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사자도 시설만 갖추면 반려견처럼 기를 수 있다?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3.08.14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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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 목적 개인에겐 멸종위기종 반입 허가 내주지 않아

사자가 우리를 탈출했다가 사살됐습니다. 사자는 밤새도록 캠핑장 근처를 배회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사자를 동물원도 아닌 사설 농장이 무려 20년 동안 키웠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일부 언론은 사자도 반려견처럼 키울 수 있다고 보도했는데요. 사실일까요? 뉴스톱이 팩트체크 했습니다. 

출처: 연합뉴스 홈페이지
출처: 연합뉴스 홈페이지

◈사자 애완견처럼 키울 수 있다?

연합뉴스는 <사자 탈출에 캠핑객들 '화들짝'…"정식통관 거쳤는지 확인해야"> 기사에서 “사자도 '애완견처럼'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시설만 갖추면”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뉴스1은 대구환경청 관계자가 "맹수 등 사자를 적법하게 신고하면 개인이 키울 수 있는데, 환경당국이 지자체에 통보해야 한다는 강제조항이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사자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Convention on International Trade in Endangered Species of Wild Flora and Fauna)이 정한 국제적 멸종위기종입니다. 우리나라는 1993년 이 협약에 가입했습니다.

협약에 따르면 인도 사자는 멸종위기종 Ⅰ등급에 해당하고, 나머지는 Ⅱ등급으로 정해져있습니다. 이 협약에 따라 멸종위기 생물의 수출입은 엄격히 규제됩니다. 우리나라에선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으로 이 협약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야생생물법 시행령 <별표1>

국제적 멸종위기종 및 그 가공품의 수출·수입등의 허가기준

1. 멸종위기종국제거래협약 부속서 Ⅰ에 포함된 생물

(중략)

나. 수입 또는 반입 허가 

1) 생물의 수입 또는 반입이 그 종의 생존에 위협을 주지 않는 경우

2) 살아있는 생물의 경우 다음의 기준을 모두 충족할 것

가) 수령예정자가 그 생물을 수용하고 보호할 적절한 시설을 갖추었을 것

나) 작살, 덫 등 고통이 일정 시간 지속되는 도구를 이용한 포획, 시각·청각 등의 신경을 자극하는 포획 또는 떼 몰이식 포획 등 잔인한 방법으로 포획되지 않았을 것

다) 해당 생물의 개체군 규모가 불명확하거나 감소 중인 지역에서 포획되지 않았을 것

3) 생물이 주로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인정되는 경우

(중략)

4. 비고 

나. 멸종위기종국제거래협약 부속서 Ⅰ, Ⅱ 또는 Ⅲ에 포함된 동물로서 조류 또는 포유류에 대한 수입 또는 반입 허가를 하는 경우에는 제1호부터 제3호까지의 허가기준 외에 다음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여야 한다.

1) 제10조에 따른 학술 연구용으로 수입 또는 반입하는 경우

2) 공원·관광지·동물원·박물관 등에서 일반 공중의 관람에 제공하기 위하여 수입 또는 반입하는 경우

3) 일시 체류를 목적으로 입국하는 사람이 출국 시 반출하기 위하여 애완용 멸종위기 야생동물 등을 반입하는 경우

4) 외국에서 판매용으로 인공증식된 것 중 국내 생태계를 교란할 우려가 없는 종으로서 환경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종을 수입 또는 반입하는 경우

 

단순히 사육 시설만 갖췄다고 해서 수입 허가를 내주는 게 아닙니다. 야생생물법 시행규칙은 사육시설등록자가 야생동물에게 ▲물과 음식 제공  ▲적절한 환경 제공 ▲건강관리 ▲행동관리 ▲안전관리 의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과 환경부의 CITES 관련 업무처리 지침은 ▲학술 연구용 ▲일반 공중 관람용 ▲일시 체류 목적 입국자의 애완용 동물 ▲환경부 장관이 고시하는 인공증식돼 해외에서 판매되는 동물 중 하나에 해당돼야 멸종위기 동물을 반입할 수 있도록 규정합니다. 여기에 “인체에 유해 또는 위협이 될 가능성 있거나 긴급한 사유가 발생할 경우” 무분별한 수입에 대해서 허가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출처: 국립생물자원관
출처: 국립생물자원관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이 발간한 <CITES 수·출입 심의를 위한 가이드라인>(윗 사진 참조)을 살펴보면 개인은 예외 조항에 해당하지 않는 한 멸종위기종 생물을 키울 수 없습니다. 반려목적은 예외조항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애완견처럼 얼마든지 사자를 키울 수 있다"는 언론 보도 내용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습니다.

한 블로거가 경북 고령 농장에서 사자를 구경했다며 게시한 사진
한 블로거가 경북 고령 농장에서 사자를 구경했다며 게시한 사진

◈경북 고령 농장은 어떻게 사자를 키웠나?

