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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유망' 스탠퍼드 과학자는 왜 ‘강아지 암’을 선택했나[황장석의 실리콘밸리 이야기] 임프리메드 공동창업 임성원ㆍ이혜련 박사

실리콘밸리 생명공학 스타트업 임프리메드(ImpriMed)의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는 임성원 박사. 며칠 전 그를 만나러 간 곳은 스탠퍼드대 캠퍼스와 사실상 붙어 있는 스타트엑스(StartX) 건물이었다.

스타트엑스는 스탠퍼드대 학생들이 중심이 돼 지난 2011년 설립한 비영리 창업지원기관. 입주 기업으로 선정되면 사무실, 법률 자문 등을 무료로 제공한다. 투자도 해준다. 컴퓨터 정보통신(IT) 뿐만 아니라 의료, 하드웨어 관련 기업이 사용할 수 있는 실험실에는 고가의 장비와 기자재가 갖춰져 있다. 혜택이 많아 입주 기업으로 선정되면 성공 가능성을 인정받았다고 할 만큼 경쟁이 치열한 곳이다.

임프리메드는 반려견 암 치료 약물 정보를 제공하는 회사다. 암 세포 임상실험을 통해 각각의 반려견에게 가장 효과적인 암 치료 약물을 찾아내는 일이다. 회사는 2017년 5월 창업 이후 테슬라, 스카이프, 코인베이스 등의 초기 투자가이자 실리콘밸리 억만장자 벤처투자가인 팀 드레이퍼의 투자사에서 투자를 받는 등 현재까지 400만달러를 투자 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임프리메드가 입주해 있는 창업지원기관 스타트엑스 내부 모습. 2019. 5. 30. 황장석

사람의 암 치료제를 연구했던 공학자

목표했던 게 처음부터 개는 아니었다. 임 박사는 인간 암 치료제를 연구해온 생명공학자였다. 카이스트 학부, 석사 시절에도, 석사를 마친 뒤 회사에 다닐 때도, 유학을 와서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에서 연구할 때도 온통 관심은 인간의 암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2001년 서울과학고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 입학할 땐 컴퓨터공학을 전공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까지 게임을 워낙 좋아해서 게임 프로그래머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대학 입학하고 막상 전공으로, 학문적으로 접근하려다 보니 저한테 맞지 않았어요. 혼자 3, 4개월은 고민한 것 같아요.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그래서 나온 결론이 사람 살리는 일을 하자는 것이었죠.”

결론이 나오자 의대와 생명공학 사이에서 고민했다. 지도교수(이상엽 당시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현 카이스트 특훈교수)에게 조언을 구했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사람 살리는 일을 하고 싶어서 의대를 가겠다는 생각을 존중한다. 그런데 생명공학자가 뛰어난 질병 치료 기술이나 약을 개발하면 그가 죽고 난 뒤에도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지 않으냐.’ 그때 결정했어요. 그 후로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죠. 가장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질병인 암 치료제 연구를 선택했고요.”

‘강아지 암’으로 피벗하다

2017년 5월 창업 당시 회사는 인간 암 환자 개인별로 맞춤형 치료제 정보를 제공하는 회사였다. 기술엔 자신이 있었다. 새로운 암 치료제를 만든 건 아니었다. 암 치료에 쓰이는 기존 약물들을 배합하는 기술, 하나의 약물일지라도 농도를 다르게 만들어 치료 효과가 높은 배합을 찾아내는 기술이 있었다. 특허를 낸 기술이다.

