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수사 기관 견제, 핵심은 '비정치화'

민주주의의 과제로 여겨지는 수사기관 견제 문제
일본 검찰심사회의 강제기소 권한 신설…그러나 한계도 명확
무조건적인 수사 기관 견제보다 '검찰의 비정치화'가 더 중요할 수도

  • 기사입력 2022.05.11 12:00
  • 최종수정 2022.05.11 12:11
  • 기자명 윤재언

수사기관을 어떻게 견제할지는 민주주의 국가의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다. 범죄 수사를 위해서는 일정 부분 인권 제약 혹은 침해가 수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수사과정에 대한 감시와 비판의 눈을 거둬선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나 한국은 수사 기관이 권력의 시녀로 기능한 시간이 긴 민주주의 신생국이다. 그러면서도 민주화 이후 수사 기관, 특히 검찰은 ‘과거 청산 수단’으로 쓰였고, 동시에 검찰 자체가 청산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 이 모순 아닌 모순 속에서 검찰 문제는 주요한 정치 문제가 되고 말았다. 이번 글에서는 필자의 취재 경험을 소개한 뒤, 수사 기관 관련한 일본의 현 상황과 ‘사법 개혁’ 차원에서 시행되고 있는 검찰심사회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일본 TBS NEWS DIG Powered by JNN 유튜브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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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 취재에서 느낀 견제력의 한계

필자가 수습 기자로 처음 담당해야 했던 건 서울 지역 내 검찰 수사, 그 중에서도 피의자, 참고인 소환 관련된 취재였다. 주로 누가 왔고, 무슨 말을 했는지가 관심사였다. 의식하지 못하던 새에 취재는 수사에 대한 비판보다는, 검찰 페이스를 따라가는 식이 되어갔다. 누가 소환될 예정이고, 누가 구속영장 청구 대상이 됐는지만 관심이었다. 그러다 계속 얼굴을 맞대며 친해진 방호원 한 명의 말에 나름 ‘깨우침’을 얻었다. “검찰 취재를 하려면 기자들이 최소한 형사소송법 책 한 권은 제대로 읽고 와야 하지 않겠냐”는 얘기였다. 당시 수사의 맥락을 그저 ‘나쁜 사람 벌주는 과정’이고 기자는 ‘적절히 감시하며 도와주는 것’ 정도로 여긴 것도 사실이기에 반성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나 지금(바뀌었을지도 모르겠으나 간접적으로 봤을 때 그렇다는 얘기다)이나 기자들의 수사 기관, 특히 검찰 취재는 사실 취재라기보다‘사설 탐정’노릇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수사 방향을 미리 짚고, 비리 전체의 그림을 그린다든지, 누가 의혹의 윗선이라든지 하는 게 취재의 우선이 된다. 그러면 당연히 피의자나 참고인의 입장은 잊기 마련이다. 특히나 문자나 간단한 메일 등으로 전해지는 영장 청구, 구속 혹은 기각 소식은 인간을 더욱 사물화하는 메커니즘이었다. 필자도 법원 취재하던 시절 언제 영장 결과 문자가 오나 하염없이 기다리며 구속/기각을 예측하던 적이 있었다. 검찰 내부에 ‘언론 따라가는 수사는 망한다’는 속설이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한발 앞서서 언론을 지도(?)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이명박 정권 때 모 기자 출신 고위직 피의자가 생각난다. 처음에는 여유를 부리며 과거 얘기를 하며 미소까지 띠던 그 사람은, 소환과 영장 청구가 거듭되자 안색이 바뀌고 기자들 질문도 무시하다 결국 구속됐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그저 ‘범죄피의자이니 영장을 몇 번 치든 어떤가’라는 인식이 주류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돌이켜보면 역시나 검찰이 짠 판 위에서 언론이 놀아났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검찰의 정보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에서 사실 이 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일본 수사 기관 상황과 사법 개혁 시도

미디어와 책 등에서 간접적으로 접하는 일본의 수사 기관 상황은 사실 한국보다 그다지 나을 게 없을 뿐더러 오히려 뒤떨어지는 부분도 적지 않다. 특히나 인권을 총괄하는 독립 기관이 부재한 상황 속에서, 수사 기관을 견제하는 세력은 미약하다. 한국에서 도입된 영장실질심사와 같은 구속심사 제도도 유명무실하다. 특히 수사 기관 조사 중 대부분의 피의자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없게 돼 있다. 피의자 인권을 경시하는 이같은 이른바 '인질사법'은 끊임없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다만 나름대로 1990년대 이후 정치개혁과 함께 일부에서 개혁이 이뤄진 것도 사실이다.

