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평범, 당시는 혁신...맥락을 알아야 작품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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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평범, 당시는 혁신...맥락을 알아야 작품이 보인다
  • 김신
  • 승인 2019.05.22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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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의 예술 에세이] 예술 고증·해석과 맥락의 중요성

상상이라는 것은 미래는 물론 과거를 불러들일 때도 절실히 요구되는 능력이다. 과거든 미래든 사람들은 늘 지금 현재의 삶과 경험, 지식을 기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상의 무능력’이란 바로 이렇게 지금의 관점, 또 자기가 처한 관점으로만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과거를 상상할 때는 더욱 지금의 관점에서 벗어나 그때 그 시절의 관점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것은 그저 자기 멋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고증’을 필요로 한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보면 로마 원로원들이 검투사 경기가 열린다는 홍보물을 보는 장면이 나온다. 이 홍보물은 마치 오늘날의 종이에 인쇄된 것처럼 표현되었다. <글래디에이터>의 시대 배경은 1세기 경이다. 그 시절의 종이는 양피지였다. 양피지는 양이나 염소,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다. 어마어마하게 비싸기 때문에 가치가 없는 것은 절대로 양피지에 기록하지 않는다. 검투사 경기 홍보 따위를 양피지로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고증이 잘 안 된 거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검투사 경기의 홍보물을 보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이 글에서 이야기하려는 고증은 그런 것이 아니다. 알렉산더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이런 대사가 나온다. “알렉산더의 머리맡에는 항상 호머의 시집이 있었다.”(히스토리 채널의 <알렉산더 대왕 1부> 중에서) 이 말은 알렉산더가 책 읽기를 아주 좋아했다는 뜻이다.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닐 테지만 약간의 부가적 설명이 필요하다. 오늘날처럼 책이 흔하고 모든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때, 책을 늘 곁에 두고 읽는다는 건 분명 그 사람의 지적인 재능을 뜻할 수 있다. 하지만 알렉산더 대왕 시절에는 어땠을까? 그것을 ‘상상’해보자.

 

알렉산더는 기원전 사람이었므로 그 시절 종이는 로마시대보다 훨씬 더 귀하고 비쌌을 것이다. 그런 비싼 종이로 만들어야 하는 책은 요즘으로 치면 고가의 그림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가졌을 것이다. 책이 집집마다 있는 그런 흔한 물건이 절대로 아니다. 알렉산더가 좋아했다는 호머의 <일리아드>나 <오디세이> 조차도 호머가 자기 손으로 쓴 것이 아니라 입으로 읊은 것이다. 그만큼 뭔가를 기록하고 책으로 만드는 일이 희귀한 일이었다. 따라서 왕족이나 귀족이어야 비로소 책을, 그것도 아주 소수의 책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시절 문자를 알고 있는 사람은 인구의 몇 프로나 될까? 15세기 중반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했을 때 자국어를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은 인구의 3%도 되지 않았다. 그러니 알렉산더 대왕 시절 책을 읽고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엄청난 특권층인 것이다. 게다가 고대에는 지금처럼 다양한 미디어가 없었다. 그런 시절에 문자를 알고 있는 이에게 책은 오늘날의 스마트폰보다 훨씬 흥미로운 물건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이야기를 즐긴다는 건 이야기꾼의 말을 듣든, 글로 읽든, 영상으로 보든 지적인 능력을 떠나 누구에게나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다. 단지 오늘날 사람들이 책을 멀리하는 이유는 에너지를 훨씬 덜 쓰고 즐길 수 있고, 쉽게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영상 미디어가 아주 잘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오늘날 책 읽기를 무척 싫어하는 우리 아들도 알렉산더 대왕 시설로 돌아간다면 책을 머리맡에 두고 매일 읽었을 것이다. 따라서 알렉산더가 책 읽기를 좋아했다고 암시하는 대목은 당시의 ‘맥락을 살려’ 상상하고 해석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과거의 예술작품이나 디자인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 상상력이 필요하다. 1920년대에 나타나기 시작한 모던 건축을 감상할 때,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고 흔한 형식이지만 당시로서는 급진적이고 혁신적이었다. 그런 새 디자인 양식은 당대 사람들을 위협하는 정도였다. 네덜란드 신조형주의 운동인 데스틸(De Stijl)의 한 작품을 보자. 이것은 J. J. P. 오우트가 디자인한 ‘데 유니(De Unie)’라는 카페 건물이다. 스케치만 봐도 굉장히 세련되고 독특한 디자인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것이 그리 난해하고 위협적으로 보일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이 건물이 지어진 1920년대 중반에 찍은 사진을 보면 이 건물과 주변 건물들과 얼마나 차별화되었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맥락을 되살릴 때 비로소 그 건물이 생겨났을 당시의 느낌을 이해할 수 있다. 르 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부아, 발터 그로피우스의 데사우 바우하우스 건물 역시 마찬가지 방식으로 맥락을 살리지 않으면 그냥 평범해 보이는 건물일 뿐이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거리에 세워진 '데 유니' 카페, 1925년경.
J.J.P. 오우트가 디자인한 '데 유니' 카페의 스케치, 1925년.

