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최근 소아진료 문제에서 본 일차의료 난맥상

  • 기자명 뉴스톱
  • 기사승인 2023.07.26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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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준(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올해 들어 소아응급, 소아외래 등 소아진료과 관련해 연속적으로 심각한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다. 소아환자의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외래진료 오픈런 등이 대표적이다. 몇몇 경우는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기까지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아과개원의협회인 소청과의사회는 소아과 폐과 선언을 하고 피부미용 등의 수익성 높은 비급여진료를 하겠다고 나서 사회적 불안을 고조시켰다. 아이들과 양육자들 그리고 의사 모두 공포와 불만을 가지게 된 상황에서 아직까지 마땅한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정부가 밝히는 대책은 24시간 소아응급센터 추가 지정과 일부 수가 가산논의 정도다. 때문에 소아응급진료체계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국가책임의 부재문제를 얼마전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나서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하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보호자 없이 혼자 병원에 온 9세 아이의 진료를 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모가 보건소에 ‘진료거부’로 민원을 제기하고,  이 의원은 폐업선언을 하는 사건이 보도됐다. 

동네에 하나뿐인 소아청소년과의원이 9세 아이 보호자의 ‘진료 거부 민원’을 받고 폐업하기로 한 사연이 전해졌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 페이스북 캡처
동네에 하나뿐인 소아청소년과의원이 9세 아이 보호자의 ‘진료 거부 민원’을 받고 폐업하기로 한 사연이 전해졌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 페이스북 캡처

보호자와 의사 모두가 극도의 불신을 드러낸 일이고, 보호자 없이 아이들의 진료를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 될 만한 사건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구체적인 상황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과연 올바른 접근 방식인지는 의문이다. 예를 들면 보호자가 있어야 진료를 할 수 있는가 아닌가? 보건소에 민원을 넣는 방식은 블랙컨슈머가 아닌가? 의료윤리상 진료거부에 해당하는가? 뭐 이런 논점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또한 애초에 앞서 이야기한 모든 소아진료에서의 문제처럼 한국의 보건의료제도의 총체적 난맥상의 약한고리가 드러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선 소아응급진료문제는 일차적으로 응급진료체계의 문제, 한국의료에서 응급진료에 배치한 자원결핍과 배분우선순위의 문제다. 성인응급도 심각한 문제고, 따라서 소아응급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마찬가지로 보호자 미동반 진료 사건에서 드러난 소아외래문제도 사실 한국 보건의료체계내 일차의료의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는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우선 상식적으로 자주 진료하고 계속 진료했던 아이였다면 보호자 동반 진료의 의미는 크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사건 속 9세 환아는 그 의원을 1년도 전에 내원했었던 기록만 있었다고 한다. 물론 아프지 않아 병의원에 내원한 적이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가 다른 의원을 다니고 다른 병력이 있다면 이는 어떻게 확인이 가능할까? 즉 아무 소아과나 마구 다니는 방식의 한국의료에서 자주 내원하는 환아가 아니라면 보호자 동반 여부는 중요하다.

무엇보다 환아의 과거병력, 현 증상의 이력, 가족력 등등이 사실 진료에 핵심적인 요소인데,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장치가 한국에는 없다. 의사 쪽 입장을 변호해 보자면, 소아환자에 대한 설명이나 투약, 처치등에 대한 위험성은 개별 진료의사가 떠안아야 하는 구조다. 환아의 입장에서 보면 보호자가 없다고 진료를 받지 못해, 제때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놓치는 결손의 문제다. 이 또한 어떤 의사를 만날지를 개개인이 결정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결국 우리사회는 보건의료부분에서 개인들에게 책임을 과도하게 전가해 이번 사태를 야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외국은 어떠한가? 대부분의 선진국은 주치의제도나 환자등록제를 시행한다. 이미 그 아이의 병력, 가족력, 예방접종력, 학교 등을 알고 있는 의사가 존재하고 그 의사가 진료를 담당한다. 당연히 환자와 의사의 관계도 오랜 신뢰 속에 있기 때문에 보호자 동반 여부가 진료의 핵심도 아니고, 설사 보호자가 와야 진료가 가능하다고 했더라도 서로 불만과 불신은 없었을 것이다.

