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동훈 자녀 스펙논란', 산호세 한인부모들은 왜 분노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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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동훈 자녀 스펙논란', 산호세 한인부모들은 왜 분노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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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5.0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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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대학입시를 치루는 미국의 모든 12학년 (한국의 고등학교 3학년) 가정에게 인내와 강한 멘탈을 요구하는 시기이다. 대학입학지원의 개수제한이 없는 미국의 대학입시의 결과가 이 즈음에서 모두 나오고 뉘집 자녀가 어떤 학교에 입학허가를 받았고 재정지원은 얼마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뭐 이것가지고 그러냐 싶은 독자들도 있을것이다. 한국의 대학입시는 고등학교 전체기간 아니 중학교 기간까지 포함하는 역대급 장기전이 아닌가? 내가 하려는 말은 어느나라 입시가 더 어렵냐는 것은 아니다. 이 미묘한 시점에 터저나온 한동훈 후보자 딸의 '스펙쌓기' 와 허위경력논란이 미국의 한인사회에서 소비되는 양상과 그게 드러내는 현지화된 이민자의 공정과 능력주의의 여러가지 단면이다.

 

한동훈 후보자의 딸의 경력논란에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집단은 산호세를 위시한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학부모들이다. 이들의 '분노'는 명료하다. 이들 대부분은 한동훈 후보자의 딸, 그리고 문제시되는 입시컨설팅에 함께한 산호세 지역 한인 고등학생들의 경력이 대부분 허위거나 부풀려졌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들은 다른 학생들의 기회를 뺏어간 부도덕한 집단으로 성토된다. 여러 표절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이상 이들의 주장이 대체로 사실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렇다면 산호세에 거주하며 '고발자(whistleblower)'가 되기로  자처한 이들 한인 부모들은 왜 저렇게 분노하는가? 혹자는 한국이건 미국이건 명문대 입시를 위해 무엇이라도 하는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그런 인식이 담고 있는 일말의 진실이 있다. 그럼에도 미국 한인 커뮤니티에서 이번 사건에 대응하는 모습을 미국 명문대 입시를 위시한 상층부 엘리트들의 '밥그릇 싸움'으로 단순화하기에는 이 사안은 꽤나 복잡하다. 이 글은 그에 관한 이야기다.

 

미주내 한인들의 복잡한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지점을 염두해 둘 필요가 있다. 첫번째 저렇게 분노하는 한인들이 대부분 40대 후반에서 50대라는 점이다. 아마 이들은 미국에 유학과 이민을 가지 않았다면 한국에서 소위 화이트칼라 전문직으로 상층부 엘리트를 구성했을 것이 분명하다. 두번째, 이들이 주로 거주하는 곳이 산호세·시애틀·뉴욕 등 한국에도 최근 번역된 <커리어와 가정 (Career and Family)>의 저자 클라우디아 골딘(Claudia Goldin) 교수가 지적하는 21세기에 새로 생긴 '탐욕스러운 직장 (greedy work)'이 대거 몰려있는 곳이다. 즉 이들 한인은 2020년 미국 센서스 인구조사에 나타난 대략 2백만명(192만명)의 한인중에도 상층부 한인에 속하는 분들이다. 특히 한동훈 후보자의 딸이 컨설팅을 받았다는 쿠퍼티노(Cupertino)를 위시한 산호세지역은 미국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곳으로 떠오른 부촌이다. 즉 이 싸움은 겉으로 보기에는 대략 상위 10%에 해당하는 미국내 가계소득 년 20만달러를 훌쩍 넘는 성공한 이민자들이 다른 한인들 (한동훈 후보자의 딸과 약탈적 저널에 논문을 게재한 다수의 한인학생들)에게 외치는 '공정'에 대한 싸움이다.

 

한인 이민자의 삶을 그린 영화 '미나리'. 중산층 한인들은 '미나리적인 삶'을 더이상 추구하지 않는다.
한인 이민자의 삶을 그린 영화 '미나리'. 중산층 한인들은 '미나리적인 삶'을 더이상 추구하지 않는다.

부정한 일이 발생했을때 목소리를 내는데 반드시 계급성이 동반될 필요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산호세를 위시한 미국의 한인 학부모들의 분노 그 자체는 그들이 낼 수 있는 목소리이며 그들의 내놓은 증거와 주장 또한 매우 신빙성이 높다. 그러나 이들 학부모들이 말하는 “한동훈 후보자의 딸 같은 학생” 때문에 다른 한인 아이들의 기회가 박탈되고 있다는 주장은 여러모로 곱씹어야 할 부분이 있다.

