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가스레인지 사용이 호흡기ㆍ심혈관 질환 유발한다?

블룸버그 통신..."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 가스레인지 판매금지 조치 고려하고 있다"
미국 연구 "가스레인지에서 포름알데히드ㆍ일산화탄소ㆍ질소산화물 등 유해물질 나와"
가스레인지 자체보다 조리 시 연소과정에서 유해물질 발생한다는 의견도 있어
현재로서 안전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충분한 환기"

  • 기사입력 2023.01.17 15:13
  • 최종수정 2023.03.07 12:23
  • 기자명 김정은 기자

지난 10일 미국 정부가 가정에서 사용되는 가스레인지 판매를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가장 먼저 이 소식을 전한 미국의 블룸버그 통신은 9일(현지시간)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가 호흡기 문제 등을 이유로 판매 금지를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가스레인지(Gas Stove) 사진. 사진=Pixabay

가스레인지 판매 금지를 검토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 등에서 해당 정보를 공유하는 게시글이 등장했습니다. 당장 네이버에 '미국 가스레인지'라고 검색해보면, 기사를 갈무리해 각자의 주장을 덧붙인 글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해물질 때문에 가스레인지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반면, "미국의 기후정책에 따른 정치적 조치"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무엇이 사실일까요? '가스레인지 사용이 호흡기ㆍ심혈관 질환을 유발한다'는 주장을 뉴스톱이 검증했습니다.

 

◈ 원출처 살펴보니..."가스레인지에서 포름알데히드ㆍ일산화탄소ㆍ질소산화물 나와, 아동 천식 위험 커져"

먼저 미국이 가스레인지 판매 금지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의 원출처를 살펴봅시다.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의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 Consumer Product Safety Commission)가 호흡기 문제가 유발된다는 이유로 (가스레인지) 판매금지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리차드 트럼카 주니어(Richard Trumka Jr.)' 위원이 "이것은 숨겨진 위험"이라며 "안전하지 않은 제품들은 금지될 수 있다"고 발언한 것을 함께 실었습니다.

블룸버그 통신은 여러 논문들을 인용하며, 미국 가정의 40% 정도가 사용하는 가스레인지가 '이산화탄소, 일산화탄소, 미세먼지' 등을 방출하기 때문에 호흡기ㆍ심혈관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들이 인용한 논문을 하나씩 따져보겠습니다. 

먼저 지난해 1월 '환경과학기술(Environmental Science&Technology)' 저널에 게재된 한 논문은 "캘리포니아에서는 60% 이상의 가정이 가스로 요리한다"며 "사람들은 특히 스토브(가스레인지)와 직접적으로 작용해, '포름알데히드(CH2O), 일산화탄소(CO), 질소산화물(NOx)' 등 연소 중에 형성되는 천연가스 성분과 화합물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발표했습니다. 또 연구 결과 가스레인지(gas stove)를 꺼놓아도 메탄이 누출된다고 언급했습니다. 

작년 '환경 연구와 공중 보건 국제 저널'에 발표된 논문은 "미국 내 12% 이상의 소아 천식이 가스레인지 사용에 기인한다"고 언급했다. 사진=해당 논문 캡처

기사에 언급된 또 다른 논문은 이번 논쟁과 보다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습니다. 지난해 말 '환경 연구와 공중 보건 국제 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Environmental Research and Public Health)'에 발표된 보고서는, 가정 내 가스레인지 사용은 아이들의 천식이 증가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위 사진 참고)했습니다. 보고서는 "미국 내 12% 이상의 소아 천식이 가스레인지 사용에 기인한다"며 "간접흡연으로 인한 소아 천식과 유사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두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가스레인지 사용 시 천연가스 성분과 화합물 등 유해물질이 배출되고, 이 물질들이 소아 천식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우리나라의 연구 결과는?..."호흡기 증상 악화에 영향 끼친다" vs "조리과정에서 유해물질 발생하는 게 더 큰 문제"

우리나라 가정 내 가스레인지에는 LPG(액화석유가스)와 LNG(액화천연가스)를 원료로 쓰는 '도시가스'가 공급됩니다. 한국도시가스에 따르면 일부지역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에서 LNG를 원료로 하는 도시가스가 공급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연구진들은 가스레인지와 호흡기ㆍ심혈관 질환의 관계를 어떻게 분석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구진마다 다른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내과학교실이 2017년에 발간한 <실내 공기오염이 천식에 미치는 영향>은 "실내 연소는 요리를 위한 가스레인지의 사용, 벽난로, 가스난방기와 같은 난방 장치, 심지어 흡연을 포함하며, 이때 이산화질소ㆍ이산화황ㆍ일산화탄소ㆍ미세먼지 등이 발생한다"며 "이산화질소ㆍ일산화탄소의 실내 농도 상승은 천식과 같은 민감 집단에서 호흡기 증상 악화와 천식 질병 경과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언급했습니다. 가스레인지 사용과 호흡기 증상 악화의 관계를 어느정도 인정한 겁니다.

