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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를 식량으로 만든 영웅 프린츠 하버, 독가스까지 개발하다[박재용의 과학사] 프린츠 하버가 시사하는 과학 윤리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나라가 있다’라는 루이 파스퇴르의 말은 꽤나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주었습니다. 황우석박사가 한창 잘 나갈 때 인용한 말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과학자의 잘못된 애국심이 자신의 연구에 투영되어 인류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를 낳는 경우도 꽤나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독일의 프리츠 하버Fritz Haber입니다. 암모니아의 합성법을 개발했고 그 업적으로 1918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걸로 유명한 사람이지요. 그가 개발한 하버-보쉬법은 공업적으로 암모니아를 만드는 최초의 방법이었습니다.

암모니아 합성법을 개발한 프리츠 하버

20세기 초 유럽은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지만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식량문제였지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먹을 음식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늘어난다고 그에 맞춰 농사지을 땅이 늘어나진 않으니까요. 17세기 이후 꾸준히 유럽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유럽의 농사를 지을 수 있을 만한 땅은 이미 다 경작지가 된 후였습니다. 그리고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주택의 소요도 컸고, 산업 시설도 끊임없이 늘어나 오히려 경작지가 줄어들면 들지 늘어날 여지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19세기 초부터 이미 문제가 되었지요. 이를 멜서스의 트랩(덫)이라고들 했습니다. 영국의 멜서스가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될 거라고 ‘인구론’에서 주장했었는데 19세기 유럽은 이런 멜서스의 예언이 곧 실현될 것으로 믿을 만큼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었던 거지요.

그런데 19세기 말이 되기 전 유럽은 이를 두 가지 방법로 해결합니다. 하나는 감자였습니다. 중남미에서 들여온 감자는 기존에 밀농사를 짓기 어려운 아주 척박한 땅에서도 아주 잘 자랐고, 같은 땅에 심어도 밀보다 소출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고흐의 유명한 ‘감자 먹는 사람들’이란 그림도 그에 연유하지요. 급속히 감자 경작지가 늘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값싸게 구할 수 있는 감자로 끼니를 해결하곤 했지요. 18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풍경입니다. 그러나 감자만으로는 식량 문제가 완전히 해결이 되질 않았습니다. 인구가 계속 늘어났으니까요. 그 때 또 다른 기적의 물질이 감자와 마찬가지로 남미 대륙에서 옵니다. 구아노죠. 새들의 똥과 알 껍질이 수 천 년, 수 만 년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녀석인데 비료로 아주 탁월한 효과를 보입니다. 구아노를 가루 내어 뿌리면 기존의 밭에서 두 배 이상의 곡물이 수확됩니다. 또 이전에는 척박해서 농사를 지을 수 없던 곳도 밭으로 만들 수 있었지요. 또 농사를 두 해 짓고 나면 밭을 놀리거나 아니면 콩이나 질경이 같은 풀을 키워야 했는데 그럴 필요도 없었습니다. 대풍년이 계속 이어집니다. 삽시간에 식량문제가 해결되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구아노는 비료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었지요. 화약의 원료로도 아주 긴요한 물질이었습니다. 식민지에서, 유럽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을 벌이던 제국주의 국가들이 얼마나 많은 화약이 필요했겠습니까? 19세기 말이 되자 구아노는 바닥을 드러내고 맙니다. 다시 문제가 심각해졌지요.

영국이나 프랑스는 그래도 식민지가 전 세계에 널려있고 어떻게든 식량과 화약의 재료를 구할 수 있었지만 독일은 사정이 달랐습니다. 유럽의 후발주자였던 독일은 식민지도 별로 없는데 이미 전 세계를 지배하던 영국 프랑스에 맞서야 했으니 이중고에 시달렸지요. 식량도 화약도 부족했습니다. 이를 해결하려고 당시 독일의 과학자들은 무던히도 애를 썼지요. 그러던 와중에 프리츠 하버가 공기 중의 질소를 암모니아로 합성하는 방법을 찾아낸 겁니다. 적절한 촉매, 적절한 온도와 압력, 질소가 암모니아로 합성되는 최적의 조건을 찾아낸 것입니다. 암모니아는 조금만 처리를 해주면 바로 비료로 쓸 수 있지요. 하버의 암모니아 합성법은 순식간에 전 유럽에 퍼집니다. 그리고 이 방법이 도입되고 3년 만에 식량 생산량은 인구 증가량을 추월합니다. 흔히 말하는 녹색혁명이 일어난 거죠. 하지만 이 암모니아를 또 다른 방식으로 조금만 처리를 해주면 질산이 됩니다. 질산은 화약의 원료가 되지요. 싼 재료가 대량으로 공급되니 이제 그야말로 마음껏 화약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독일을 비롯하여 유럽의 전 국가들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화약을 생산하고, 총알과 포탄을 만듭니다. 그에게는 ‘공기로 식량을 만드는 과학자’라는 명예로운 이름이 붙었습니다. 물론 암모니아가 화약이 되기도 했지만 그 이유로 그를 비난하는 이들을 거의 없었지요.