거꾸로 주치의 제도 아래에서는 아이의 상태가 나쁘면 의사가 보호자에게 직접 전화를 해 설명까지 해 준다. 우리나라처럼 보호자를 불러 같이 진료하고 설명해야 의사가 안심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의사와 환자 간에 신뢰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진료 이후 발생한 불필요한 오해와 민원등이 골치가 아프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보호자가 있어야 진료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보다 우선되는 것은 환자(보호자)와 의사의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는가의 문제다. 

세계보건기구(WHO)등은 이런 최초접촉과 환자-의사 신뢰의 문제로 일차보건의료(primary health care)를 보건체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혹자는 일차보건의료, 일차진료 하면 그냥 동네에 있는 1차의료기관을 생각하는데, WHO에서 말하는 일차보건의료는 말그대로 최초접촉과 예방, 건강증진등을 총괄하는 지역의료를 말한다. 이런 중요성 때문에 대부분의 선진국이 주치의제 혹은 환자등록제등의 제도적인 일차의료체계를 갖춘다. 그런데 한국은 OECD 국가 중 몇 안되는 일차의료가 없는 나라다.(OECD 보건데이터에서 이 점을 언급한다.) 소위 쉽게 전문의를 만날 수 있고, 아무 병의원이나 쉽게 갈 수 있다는 자율성의 예찬 만큼, 의사-환자 관계는 느슨하다. 도리어 가장 불신이 심한 관계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런 한국의 일차의료 난맥상은 결국 국가와 사회의 방임 때문이다.

어떤 병의원에 갈 것인지를 환자가 선택하는 게 선택권이 되려면 소비주체가 소비대상을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보건의료부분은 정보불균등성과 의료공급의 불균형 때문에 애초에 시장실패가 가장 확실하게 예견된 곳이다. 아무리 환자가 현명해져도 스스로 병의원을 결정한다면 그 결과는 의학적 고려나 진료 연계성이 아니라 다른 이해관계에 더 큰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때문에 한국에서도 법률로 환자유인, 알선, 의료기관의 영리행위 등을 금지한다.

다시 보호자 없는 아이의 진료를 거부한 사건으로 돌아가보면, 만약 이 소아과가 아이의 지정소아과였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이런 논란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추가로 제대로 된 보건체계라면 학교도 아파서 조퇴한 아이의 의료서비스에 책임이 있다. 학교와 연계된 소아과 진료체계가 당연히 있어야 하고, 학교에서 아픈 아이들은 보건교사등의 지도와 연계 속에서 제때 진료를 받았어야 한다. 때문에 유럽국가들은 공교육, 일차의료, 소방 등의 기본적인 사회서비스는 서로 연계가 되어 있다. 한국은 이들 사회서비스가 마치 각자도생 방식으로 시장에 방임되어 유지되는데 이는 매우 후진적인 체계다.

때문에 사건중심의 사안을 지엽적으로 이제 우리 언론이나 전문가가 논의하기에 앞서 총체적인 일차의료문제, 응급의료체계에 대해서 다시금 들여다보고 큰 틀에서 개혁방안을 논의해야한다. 특히 앞으로 고령층이 늘어가고 돌봄서비스 등의 사회서비스가 확대되는 지역사회돌봄체계가 확대되려면 무엇보다 주치의제도등의 근본적인 개혁은 필수적이다. 소아진료영역에서 발생한 최근 사건사고들은 한국의료체계에 경고를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총체적 일차의료 난맥상부터 시급히 교정해야 불필요한 환자-의사 사이의 불신과 불안을 잠식시킬 수 있다. 아마도 소아주치의제 부터 시작한다면 변화의 계기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녹색병원 재활의학과장)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녹색병원 재활의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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