일본에서 1차 수사는 대체로 경찰이 담당하고, 주요 정치가나 공무원, 기업 비리를 대도시 지역 검찰청(도쿄, 오사카, 나고야) 특별수사부(특수부)가 맡는다. 검경 양측에 수사권이 다 있으나, 검찰보다는 경찰이 1차적으로 광범위하게 수사를 한다는 측면이 강하다. 기소권은 한국과 동일하게 검찰이 갖고 있다. 경찰과 검찰의 위상 차이는 일본의 5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캐리어 관료’의 인기 부서 순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재정을 담당하는 대장성(현 재무성)이나 산업 정책 부서 경제산업성과 함께, 경찰청이 최고 인기 부처다. 인터넷 자료를 보면 2011년 경찰청에 들어간 신입 캐리어 관료 학부 출신은 도쿄대 법대가 9명, 도쿄대 기타가 3명, 나머지 5명(교토대 법대, 게이오 법대 등)이었다. 

그만큼 수사 관련된 재량이나 권한이 집중돼 있기 때문인데, 2000년부터 2019년까지 경찰청 장관(한국의 차관급) 출신 대학 역시 단 한 명만 제외하고 모두 도쿄대 출신이었다. 예외적인 한 명은 교토대 출신으로, 이 사람까지 포함해 전후 일본에서 비도쿄대 장관은 단 두 명이었다. 물론 검사총장(검찰총장)도 도쿄대가 많기는 하지만 경찰에 비해서는 비교적 고른 편이다. 보통 엘리트가 몰리는 곳일수록 권한이 강하다는 점에서, 일본 경찰의 위상을 알 수 있을 듯싶다.

1990년대 이후 시도된 사법개혁의 주요 방향은 한국과 비슷하게 ‘여론에 조금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었다. 이 시기 경찰과 검찰의 부정이 연이어 터져 나오며 일본인들도 수사기관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시작한다. 특히 수사기관의 범죄 피해자에 대한 인권 침해가 문제시되면서, 보수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도 개혁과 엄벌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이는 2000년대 이후 피의자 인권이 개선되기 시작했던 한국과는 다소 다른 방향이었다. 이로 인해 경찰에서는 피해자 중시 제도가 강화되고, 검찰에서는 주로 형사 재판 관련한 부분이 바뀌기 시작한다. 

사법 관련 대표적 제도 개혁은 형사재판에서 일반인 의견을 반영하는 ‘재판원재판 제도(한국의 참여재판) 도입’과 이번 글에서 간단히 소개할 ‘검찰심사회 제도 개편’이다. 전자는 재판 과정에서 미국 배심원 제도처럼 국민의 법감정을 처벌에 도입하자는 취지였고, 후자는 기소권 독점으로 중요 사건이 재판에 넘겨지지 않을 가능성을 줄이자는 취지였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검찰이 관심 대상이니, 이번 글에서는 검찰 개혁 관련해 도입된 검찰심사회 제도를 소개한다.

이미지 출처: 일본 재판소 홈페이지

개혁 차원에서 도입된 검찰심사회와 검찰의 비정치화 문제

일본 국민 11명으로 구성되는 검찰심사회는 역사 자체는 오래된 제도다. 전후 미국 주도로 민주화가 진행되던 1948년 도입됐고, 검찰이 불기소한 사건에 대해 국민적 시각에서 판단을 내려왔다. 하지만 당초 심사회 결정에 강제력은 없었다. 그러다 2000년을 전후해 범죄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덩달아 검찰단계에서 묻히는 사건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2004년 검찰심사회법이 개정돼, 2009년 5월 시행된다. 묘하게도 일본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된 시기와 맞물려 있었다.

개정의 핵심은 검찰심사회에 강제 기소 권한이 생겼다는 점이다. 검찰심사회는 범죄 피해자나 고소, 고발자가 불기소 처분에 불복했을 때나 독자적인 판단이 있을 때, 불기소처분 심사를 개시할 수 있다. 회의에서 8명 이상이 ‘기소 상당’ 결론을 낸 뒤, 검찰이 재수사에서 불기소하거나 3개월 이내에 기소하지 않고 심사회에서 재차 같은 결론이 나오면 피의자는 강제기소된다. 이후 기소 절차와 공소 유지는 법원이 지정하는 변호사가 담당하게 된다. 

