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사담 후세인처럼 공화당을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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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사담 후세인처럼 공화당을 장악했다
  • 박상현
  • 승인 2020.11.16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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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미국 분석] 2024년 출마설 트럼프, 그리고 공화당의 미래

우리는 세계 근현대사에서 독재자들이 권력을 장악하게 된 과정을 익히 들어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독재자의 등극은 (한국에서 일어난 두 차례의 군사쿠데타를 포함해) 대부분 대다수의 국민들이 안보는 곳에서 일어났다. 일이 일어난 후에 보도, 혹은 역사기록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할 뿐 그 장면을 생생하게 본 사람들은 소수다. 

그런 의미에서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1937-2006)은 특별한 예외에 해당한다. 그가 1979년 당내의 권력을 장악하면서 무소불위의 독재자로 등극하는 장면은 이라크의 TV를 통해 생중계 되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작가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자세히 설명해서 널리 알려지게 된 이 장면은 후세인이 대통령이 된 직후 소집된 이라크 바트(Baath)당 중앙위원회의 도중에 후세인의 반대세력들을 색출, 체포하는 장면이다. 

영상을 보면 사담 후세인은 자신에 반대하여 반란을 모의한 혐의를 받고 있는 무히 압둘후세인을 단상에 세우고 공모자들의 이름을 말하게 한다. 고문과 위협을 받은 것이 분명해보이는 압둘후세인은 떨면서 종이에 적힌 이름을 열 명 씩 부르고 그 때 마다 군인들이 호명된 사람들을 끌고 나간다. 총 66명의 이름이 불렸고, 그 중 삼분의 일이 총살 당했다.

흥미로운 장면은 대회의장에 있던 사람들의 변화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중앙위원들은 하나 둘 씩 자리에서 이러나 “사담 후세인 만세!”를 외치기 시작하고, 장내는 흥분의 도가니로 변한다. 후세인이 당내 투쟁을 통해 대통령이 되었다면, 미디어를 통해 중계한 공개적인 당내 숙청으로 반대세력을 잠재우고 독재자가 된 것이다. 

 

트럼프 반대파의 방향전환

지난 5년 동안 미국의 정치계, 특히 공화당의 변화를 본 사람들은 사담 후세인의 공개 숙청과 당 장악과정을 슬로 모션으로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민주당과 공화당을 오가던 떠돌이 정치 초보가 2015년 공화당의 경선에 출마했을 때만 해도 그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특히 오바마와 민주당에게 뺏긴 권력을 되찾아오려 애쓰던 공화당 내 중진들은 트럼프의 출마를 그저 리얼리티 쇼 호스트가 벌이는 흥행쇼(publicity stunt)로 생각하고 그를 철저히 무시하는 방법을 택했다.

트럼프의 경쟁후보들이 긴장하기 시작한 것은 대선후보 토론회 때였다. 트럼프는 몇 차례 토론회가 진행되는 동안 전혀 대통령 후보답지 않은 막말을 해댔는데 (가령 마르코 루비오 후보가 키높이 구두를 신었다는 조롱이 그랬다) 그럴수록 지지율은 떨어지는 게 아니라 더 올라갔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내가 뉴욕시내에서 사람을 죽여도 지지자들은 개의치 않을 것”이라고 말할 만큼 대중의 철저한 지지를 받아 결국 대통령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의 눈에 띈 것은 2015-16년 경선 도중에 그토록 트럼프를 비판하던 정치인들의 빠르고 완벽한 방향전환이었다. 공화당의 중진과 경선주자들은 트럼프를 단순히 비판한 것이 아니라 증오했다. 그도 그럴 것이 트럼프는 정책토론을 통해 경쟁자들을 이긴 것이 아니라 인신공격을 했기 때문이다. 가령 경선 막판까지 트럼프와 경쟁했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의 아내의 얼굴을 두고 조롱했고,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을 두고는 “내가 아는 가장 멍청한 인간”이라고 욕했고, 미치 매코널, 크리스 크리스티 같은 중진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트럼프의 공격은 단순히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트럼프를 비판한 공화당 의원이나 주지사들은 자신의 지역구에서 지지율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평생 일궈놓은 자신의 안방 표밭이었지만 트럼프를 본 유권자들은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들은 트럼프의 팬이 되는 순간 이제까지 표를 주고 따르던 정치인들을 트럼프가 하는 말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트럼프가 좋게 말하는 정치인들은 지지율이 올라가고, 트럼프가 욕하거나 트럼프와 대립하는 정치인은 선거에서 패하는 일이 전국적으로 벌어졌다. 사담 후세인에게 총과 군대가 있었다면, 트럼프에게는 자신의 말을 철저하게 믿고 따르는 열성적인 지지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표는 트럼프가 가진 탄약이었다. 

그들 앞에서 공화당의 정치인들은 완전히 포위되었고, 트럼프의 당선과 함께 공화당 의원들은 일제히 트럼프 앞에 줄을 섰다. 트럼프로 부터 심한 모욕과 공격 받았던 테드 크루즈, 마르코 루비오, 크리스 크리스티, 린지 그레이엄, 미치 매코널 같은 의원들은 이제 완벽한 트럼프의 옹호자이자 방어막이 되었다. “사담 후세인 만세”를 외치던 바트당원들이 오버랩된다.

