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4·OO' 총선이라고 쓸 건가

한국 언론의 선거 표기 문제점

  • 기사입력 2020.04.22 13:08
  • 최종수정 2020.04.22 13:43
  • 기자명 박상현

우리나라에서 흔히 "총선”이라고 부르는 국회의원 선거는 4년에 한 번 열린다. 한국은 질곡이 많은 현대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지만 다른 건 몰라도 선거 만큼은 꾸준히 치러져 왔다. 특히 국회의원 선거일은 1996년 이후로 변함없이 4월 초반에 치러졌고, 2004년 이후로는 요일도 수요일로 고정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각 총선을 월, 일을 사용한 날짜로 부르고 있고, 이번 총선은 “4·15 총선”으로 불렸다. '2020 총선’으로 표기한 매체도, 4·15 총선과 2020 총선을 병기한 매체도 등장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언론사는 4·15 총선을 고집한다.

충분히 짐작하겠지만 “4·15 총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4년 총선도 “4·15 총선”이었다. 2016년 총선은 “4·13 총선”으로 불렸지만, 같은 이름을 가진 총선은 2000년에도 치러졌다. “4·11 총선”은 2012년과 1996년에 있었다. 이렇게 월·일을 선거의 명칭으로 붙이면 천재적인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닌 한, 정치학자라고 해도 어느 총선이 몇 년도에 치러진 총선인지 쉽게 기억하지 못한다. 선거법이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 모든 총선은 “”4·OO총선”이 될 거다.

① 정보의 가치

"월·일선거” 표기법의 문제점은 단순히 기억하기에 불편한 것 만이 아니다. 이건 정보의 문제다. 다음 두 가지 정보 중에서 우리에게 더 중요하고, 그래서 기억해두는 것이 좋은 정보는 어떤 것인가? 

 

  •  a. 20대 국회의원선거는 2016년에 시행되었다
  •  b. 20대 국회의원선거는 4월13일에 시행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2016년이라는 연도가 더 중요하다고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은 2016년 20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하면서 여소야대의 국회가 탄생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기 때문이다. 또한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까지 이어지는 큰 흐름이 시작된 것도 바로 2016년의 선거였다. 그에 비하면 그 해의 선거가 4월 13일에 치러졌는지, 아니면 12일에 치러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20대 국회의원선거를 “2016 총선”이라고 불러야 할까, “4·15 총선”이라 불러야 할까?

물론 날짜가 중요한 시점은 있다. 바로 선거를 앞둔 몇 달 앞둔 시점이다. 온 국민에게 선거일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오래 전부터 선거 날짜를 강조하는 포스터를 제작하고 홍보해왔다. 우리나라 언론이 선거와 관련해서 월·일 표기를 고집하는 이유에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이렇게 선거일을 알리는 공보(public announcement)의 목적도 있었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각종 선거와 국민투표 등을 모두 하루에 몰아서 매년 '11월 1일 이후 첫번째 화요일'에 치르는 미국의 경우, 매번 날짜를 홍보할 필요를 없앤 편리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인지하고 있을 “다가오는 빨간날”의 홍보가치가 얼마나 될까? 우리는 더 이상 달력이 귀한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 (1978)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 (1978)

② 검색의 문제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월·일 표기법을 사용해서 정보가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선거와 관련해서 쏟아지는 보도, 분석기사, 논문들이 하나같이 “(월·일)총선” “(월·일)지방선거”를 기준으로 작성되다보니 검색에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2000년 국회의원선거에 대한 논문, 기사 등을 검색한다고 해보자. 입력하는 사람이 특별히 태깅에 신경을 써둔 경우(그런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가 아니라면, 이 선거를 "2000년 총선”으로 검색할 경우 누락되는 정보는 엄청나다. "2000년 총선”이라는 검색어를 사용하면 구글에서 2620만 개의 아이템이 검색되는 반면, "4·13 총선”으로 검색하면 6140만 개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4·13 총선”으로 검색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 처럼 4·13 총선은 2000년, 2016년 국회의원선거를 모두 가리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전에도 "4·13 총선”이 존재했을 수는 있지만 인터넷에서 자료를 구할 수 있는 검색어를 이야기한다면 결국 2000년, 2016년 두 선거와 관련된 기사를 구분해야 한다. (물론 검색 설정을 통해 문서가 업로드 된 날짜를 기준으로 제한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2000년 총선에 관한 좋은 글이나 자료가 2016년에 올라오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4.13총선”과 “4·13총선”은 언뜻 비슷해보여도 검색 결과는 100배에 가까운 차이가 난다. 단순히 마침표(아래 점)가 아닌, 특수문자 “・”(가운데 점)을 찍어줘야 최대한의 검색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가장 양질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취재력이 뛰어난 대형매체들은 한결같이 “4(가운데 점)13총선”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서 기사를 쓰기 때문이다.

