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주민투표로 군 단위 노선 결정한 적 없다?

  • 기자명 최은솔 기자
  • 기사승인 2023.07.12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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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군 단위 주민투표로 노선을 결정한 사례 없어"
역대 12번 진행된 주민투표 가운데 고속도로 노선을 결정한 사례 없음
진행됐던 시설 유치 관련 주민투표는 '특정 지역'에 국한된 것
국가정책에 관한 주민투표는 구속력이 없음
주민투표 결과가 또 다른 갈등의 불씨 되기도

10일 국민의힘이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논란의 해법으로 주민투표와 여론조사를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도로 건설이 백지화된 것을 수습하는 차원에서 거론된 대책이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 주장하는 기존 건설안(예비타당성 통과 안)과 정부가 추진한 변경안을 놓고 주민투표나 여론조사를 하는 방안으로 알려졌다.

이에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당내에서 검토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윤 원내대표는 “지역 SOC(도로, 항만, 철도 등 일상생활 기초가 되는 공공재) 사업 관련 군 단위에서 주민투표로 노선을 결정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말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주민투표는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냈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는 11일 국회에서 "이 도로는 양평군민만 이용하는 도로가 아니라 국도"라며 "양평군민들이 이 사업에 대해서 애착을 갖고 있고 문제를 지적하고 화내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인데 군민들이 주민투표를 해서 결장하자는 주장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주민투표로 노선을 결정하는 대책을 놓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예비타당성조사를 이미 마친 사업을 번복하고 주민투표로 결정하는 게 맞냐는 의견과 차라리 해당 주민들의 의견을 물어 결정하자는 으로 의견이 나뉘었다.

주민투표는 지방자치단체의 중요한 정책을 주민의 투표로 결정하는 제도다. 주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자체의 주요 결정 사항이 주민투표 대상이 될 수 있다.  청구대상에 따라 ▲주민에 의한 투표 ▲지방의회 및 지방자치단체장에 의한 투표 ▲국가정책에 의한 투표로 나눈다. 특정 지역 주민이 투표를 신청하는지, 아니면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가 신청하는지,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신청하는지에 따라 나뉜다. 

현재까지 주민투표로 도로 건설 등의 노선변경을 결정한 사례는 있을까. 뉴스톱은 비슷한 사례를 확인했다.

◈12번 진행된 주민투표...시설 유치 관련 투표는 2번

지난해 말 기준 주민투표는 12번 진행됐다. 주민투표 안건을 유형별로 임의로 나눴다. ▲지방자치단체 폐지·분합·구획변경 4건 ▲주요시설 설치·개발 6건 ▲정책 범위·방식 결정 2건으로 구분했다. 이중 논란이 된 고속도로 노선변경 사례는 없었다. 그나마 비슷한 사례는 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 유치 혹은 대구 군 공항 이전 후보지 선정 등의 안건이다. 따라서 윤재옥 의원의 “지역 SOC 사업 관련 군 단위에서 주민투표로 노선을 결정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발언은 ‘사실’이다.

2022년 말일 기준 주민투표 현황. 출처=2023년도 행정안전부 주민투표업무 매뉴얼

행정안전부 선거의회자치법규과 관계자는 10일 통화에서 “SOC 건설 관련해서 주민투표를 한 사례는 없다”며 그나마 진행된 시설 유치 관련 투표는 “특정 지역 주민과 관련된 사안이었다”고 답했다.

현행법상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주민투표 실시를 요청은 할 수 있다. 다만 실제 투표를 한다고 해도 주민투표 대상의 범위 산정부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행안부 관계자는 “고속도로 노선과 관계된 사람은 단순히 양평군민뿐만 아니라 이 도로를 이용할 잠재적인 이용자들까지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며 특정 지역만의 이해관계를 놓고 판가름하기 어려운 경우엔 투표 진행이 어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구속력 없는 ‘자문 성격’ 주민투표...‘대구 군 공항 이전’은 여전히 논쟁 중

주민투표를 거치면 문제가 모두 해결될까? 그렇지 않다. 주민투표로 나온 결정은 구속력이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주민투표로 결정하는 사안은 ▲지방자치단체의 결정 ▲국가정책으로 나뉜다. 이중 국가정책에 관한 주민투표는 자문형, 즉 참고하는 용도로 쓰인다. 특정 사업의 진행 여부를 결정짓는 ‘구속력’이 없다.

2023년도 주민투표업무 매뉴얼에 언급된 국가정책에 관한 주민투표는 자문형으로 구속력이 없다는 내용 갈무리
2023년도 주민투표업무 매뉴얼에 언급된 국가정책에 관한 주민투표는 자문형으로 구속력이 없다는 내용 갈무리

실제 추진 여부를 국민투표로 결정한 사례들은 개별 개별법으로 그 구속력을 만든 경우다. 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은 방폐물유치지역법 제7조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이 주민투표를 진행해 지역을 선정하도록 규정돼 있다. 지역 주민의 안전이 달린 문제인 만큼 법에 주민투표를 조건으로 달아놓은 것이다.

군 공항 선택 역시 주민투표로 진행하도록 법에 명시돼 있다. 군공항이전법 8조를 보면 국방부장관이 이전후보지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주민투표를 요구할 수 있다고 나온다. 현재는 예외적인 몇몇 시설에 대해서만 주민투표로 입지를 결정할 수 있게 법제화 한 상황이다.

실제 추진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주민 투표의 경우에도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투표로 한 쪽으로 의견이 모인 사안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비등비등한 표 차로 결정된 사안의 경우 주민 수용성이 낮을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엔 투표 전에 결과에 대해 수용하자는 합의를 한 뒤 진행하는 게 맞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구 군 공항 이전’은 투표로 의성군과 군위군 각각 이전 대상지로 결정됐지만, 군위군의 반대로 추진하지 못했다. 주민투표를 한다 해도 끝까지 반대하는 지역이 나오면 제대로 된 이견조율이 어려운 걸 보여주는 사례다. 현재는 민간 공항까지 포함하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으로 추진 중이다.


정리하면, 현재까지 주민투표 12회 가운데 도로 등 국가 기반 시설 입지를 놓고 결정한 경우는 없었다. 윤재옥 원내대표의 발언은 사실이다. 고속도로 건설 등은 국토교통부가 주관하는 국가사업의 경우 ‘자문’ 성격의 국가정책에 의한 주민투표만 가능하다. 이 투표는 구속력이 없다. 사업 시행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여태껏 특정 시설의 입지를 투표로 결정했던 사례들은 개별법으로 예외적인 조항을 만든 사례들에 국한된다. 또한, 주민투표로 결정됐다고 해도 대구 군 공항처럼 여전히 입지가 결정되지 않은 사례도 있을 만큼, 주민투표가 문제해결 기능이 있는지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마친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을 논란이 있다고 주민투표로 종점을 변경하기로 결정한다면 앞으로 이견이 생길 경우 많은 지자체에서 주민투표로 노선을 결정하자고 할 것이다. 국가 정책 시행 과정에 굉장히 안 좋은 선례를 남기는 것이다. 이럴 경우 국가정책이 여론과 호불호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일이 잦아지고 갈등만 증폭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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