현재로선 미스터리입니다. 환경부 관계자는 뉴스톱과 통화에서 사건 발생 농장은 멸종위기종 사육시설로 등록돼있다고 밝혔습니다. 해외로부터 반입이 엄격히 금지된 사자를 어떻게 개인 농장이 사육할 수 있었까요? 언론 보도에 따르면 현재 농장주는 1년 전쯤 해당 농장을 넘겨받고 나서야 사자를 키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합니다. 개인 농장은 앞서 살펴본 멸종위기 생물을 반입해 사육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국내 동물원에서 번식에 성공한 새끼 사자를 분양받은 것일까요? 환경부 관계자는 일반인이 동물원 사자를 분양받는 일은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당 농장에선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사자를 키울 수 있었던 것일까요? 미스터리입니다. 다만 야생생물법은 국제적 멸종위기종을 사육할 때는 ‘적법한 입수경위 등을 증명하는 서류’를 의무적으로 구비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환경부가 멸종위기종 관리 업무를 꼼꼼히 챙겼다면 해당 사자를 어디서 어떻게 들여오게 됐는지 파악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현재 환경부는 해당 사자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심하면 맹수 탈출

이번 사자 탈출 사건의 최초보도에는 이웃 주민들의 반응을 담아 <이웃들도 20년 동안 몰랐다>는 식의 보도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해당 농장은 환경부에 멸종위기종 사육시설 등록을 마친 것으로 파악됩니다. 농장 인근 캠핑장 이용후기를 보면 해당 농장이 ‘사자 농장’으로 관람코스처럼 운영됐던 정황(윗 사진 참조)이 남아있습니다.

전날 밤 농장 관리인이 사자 우리 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았고, 아침이 돼서야 열린 문으로 사자가 나가고 없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사자는 농장에서 멀리 움직이지 않았고 주변 풀숲에서 발견돼 사살됐습니다. 캠핑장 이용객들은 아침에 사자 탈출 소식을 듣고 황급히 대피해야 했죠. 지난 1월 강릉의 한 동물원에서도 새끼 사자 2마리가 탈출했다가 포획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2018년 9월에는 대전 동물원에서 퓨마가 탈출해 사살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시설 관리를 소홀히 해 맹수가 탈출하게 되면 인근 주민들은 공포에 떨게 됩니다. 탈출한 맹수를 포획하기 위해 소방, 경찰, 지자체 공무원, 엽사 등이 총출동 합니다. 굉장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되는 거죠. 이런 결과를 낳은 시설 관리자는 어떤 책임을 질까요? 탈출한 맹수가 사람을 해치면 업무상과실치사(상) 죄를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명 피해가 없는 경우에는 별달리 처벌할 근거가 없습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동물원을 폐지하자는 여론이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사육장 관리를 잘못한 사람 때문에 애꿎은 동물이 번번이 희생된다는 동정론도 커집니다.

출처: 환경부
출처: 환경부

◈2023년 12월 달라지는 야생생물법

정부는 2020년 12월17일 제1차 동물원 관리 종합계획(2021~2025)을 발표(윗 사진 참조)했습니다. 이 계획대로 실행됐다면 사자 탈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 계획에는 열악한 동물원 시설과 그 속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 계획이 실행됐다면 ‘갈비 사자’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계획의 주요 내용 가운데 <미등록 야생동물 전시 시설 관리 강화>가 눈에 띕니다. 공중 보건 및 안전을 위해 동물원 등록 외 시설에서의 야생동물 전시 행위를 전면 금지하고, 동물원 외 시설에서 전시되고 있는 야생동물의 정확한 현황 파악을 위해 실태조사를 실시, 카페 등에서 전시되고 있는 CITES 종의 양도·양수 신고증, 입수경위서 미보유 사례 점검 실시 등이 골자입니다.

출처: IUCN 홈페이지
출처: IUCN 홈페이지

관련 내용을 담은 야생생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2023년 12월14일부터 시행될 예정입니다. 개정법은 동물원으로 등록하지 않은 시설에서 야생동물을 전시할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법 시행을 계기로 야생동물들이 원 서식환경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서 본능을 발현하면서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현행 기준은 야생동물에게 터무니없이 가혹합니다. 야생생물법 시행규칙으로 정한 사자의 사육시설 기준은 넓이 14 ㎡에 높이 2.5m 이고, 한 마리가 추가되면 35%씩 넓히면 됩니다. 야생에서 사자 무리는 20마리 정도로 구성되고 사자 1마리 당 영역은 약 2~67㎢ 이른다고 합니다. 비좁은 창살은 사자가 견뎌내기엔 너무나 가혹하죠. 동물원의 현실과 동물원에서 살고 있는 야생동물의 처우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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