이 둘이 사람의 눈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여도 검색엔진에게 전혀 별개의 단어다. 한글 위키피디아에서는 '4(아래 점)13 총선’은 존재하지만 ‘4(가운데 점)13 총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구글에서는 가운데 점을, 위키피디아에서는 아래 점을 사용해야 하는 것은 그만큼 통일성 없는 정보입력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③ 지식의 장애물

이런 작은 차이들은 한국인들 중에도 눈치를 채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외국의 학자나 유학생이 한국의 정치와 문화를 연구하기 위해 검색을 시작했다고 생각해보라. 점 하나의 위치 차이로 검색량이 1백 배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모르는 연구자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할까? 굳이 타문화에서 오지 않았어도 한국에서 생성된 자료를 검색해본 연구자들이라면 우리가 얼마나 자료를 분류하고 태깅하는 일을 소홀히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게 과연 연구자들에게만 국한된 문제일까? 지금 이글을 <뉴스톱>이라는 매체에서 읽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2020년의 국회의원선거가 "4·15 총선”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정도는 알고 있고, 글이나 대화에서 "4·15 총선”이라는 말을 쓰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몇년 후에 이 선거가 4·15 총선이라고 불렸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문제: 4·11 총선은 몇 년도에 치러진 선거인가? 답은 글 서두에 있다). 내년이 되기 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명칭을 잊을 거다.

숫자에 밝은 한국인들에게 2020년에서 4년씩 빼면 국회의원선거가 있었던 해를 모두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매체를 통해 4·15, 4·13, 4·11 같은 숫자만 접하다가 보니 선거가 있었던 해를 잊어버리고 “가만있자, 몇 년도에 총선이 있었더라..”하고 기억을 더듬는 모습을 쉽게 본다. 이는 마치 정리를 하는 습관이 배어있지 않은 사람이 물건을 찾는 데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우리가 정보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훗날 찾고(search), 꺼낼(retrieve) 일을 생각한다면, 그래서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훗날 온 국민의 소중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이런 작은 걸림돌들이 지식으로 가는 길에 장애물이 되고, 정보접근성을 떨어뜨린다. 동아시아 사회는 지식접근성의 차이를 차별에 사용해온 역사가 길다.  

 

선거는 “발생한” 사건이 아니다

20세기를 지배했던 냉전이 끝나고 동유럽에 민주주의가 퍼져나가기 시작할 무렵 종종 들었던 말이 있다. “민주주의에도 단계가 있다. 한 밤 중에 비밀경찰이 당신 집에 찾아오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단계가 있고, 우유와 신문이 제 때 배달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단계가 있다.” 물자부족으로 오래 고생한 동유럽인들에게서 공감을 받은 말이지만, 결국 민주주의는 독재권력과의 투쟁 단계가 있고, 국민 모두가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그에 따라 생활하는 ‘일상성’을 보장받는 단계가 있다는 얘기였다.

2020년의 한국과 한국인은 두번째 단계에 들어와 있다. 우리 중 누구도 2022년에 대통령선거가, 2024년에 국회의원 선거가 열리지 않을까봐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증거다. 서두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한국은 선거제도 하나 만큼은 완전히 정착시킨 민주주의 국가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지구상에 이를 제대로 해내는 나라는 그다지 많지 않다. (심지어 미국같은 나라도 2020년 대선을 대통령이 취소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따라서 규칙적으로 민주적인 선거를 치러내는 것은 한국이 단기간 내에 이뤄낸 것은 대단한 업적이다. 

그런데 우리는 각각의 선거, 특히 정기적으로 열리는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를 마치 극적으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처럼 부르는 버릇을 없애지 못하고 있다. “4·15 총선” “4·13 총선” “4·11 총선” 같은 표현들이 그것이다. 매 국회의원 선거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무시하려는 게 아니다. 각 선거는 그에 따르는 임기 동안, 아니 더 나아가 나라의 먼 미래를 결정하는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역사적 의미'는 “6·26 전쟁”이나 “3·1 운동” “4·19 혁명” 같은 역사적 사건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중국에 5·4 운동이 있고, 미국에 “4th of July (독립기념일),” 9/11 테러 사건이 있었지만, 이렇게 역사적인 사건에 월·일 명칭을 붙인 경우는 거의 예외없이 그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매년 그 날짜가 되면 우리는 그 사건을 기억하고 행사를 열기도 한다. 이번 선거가 어느 당에게는 쾌거이고, 어느 당에게는 수치스런 경험이었겠지만 이 선거를 매년 기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4년 후에도, 그 다음 4년 후에도 계속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일상성을 이루어냈다. 이제는 명칭에서 정보적 가치를 챙겨야 할 때다.

박상현   contact@newstof.com  최근글보기
미디어 혁신가다. 엑셀러레이터인 메디아티의 콘텐츠랩장을 지냈다. 페이스북에 워싱턴 업데이트를 연재하고 있으며 서울신문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주요뉴스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