서 ‘아버지에 해당하는 존재’를 찾으려 했던 바람과 관련이 있을 거다. 대학시절 아버지를 잃었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니까.

 

홍상현

다음 화제는 주인공 기쿠치 노부요시에 관한 것이다. 그가 한 시대를 대표하는 명장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굳이 다큐멘터리까지 만들자고 결심하게 된 데는 그밖에도 다른 이유가 있었을 텐데.

히로세 나나코

키쿠치 씨의 저작을 읽고 그의 사상에 끌렸다. 영화감독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일을 해나감에 있어서 다양한 상황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고, 뭔가를 만들어내기 보다 주어진 것들 가운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 부분과 관련한 기쿠치 씨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울림을 주었다.

하로세 나나코 감독은 ‘한권의 책이 태어나는 과정’을 지극히 섬세하며 공감각적인 연출로 보여준다. “책은 손에 집어 들고 종이를 만지며 맛보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사진제공: 부산국제영화제
하로세 나나코 감독은 ‘한권의 책이 태어나는 과정’을 지극히 섬세하며 공감각적인 연출로 보여준다. “책은 손에 집어 들고 종이를 만지며 맛보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사진제공: 부산국제영화제

홍상현

구체적으로 한 부분을 짚어주신다면?

히로세 나나코

“책이란 내용이 중요한 것이니, 오히려 그 ‘밖’을 살리는 작업을 해왔다”는 말.

 

홍상현

작품의 서사의 중심에 서있는 매체, 즉, 종이책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히로세 나나코

부친도 북 디자이너였기에 손닿는 곳에 항상 책이 있었다. 오히려 어린 시절이나 학창시절 스스로 책을 읽으려 하지 않았지. 열심히 읽게 된 것은 고등학교 2, 3학년 때, 아니, 어쩌면 졸업하고 나서였나? 왜 이렇게 늦었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에라도 책의 매력ㆍ재미를 젊은 세대에게 알리고 싶었다.

 

홍상현

작품의 조형미가 뛰어난데, 미술대학 출신의 재능이 반영된 건가.

히로세 나나코

미학적 완성도를 객관적으로 검증하기는 힘들겠지만 책의 촬영은 저 혼자서 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학창시절 함께 작품을 만들어 온 친구에게 부탁했다. 키쿠치 씨 인터뷰는 제가 직접 카메라를 잡았으니 그와는 다른 톤을 보여주고 싶다는 의도에서였다.

히로세 나나코 감독은 종이책이야말로 “영상보다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미디어”라고 말한다. 하긴. 아주 간단하게 생각해 보더라도 인터넷이나 전기, 둘 중의 하나만 제 구실을 못하게 되면 사람들은 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출전: ‘책-종이-가위’페이스북 페이지
히로세 나나코 감독은 종이책이야말로 “영상보다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미디어”라고 말한다. 하긴. 아주 간단하게 생각해 보더라도 인터넷이나 전기, 둘 중의 하나만 제 구실을 못하게 되면 사람들은 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출전: ‘책-종이-가위’페이스북 페이지

홍상현

디지털 시대에 최대한 아날로그의 방식에 매달리면서 종이책을 만드는 명장의 이야기가 갖는 의미는 뭘까.

히로세 나나코

직접 뭔가를 만드는 핸드메이드로부터 멀어져가는 세계를 다시 바라보고 싶었다. 책은 손에 집어 들고 종이를 만지며 맛보는 것이라고 믿기에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조망하고 싶기도 했고.

다시 아버지를 언급하게 되는데, 활동시기가 컴퓨터가 도입되던 시절과 맞물려있던 당신께서 사용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고, 당연히 일러스트레이터도 거의 다루지 못해 점점 일에 대한 의욕을 잃어갔다. 이 모든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기억 때문에 수작업을 하는 장인에 대한 모습에 애착이 가고 그 ‘고집’의 이유가 궁금해졌지.

 

홍상현

아날로그적 정서의 총화로써 종이책을 부각시키는 <책-종이-가위>의 매력에 공감하는 사람도 많다.

히로세 나나코

기쿠치 씨의 제자 분께서 “책은 가장 원시적인 매체”라고 말씀하셨는데 적극 공감한다. 대화 다음으로 가장 먼저 생긴 매체가 책이니까. 도리어 영상보다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미디어라고도 생각하고.

 

홍상현

인터넷이나 전기, 둘 중의 하나만 제 구실을 못하게 되더라도 사람들은 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니까. (웃음)

마지막 질문이다, <책-종이-가위>의 캐릭터 묘사에 큰 감명을 받았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전문적인 연기자가 아니기 때문에 드라마적인 맥락을 잡는다는 게 쉬지는 않았을 텐데.

히로세 나나코

감독으로서 보고 싶은 모습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했다. 다른 편집자들에게 보여드렸더니 ‘이토록 매력적인 사람인 줄 몰랐다’, ‘더 무서운 분이라고 생각했다’ 등의 말씀을 하시더라. 기쿠치 씨로서도 평소 잘 볼 수 없는 모습을 일부러 보여주셨을 테니 결국 <책-종이-가위>는 그와의 공동작업인 셈이다. 그 와중에도 제가 잡아내지 못하는 부분이 있겠지. 그렇다고 뭔가 억지로 보여줘야겠다는 욕심은 부리지 않았다. 굳이 모든 것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하기 보다는 차라리 여백을 남기는 것도 하나의 연출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문득 카메라를 통해 세상에‘빛’을 비추고 싶다는 히로세 나나코 감독이 바람이, 어떤 ‘선언’의 의미이기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아버지, 혹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의 그늘을 벗어나, 더 이상 ‘신인’이 아닌 한 사람의 영화작가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사진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출전: ‘책-종이-가위’공식 트위터 계정
문득 카메라를 통해 세상에‘빛’을 비추고 싶다는 히로세 나나코 감독이 바람이, 어떤 ‘선언’의 의미이기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아버지, 혹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의 그늘을 벗어나, 더 이상 ‘신인’이 아닌 한 사람의 영화작가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사진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출전: ‘책-종이-가위’공식 트위터 계정

“평소 미디어에서 다루지 않는, 그늘진 곳의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 사회에 분명 존재하는, 하지만 저와 전혀 다른 이들을 그려보고 싶어요. 다만, 무리하게 연민이나 공감, 혹은 감정이입을 시도할 생각은 없습니다.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존재에게 한 발짝 다가서려고 노력하는 일만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왜 그에게 위화감을 느끼며, 왜 싫다고 판단하는지에 대해 고민해보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의 마이너리티를 바라보고 싶습니다.”

차기작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한국에 또 오고 싶고, 바로 그 바람 때문에 계속 작품을 만들고 싶을 만큼 한국을 좋아한다는 히로세 감독과의 대화는 카메라를 통해 세상에 ‘빛’을 비추고 싶다는 그의 바람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 되었다. 다소 삐딱한 시선에서 바라보면 살짝 구태의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하지만 그가 말하는 ‘빛’은 다르다. 부친의 죽음과 동일본대지진,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일자리를 얻지 못해 한동안 앞날이 보이지 않는 구직자 생활을 했던 경험을 데뷔작, <여명>을 통해 승화시킨 이력이 반증하듯이.

문득 히로세 감독의 마지막 말이 어떤 ‘선언’의 의미이기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아버지, 혹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의 그늘을 벗어나, 더 이상 ‘신인’이 아닌 한 사람의 영화작가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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