또 하나, 아직까지 영업비밀로 법률회사를 통해 등록만 해두고 공개하지 않고 있는 기술이 있다. 의사가 암 덩어리에서 떼어낸 암 세포를 임상실험이 가능하도록 오래 생존시키는 기술이다. 환자 암 덩어리에서 떼어낸 암 세포가 임상실험을 마칠 때까지는 최장 5일 가량이 걸린다고 한다. 의사가 암 세포를 떼어내 임프리메드에서 제공한 용액에 담으면 24시간 내에 택배로 회사에 도착한다. 임상실험에는 3, 4일이 더 걸린다. 다양하게 배합하고 농도를 달리한 약물들을 살아있는 암 세포에 떨어뜨려 보고 효과를 분석하려면 그 동안 세포가 살아 있어야 한다. 영업비밀인 용액 제조 기술은 기존의 암 세포 보존용액보다 생존 확률을 크게 높인 기술이라고 한다. 여러 기업들로부터 ‘기술을 팔면 안 되느냐’는 제안을 받고 있지만 당분간 그럴 생각은 없다는 게 임 대표의 말이다.

자신만만하게 출발한 회사는 난관에 부딪혔다. 실리콘밸리 벤처투자사가 진행한 창업프로그램에서 투자가들의 관심을 받으며 70명 이상에게서 투자 제의를 받았는데, 조건이 붙어 있었다. 사업계획은 좋은데, 실제로 사람의 암 세포로 임상실험을 한 자료가 없다는 것이었다.

“단 한 명의 환자 사례만 있어도 돈을 투자하겠다고 했어요. 스탠퍼드 의대 교수들과 접촉해 논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될 줄 알았죠. 그런데 4, 5개월이 지나는 동안 단 하나의 샘플도 얻지 못했어요. 인간 환자이기 때문에 개인정보보호 등의 규정이 엄격하고 복잡했어요. 의사들의 협조를 구하는 일도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어요. 주위에서 개인적으로 투자받은 돈은 다 떨어져 가고 달랑 8000달러 남아 있던 상황이었죠.”

스탠퍼드 캠퍼스 근처에 있는 스타트엑스 건물 2층 회의실에서 임프리메드 공동창업자 임성원 박사(왼쪽)와 이혜련 박사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 5. 30. 황장석

2018년 1월의 일이었다.

그 때 공동창업자이자 최고운영책임자(COO) 이혜련 박사가 반려견 암 치료 분야로의 피벗(pivot)을 제안했다. 이 박사는 서울대에서 신경생물학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13년 초 스탠퍼드 의대에 박사후과정(postdoc) 연구원으로 왔다. 이 박사는 2017년 6월 임 박사의 ‘끈질긴 설득과 회유(?)’로 학교를 떠나 임프리메드 공동창업자로 이름을 올렸다. 딱 한 달만 같이 일해보고 결정하라는 제안에 시작했다가 주저 앉았다.

피벗을 제안한 이 박사의 말이다.

“벤처투자사 창업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했던 스타트업 중 동물의료 기록을 다루는 회사가 있었어요. 그 회사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알게 됐던 분야였죠. 투자자 만나보면서 이래선 투자 받기 쉽지 않겠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제안하게 됐어요.”

“누나가 그랬어요(임 박사는 이 박사를 그렇게 부른다). 우리 일단 개부터 살리자고. 강아지도 암에 많이 걸리는데 치료제도 인간과 같은 걸 쓴다면서 생명 살리는 것도 같지 않으냐고 했어요. 강아지 암 치료 분야에서 시작해서 사람으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우선 개에게 발생하는 암 중에서 가장 많이 생기는 암인 림프종으로 시작하기로 했어요.”

한 통계분석회사 자료를 인용하면, 2017년 현재 미국 가정에서 키우는 반려견 숫자는 8970만 마리. 반려견에게 가장 많은 암은 혈액암이라고 한다. 미국반려견암재단(NCCF)에 따르면, 혈액암의 일종인 림프종은 그 중에서 개에게 가장 많이 생기는 암이다.

“사람은 혈액암이 전체 암 중에서 8, 9% 정도 되는데요, 강아지의 20%가 혈액암, 고양이는 33%가 혈액암이에요. 가장 많이 걸려요. 그리고 같은 혈액암이면 사람의 혈액암과 강아지 혈액암이 비슷합니다.”

