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아직도 전신소독기 쓰는 관공서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3.08.21 17:0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지말라는 짓은 하지 말자

미지의 감염병에 대한 공포심은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중세시대 유럽인들은 흑사병이 창궐하자 빈자와 유대인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현대에도 마찬가지다. 재난에 맞서 주민들을 보호해야 할 공무원들도 공포에 압도되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과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무지 사이에서 말도 안되는 선택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일부 관공서에서 구입한 전신 소독기 이야기다. 뉴스톱은 그동안 <[코로나19 팩트체크] 해수욕장 살균터널 효과 있나? > <[팩트체크] 서울시 설치 전신소독기, 코로나 막는다?> <여전히 뿌리는 '전시 방역', 언론과 지자체가 공범이다> <[팩트체크] 학교에 전신소독기로 감염위험 낮춘다?> 등의 보도를 통해 전신소독기 위험을 강조해왔다. 이번엔 환경운동연합이 아직도 전신소독기를 쓰고 있는 관공서 실태를 조사했다.

출처: 환경운동연합
출처: 환경운동연합

 

◈전신소독기 무엇?

전신소독기는 살균터널이라고도 불리는 기계다. 사람이 드나드는 곳에 게이트처럼 설치된다. 사람이 지나가면 센서가 감지해 소독약을 뿌리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코로나19 시국을 틈타 이 기계를 만들어 파는 업체가 많아졌다. 일부 지자체와 공공기관에선 이 기계를 사다가 출입구에 설치했다. 그러나 상당수는 홍보 효과를 노린 업체에 놀아난 경우가 많다. 업체 측에선 선의를 가장해 기계를 관공서에 기증한다. 기계는 무상으로 대여해 줄테니 소독약만 사서 쓰라는 식이다. 관공서 입장에선 저렴한 비용 부담에 솔깃해 설치한다. 이렇게 되면 업체들이 옳다구나 하고 홈페이지 등을 통해 홍보에 열을 올린다. ‘ㅇㅇ기관도 사용하는 ㅇㅇ 전신소독기’ 이런 식이다.

그러나 전신소독기는 사람의 의복, 피부 등 겉부분 일부만 소독이 가능할 뿐이라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낮추는 데는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감염자에게 아무리 소독약을 퍼부어봤자 체내에 품고 있는 바이러스를 사멸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소독액이 호흡기와 안구, 피부를 자극하는 등 피해를 줄 수 있어 보건 당국은 코로나19 발병초기부터 이 기계의 사용을 권장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근엔 소독제 분사 방식의 전신소독기를 금지한다고 지침이 바뀌었다.

출처: 구글 검색
출처: 구글 검색

◈얼마나 쓰이나?

환경운동연합은 21일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관공서의 전신소독기 사용실태를 파악한 결과를 발표했다. 정부·공공기관 203곳이 전신소독기를 보유했거나 하고 있다. 인천 연수구 시설관리공단, 전남 진도군청, 충북 단양군, 부산 기장군도시관리공단, 경기도 부천시보건소 등은 차아염소산나트륨을 소독약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차아염소산나트륨은 일상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락스’ 성분이다. 이걸 안개 형태로 지나가는 사람에게 뿌리는 것이다.

충격적인 것은 보건복지부 소속 기관인 국립춘천병원, 산하 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마저 전신소독기 사용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점이다.

환경연합은 “(전신소독기) 제품으로 인한 방역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하는 것은 기업들의 의무이지만, 공식 절차를 통해 검증된 제품은 존재하지 않았다"며 ”인체에 직접 적용하는 제품은 식약처의 의료기기 허가절차를 따라야 하고, 환경부의 소독제품 또한 사전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이를 충족하지 못했다. 게다가 두 부처 모두 자신의 관할 품목이 아니라고 답변했다. 제품에 대한 안전관리 사각지대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질병청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부기관 말고도 교회, 구내 식당 등 다중이용시설에서 전신소독기를 설치해 놓은 걸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시설 이용객들에 대한 테러와 다름 없다.

환경운동연합 강홍구 활동가는 “2020년 코로나19 확산 당시와, 2023년의 방역대책은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기에는 전염병 대유행에 대처하기 위해 모든 자원을 동원해야 했고, 시행착오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안전과 방역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도, 여전히 전신소독기를 활용하는 건 심각한 문제다. 강 활동가는 “출입구용 전신 소독기 보유실태에 대한 전수조사와 함께 조속한 처분이 필요하다”며 “비과학적 방역제품에 대한 당국의 관리품목 사각지대 문제가 발생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사수정: 2023.08.30 : 환경연합은 기사에 전신소독기를 사용했다고 언급된 국립공주병원은 조달청에 전신소독기 사용신청을 냈다가 철회했기 때문에 실제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밝혀왔습니다. 이에 기사 본문에서 국립공주병원을 삭제했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