 

펜데믹, 빅테크 (Big Tech), 그리고 (한인) 이민자의 삶

우선 그들의 분노는 이민자의 부모로서 자식을 가급적이면 명문대에 진학시키려는 부모의 욕망과 직결되어 있다. 이는 비슷한 연령대의 한국에 사는 40~50대 명문대 출신 중상류층이 자식들에게 교육자본을 물려주는 욕망과 일치한다. 그러나 그것이 발현되는 양상은 사뭇 다르다. 본인들은 이미 어느정도의 물질적 성공을 이루었고 미국내에서도 선호되는 지역에 살고 있으나 자식의 대학입시에 대해서는 여전히 '소수자'의 위치에 서 있다. 2020년대 미국 최고 명문대라 불리는 곳의 학부 입학률(acceptance rate)은 대개 5% 내외인데 입학허가를 받은 5%의 학생중 대략 20%이하가 아시아계 학생들이다. 즉 100명이 지원한 학교에서 5명내외가 입학허가를 받으면 그중 단 한 명 정도가 아시아계 학생들이다. 결국 극소수의 아시아계 학생들이 10여개 최고 명문사립대에 사실상 쿼터로 배정된 약 3000여명 정도의 '아시아계 최고 명문대 합격자'명단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미국에 대학이 수천개나 되는데 그런 경쟁을 안하고 살면 되지 않는가라고 반문할수 있다. 그러나 지난 2년간의 팬데믹과 미국사회의 구조적 변화는 이들 고소득 한인들에게 일종의 확신을 불러일으켰다. “내 자식을 최고 명문대에 보내는 것이 이 아시아계 아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미국 사회'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의 이미지를 생각해 보자. 광활한 농장에서 일하는 백인 농부, 아니면 월가에서 쉴새없이 일하는 역시 백인 금융인 정도가 떠오를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사회이고 다양한 인종과 계층의 사람들이 섞여 산다. 필자는 중남부 중소도시인 멤피스에서 단독주택에 거주하고 있는데, 이 단독주택 하나 가지고도 수많은 자영업 직업이 창출된다. 지붕보수과 교체(roofing), 잔디와 정원 관리, 창틀 보수와 교체, 냉난방기 수리(HVAC)와 교체를 하는 업체와 종사인원만 해도 수천명에 이른다. 이들 기술직들은 대개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업종이고 이들은 지역내에서 중산층으로 큰 어려움없이 살아왔다. 그러나 팬데믹은 대학을 나오지 않은 중산층의 삶에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왔다. 이미 2016년 러스트벨트의 반란을 위시한 미국 백인 노동자들의 삶의 수준 저하는 팬데믹으로 더욱더 가속화되었다. 그렇다면 점점 양극화되는 미국의 경제를 바라보는 소수자, 특히 한인 부모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애초부터 한인들에게 배관공이나, 냉난방기술자 등은 선호되는 직종이 아니다. 그것은 직업의 귀천을 떠나 그런 자영업이 한 지역에서 오래 살면서 신뢰에 기반한 인간관계를 쌓는 것을 요구하는데, 이는 한인들이 별로 살지 않는 지역에서 백인들과 어울려 살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세탁소나 청소업을 하면서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던 '미나리적 삶'은 더 이상 선택지가 될수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입주한 기업 지도.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입주한 기업 지도.

이런 상황에서 몇몇 새로운 직종이 떠올랐다. 2000년대 중반부터 떠오른 실리콘밸리의 빅테크(Big tech)는 많은 한인들에게 성공과 부를 안겨주었다. 대학을 졸업하자 마다 6자리수 연봉 (10만달러)를 넘어 곧 수십만달러를 벌을 수 있다는 주변 한인의 실제성공담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한인사회에 빠르게 전파되었고 전통적인 자녀에 대한 선호직종인 의사와 함께 이제 컴싸(Computer Science, 컴퓨터 싸이언스)는 한인부모들이 가장 선호하는 대학의 전공이 되었다. 자녀양육으로 경력단절을 경험한 여성들이 코딩을 배우고, 아이가 대학에서 뭘 할지 모르겠다면 그냥 컴싸전공을 선택하게 하라는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이들은 매우 진지하다. 팬데믹으로 빅테크 회사와 직원들이 오히려 부를 축적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본 한인부모들에게 새로운 루트가 추가된 것이다. '최고명문대진학→ 빅테크 입성!'

 