 

공화당의 정체성 혼란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자들이 트럼프에 느끼는 매력은 쉽게 설명하기 힘들다. 공화당이 수십 년 동안 지켜왔던 정책적 방향과 사회적 가치, 그리고 정치적 규범(norm)들을 모조리 무시하는 정치인에 열광하는 모습은 수수께끼에 가깝다.

이는 미국 유권자들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소위 '태극기 부대'라고 불리는 한국의 노년 보수층은 한국의 진보정치인들이 북한과 대화하는 것에 극도로 반대해왔지만, 정작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북미정상회담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물론 한국에서도 태극기 부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보수층 식자들은 원칙적으로 트럼프의 대북정책에 반대하지만, 이들의 입장을 미국에서 보여주는 건 한 줌 남은 반트럼프 공화당원들이다). 이들을 이끄는 것은 보수적인 정책이나 원칙보다는 진보세력에 대한 증오라는 정서적인 동기라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런데 같은 렌즈로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 지지로 180도 방향전환을 한 중진들과 열성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의 공통분모 역시 진보세력에 대한 정서적 반감이다. 흔히 복음주의 크리스천들의 기독교적 가치를 그런 공통분모로 들곤 했지만, 트럼프의 언행이 기독교적 가치를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미국의 기독교인들 사이에도 없다. 그들은 진보세력의 다원주의적 가치에 대한 반감을 공유할 뿐이고, 그 반감을 "기독교적인 가치”라고 표현할 뿐이다.

진보세력에 대한 반감이라는 최소한 공통분모로 뭉치다보니 공화당은 어느덧 다양한 집단이 모인 빅 텐트(big tent)로 변했다. 자유무역을 지지하고, 사회보장제도의 축소를 추구하던 정당이 보호무역과 고립주의를 외치고 사회보장제도를 보호하는 트럼프가 끌어온 유권자들과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것이다. 게다가 조지 W. 부시는 라틴계 유권자들을 공화당 지지자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했고, 같은 노력의 일환으로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도 민주당과 협의해서 이민법을 개정했지만, 트럼프는 이를 완전히 뒤집어 반이민의 기치를 높이 들고도 상당한 라틴계의 표를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이제 공화당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일은 키메라를 분류하려는 동물학자의 노력만큼이나 의미없는 노력이다. 

뉴요커의 니콜러스 니먼(Nicholas Lemann)은 그 기원이 조지 W. 부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부시는 이미 2001년에 블루컬러 노동자들을 민주당에서 뜯어내기 위해 수입철강에 관세를 부과하는 보호무역 정책을 시도한 바 있다. 결국 트럼프가 2016년에 공화당의 중진들을 누르고 대선후보가 된 것은 공화당 스스로 진행해온 변화가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오바마가 당선된 2008년을 전후해서 등장한 티파티(Tea Party) 운동이나 오바마의 미국 시민권을 부정하는 버서(Birther) 운동 등은 공화당 내의 극렬한 비주류(fringe group)가 핵심그룹을 끌고 갈 수 있음을 증명했다. (트럼프는 대선 출마를 선언하기 이전부터 버서운동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가까운 미래

지난 선거기간 중 바이든을 지지하며 반 트럼프 광고를 쏟아내어 큰 관심을 모은 링컨 프로젝트(Lincoln Project)를 이끈 리드 게일렌(Reed Galen)은 “공화당에는 철학적 기초(philosophical underpinning)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며 한탄했다. 물론 게일렌이 그동안 믿어왔던 공화당의 철학적 기초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 위에 지어진 집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과거의 기초를 벗어났다고 보는 게 맞다. "공화당은 트럼프의 포로가 되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했어도 공화당 내에서는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확장한 공화당이라는 빅 텐트는 오로지 트럼프, 혹은 트럼피즘(Trumpism)이라는 텐트폴로만 지탱이 가능해보인다. 

게다가 트럼프가 2024년 대선에 다시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고, 이는 출마를 준비해온 다른 주자들이 8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백악관에서도 쉬지 않고 트윗을 날리고 폭스뉴스에 끊임없이 출연해서 관심을 모아왔던 트럼프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할지 의심하는 사람들은 없다. 지금보다 훨씬 더 극단적인 주장을 거리낌 없이 할 것이고, 그 대상은 1순위가 바이든 정권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트럼프는 공화당 내에서 “방 안의 산소(oxygen),” 즉 미디어의 관심을 모조리 빨아들여 당내 경쟁자들이 주목 받는 것을 막고,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비판적인 견해를 펴는 의원들을 조롱과 협박으로 견제할 것이다. 이것이 당장 내년부터 펼쳐질 공화당의 미래다. 

공화당은 2016년 이후 트럼프라는 호랑이에 올라타서 거침없이 달려올 수 있었다. 이제는 내려오고 싶지만 죽지 않고 내려올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박상현   contact@newstof.com  최근글보기
미디어 혁신가다. 엑셀러레이터인 메디아티의 콘텐츠랩장을 지냈다. 페이스북에 워싱턴 업데이트를 연재하고 있으며 서울신문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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