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송전 및 에너지 공급망 타격은 전쟁범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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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송전 및 에너지 공급망 타격은 전쟁범죄일까?
  • 우보형
  • 승인 2022.11.2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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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발전소 공격은 전쟁범죄'라는 국내 보도 검증

필자가 열심히 F-35 기관포 이야길 마무리하던, 아니 양심적으로 고백하자면 고쳐쓰던 10월 20일, 한국일보는 "난방 물 전기 끊어 민간인 살상 노린다… 푸틴, 대놓고 전쟁범죄"라는 제목의 내용을 기사화했다.(그림 1)

 

그림 1. "난방·물·전기 끊어 민간인 살상 노린다… 푸틴, 대놓고 전쟁범죄" 라 주장하는 한국일보 기사 도입부 캡처
그림 1. "난방·물·전기 끊어 민간인 살상 노린다… 푸틴, 대놓고 전쟁범죄" 라 주장하는 한국일보 기사 도입부 캡처

뭔가 내용이 이상하다 싶어, 쓰던 글을 잠시 미뤄두고 해당 내용들을 검색해봤다. 그랬더니 전날인 10월 19일에 연합뉴스도 "러 대놓고 전쟁범죄… 폭격에 우크라 1천162개 도시 정전" 이라는 기사(그림 2)를 냈다.

 

그림 2. 마찬가지로 "러 대놓고 전쟁범죄…폭격에 우크라 1천162개 도시 정전"이라 주장하는 연합뉴스 기사의 도입부 캡처
그림 2. 마찬가지로 "러 대놓고 전쟁범죄…폭격에 우크라 1천162개 도시 정전"이라 주장하는 연합뉴스 기사의 도입부 캡처

그림 1과 그림 2로 캡처한 기사들은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송전망, 특히 발전소에 대한 광범위한 직접 타격에 나섰으며 그로 인한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림 1, 2에서 분홍색 박스 안의 서술들, 다시 말해 한국일보의 "제네바협약은 전쟁 중 비전투원이나 민간 시설물을 타격하는 행위를 전쟁범죄로 규정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주저하지 않았다."라는 서술과 연합뉴스의 "전쟁 중 민간인 등 비전투원이나 전력시설, 상수원 같은 민간 시설물을 고의로 타격하는 것은 전쟁범죄에 해당한다."와 "제네바 협약이나 로마규정(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 등 전쟁범죄를 다루는 각종 국제법은 이 같은 행위를 금지한다."라는 서술의 주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양자 모두 해당 서술의 출처를 밝히진 않았다.

물론 전쟁 중 민간인 등 비전투원을 직접 공격하는 것, 그리고 민간 시설들을 공격하는 것은 분명히 제네바 협정이 규정한 전쟁범죄 행위가 맞다. 그런데 전력망이나 에너지망이 과연 군사작전을 통해 공격해서는 안 되는 민간인 시설에 해당할까? 언론이라 자처하기 위해서는 해당 주장의 사실 여부를 검증하고, 해당 주장들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밝혀주는 역할을 해야 정상이겠으나 속보 경쟁에만 목맬 뿐, 언론을 자처하는 국내 레거시 미디어들의 생리상 해당 주장을 검증할 의사도, 열의도 없는 거야 자명할테니 이번 글에서는 해당 주장의 팩트 여부를 한 번 검증해보도록 하자.

"1. 전시에 교전 상대국의 전력망 혹은 에너지망을 공격하는 것은 전쟁범죄로 국제 협정에 명시된 전쟁범죄인가? 바꿔 말해 전력망과 에너지망은 제네바 협정이 규정하는 민간시설에 해당하는가?"

"2. 만일 전력망 혹은 에너지망이 군사목표가 될 수 있다면 우크라이나는 어째서 러시아의 전력망 혹은 에너지망 타격을 전쟁범죄라고 주장하며 이의 타격을 막으려 하는가? "

여기서 2번 항은 팩트여부를 직접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는 항목이긴 하지만 1번 항의 팩트 여부를 또다른 각도에서 판단하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라 판단되기에 별도 항목으로 다뤄보도록 하겠다.

 

1. 전시에 교전 상대국의 전력망 혹은 에너지망을 공격하는 것은 전쟁범죄로 국제 협정에 명시된 전쟁범죄인가? 바꿔 말해 전력망과 에너지망은 제네바 협정이 규정하는 민간시설에 해당하는가?

검증의 첫 머리는 아래 그림 3으로 시작해보도록 하자.