 

오늘날 모더니즘 스타일은 너무나 우리 일상에 깊숙하고 넓게 퍼져 있다. 따라서 모더니즘은 마치 자본주의처럼 필연적인 역사의 귀결로 느껴진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막대한 돈(전후의 마샬 플랜)과 폭력(제3세계 국가의 내란과 미국의 개입)과 같은 투쟁의 역사로 구현되었듯이, 모더니즘 역시 투쟁으로 통해 쟁취되었다. 그것이 막 출현했던 20세기 초반 아주 극소수의 엘리트 계층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더니즘을 경멸하고 조롱했다. 디자인에 대한 대중의 기본적인 태도는 보수적이다. 새로운 것을 결코 반기지 않는다.

 

아돌프 로스가 디자인한 골드만 살라치 빌딩은 창문 장식이 없어서 매우 평면적으로 보인다. 주변에 있는 고전주의 건물과 비교해보면 더욱 그것을 느낄 수 있다.
고전주의 형식의 건물 장식 방식들.

1909년, 비엔나에 골드만 살라치(Goldman & Salatsch) 빌딩이 들어섰다. 이 건물을 디자인한 아돌프 로스는 장식을 죄악시한 급진적인 건축가다. 이 건물은 기존의 건물과 달리 창문 주변에 당연히 들어가는 장식이 일체 없다. 고전주의 형식의 건축에서는 창문의 상인방, 하인방을 구성하는 구조를 강조하고 장식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골드만 살라치는 아무 것도 없었으니 당시 주민들에게 준 충격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주민들은 이 건물을 ‘눈썹이 없는 집’이라고 불었다. 한 만평가는 이 건물을 맨홀 뚜껑에 비유했다.

 

당시 한 만평가가 골드만 살라치 빌딩을 맨홀 뚜껑에 비유했다.

 

이 건물은 호프부르크 궁으로 향하는 미하엘 광장에 세워졌다. 당시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는 골드만 살라치 건물을 끔찍하게 싫어해서 미하엘 광장을 지나지 않는 다른 길로 다녔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왕궁의 자기 방 창문을 가려서 평생 흉측한 건물을 피했다고 한다.

 

모던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사랑한 산세리프(세리프가 없는 서체) 활자는 19세기 초반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활자의 역사에서는 세리프가 없는 형식보다 세리프가 있는 형식이 디폴트다. 글을 쓸 때는 세리프를 만들지 않아도 인쇄된 활자를 볼 때는 세리프가 있는 것에 더욱 익숙했다. 따라서 세리프가 없는 글자는 그들에게 대단히 이상한 디자인이었다. 이 활자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기괴하다’는 뜻으로 ‘그로테스크(grotesque, grotesk)’라고 불렀다. 20세기에 가장 많이 쓰인 것으로 알려진 헬베티카(Helvetica, 스위스 서체라는 뜻)의 처음 이름은 ‘새로운 하스 그로테스크(Neue Haas Grotesk)’였다. 하스는 이 활자를 만든 회사의 이름이다.

 

세리프가 있는 개라몬드 서체로 디자인한 책의 본문. 20세기 전반기까지도 서양의 독자들은 이런 세리프 서체의 조판에 길들여져 있어서 세리프 없는 글자로 본문을 디자인하면 아주 낯설고 이상하게 여겼다.
20세기 전반기에 모던 그래픽 디자이너들에게 큰 인기를 끈 산세리프 서체인 ‘악치덴츠 그로테스크’.

 

사람들은 골드만 살라치 건물의 무장식성, 평면성에 당황했듯이 세리프가 없는 글자에서도 그들을 황당케 하는 무장식성, 평면성을 느꼈을 것이다. 그들 주변의 모든 건축물, 가구, 글자가 장식적이고 입체적일 때 무장식의 평면적 디자인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그것을 상상할 때 비로소 우리는 그 디자인의 혁신성을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장식이 없는 평면적 디자인을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더니즘이 보편화되기 이전의 대중은 모던 스타일에 대해 미학적 가치 판단 자체를 할 수 없었다. 이는 마치 백인을 처음 본 조선시대 사람의 느낌과 비슷할 것이다. 너무 낯선 것은 그 안에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더라고 그저 기이하고 위협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역사는 바로 이렇게 당시 맥락을 살려 상상력을 동원해 비로소 흥미와 호기심을 불어넣을 수 있다.

김신   kshin2011@gmail.com    최근글보기
디자인 미술 비평가.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 기자와 편집장을, 2011-2013년까지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다. 디자인사, 디자인론, 디자인기호론,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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