그러다 1914년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납니다. 혈통은 유태인이었지만 독일에 대한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하버는 자신이 어떻게든 이 전쟁에서 독일을 승리로 이끌어야겠다는 결심을 하지요. 그는 가장 효율적으로 적군을 몰살시킬 방법으로 독가스 제조를 생각하고 실제로 이론을 완성합니다. 그리고 군을 설득하여 독가스를 실전에 사용하지요. 정말 적극적이었던 것이 그였습니다. 자신의 독가스만 있으면 독일이 승리할 수 있다고 군 수뇌부를 만나 열심히 설득한 덕분이었지요. 하지만 당시 유럽의 나라들은 전쟁에서의 독가스 살포를 금지하는 협약을 맺고 있었습니다. 그는 교묘하게 이를 회피할 방법까지 생각해냅니다. 그리하여 1915년 4월 벨기에 이프르Ypres에서 처음으로 염소가스가 살포됩니다. 약 1만5000명의 연합군이 질식해서 죽고 다칩니다. 그 즈음 같은 화학자였던 하버의 부인 클라라 임머바르Clara Immerwahr는 남편의 독가스 연구를 비판하고 말리다가 절망에 빠져 남편의 권총으로 자살합니다. 클라라 임머바르는 평소에도 남편의 독가스 개발에 반대하며 “과학자는 생명에 대한 통찰을 지녀야 한다.”고 했지요. 그러나 클라라의 죽음을 통한 호소도 하버에겐 전혀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내가 자살한 다음 날 아침 하버는 다시 러시아 군대에 독가스를 살포하러 떠납니다. 아내의 장례는 13살 아들에게 맡기고요. 참으로 모질고 모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삐뚤어진 애국심이 조국을 전쟁에서 승리하게 만들진 못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 1차 대전은 독일의 패배로 끝나지요. 만약 전쟁에서 독일이 이겼다고 한들 그가 영웅이 되진 못했겠지만 말입니다.

프리츠 하버(왼쪽에서 두번째) 독일을 위해 살상 무기로 쓸 독가스를 만들어 냈다.

그는 전범이 되기에 충분한 죄를 저질렀지만, 1차 대전에서 독가스를 사용한 건 독일만이 아니라 연합군도 매한가지여서, 그리고 다른 이유들로 유야무야되고 그는 자유로운 몸이 됩니다. 그러고도 그는 독일에 대한 자신의 애국심을 끊임없이 과학으로 표현하고자 했지요. 전후 막대한 배상금이 독일을 괴롭힐 때 그는 바닷물에서 금을 추출하여 갚을 방법을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실패했지만요. 만약 그가 순수 독일인이었다면 아니 유태인 혈통만 아니었다면 2차 대전에서도 맹활약을 펼쳤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로서는 불행하고 우리로선 다행스럽게도 그는 유태인이었고-물론 기독교로 개종했지만- 나치의 박해를 피해 도망칠 수밖에 없었지요. 그 이후의 그는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합니다.

물론 독가스의 개발이 그 하나의 힘만으로 된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과학적 발견이 대부분 그렇듯이 일정한 수준의 기술과 과학 그리고 사회적 요구가 만나는 지점은 당대의 여러 과학자들에게 연구해야 하는, 그리고 연구할만한 주제였고 독가스가 바로 당시에 그런 지점이었지요. 대량살상무기의 역사는 그 이전부터였고, 어떻게 적군을 적은 비용으로 대량으로 몰살시킬 것인가는 항상 군부와 정권의 관심이었습니다. 그런 요구들에 의해 대량 살상 무기가 만들어집니다. 당시에도 독가스를 연구하던 과학자들은 하버 하나만이 아니었지요.

그렇다고 이에 대해 직접 가담한 과학자들의 책임이 옅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흔히들 ‘위에서 시키니까’, ‘난 과학만 하지 사회나 정치 문제엔 무관하니까’, ‘조국이 원하니까’라는 식의 말을 하는데 이는 변명에 불과할 뿐이지요. 광주 민중항쟁에서 총을 든 군인들이 민간인을 학살할 때 ‘위에서 시켜서’라고 했다고 직접 쏜 사람의 죄가 사라질까요? 아니면 명령을 받아 병사들에게 사격 명령을 내린 일선 지회관의 죄가 사라질까요? 가장 큰 죄는 물론 전두환을 비롯한 당시 군 지휘관에게 있지만 시킨다고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른 이들에게도 책임을 묻는 건 당연합니다. 더구나 한두 명이 아니라 수천 명,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죄는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하버처럼 잘못된 신념으로 나선 사람 뿐만 아니라,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려고, 혹은 자신의 연구 성과를 위해서 마지못해 한 일이라고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또한 하버는 과거가 아닙니다. 하버 이후에도 핵폭탄 개발, 수소폭탄 개발 등 대량 살상 무기 개발 과정에서 과학자들의 참여는 계속 있어왔습니다. 인공지능 킬러로봇, 요인 암살용 드론 등 좀 더 효율적으로 인명을 살상하는 무기에 대한 연구가 지금도 과학자들에 의해 계속되고 있지요. 하버의 일을 지나간 과거로만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박재용 팩트체커    chlcns@hanmail.net  최근글보기
과학저술가. <경계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짝짓기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경계 배제된 생명의 작은 승리>, <모든 진화가 공진화다>, <나의 첫 번째 과학공부>, <4차 산업혁명이 막막한 당신에게>, <과학이라는 헛소리> 등 과학과 사회와 관련된 다수의 책을 썼다. 현재 서울시립과학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박재용 팩트체커  chlcn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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