그림 3.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송전망 타격을 규탄하는 연설을 중계한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의장 트위터 캡처.
그림 3.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송전망 타격을 규탄하는 연설을 중계한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의장 트위터 캡처.

보시듯이 그림 3은 2022년 10월 19일자,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유럽연합(EU) 의장의 트윗 캡처다. 여기서 폰 데어 라이엔 EU 의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간 인프라, 특히 전기송전망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은 전쟁 범죄 행위입니다. "

"겨울이 오고 있는데 남자, 여자, 아이들의 물, 전기, 난방을 차단하는 것은 순전히 테러 행위입니다. "

"그렇기에 우리는 그것을 전쟁범죄 행위라 불러야 합니다. "

폰 데어 라이엔 EU 의장도 "우리는 그것(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민간 인프라, 특히 전력망 타격)을 전쟁범죄 행위라 불러야 합니다."라고 말한 것을 보아하니 우크라이나 전력망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은 전쟁범죄가 맞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러한 연설문은 하나의 문장만 발췌하여 볼 것이 아니라 연설문 전체에서 말하는 뉘앙스를 통해 그 진의를 찾아야 한다. 아무튼 폰 데어 라이엔 EU 의장 연설의 의미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다루기로 하고 우선은 그림 4를 보도록 하자.

 

그림 4.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공급망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공격을 하는 중이다"라는 제목의 미국의 소리, VOA 2022년 10월 23일자 기사 도입부 캡처.
그림 4.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공급망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공격을 하는 중이다"라는 제목의 미국의 소리, VOA 2022년 10월 23일자 기사 도입부 캡처.

그림 4는 2022년 10월 23일, VOA에 올라온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공급망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공격을 하는 중이다"라는 제목의 기사, 혹은 아티클 캡처다.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VOA)야 잘 알려진 대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라디오 및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송출하는 미국 정부 국영 국제방송이고, 미국은 러시아에 선전을 포고하진 않았지만 - 즉 교전국은 아니라지만 -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에 가장 많은 군사, 외교, 경제적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미국의 관영방송 VOA가 국내 언론들과 같은 내용을 다루는 기사임에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공급망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공격중이다."라는 제목만을 붙였을 뿐, 국내 매체들처럼 해당 행위가 전쟁범죄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최종적으로 무엇이라 불리게 될 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무력 충돌에 있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도덕적으로 동등하지는 않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전쟁에 대한 의지를 규율하는 법 조항(jus ad bellum)을 심각하게 위반한 행위고, 우크라이나는 이 러시아의 끔찍한 침략에 의한 명백한 희생자라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점을 우선 언급해두자.

그런데 전쟁범죄 위반 여부는 무력충돌을 빚게 된 갈등의 이유나 원인의 정당성 여부가 아니라 무력충돌에 대한 법률(Law of Armed Conflict, LOAC)에 대한 위반 여부에 의해 판정된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이 LOAC는 무력충돌을 빚게 된 갈등의 이유나 원인의 정당성 여부는 판정하지 않는다. 이는 해당 법이 소속 집단에 관계없이 무력충돌로 인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것이지, 무력충돌을 촉발한 갈등의 이유나 그들이 싸우고 있는 원인의 정당성을 판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이 법으로 무력충돌을 촉발한 갈등의 이유나 그들이 싸우고 있는 원인의 정당성까지 판정하려 한다면 무력충돌 당사자 모두가 침략의 희생자라고 주장하는 상황에서는 해당 법의 시행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리하면 LOAC는 무력충돌의 정당성을 규정하는 법률(jus ad bellum)과는 독립적인, 전쟁 중 교전 활동의 합법성을 규정하는 법률(jus in bello)에 해당한다는 이야기다.

즉 러시아의 jus ad bellum 위반이 아무리 심각하더라도 러시아군의 모든 행동이 전쟁 범죄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바꿔 말하면 우크라이나가 불법적인 침공을 받았다 해서 그들의 군사행동 모두가 교전 활동의 합법성을 규정하는 다른 법률(jus in bello)들을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도, 전쟁범죄의 면죄부를 받게 된다는 의미도 아니다.(그리고 아마도 이것이 의무 교육과정을 통해 체제 찬양 교육을 받아온 일반인들의 감정적 사고 및 상식과 가장 큰 차이를 갖는 지점일 것이다.) 즉 러시아, 우크라이나가 각각 독립적으로 전쟁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모든 LOAC 조항에서 가장 기본적인 개념은 민간인 또는 민간 시설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금지하는 것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민간 소유이고 민간인이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라 해도 특정 상황에서는 여전히 합법적인 목표물로 직접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상의 전제를 염두하고 그림 5를 보자.

