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윤석열 "정부가 다 복구해 드리겠다"?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3.07.1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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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부터 바꾸시라

윤석열 대통령은 17일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한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재해 현장을 찾아 과감한 지원을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이재민 임시거주시설로 사용 중인 벌방리 노인복지회관을 찾아 "여기서 좁고 불편하겠지만 조금만 참고 계셔달라. 식사 좀 잘하시라"며 "정부가 다 복구해 드리고 하겠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당부했다. 또 윤 대통령은 18일 국무회의에 모두발언을 통해 “이권 카르텔, 부패 카르텔에 대한 보조금을 전부 폐지하고 그 재원으로 수해 복구와 피해 보전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가능할까? 뉴스톱이 짚어봤다.

출처: 대통령실 홈페이지
출처: 대통령실 홈페이지

①벌방리 피해 상황

대통령이 현장에 찾아간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는 83가구 143명의 주민이 사는 마을이다. 이번 집중호우로 주택 30채가 반파 또는 전파됐고, 주민 50여 명이 임시주거시설(벌방리 경로당)로 대피했다. 무너져 내린 흙더미가 마을 길을 덮었고, 트럭이 나뒹굴고, 나무는 뿌리채 뽑혔다.

대통령의 말처럼 정부가 다 복구해 줄까? 마음이야 진심이겠지만 정부는 법적 근거가 있어야 움직이는 조직이다. 재해에 희생된 국민들에게 피해 복구를 지원하는 법적 근거는 뭘까?

출처: 대통령실 홈페이지
출처: 대통령실 홈페이지

②재난지원금 지급 기준

정부가 재해 피해자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근거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이다. 이 법은 “재난의 원활한 복구를 위하여 필요하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비용(제65조제1항에 따른 보상금을 포함한다)의 전부 또는 일부를 국고에서 부담하거나 지방자치단체, 그 밖의 재난관리책임자에게 보조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언급된 대통령령은 <자연재난 구호 및 복구 비용 부담기준 등에 관한 규정>이다. 이 규정에 따라 사망자 및 실종자 유족과 부상자에 대한 지원금이 지급되고, 주택이 파손되거나 침수되는 등의 피해를 입은 경우 지원금 지급 대상이 된다.

사망·실종자는 인당 2000만원의 구호금이 지급되고, 재난등급과 재난지수를 따져 최대 5000만원까지 재난지원금이 지급된다. 국토교통부는 <자연재난 복구비용 산정기준 및 사회재난 생활안정지원 항목별 단가>고시(아래 그림 참조)를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주택 파손(유실·전파)은 5200만원, 반파는 2600만원, 주택 침수는 200만원으로 단가가 책정됐다.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카르텔로 줄줄 흘러들어가는 혈세를 잡아내도 국가 예산으로 지원할 수 있는 재난지원금 지급 근거가 바뀌지 않고는 그야말로 조족지혈인 셈이다.

③힌남노 피해 복구는 아직도

지난해 9월 태풍 힌남노가 쓸고 지나갔던 경북 포항시 제내리 마을 상황을 살펴보자. 마을 옆을 지나는 칠성천이 범람하면서 마을 1000여 가구가 침수됐다. 새벽 시간에 마을 이장 등이 집집마다 대피를 알려 다행히도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집집마다 어른 어깨 높이까지 흙탕물이 들어 가재도구가 몽땅 쓰레기가 됐다. 일부 가구는 복구에 대한 희망을 접고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남은 집들은 가구당 600만원씩의 지원금을 받았다. 300만원은 중앙정부 예산으로 200만원은 시·도 예산으로 각각 충당했고, 나머지 100만원은 수재의연금에서 나왔다.

이것도 당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시범적으로 기존 지원기준을 상향하여 지원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600만원이다. 6000만원 아니다. 제내리 모든 가구들은 도배, 장판부터 집안의 모든 가구, 가전제품이 상했다. 냉장고, TV, 에어컨, 침대 정도만 교체해도 600만원은 간데 없다.

제내리 주민들이 더 불안한 건 작년 피해를 일으킨 주범인 칠성천이 작년 그대로라는 점이다. 포항시와 중앙정부는 수해 재발을 막기 위해 대대적으로 개선 공사를 하겠다고 홍보했지만 정작 완공시점은 2025년이다. 현재는 본격적인 공사 시행에 앞서 기초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장마철을 무사히 지내도 태풍이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야하고, 내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란 점이다.

2022년 9월 포항 대송면 수해현장을 둘러보는 윤석열 대통령. 출처: 대통령실
2022년 9월 포항 대송면 수해현장을 둘러보는 윤석열 대통령. 출처: 대통령실

④말의 무게... 지켜본다

제내리 사람들은 해병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흙탕물을 뒤집어쓴 가재도구를 집밖으로 꺼내고, 진흙탕으로 변한 집안을 청소하고, 벽지와 장판을 뜯어내는 모든 일을 해병대 청년들의 도움이 없이는 할 수 없었을 거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제내리 수해 현장을 방문한 윤 대통령은 “서울로 돌아가자마자 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바로 선포하도록 검토해 여러분들을 돕겠다. 여기 있는 동안 불편하시더라도 건강 잘 챙기시고, 곧 보금자리로 돌아가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현장에서는 “중앙정부와 경북도, 포항시가 열심히 지원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 완전한 일상 회복에 이르실 때까지 제가 직접 챙기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제내리 주민들은 아직 완전한 일상 회복에 이르지 못했다. 언제 또다시 수마가 몰아닥칠지 모른다는 걱정을 안고 사는 것이다. 그래도 포항 힌남노 수재 현장에선 “정부가 다 복구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정부가 다 복구해주겠다는 윤 대통령의 말은 경북 예천 벌방리 이재민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지켜볼 거다. 대통령의 말은 검찰총장의 말보다, 일개 시민의 말보다 무겁다. 일단 규정부터 바꿔야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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