반면 가스레인지 등 조리기구가 문제가 아니라, 요리재료의 연소과정이 문제라고 지적한 연구진도 있습니다. '2016 소비자학회 특별세미나'에서 당시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의 한 연구진은 가스레인지와 전기레인지 모두 조리과정에서 미세먼지가 발생했고, 조리기구와 관계없이 요리재료의 연소과정에서 미세먼지가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했다고 밝혔습니다. 

국토교통부가 2019년 발표한 <공동주택 환기설비 매뉴얼>. 조리 전에도 미세먼지와 총휘발성유기화합물이 배출되지만, 굽기 등 특정 방식으로 조리할 때 유해물질 농도가 더욱 높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국토교통부 매뉴얼 캡처

국토교통부도 2019년 <공동주택 환기설비 매뉴얼>을 발행하며, "조리시 발생되는 유해물질은 평상시의 2~60배에 이르므로, 조리시에는 레인지후드 가동이 필수적"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가스레인지에 달린 레인지후드 가동여부 및 실내 유해물질 발생량을 측정한 결과를 보면(위 사진 참고), 가스레인지 그 자체가 유해물질을 배출하기는 하지만 조리시 유해물질 농도가 높게 측정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 가스레인지 논쟁, 미국에서는 정치싸움으로 번져...현재로서는 '환기가 답'

한편 가스레인지 안전성을 둘러싼 논쟁은 미국 정치권으로 번졌습니다. 공화당 의원들은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의 리처드 트럼카 주니어 위원이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를 진행한 이후, "바이든 정부가 가스레인지를 규제할 것"이라며 반발에 나섰습니다(아래 사진 참고). 공화당 의원들은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내세우는 바이든 정부가 가스레인지를 금지해, 화석연료도 규제할 수 있다고 전망한 겁니다.

미국 텍사스주 공화당 하원의원인 '로니 잭슨(Ronny Jackson)'이 지난 11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절대로 가스레인지(가스스토브)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백악관의 미치광이들이 내 가스레인지를 노리려면, 나를 먼저 죽여야 한다"는 글을 남겼다.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처럼 가스레인지와 전기레인지(인덕션) 업계 간 판매경쟁으로 가스레인지 안전성 논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2016년 한 전기레인지 판매업체가 '주방 가스사용이 폐암 원인', '가스레인지 점화 후, 불완전 연소로 인한 일산화탄소 발생'이라고 자사 홈페이지에 광고하자, 공정거래위원회는 표시광고법 위반으로 시정 조치한 바 있습니다. 객관적인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채, 가스레인지의 위험성에 대해 과장해 광고했기 때문입니다.

뉴스톱은 '가스레인지 사용이 호흡기ㆍ심혈관 질환을 유발한다'는 주장을 판단 보류합니다. 가스레인지 사용시 일산화탄소와 포름알데하이드ㆍ미세먼지 등 오염물질이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관련 질환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객관적 근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 가스레인지 조리 기구 자체가 갖는 위험성보다, 조리시 발생하는 휘발성유기화합물이 유해하다는 연구도 나와 명확히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라고 판단했습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조리 시 레인지후드를 켜고, 조리 후 충분한 환기를 할 것을 권고했다. 사진=국립환경과학원 안내서 캡처

다만 조리 시 실내 오염물질 저감을 돕는 방법이 담긴 안내서를 공유합니다.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 2015년에 배포한 <조리 시 실내 오염물질 저감 안내서>는 조리 시 레인지후드를 켜거나 창물을 열어 환기하고, 조리 후 30분 이상 충분한 환기를 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다른 맥락이지만 과거에도 조리시 환기의 필요성을 강조한 일이 있었습니다. 환경부는 2016년 5월 보도자료를 통해 고등어를 구우면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지게 된다고 발표해 '고등어 미세먼지 주범'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환경부는 2주 뒤 다시 보도자료를 통해 요리시 실내 환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라며 오해라고 해명한 바 있습니다. 어찌됐든 조리 전후로 환기를 해야할 필요성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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