“탐욕스러운 직업,” 공공성의 부재 그리고 한인이민자들

경제학자 클라우디아 골딘은 이러한 빅테크 직종을 탐욕스러운 직장으로 분류한다. 여기서 오해하지는 말자. 골딘이 그 직장자체를 나쁘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물론 골딘교수는 이런 직종들이 성별 소득격차를 좁히는게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미주 한인 부모들 사이에서 이 탐욕스러운 직종에 대한 선호도는 그 어떤 타인종보다 뚜렷하다. 그런데 이들은 FAANG(페이스북·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으로 대표되는 실리콘밸리와 시애틀의 고소득 직종에 진입하는것이 “웬만한 대학간판으로는 불가능”하다고 굳게 믿고 있고 이는 어느 정도 진실을 담고 있다. 때문에 학부대학입시는 이들에게 아시아인종에게 주어진 몇 안되는 선택지 (앞서 언급했듯이 개미처럼 일하면서 세탁소나 주유소를 운영하는 자영업은 선택지에서 사라진지 오래다)에서 고소득 직종에 가장 확실하게 다가가는 길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이것이 서두에서 언급한 산호세를 위시한 일부 미주 한인 학부모들에게만 공유되는 감정일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23~24세부터 십만달러 이상의 연봉을 주는 직종만을 쫓고 그것을 가능케하는 대학스펙을 만드는 것을 일부 부촌 한인밀집지역의 부모들의 '극성'으로 치부할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어느 사회나 계층이동성은 매우 민감한 화두이며, 계층이동이 열려있는 사회가 훨씬 더 바람직하는 지적은 굳이 반복할 필요는 없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이쯤에서 이렇게 반문할 수 있을것 같다. “아니 세상에 직장이 애플, 구글밖에 없는가? 왜 한인들은 죄다 그런 직장을 선호하는가?”라고. 충분히 일리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그런 반문을 하기전에 미국의 계층성에 대해 좀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 미국사회는 특유의 아메리칸 드림으로 계층이동성을 포장해온 대표적인 국가였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 계층이동성이란 이민자들과 유색인종들 중 아주 소수의 성공사례를 모델 마이너리티(model minority) 서사와 결합시켜 실제로 작동하는 백인들의 독점적 지배력을 가리는 역할을 해 왔다. 문제는 소수자들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이 자본주의 끝판왕 사회에는 거의 전무하다는 점이다. 미국은 아이가 태어나는 첫날부터 대학에 보내는 18세까지 오롯이 모든 양육을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사회다. 공공보육이나 공공의료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필자가 독자들에게 반문해 보자. “그렇다면 한국에서 대기업 취업 외에 대안으로 여겨지는 직종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아마도 대부분이 공기업·공사·교사를 꼽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사회문제가 되는 “모두가 공무원·공사·공립교원이 되려는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그런 직종자체는 애초에 충분한 일자리를 공급하지 못하며 특히 공립학교 교사의 경우, 소위 돈 안되는 인문학전공 학부생들마저도 마지막으로 만지작거리는 옵션이다. 그만큼 미국사회에서 한국인 부모들이 선호하고 익숙한 '시험과 자격증 관문'을 통과하면 중산층의 소득과 안정성을 보장하는 공공적인 일자리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아이가 태어난 첫날부터 대학을 졸업하는 그날까지 모든 것을 '사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각자도생의 개인주의는 절대적 소수자인 아시아계 이민자들에게 훨씬 더 큰 고소득사기업에 대한 선점의 욕망으로 치환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렇게 학습되어 왔으니까.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해주는 첫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관문이 최고명문대 입학허가를 받아내는 것이다.

'어퍼머티브 액션'에 대한 아시아계 미국인의 지지 추이. 해가 지남에 따라 반대가 늘고 찬성이 줄어들고 있다. 출처: AAPI Data
'어퍼머티브 액션'에 대한 아시아계 미국인의 지지 추이. 해가 지남에 따라 반대가 늘고 찬성이 줄어들고 있다. 출처: AAPI Data

 

따라서 많은 미주 한인부모들은 몇 안되는 아시아인들에게 사실상 쿼터로 배정된 초명문대 입학허가를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거나 최소한 내 아이가 그런 대학에 갈수 있는 미래를 꿈꾼다. 때문에 한동훈 후보자의 자녀의 허위스펙논란으로 촉발된 미주 한인커뮤니티의 반응은 일차적으로는 그들의 보기에 심하게 선을 넘고 게임을 룰을 어긴 플레이어를 폭로함으로서 아시아인들 사이의 "페어"한 경쟁을 촉구하는 미국 한인이민자판 공정투쟁이다. 하지만 그 '공정'은 여러가지 색깔을 띠고 있으며 반드시 산호세에 거주하고 명문대 입시에 모든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한인부모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생각보다 많은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점점 양극화된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계 이민자가 취할수 있는 선택지가 한정되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그 선망받지만 한정된 선택지를 교란하는 것에 대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일 이번 일로 분노하는 미주 한인 학부모가 동시에 '소수자'를 위해 만든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도 아시아인을 역차별하는 제도라며 분노한다면(실제로 많은 학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보다 성적이 월등히 떨어지는 흑인/히스패닉계 아이들이 더 좋은 대학에 입학허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공정감각은 어디로 향하고 있으며 이번 사건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질문은 무엇인가? 분명한 것은 필자가 긴 글을 통해 지적한 미국사회와 아시아계 이민자의 삶의 변화가 지속되는 한 최고명문대를 향한 욕망의 크기는 점점 더 커질 것이며, 약탈적 저널에 논문을 싣는 괴물 고등학생은 앞으로도 계속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석원 (미국 멤피스 Rhodes College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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