 

그림 5. 미국 국방부(DoD)가 펴낸 전쟁법 매뉴얼(DoD Law Manual) 2016년 개정판 Chapter 5 목차 (왼쪽) 와 5.6. 군사목표(Military Objectives) 항목 본문(오른쪽) 캡처.
그림 5. 미국 국방부(DoD)가 펴낸 전쟁법 매뉴얼(DoD Law Manual) 2016년 개정판 Chapter 5 목차 (왼쪽) 와 5.6. 군사목표(Military Objectives) 항목 본문(오른쪽) 캡처.

그림 5는 미국 국방부(DoD)가 펴낸 전쟁법 매뉴얼(DoD Law Manual) 2016년 개정판 Chapter 5. 적대행위의 수행(The Conduct of Hostilities)이 다루는 항목들의 목차(왼쪽)와 5.6. 군사목표(Military Objectives) 항목 본문(오른쪽) - 원문이 법전이라 각주가 많이 달려 있는데 이 각주들은 글이 다루는 내용에 직접 연관이 없는지라 용량 문제로 생략했다.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부탁드린다. - 을 캡처한 것이다. 여기서 푸른색 테두리가 쳐진 '5.6.8.5. 군사목표로 간주되는 대상의 사례들 (Examples of Objects Often Regarded as Military Objectives.)'의 내용을 한 번 살펴보자.

"군사 작전 또는 전쟁을 지원하거나 지속시킬 수 있는 산업과 관련된 경제적 수단들은 군사 목표로 간주될 수 있다."

"발전소는 일반적으로 무력 충돌기간 동안 국가의 전쟁 수행 능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통신, 운송 및 산업 분야의 전시 요구를 충족시키는 대상으로 인식되므로 군사 목표의 자격을 갖추기에 충분하다. 히지만 모든 발전소가 군사 목표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의료 시설을 시작으로 국가의 전쟁 수행 능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용도라는 것이 명확히 입증된다면 군사 목표에서 제외될 수 있다."

"휘발유, 제트유 및 윤활유 등의 유류 정제 및 (생산, 운송, 저장 시설들을 포함하는) 유통 관련 시설들 또한 군사 목표물로 간주된다. "

인용된 조항들을 보시듯 발전소(를 포함한 송전체계)는 일반적으로 무력 충돌기간 동안 통신, 운송 및 산업 영역에서 국가의 전시 요구를 감당하는 중요한 시설로 인식되므로 군사 목표의 자격이 충분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그 아래 항목에서 보시듯 유류의 정제 및 유통관련 시설들 또한 군사목표가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의 전력망 혹은 에너지망을 공격하는 러시아의 행위 자체는 전쟁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제 그림 3의 데어 라이엔 EU 의장의 발언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감이 좋으신, 혹은 법조문에 대한 지식이 있으신 분이라면 폰 데어 라이엔 EU 의장의 연설에도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이미 깨달으셨을 것이다. 폰 데어 라이엔 EU 의장은 우크라이나의 전력 및 에너지 공급망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을 전쟁 범죄에 준한 테러행위라 불러야 한다고 했을 뿐, 해당 행위가 국제법이 규정한 전쟁범죄라고 단언하지 않았다. 바꿔 말하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송전망과 에너지 공급망에 대한 타격이 비인도적 행위라고 매도, 혹은 규탄한다는 취지의 연설이긴 해도 전쟁범죄에 해당하진 않는다는 이야기다.

만일 친우크라이나측 프로파간다들의 주장대로 우크라이나의 전력 및 에너지 공급망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이 전쟁범죄 행위에 해당한다면 1950년에서 1953년 사이의 한국전쟁 당시 북한 전력망의 90%를, 1964년에서 1973년 사이에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민 전력망의 85%-90%를, 1991년 걸프전 당시 이라크 전력망의 90% 이상을 타격, 파괴했던 미국이나 1999년 코소보 전쟁 당시 세르비아 전력망의 80%를 정지시켰던 NATO(주로 영국과 미국 항공 전력) 연합군 측은 전범으로서 전쟁범죄 재판정에 서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후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기록을 보신 적이 있는가?