다만 첫 번째 회의에서 8명에 미치지 못하는 과반수만 부당하다고 하면 ‘불기소 부당’의견이 나와 검찰이 재수사는 하지만 강제기소 가능성은 사라진다. 최근까지 10건이 강제기소됐고, 그 가운데 4건에서 무죄가 확정, 유죄가 확정된 건은 2건에 그치고 있다. 나머지 사건은 법원에 의해 절차가 중단(면소)됐다. 다만 강제기소된 사건들의 면면을 보면 재판을 받게 했다는 사실 자체는 여론 입장에서 의미가 어느 정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대표적인 사건이 후쿠시마 원전 운영사 도쿄전력 경영진 강제기소다. 쓰나미 예측 가능성과 관련해 검찰은 경영진의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봤지만, 검찰심사회가 부당하다고 판단해 이들을 2015년 과실치사 등 혐의로 강제기소했다. 그러나 2019년 1심 법원은 예측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고 보고 무죄 판결을 내렸고 현재는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아베 전 총리에 대한 도쿄지검 특수부 수사에 대해서도 지난해 검찰심사회가 열렸다. 관저가 주최하는 ‘벚꽃을 보는 모임’에 지지자들을 사적으로 초대했다는 의혹이 드러났으나, 검찰은 주요 피의자를 불기소하기로 한다. 이에 당초 사건을 고발한 시민단체가 부당하다며 심사를 요청했다. 결과적으로 아베는 ‘불기소 상당’결론이 나왔고, 회계책임자와 비서만 ‘불기소 부당’으로 재수사가 시작됐지만 결론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 밖에 민주당 정권 시절 실력자 오자와 이치로의 정치자금 사건도 강제기소됐지만 무죄가 나왔다. 이렇듯 현재까지 여론의 분노(?)에 부응하는 이상의 실질적 성과는 눈에 띄지 않는 상황이다. 어떤 면에서는 한국에 도입된 특별검사제도보다 뒤떨어지는 측면도 있어 보이는데, 특히 강제 기소 전 어느 선까지 지정 변호사가 역할을 할 수 있는지가 불명확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만 일본 검찰 자체가 한국보다 다소 권한을 억제적으로 행사한다는 점은 적어둬야 겠다.

덧붙여 검찰심사회와 별개로 한국과 다소 차이가 있는 관행 하나를 짚고 넘어가고 싶다. 수사기관이 과도하게 정치화되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일본에서는 누가 경찰 수장인지 검찰 수장인지 사회적으로 크게 관심이 없다. 관행화된 내부 인사 절차에 따라 대체로 ‘될 만한 사람’이 그냥 임명되기 때문이다(이는 물론 자민당 장기집권이나 낮은 민주주의 의식?과도 관계가 없다고 하긴 어렵겠으나). 이런 관행을 깨고 제 사람을 심으려고 했던 게 제2차 아베 정권 때였지만 그마저도 수포로 돌아갔다. 또한 야당을 포함한 정치권은 내부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굳이 고소, 고발을 통해 수사기관으로 가져가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한국인의 눈으로 각종 문제 해결이 미적지근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나, 검찰의 정치화가 방지된다는 점도 부정은 할 수 없다.

한국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수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 쟁점이 돼 왔고, 정치와 검찰, 어디가 먼저인지 모를 정도로 서로가 서로를 개입하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국회 내에서 문제가 있으면 자체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일단 고소, 고발을 한다. 검찰도 상황에 따라 이 같은 정치 사건을 권력 기관화해 적절히 활용해왔다. 이른바 적대적 공생관계인 셈이다. 결국 이 같은 과도한 ‘정치의 검찰화’, ‘검찰의 정치화’가, ‘현실 정치 경험’이 일천한 검찰 출신 대통령을 낳은 것은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는 이를 ‘한국 민주주의의 한계가 낳은 희비극’으로 보고 있다. 

윤재언   sharply2u@gmail.com    최근글보기
일본 히토츠바시대 강사, 전 신문기자. 연세대에서 사회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뒤 2010년 매일경제신문 입사. 예전부터 갖고 있던 ‘일본을 알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기자일을 뒤로 한 채 2015년 훌쩍 바다를 건넘. 2021년 히토츠바시대에서 박사 학위 취득 뒤 연구자의 길에 접어듦. 전공은 국제관계(국제정치경제)지만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정치 / 경제 / 사회(특히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연구하고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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