강아지 암을 의심할 수 있는 징후. 출처: ParkerPup.com

반려견, 회사를 살리다

반려견 암 분야로 피벗을 하고 나니 투자자들 반응이 완전히 달라졌다. ‘한 명이라도 실제 환자 임상실험 결과를 보여주면 투자하겠다’며 나서지 않던 투자자들의 태도가 바뀐 것이었다.

“반려동물 암 치료 분야의 경우 인간 암 치료 분야 같은 규제가 없어요. 또 사람의 경우 새로운 암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면 보험회사에서 인정해줘야 보험처리가 가능한 반면 반려동물의 경우 그냥 주인이 주머니에서 내야 하죠. 그런데 이 동네 투자자들은 대부분 반려동물이 있고, 많은 비용을 반려동물 의료비로 지출하거든요. 이해가 빨랐죠. 투자자 한 명을 만났는데 사업계획 설명을 듣자 마자 그 자리에서 15만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했어요. 2주 뒤에 통장에 돈이 들어왔죠. 그렇게 2018년 12월까지 초기투자(seed round)로 400만달러를 투자 받았죠.”

회사는 현재 암 치료가 가능한 수의사가 있는 42개 동물병원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미국 전체에 이런 스페셜리스트 수의사가 있는 동물병원이 227개 있다고 한다). 수의사가 림프종에 걸린 반려견의 암 세포를 떼어서 회사 측이 제공한 보존용액에 담아 보내오면 임상실험을 한다. 실험을 통해 어떤 약물을 어떻게 배합했을 때 치료 효과가 좋았는지, 하나의 약물일지라도 농도를 어떻게 조절했더니 효과가 좋았는지 등의 정보를 제공한다.

“암 세포가 회사에 도착하면 실험실에서 암 세포 위에 200, 300개 정도의 조합(일종의 약물 칵테일)을 만듭니다. 현재 수의사들이 처방하는 14-16개 약물을 조합하거나 농도를 조절하는 방식이죠. 데이터를 분석해서 1주일 안에 병원에 전달합니다. 통상 반려견 주인들이 1주일, 2주일 간격으로 방문하는 걸 감안한 것이죠. 다음 방문 시에 처방이 가능하도록 하는 겁니다.”

이렇게 제공하는 서비스는 현재 무료다. 대신 회사는 동물병원에서 환자의 암 정보, 치료 정보를 받는다.

“반려견 주인에게 동물병원과 회사가 정보를 공유해도 좋다는 서명을 받아서 정보를 받고 있죠. 400마리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현재 240마리의 자료를 축적했어요. 150마리가 넘어가면서 (임상실험을 통해 추천한 약물이 분석대로 효과를 나타내는) 정확도가 상당히 높아지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일단 올해 연말까지는 서비스를 지금처럼 무료로 제공할 계획입니다.”

투자자들은 앞으로도 반려견 암 치료 분야에만 집중해서 회사가 성장하길 원한다고 한다. 임 박사는 아직 인간 암 치료에 대한 꿈을 버리진 않았다.

“강아지가 됐든 사람이 됐든 생명을 살리는 회사를 만들고 싶은 거니까요. 반려견 암 치료 분야에서 인정 받으면 그걸 기반으로 인간 암 치료에 적용시키고 싶어요. 나아가 암 뿐만 아니라 다른 질병 치료 기술로도요.”

그러자 옆에서 공동창업자 이혜련 박사가 덧붙였다.

"그게 가장 큰 미션이에요. 그럴려면 일단 우리가 살아남아야죠."

황장석 팩트체커    surono@naver.com  최근글보기
2002년부터 동아일보와 서울신문에서 정치부, 사회부, 문화부 기자로 일했다. 2012년 스탠포드대학교 후버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퇴사 이후 실리콘밸리 근처에 거주하며 한국 언론을 통해 실리콘밸리와 IT기업 소식을 전하고 있다. 2017년 실리콘밸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명한 책 <실리콘밸리 스토리>를 냈다.

황장석 팩트체커  suro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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