전쟁사를 돌아보면 항공기, 특히 대형 폭격기의 출현은 전선 너머 교전 당사국의 전쟁 수행 능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통신, 운송 및 산업 분야의 목표물, 나아가 민간인 및 비전투원을 타격하여 교전 상대국의 전쟁 수행 능력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 참전 당사국, 특히 미국과 영국은 무차별적인 항공폭격을 수행했지만 당시의 기술로는 교전상대국의 보복을 완전히 막아낼 수도 없었고, 특히나 이러한 타격은 교전 상대국의 전쟁 수행능력에 끼치는 영향에 못지 않게 자국 민간인들의 전쟁 지도부에 대한 불신을 시작으로 하는 심리적 영향도 고려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이에 20세기 초반에 전상자의 처우를 개선하고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제 적십자 위원회, ICRC가 창설되고 각국이 제네바 협약에 조인하면서, 그리고 그 협약이 지상 뿐만 아니라 바다에서의 전상자, 전쟁포로, 전시 민간인 보호에 대한 협약으로 확대되고 이후 무력 충돌의 형태에 따른 여러 가지 제약들이 더해져 민간인 등 비전투원과 그들의 생존에 필요한 시설에 대한 직접적인 타격을 금지했다. 세계 각국이 제네바협약에 조인한 이유는 핵병기와 V-2를 시작으로 한 탄도미슬의 등장으로 인해 교전 상대국의 후방에 있는 민간인에 대해 무차별 타격하면 자국 민간인들도 마찬가지 수준의 무차별 타격을 당하는 일이 가능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것이 미국 이하 여러 국가들이 핵확산 금지를 주창하는 이유다.

하지만 민간시설이라 해도 무력 충돌기간 동안 통신, 운송 및 산업 영역에서 국가의 전시 요구를 감당하는 중요한 시설로 간주할 수 있는 (발전소, 변전소, 변압기등을 포함하는) 송전 체계와 에너지 공급 체계는 여전히 준군사시설 및 군사목표로 간주되며, 이런저런 제약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점차 정밀해진 유도무기의 등장과 발전에 힘입어 민간인에 대한 직접적인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교전상대국의 전쟁수행 능력에 영향을 주고, 전쟁수행 의지를 꺾는 수단으로 타격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이 앞서 말한 북한, 베트민, 이라크, 코소보에서 미국이, 그리고 NATO가 했던 항공타격을 정당화하는 법적 근거이고, 따라서 같은 행위를 러시아군이 한다는 것만으로는 러시아를, 그리고 푸틴을 전쟁범죄자로 몰아갈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상의 근거에 기반하여 "전쟁 중 민간인 등 비전투원이나 전력시설, 상수원 같은 민간 시설물을 고의로 타격하는 것은 전쟁범죄에 해당한다. 보다 정확히 말해 무력 충돌시에 상대국의 송전(및 에너지 공급) 체계를 타격하는 것은 전쟁범죄에 해당한다."는 국내 매체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판정한다.

 

2. 그렇다면 우크라이나는 어째서 러시아의 전력망 혹은 에너지망 타격이 전쟁범죄라고 주장하는가?

젤렌스키 대통령 이하 우크라이나 지도부와 서방측 언론은 러시아의 전력망 혹은 에너지망 타격이 전쟁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어째서 그것을 전쟁범죄라고 주장할까?

당연히 우크라이나와 발전소를 포함한 송전망과 에너지 유통망이 전쟁 수행에 필요불가결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앞서 미 국방부의 전쟁법 매뉴얼에서도 언급했지만 발전소를 포함한 송전망은 무력 충돌기간 동안 국가의 전쟁 수행 능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통신, 운송 및 산업 분야의 전시 요구에 사용된다. 특히나 전자화된 현대전의 전장에 전기의 존재는 필요불가결하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에는 여기에 더해 두 가지 문제가 더 있다. 우선 우크라이나군 로지스틱은 철도에 대한 의존도, 그 중에서도 전기 기관차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현재 우크라이나 철도망 위에서는 전기기관차 1,627대와 디젤기관차 301대가 쓰인다고 한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전기의 부족으로 로지스틱을 도로 및 디젤 기관차로 전환한다면 최전선의 전투 차량 및 방공 플랫폼, 전자전 체계 등과 같은 전선의 유지에 필수적인 병기 체계들이 사용해야 할 연료를 일부라도 제한할 수 있다.

다음으로 우크라이나는 산유국이 아니다. 그리고 현재 남아있는 화석연료, 특히 디젤의 재고가 그리 많지 않다. 더하여 우크라이나의 도로 사정은 딱히 좋지가 않다. 동일한 차량으로 같은 양의 연료를 사용해도 주행거리와 휴행화물의 적하 총량까지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때문에 전선의 준비는 더욱 지연될 수 밖에 없다.

더하여 우크라이나의 전력망과 에너지 보급망에 대한 러시아의 타격이 가져올 전쟁 지도부와 우크라이나 민간인 모두에 대한 심리적 영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전기가 없으면 급수도, 난방도, 인터넷/이동통신도 쑬 수 없다. 더하여 겨울이 머지 않았다. 아니 10월의 비로 인해 이미 겨울을 여는 라스푸티챠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전력망의 능력을 저하시키는 것만으로도 우크라이나 당국은 가용한 전력량을 전쟁수행을 위한 노력에 써야할지, 민간인들의 생활 유지에 써야할지를 선택해야만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LOAC는 무력충돌이 발생했을 때 당사국 민간인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를 위한 것이지 그들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것까지 보장해줄 수는 없다.

사실 우크라이나의 송전망에 대한 러시아의 타격 시도가 딱히 새로운 것도 아니다. 철도 변전소는 4월까지 2주 연속으로 표적이 되어 왔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지도부와 서방 언론에서는 이것이 크림대교 사건 이후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9월부터 우크라이나의 발전시설을 겨냥한 러시아의 공격 빈도가 늘었다는 것이 아마도 보다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전쟁 지도부와 서방 각국, 특히나 폰 데어 라이헨 EU 의장이 "겨울이 오고 있는데 남자, 여자, 아이들의 물, 전기, 난방을 차단하는 것은 순전히 테러 행위입니다."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송전망과 에너지 공급망에 대한 타격을 규탄한 이유는 해당 행위가 실제로 LOAC 위반, 다시 말해 전쟁범죄에 해당되서가 아니라 무력충돌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와 이를 지원하는 서방 각국 정부의 결정에 대한 자국 민간인들의 반발과 심리적 영향을 줄이기 위한 프로파간다고 보는 것이 보다 팩트에 가깝다.

더하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민간에 돌아갈 상수원을 의도적으로 직접 타격한 사례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단지 해외 기사들에서 우크라이나의 송전 능력이 더 저하되면 급수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을 했을 뿐이다.

 

3. 마치며

앞서 보인 그림 4로 캡처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공급망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공격을 하는 중이다"라는 제목의 VOA 기사가 나왔던 시점이 2022년 10월 23일임을 상기해보자. 그리고 그 시기는 이 무력충돌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에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미국 바이든 (아니 날리면이라 해야 하려나) 대통령의 민주당 정권에 대한, 그리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및 경제 지원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지지여부를 날 것 그대로 보여줄 이벤트, 중간 선거(2022년 11월 8일)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VOA 보도는 이것을 전쟁범죄행위라며 바이든 행정부의 결정을 특별히 더 비호하지 않고 사실을 전했다. 기자라면, 언론이라면 이걸 보면서 뭔가 깨달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만일 10월 20일을 전후한 국내의 레거시 미디어들의 보도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송전망과 에너지 공급망에 대한 타격했다는 사실만을 전했다면, 나아가 해당 행위가 전쟁범죄에 해당하진 않지만 비인도적 행위인 것은 분명하다는 기사를 냈었다면 나는 국내 레거시 미디어 소속의 기자들 중에 그래도 언론인이 남아있다고 평가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당사국이 아님에도 언론이 이런 식의 사실을 벗어난 프로파간다를 해야 하는 이유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것이 정부 방침에 따른 것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한 것이 "[단독] 한국, 우크라 발의 인권결의안 기권… 고장난 GPS?"라는 기사가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정부의 실태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 이전에 스스로가 언론이라 말하고 싶다면, 그리고 기자라 자처하고 싶다면 기사란 기본적으로 팩트 전달에 있음을 상기하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데스크건 일선기자건 그것을 망각한 채 기사가 아니라 프로파간다, 혹은 사심이나 흑심 가득한 문장을 기사라고 내고 계시니 한국 언론에 대한 평가가 바닥을 달리는 것 아니겠나? 국내 레거시 미디어들과 그 소속 기자님들의 분발을 바랄 따름이다. 

우보형   nextop4u@naver.com    최근글보기
2차세계대전 이후 군사사와 병기사에 관심을 갖고 있다. 2004~2005년 <국방일보> ‘전사 속 신무기’ 연재했다. 2010년 <보급전의 역사>, 2017년 <세계의 병기 대도해>, <조지 패튼 : 내가 아는 전쟁>을 번역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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